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U-네트워크 사회 속 교회 공동체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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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의 교회공동체와 그 역할

#3-2

 

 

 

안도헌 목사 (영남교회)

 

#1. 21세기 교회가 처한 현실 [바로가기]

#2. U-네트워크 사회 이해 [바로가기]

(1) Ubiquitous의 'U' - 새로운 권력, 편재하는 힘

(2) User의 'U' - 새로운 주체, 사용자

#3.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의 공동체 이해

(3-1) 라인홀드 니버(R. Niebuhr)의 견해에 대한 비판 [바로가기]

(3-2)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 [현재글]

#4.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 교회의 현실 [바로가기]

#5.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의 교회 네트워크 [바로가기]

#6. 결론 [바로가기]


3.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의 공동체 이해의 변화


3-2.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

니버가 이해했던 공동체는 개인들의 운집, 그리고 그것을 통제하는 국가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적 한계는 인정하더라도 그가 개인과 사회를 구분하고 사회를 공동체라는 운명적 공간에 종속시켜 사용한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U-네트워크 사회에서는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적용될 수 있다. 그것은 앞에서 살펴보았던 U-네트워크 사회가 가지고 있는 U의 두 가지 의미와 일맥 상통한다.

 



(1) 집단지성의 출현 - “많아지면 달라진다



via ipmiracle.tistory.com



클레이 셔키(Clay Shirky)는 공공 미디어의 출현으로 세계의 사람들의 자신의 여가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나타난 새로운 사회적 자원을 인지 잉여(Cognitive Surplus)’라고 불렀다.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인구 사이에 매년 1조 시간이 넘는 여가 시간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그것을 네트워크 상에서 공유하고 창조적인 산물을 만들어내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미디어(특히 텔레비전)만이 존재할 때는 이러한 인지 잉여의 개념이 성립될 수 없었다. 그러나 단순히 소비적인 측면에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측면, 잘 활용하는 측면에서도 기능할 수 있는 미디어, 그리고 쌍방적인 미디어, 소통 가능한 미디어가 존재하자 매년 위키피디아 1만 개를 생산할 수 있는 시간들이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셔키는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 속에서 하나의 문구를 창조해낸다. 그것은 곧 많아지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니버가 말한 도덕적인 개인과 비도덕적인 사회의 개념과는 다른 방향에 존재하는 개념이다. 셔키의 말에 비추어 니버의 말을 정의해 보자면 니버는 오히려 많아지면 타락한다라고 보았던 것이다. 개인들이 도덕적일지라도 그들이 모여 있는 집단은 강제적인 통제를 통해 인간 안에 존재하는 욕심, 이기심 등을 억제할 수밖에 없으며 국가로 대변되는 사회공동체는 불가피한 비도덕성을 띨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니버의 요지였다. 하지만 셔키는 모여지는 개인들의 도덕성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주어진 여가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며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 개별자들의 관심에 집중했다. 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단순히 도덕만이 아니다. 관심의 범위는 개인 취향에서부터 사회 정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그 다양한 기준이 하나의 집단적 행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셔키는 그러한 집단적 행동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이 얼마나 세상을 바꿔가고 말로만 정의를 부르짖거나 이론적으로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는 탁상공론보다 더 큰 영향력이 있는지를 증명했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많아지면 달라진다고 평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C-인간, U-네트워크 사회로의 전환

근대적 주체성에서 사용자로서의 주체로 탈바꿈한 인간, 연속과 단절이 공존하는 새로운 공간 속에서 인간과 기계의 경계선이 불분명함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오늘날의 인간은 과연 어떻게 부를 수 있을까?

가만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둘러보면 하나의 흥미 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날의 인간은 칩(chip)이 들어가 있는 카드(card)를 통해 자본(capital)을 사용하고, 컴퓨터(computer)와 휴대폰(cellular phone)을 통해 대화(communication)를 하며 케이블(cable)과 코드(code) 속에서 사이버(cyber)를 경험, 주도한다. 그것을 통해 기존 질서를 벗어난 새로운 공동체(community)를 통해 새로운 변화(change)를 추구한다.** 이로 보건대, 오늘날의 인간은 ‘C’라는 알파벳에 둘러 싸여 살아가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굳이 명명하자면 ‘C-인간인 것이다.

C-인간의 특징은 우선 카드를 사용하여 자본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소비적 주체이다. 여기서 카드는 단순한 신용카드(credit card)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는 수많은 카드들 역시 이 속에 포함된다. 쇼핑을 할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식사를 할 때도, 삶의 곳곳에 카드는 자본을 이동시키는 유용한 도구가 되어 있다. 두 번째는 컴퓨터와 휴대폰을 사용하여 불특정 다수와 대화하는 주체이다. C-인간은 불특정 다수의 의견을 묻고 공유하며 새로운 대안들을 만들어가고 때로는 논쟁하면서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아닌 자율적인 이야기(story)를 만들어 간다. 세 번째는 케이블과 코드 속에서 사이버 세계를 경험하거나 주도하는 능동적인 주체이다. 케이블이 존재하는 곳에서 코드 명령어만 일치하면 네트워크 도구를 통해 누구나 가상공간, 곧 사이버 공간에 진입할 수 있다. 그 곳은 인간의 온갖 상상이 모여 있는 가상의 세계임과 동시에 인간이 살아가는 실제 공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실제 공간이기도 하다. 인간은 그 속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상상을 실현하기도 하며 필요한 것들을 이용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기존 질서를 벗어나 새로운 공동체를 지향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변혁적인 주체이다. 이제 공동체는 오프라인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온라인 공동체, 혹은 사이버 공동체가 오프라인 공동체를 대신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으며 그 영향력은 오프라인 공동체를 앞지르고 있다. 2007년 통계를 보면 전 세계적으로 최다 방문 웹사이트 가운데 7개가 사회적 네트워킹 사이트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의 개인과 사회는 ‘C-인간과 U-네트워크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속에는 어떠한 가치 평가가 들어있지 않다. 그냥 주어진 현상을 설명하는 차원에서의 C이자 U이다. 그런데 그 수식어들은 수많은 관계성 속에서 소통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창발적으로 만들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C-인간이 도덕적이든 비도덕적이든 U-네트워크 사회는 도덕적이 될 수도 있고 비도덕적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늘 안고 있다. 중요한 것은 중립적인 가치 평가 속에서 창발적인 결과물들이 인간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3) ()’체에서 공()’체로 - 분절되지 않은 개인과 구조

공동체를 역사의 연속적 관점에서 볼 때,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공동체의 모습은 존재한다. 온라인 공동체가 활성화 되는 현실 속에서도 오프라인 공동체는 병행적으로 운영되며 국가의 역할과 기능이 변화한다 하더라도 근대적인 국가는 실존한다. 또한 사회가 첨예한 네트워크 사회, 첨단 기술 사회로 나아가는 와중에도 인간의 삶을 위한 세계의 공동의 노력들은 거시적 차원이든 미시적 차원이든 조직적으로, 때로는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공동체의 모습이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것은 공동체(共同體)’라는 개념을 구성하는 각각의 한자어에서 ()’()’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간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런데 그 범위가 무한정 확대된다고 할지라도 그 공간 안에 존재하는 공동체는 함께 한다는 전제를 위배할 수 없다. , 함께 한다는 사실이 공동체의 경계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U-네트워크 사회에서의 공간의 경계는 분명 유동적이다. 그리고 불확정적이며 모호하다. 하지만 경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경계가 위압적이고 운명적이지 않을 뿐, 함께 한다는 ()’의 정신이 공유되고 있는 곳에는 그들만의 분명한 경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변하지 않는 공동체의 의미는 ()’에서 찾을 수 있다. 네트워크 사회에서 몸의 경계도 공간의 경계처럼 모호해진다.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고 사이버 세계 안에 있는 나와 밖에 있는 나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이 일어나며 실제 존재하는 육체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과학기술들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단순히 모여만 있는 것을 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 진정한 의미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진정성 있는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의 방식이 다양할 수 있지만 참여는 곧 몸의 참여이다. 이 몸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할지라도 참여는 곧 ()’의 정신을 구현하는 중요한 지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 이해에서 변화해야할 한 가지가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 ()’에 대한 이해이다. 하나의 고백, 혹은 하나의 원칙과 기준이라는 것은 공동체의 기본 요소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공동체의 존재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함께 따르는 원칙이나 기준이 없다면 사람은 그 곳에 모일 아무런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된다. 목적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개별자들의 목적만이 엉성하게 엮인 상태로 단순하게 모여 있는 사람들을 군집이라고 부르지 공동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공동체로 모인 사람들의 마음에는 저마다의 소소한 목표들이 있을 수 있으나 공통된 그 무언가는 반드시 존재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하나의 것이 개별 구성원들과 맺는 관계성이다. 과거의 공동체에서는 그 하나의 것이 개별 구성원들을 억압하는 일종의 권력으로 기능했음이 분명하다. 구성원들이 따르고 싶은 자발적 원칙이 아닌 강제적으로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당위적 원칙이 되어 구성원들의 개별성을 거세했던 것이 과거 공동체의 특징이다. 국가 권력이 그러했고 종교 권력이 그러했으며 아직도 사회 곳곳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과거 공동체의 목표는 구성원들을 동일하게만드는 것이다. 동일화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강제성이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 자발성이 사라진 집단 안에서 통제를 위해 강제된 하나의 기준은 개별 구성원들과 규율 권력의 관계를 맺고 있음이요 그 기준과 그 기준을 설정한 이들이 파놉티콘으로 기능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오늘날 U-네트워크 사회가 가장 지양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동일화 전략이다. 어느 영역에서든 똑같아지는 것에 대한 거부는 이미 사회의 기본적인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오히려 다름을 추구하고 변화를 좋아한다. 고정된 것보다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며 규정된 것보다는 창조하는 것을 환영한다. 이렇게 볼 때, 과거의 공동체는 공()라고 한다면 오늘날 U-네트워크 사회에서의 공동체는 공()라고 부를 수 있다. 함께 같아지는 몸이 아닌 함께 움직이는 몸으로서의 공동체가 바로 U-네트워크 사회에서의 공동체인 것이다.

함께 움직이는 몸으로서의 공동체는 분절적이지 않은 개인과 구조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네트워크 구조의 변화는 그 안에서 행위 하는 행위자의 행동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행위자의 행동 변화, 행위자와 다른 행위자와의 관계, 그리고 다른 행위자들 간의 관계가 네트워크상의 구조적 지위 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개인과 구조 사이에 상호 feedback이 이루어지면서 개인과 구조가 변화하는 것이 네트워크 구조의 특성이다. 또한 공간사회학에서도 공간이 사회적 삶을 규정하는 중요한 차원인 동시에, 바로 그 공간이 역으로 사회적 삶의 변수들에 의해서 규정된다는 상호 관계에 대한 사회학적인식에 토대를 둔다.

U-네트워크 사회에서 개인은 구조의 부속물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은 구조를 이루는 하나의 결절이다. U-네트워크 이전 사회에서 개인은 미리 구성된 구조에 예속되어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구성 요소로 기능했다면 U-네트워크 사회에서 개인은 구조의 필요충분조건으로 기능한다. , 구조는 개인의 의식을 규정하기도 하지만 개인에 의해서 구조도 변화한다는 것이다. 개인, 집단과 국가 수준에서 자신의 결정에 따라 경계(개인적이며 집합적 소속, 정체성)를 정하며 그러한 소속과 경계에 지속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 자체가 권리의 주요 양태의 하나가 될 필요가 있다. , 집단의 경계를 개인의 결정에 따라 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네트워크화가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조건이 될 것이다.

이로 보아 U-네트워크 사회에서 정의할 수 있는 함께 움직이는 몸으로써의 공()’체는 분절되지 않는 개인과 구조를 포괄하고 있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거시적으로는 함께하는 몸’(그리고 )으로써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공동체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이 고정되어 있거나 같아짐을 목표로 하지 않고 변화하고 유연하며 움직이는 것을 그 속성으로 갖는다. 미시적으로는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과 구조가 자유롭게 상호 작용하면서 구조에 의해 개인의 행동이 영향을 받고 또한 개인의 행동에 의해 구조가 변화하는 순환적이면서도 변증법적인 과정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

 

 

 

via dsuh.me

  


* Clay Shirky, Cognitive Surplus : How Technology Makes Consuners into Collaborators, 이충호 역, 많아지면 달라진다, (서울: 갤리온, 2011), 33.

** 최인식, 예수, 그리고 사이버세계,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 129-30쪽 참고.

 Matthew Fraser and Soumitra Dutta, Throwing Sheep in the Boardroom : How Online Social Networking Will Transform Your Life, Work and World, 최경은 역, 소셜네트워크 e혁명 : 개인과 조직, 시장과 사회를 뒤바꾸는, (서울: 행간, ), 18-22.

⁂* 장승권, 최종인, 홍길표 지음, 디지털 권력 : 디지털 기술, 조직, 그리고 권력, (서울: 삼성경제연구소, 2004), 101.

 한국문화사회학회 지음, 문화사회학, (서울: 살림, 2012), 248.

 이재열 외 10, 네트워크 사회의 구조와 쟁점,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25. 

 

 

#1. 21세기 교회가 처한 현실 [바로가기]

#2. U-네트워크 사회 이해 [바로가기]

(1) Ubiquitous의 'U' - 새로운 권력, 편재하는 힘

(2) User의 'U' - 새로운 주체, 사용자

#3.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의 공동체 이해

(3-1) 라인홀드 니버(R. Niebuhr)의 견해에 대한 비판 [바로가기]

(3-2)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 [현재글]

#4.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 교회의 현실 [바로가기]

#5.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의 교회 네트워크 [바로가기]

#6. 결론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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