기독교와 이슬람의 '같은 신' 논쟁에 대한 이슬람 선교 전문가들의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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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기독교의 '같은 신' 논쟁에 대한 이슬람 선교 전문가들의 견해

- 호킨스 교수와 휘튼 대학의 논쟁을 두고 -

(원문 Here’s What Evangelical Experts on Missions and Muslims Think of Wheaton's ‘Same God’ Debate)

Sarah Eekhoff Zylstra

 


이슬람과 기독교는 과연 동일한 신을 예배할까?

 

24명의 이슬람 선교 전문가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내리기 위해 모여 토의를 펼쳤다. 질문의 답에 따라 이슬람 선교를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이러한 접근법이 발생시키는 문제가 더 크다는 견해가 다수다. 전문가들은 보다 더 중요하고 논의가 필요한 질문들을 가지고 접근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복음주의 선교학회 (Evangelical Missiological Society: EMS)의 학회 회보 (Occasional Bulletin)32페이지의 특별 간행물이 발간되었다. 미국의 신학대학인 휘튼 대학의 라리시아 호킨스 (Larycia Hawkins) 교수가 페이스북에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같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글을 실어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학교 측이 징계를 했고, 이를 두고 발생한 여러 논쟁들을 다루며 건설적인 견해를 제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아랍계 복음주의자들 또한 이 논쟁에 동참하였다.]

 

트리니티 신학교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TEDS) 총장이자 선교학과 인류학 교수인 로버트 프리스트 (Robert Priest)는 휘튼대학과 호킨스 교수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들을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다라고 했다. 왜냐하면 휘튼에서의 일은 전 세계의 모든 복음주의자들과 선교사들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또한 나는 최근 이 사태를 관찰하면서 휘튼 대학교가 조성하고 있는 분위기가 우려되기 시작했다.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기독교인들과 주변인들의 반격, 그리고 선교학자들과 선교사들을 이 담론에 동참시키는 것에 실패하였다.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최근이 되어서야 이슬람교도들을 접할 수 있었고,이러한 현상은 피상적일 뿐 아니라 미국의 문화전쟁 속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제한적이고 편중적이었다.”라고 말했다.

 

미국 복음주의 관련자들 가운데 오랜 시간 동안 무슬림들과 가까운 관계를 맺어온 부류는 선교사들과 선교학자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중 다수는 휘튼 대학 출신이다. 하지만, 이들은 복음주의의 중심부를 대표하고 있고 전문적인 지식과 지혜를 학문과 목회 경험을 통해 축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지도를 받지 못했다.

 

일리노이 대학의 인류학 교수인 브라이언 화웰 (Brian Howell)은 이 사태를 요약하면서, 휘튼대-호킨스 교수 논쟁은 로르샤흐 검사지와도 같다고 하였다. “어떤 이들은 이 사태는 미국 복음주의가 근본적으로 편협적이고, 문화적으로나 인종적으로 근시안적임을 증명했다고 본다. 다른 이들은 이 사태는 관용이라는 미담 하에 기독교 신학의 진리를 폄하하는 자유주의와 다원주의의 확산에 맞서는 기관의 입장으로 인식하기도 한다.”라고 하기도 했다.

 

프리스트 (Priest) 교수에 의하면, 이 계기로 인하여 21명의 선교사들과 선교학자들과 담론을 펼치는 기회가 열렸다고 한다. ,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같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의 선교학적 시사점을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휘튼 대학-호킨스 교수의 상황에 대한 언급은 피하였으며 그 내용은 EMS 회보에 실려 있다. (응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복음주의자들이지만 한 명은 동방정교회 소속이고 한 명은 로마 가톨릭 소속이다.) 그들의 답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했다. 

 

(#1. 이 세상에는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신은 없다. - 이해를 돕기 위해 주장의 요지를 #와 함께 간략하게 정리해두었다. 편집자 주)

다른 하나님이 존재하는가?”라고 시애틀 퍼시픽 대학교(Seattle Pacific University)의 세계기독교학 교수 미리암 아데니 (Miriam Adeney)가 질문했다. “이 세상에는 단지 한 분의 하나님만이 존재한다.” 고든-콘웰 신학대학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에서 이슬람학과 다문화를 가르치는 폴 마틴데일 (Paul Martindale) 교수도 동의했다. “이 세상에는 오직 한 분의, 진정한 창조자 하나님이 존재한다. 성경은 명확하게 다른 신이 없음을 보여준다.”

 

(#2. 기독교와 이슬람이 이해하는 하나님은 다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이해하는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에 동의한다. 불교와 유교와 달리, 아브라함적 믿음은 하나님이 자연만물, 인간 공동체, 성경적 지혜와 윤리, 그리고 일반적인 인도하심을 통해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있었음을 기반으로 한다.”고 아데니 교수가 주장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비는 충격적인 은혜를 뒤따른 창백한 명암과도 같았고,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임을 당하셔야 했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혁명적인 자비를 은혜라고 부른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죽음이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낸다는 것은 이슬람과 기독교가 이해하는 하나님이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3. 이슬람과 기독교의 신 인식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바로 콜롬비아 국제대학 (Columbia International University)의 간문화 연구와 이슬람학 교수 데이빗 캐신 (David Cashin) 교수이다. “만약 이 둘 간의 차이가 없었다면, 배울 필요가 없다는 뜻이고 전도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4. 신 인식에 대한 확고한 신학이 중요하다.)

모태 이슬람교인 전도하기 운동인 글로벌 이니셔티브 (Global Initiative: Reaching Muslim Peoples, who was raised as a Muslim)’의 국제 트레이너 프레드 파로크 (Fred Farrokh)는 차이를 이해하는 것즉 확고한 신학을 가지는 것은 선교학 이전에 성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만약 예정론적인 선교관을 따른다면 우리는 거꾸로 된 패러다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오해와 오류가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고 우리가 도와주기를 바라는 이들, 지금의 상황과 같이 이슬람들을 선교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 있게 된다.”라고 하였다. 

 

(#5. 이슬람과 기독교의 하나님이 같은 분이라면, 새로운 질문들을 제기해야 한다.)

조지폭스 대학교 (George Fox University)의 종교학 교수 사리타 갈라거 (Sarita Gallagher)기독교와 이슬람이 바라보는 하나님이 동일하다고 여긴다면, 새로운 질문들이 제기된다고 언급했다. 예를 들어 알라가 하나님이라면, 이슬람교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인가? 여호와 (Yahweh)는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기원전 610년 히라 동굴 (Cave of Hira)에서 무하마드 이븐 압둘라 (Muhammad ibn ‘Abdullāh)에게 말씀하셨던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코란은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를 수록하고 있는가?”하는 질문들이다.

 

(#6. 이슬람과 기독교가 언급하는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다르다.)

하나님을 다르게 이해한다면, 예수님 또한 다르게 이해한다는 뜻일 것이라며 Assemblies of God Theological Seminary의 회장이자 도시학 및 이슬람학 교수인 마크 하스펠드 (Mark Hausfeld)가 다음과 같이 글을 썼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혹은 더 잘 알려진 이름인 몰몬들이 사용하는 몰몬경, 교리,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에 등장하는 예수님과 성경의 예수님은 같은가? 여호와의 증인들이 개정한 신약전서인 신세계역은 어떠한가? 이 두 개의 경전들에 모두 예수님이 등장하지만 예수님이라는 인물과 행적은 성경에서 나타난 것과는 다르게 이단적이다. 예수라는 철자법은 같지만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들은 성경에서 드러난 인간 예수와 예수님의 행적을 다르게 정의하고 오류로 인해 왜곡하였다. 이 사실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똑 같은 맞춤법으로 쓰지만, 코란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은 본원적으로 다른 성품을 가지고 있다.”

 

(#7.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 공통점을 찾는 것이 선교적 차원에서 필요하다.)

실질적으로 얘기하자면,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에 공통구역이 있다면 접근하기가 더 용이할 것이다. 마틴 데일전도학에 의하면 이슬람과 기독교 간에 일치점이 크면 클수록 이슬람의 합당한 선택지로서 기독교로 바꾸는 것을 더 쉽게, 그리고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한 것처럼, 두 종교의 차이점이 강조될수록 개종에 대한 저항은 더 크다이슬람들과 30여 년간 관계해오면서 성경에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과 알라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슬람을 만나기는 어려웠습니다. 기존에 이슬람 성도였다가 개종한 사람들 또한 처음에는 같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서야 이슬람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가르침과 또 예배하는 방법이 잘못되었고, 거짓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아시아에 있는 이슬람 주변국들에서 성인 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존 제이 트레비스 (John Jay Travis) 선교사이자 풀러 신학대학 교수는 이슬람교인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을 잘못 예배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소통의 문을 차단해버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이슬람 교인들과 성경을 읽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이슬람 지역에서 발견된 성경의 주요한 부분은 알라를 사용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교인들과 함께 예수님 중심의 증인의 주요한 핵심인 마음과 몸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

 

(#8.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기존의 이슬람적 신 인식을 기초로 기독교적 인식을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마크 내일러 (Mark Naylor)는 노스웨스트 침례신학교의 교직원이자 이슬람 인종 그룹에서 오랫동안 선교 사역을 해왔다. 그는 그의 박사학위를 위해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보는지 연구했다.

이슬람 교인과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두 개의 통제집단이 돌아온 탕자 (누가보음 15)의 내용을 묵상하게 하면서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에 대해 논하도록 하였다. 이 실험과정에서 그 어떤 집단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묻거나 이슬람과 기독교의 하나님이 다른지 묻지 않았다. 모든 참가자들은 하나님은 유일하며 예수님의 아버지인 알라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것, 혹은 그것에 대해 의논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슬람 교인으로 구성된 통제집단은 일관되게 하나님을 주인으로, 자기 자신을 종으로 인식하였다. 이 관계를 부인하진 않으면서도, 기독교로 개종한 통제집단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스스로를 사랑받는 자녀로 보는 새로운 관계성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또한 알라는 하나님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수용자 중심적이라고 내일러는 서술한다. “위 질문에는 명확하게 규정된 올바른 답변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인 혹은 집단이 가지는 알라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의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부정적이고 가혹했던 경우에는 예수님의 사랑은 그들의 관점과는 대조적일 것이고, 그들은 섬기러 오신 하나님이 모든 민족과 인류를 아끼고 위하시는 것을 수용하여 알라를 떠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약 이슬람의 하나님을 은혜와 자비, 용서의 하나님으로 인식하되 깊은 친밀감은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면, 예수님이 길과 진리요 생명이심을 알려주고 아버지와의 살아있는 관계로 초대하는 것이 알라에 대한 앎을 키워가는 것만큼 매력적일 것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동일하신 분이다. 단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이다.”

 

(#9. 신명에 대한 논의는 시대적, 문화적으로 계속 있었다.)

테드(TEDS)의 종교철학 교수인 해롤드 네트란드는 기독교의 하나님,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타종교의 신들과 대립하여 비교해보는 행위는 이슬람교에게 새롭거나 그들에게만 제한되었던 것은 아니라고  응답했다“17세기 중국의 예수회와 도미니크회를 예를 들면, 그들은 성경 속의 하나님을 일컬을 때 상제 (上帝)’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지에 대한 토의를 했다. 예수회의 몇몇 사람들이 주장하기를, 고대의 유자들이 숭배한 상제가 성경적 하나님과 같다고 주장했다. 도니미크회와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이를 거절했다. 유사한 사태는 19세기 말 한국에서도 일어났다. 성경적 하나님을 일컫는 데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선교사들 간의 광활한 토의가 이뤄졌다. 일본의 경우에도 신도에서 사용하는 ()’을 사용하는 것이 성경의 하나님으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 팽팽한 의견대립이 있었다.”

 

(#10. 잘못된 질문이다.)

(#10-1. "같은 하나님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한편,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같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냐는 질문 자체가 파멸적이고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응용 언어학 대학원 (Graduate Institute of Applied Linguistics)의 아브라함학 교수 아블커트 앤더스 리처드슨는 답변했다.

만약 이 질문이 계속해서 제기된다는 것은 가톨릭과 동방정교회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 하지만식의 답변을 주었음을 반영하는 것뿐이다. 예배학적 혹은 구원론적 의미를 무시한 것이다. 예배에 대한 논의는 예배학적이고 참회적인 것이고 교파적인 것이다이 질문은 심판에 대해 굉장히 높은 수준의 잣대를 두게 한다. 성례에 들어가기에 앞서 참회적이고 교파적 질문들과 연결되어 있고 성직 수여, 그리고 가장 민감한 사안인 구원의 믿음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다른 종교에게는 적용될 수 없으며 이 질문은 피해야 할 나쁜 질문이다.”


(#10-2. 다른 질문, "같은 하나님을 믿는가?"가 아니라 "같은 하나님을 아는가?"와 같은 하나님 이해에 대한 질문을 물어야 한다.)

오엠국제선교회 (Operation Mobilization)데이빗 그린리 (David Greenlee) 국제 연구 및 전략 담당자는 이러한 질문이 나누고 편을 가려놓는 신학적 리트머스지로 보여진다면서 그러나 더 궁금한 부분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과연 가능하느냐는 것이다. ‘이슬람교와 기독교인은 과연 같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일까? 어떤 이슬람교를 말하는가? 어떤 기독교를 말하는가?’그리고 예배라 함은 의식과 전통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우리의 삶을 드리는 산 제사를 의미하는가? ‘동일하다는 것 역시,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자 만물의 창조주인 하나님이라는 존재론적인 정의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믿음에 대한 충분하고 구체적인 동일함을 이야기하는 것인가?”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대안으로 다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같은 하나님을 아는가?”

 

로이 옥세네바드 (Roy Oksnevad)는 휘튼 대학에서 복음주의를 위한 빌리 그래함 센터에서 이슬람 선교회의 디렉터를 맡고 있다. 그는 이슬람 교인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부분적인 혹은 전무한 이해를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혹은 보다 더 성찰적인 질문으로, 기독교인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하나님을 이해하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관점이 혹시 고집불통인, 편협적인 시각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형성한 생각은 아닌지, 혹은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 빌립처럼 굴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고민해 볼 부분이다. 이런 빌립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한복음 149)’라고 답하셨다.”를 물을 수 있다.

 

(#11. 이슬람 교인들을 향한 선교적 목표를 분명히 하되, 알라와 하나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모두 견지할 필요가 있다.)

이 질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공통지대를 만드는데 힘써야 한다. 알라와 하나님이 동일한 부분을 보여주되 다른 점에 있어서는 그 차이와 경계를 명확하게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단계는 이슬람 교인들을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는 목표를 가지고 해야 한다. 이 부분이 바로 EMS를 통해 집결한 모든 전문가들이 동의한 부분이다.

 

(#12. 이슬람과 기독교의 단절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태를 통해 드러난 대중의 반응은 결국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코란과 성경을 통해 인식한 하나님이 얼마나 크게 다른지, 두 그룹이 얼마나 깊게 단절되어 있는지를 드러냈다대웰 화이트맨 (Darrell Whiteman) 해외 사역 연구 센터의 임시 전무 이사 (interim executive director of Overseas Ministries Study Center)가 답변했다.

 

프리스트 교수는 호킨스는 이 차이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으려고 했던 것뿐이었다. 사도바울과 같이 말이다라고 서술하면서 사도행전 1723절을 언급한다. “바울은 알지 못하는 신을 위해 새긴 아덴의 단을 가리키면서 아덴 사람들이 예배 (NIV‘worship’으로 나옴)’한다고 말하면서 바울이 이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하나님이 누구인지로 연결 짓는다. 바울은 예배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서 구원론적인 의미를 내포하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아덴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관계로서 봤다는 뜻은 아닌 것과 같다.” 오히려, 바울은 이들과 공통지대를 형성하고자 노력했다는 것이다. 동일한 차원으로, 이슬람교인을 전도할 때 바로 이러한 공통점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 알라를 세상의 창조주로 보는 것, 노아 시대에 지구를 홍수로 뒤덮으셨던 분, 아브라함에게 스스로를 드러내신 분,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보이신 분으로 말이다.

프리스트 교수는 EMS에 공헌하고 있는 전문가들에게 휘튼 대학교를 직접 언급하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끝에는 이 부분이 조금 후회스럽다고 결론 부분에 썼다.

나는 많은 글들이 휘튼 대학교의 처사에 대해 큰 불만을 갖고 있다는 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 또한 많은 미국의 복음주의 선교사들과 선교학자들, 그리고 사도 바울 또한 휘튼 대학에 있었다면 면직을 당할 위험에 놓였을 거라는 생각에 막혀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들 또한 휘튼 대학이 제재하고 있는 것과 같이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나의 가르침을 위배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우리 모두가 휘튼 대학과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프리스트의 결론은 호킨스가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동일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주장은 공통지대를 형성하기 위한 시도였으나 적당한 주의 사항 없이 거론되고 상당히 애매한주장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호킨스 교수는 바울과 오늘날의 많은 선교사들의 선례를 따른 것이었다고 보고, 그녀가 뒤따라 펼친 논증 또한 휘튼 대학의 교리적 입장을 전혀 반하지 않는다고 맺었다.

 

따라서 프리스트 교수가 앞으로 우려되는 점은 만약 호킨스가 대외적으로 명시된 논리와 증거에 의해 면직된다면복음주의자들이 이슬람교, 아프리카계 미국인, 비신앙인, 그리고 법정에서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프리스트 교수는 또한 선교학자들의 직업이 걱정된다고 했다. “사랑과 창조성, 그리고 기업가의 도전정신을 가지고 이슬람교사람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어온 복음주의자들이 이제는 동료 기독교인들이 받은 처우를 보며 억눌릴 것이고 제지를 당하게 될 것이다라고 썼다. 그는 또한 미래에 기독교로 개종하게 될 이슬람 인구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슬람교도들이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알라를 악한 존재로 배척해야 된다는 것으로 학습될 것이 염려된다. 이 점은 복음이 좋은 소식이고 진리로 여기는데 엄청난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이슬람교도를 전도한 수많은 선교사들에 의하면 이러한 가르침은 선교학적으로 큰 문제를 초래하고 복음을 증언하는데 반생산적이라고 주장한다.”

프리스트 교수는 몇 개의 소망과 기도를 열거하며 끝을 맺는다.

 

이 사태에 연루된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선교학자들을 포함하여) 타인의 지혜에도 귀를 기울임과 동시에 이 사건의 핵심을 다시 따져보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지혜와 겸손, 그리고 두려움 없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높이고 기독교의 복음을 전파하는 길로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나는 소망하고 기도한다.

휘튼 대학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지 상관없이, 미국의 복음주의 공동체들이 미국의 이슬람교도들에게 지혜롭게 사랑을 보여주고 정당한 형태의 존중을 나타내는데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리하여 복음을 증거하는 열린 사회, 그리고 평화로운 시민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끝으로, 이 사태의 발생지가 선교학의 범주였던 만큼 선교학자들이 여러 곳곳에서 형성해온 그들의 통찰력과 지식을 오늘의 미국 복음주의를 위해 명확하고 용기 있게 드러낼 수 있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주변에도 알릴 수 있기를 바라고, 극적인 행위와 주장들은 문화와 교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반 위에 세워져야 함을 인식하여 애매모호함, 오해, 그리고 이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다른 한편으론, 때론 즉흥적으로 시작될 수 있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과의 첫 접촉과 그 시작은 항상 지저분하다는 것을 있음을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최전선에서 열심히 사역하고 있는 그들을 우리가 더 인정해주고 지지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이번 사태를 교훈으로 삼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우리의 복음주의 공동체, 복음의 증거자들, 그리고 우리의 시민사회 참여자들에게 유익한 가르침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휘튼 대학-호킨스 교수 사건에 관심 있는 분들은 EMS에 출간된 글을 전체적으로 읽어보면 유익할 것이다. CT는 이후 아랍계 복음주의자들의 견해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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