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U-네트워크 사회 속 교회 공동체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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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의 교회공동체와 그 역할

#5, #6

 

 

 

안도헌 목사 (영남교회)

 

#1. 21세기 교회가 처한 현실 [바로가기]

#2. U-네트워크 사회 이해 [바로가기]

(1) Ubiquitous의 'U' - 새로운 권력, 편재하는 힘

(2) User의 'U' - 새로운 주체, 사용자

#3.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의 공동체 이해

(3-1) 라인홀드 니버(R. Niebuhr)의 견해에 대한 비판 [바로가기]

(3-2)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 [바로가기]

#4.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 교회의 현실 [바로가기]

#5.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의 교회 네트워크 [현재글]

#6. 결론 [현재글]


5.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 교회 네트워크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 교회는 실질적인 구조적, 개인적 문제를 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원인은 우선 과거 네트워크 사회 안에서 형성된 교회의 구조와 패러다임을 변화된 상황 속에서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이요, 동시에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 필요한 새로운 구조와 패러다임을 유연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날 교회의 변화는 필연적인 과제일지도 모른다. 이는 단순히 현실적 문제가 발생하여 변화해야 한다는 반성적 담론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종교개혁자들의 외침, 개혁교회는 계속 계혁되어야 한다는 교회의 본질적 개혁 메커니즘을 따르는 주체적이고 당위적 담론에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교회 현실을 바라보는 교회구성원들에게 있어 교회의 변화라는 과제는 소수의 사람들만의 과제가 아닌 개별 주체들 모두에게 필연적인 과제이다. , 교회구성원 모두가 짊어질 마땅한 책임이라는 것이다.

본 글에서는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 교회공동체로의 변화와 역할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다만 지역 교회공동체들의 실천적 네트워크를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는 것으로 본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via shutterstock.com


5-1. 네트워크된 지역 교회공동체

네트워크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요청이며 교회의 존립을 위한 방법론적 필요이다. 이제 협력과 상생의 원리를 깨닫지 못하면 개별 교회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돈 많은 건물주가 되어버린 현실은 이제 우리의 피부에 와 닿고 있다. 세우는 데는 오랜 시간과 전통이 필요했을지 몰라도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그래서 유지하는 데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새로운 사회 속에서 교회들이 기대하며 바라는 vision은 네트워크된 지역 교회공동체이어야 한다. 이는 일정 정도의 지역 안에 있는 교회들이 교단과 규모를 초월하여 네트워크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연합 운동(United Movement)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연합 운동과 네트워크 운동은 같지만 그 방법론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연합 운동은 통일과 일치를 강조한다. , 같아짐을 전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네트워크 운동(Networking Movement)은 그 방향이 반대이다. ‘다름을 전제로 같은 방향을 추구하는 것이다. 연합 운동은 공통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운동이지만 네트워크 운동은 다른점을 찾아 연결하는 운동이다. 한 목소리의 고백 아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연합 운동을 너머 다른 목소리의 고백이지만 하나의 고백적 연결(confessional link)을 만들어 가는 네트워크 운동을 지향하는 것이다.

네트워크 운동의 실패는 같아졌다라는 의식이 몰려올 때이다. 진리는 결코 이데올로기일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개별 주체들에게 만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서로 다른 하나님과의 조우 방식은 결코 모래알처럼 흩어지지 않는 연결점이 존재한다. 그래서 제대로 된 의식의 방향은 바로 연결됐다라는 것이다. 교회들만의 개별 특수성은 파괴되지 않는다. 어느 교회가 어느 교회로 흡수되는 것도 아니다. 네트워크는 개별 교회들의 특수성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Uniform를 입어 통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Unique하게 입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서로 다른 옷이지만 왠지 어울리는 듯한 느낌, 그것을 주는 것이 네트워크 사역의 핵심이다.

그런데 네트워크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결절들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 미시적 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가장 최소 단위인 가정에서부터 교회 내의 부서 및 관계들부터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한 번 더 눈을 들어 살펴보면 같은 지역 안에 존재하는 교회들을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경계의 제약성이 약한 중고등부 및 젊은 청년들에서부터 네트워크는 더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 교회, 너희 교회는 존재하지만 이것이 연결된 하나님의 교회를 각자의 영역에서 고민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바로 작은 규모의 중고등부, 청년부에서부터 말이다.

 

5-2. 네트워크된 교회공동체의 특성


지역 교회공동체들의 네트워크 단위는 임의로 설정될 수 있다. 반경 1km내의 교회로 한정할 수도 있고 같은 동, 같은 구, 같은 시, 같은 도 등 어떻게든 지역적 범위는 정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네트워크가 다음과 같은 튼튼하고 건강한 특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모임은 철저하게 project이다. , 사안에 따라 모이고 사안에 따라 하던 일들이 중단되거나 수정, 변경될 수 있다. 하지만 항상 모여서 무엇인가를 하며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없이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 연결의 단절은 이러한 이상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네트워크는 일에 집중하는 사역이 아니다. 일은 관계를 단절시킬 수 있는 여러 요소를 함축하고 있다. 하나의 목표, 하나의 조직, 하나의 과업 등은 사람들을 쉽게 지치게 한다. 하지만 비전은 그러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각자가 참여하는 목적과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것들이 새로운 목표, 새로운 조직, 새로운 과업이 된다.

project는 얼핏보면 지속성이 결여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사역적 특성에는 지속성이 담겨 있다. 사람은 사정에 따라 일을 변경할 수 있지만 project는 계속된다. 개별적 사정에 따라 이합집산은 자유롭다. 하지만 그것은 파괴가 아니라 흐트러졌다 다시 모아지는 아메바와 같은 경계의 유연성이다. 사람에게 의존하는 사역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가는 관계로부터 나오는 창발적 결과들을 기대하는 사역이다. 그래서 이것은 project이자 관계적 사역이며 지속적인 사역이다. 꾸준히 일을 해야 할 책임이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꾸준히 관계를 연결하면서 유지해야 할 책임은 모두에게 주어진다.**

두 번째는 구체성이 있어야 한다. 신앙인의 대전제는 하나님의 영광이자 하나님 나라의 도래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저반에 감추어져 있는 바위와도 같다. 이러한 대전제들이 실천이 없는 추상적 선언들로 선포될 때, 사람들은 금방 지치게 된다. 모든 봉사와 사역이 대전제에 모아질 때, 구성원들은 일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관계를 놓치게 되며 지속성보다는 단기적인 과업 달성에 초점을 모으게 된다.

그래서 그 추상적 선언들에 대한 구체적 실천, 곧 신학적 실천(theological practice)이 필요한 것이다. 이 신학적 실천은 신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한 추상적인 선언들을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통해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이것은 하나의 운동(movement)’의 모습을 보인다.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은 곧 각 개인과 공동체를 움직이게 한다는 것이다. 진실로 공(), 함께 움직이는 몸이 되어가는 것이다.

신학과 신앙이 구체화를 잃어버릴 때, 부활을 기대할 수 없다. 부활은 예수의 성육신(incarnation)이 전제되지 않으면 이 세상 가운데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 된다. 그런데 예수의 성육신 사건은 바로 하나님의 현현이자 하나님의 인간화이며 곧 하나님의 구체화이다. 추상화된 하나님이 구체적인 현실이 되신 일, 그 일을 통해 구원의 길인 부활이 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실천의 당위성이며 구체화가 신학적인 이유이다.

세 번째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네트워크를 하는 것이 침체된 교회공동체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줄 기회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스스로 자립의 길을 걷고 있지 못하는 많은 작은 교회공동체들의 고민도 일정 정도 해소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내 교회를 살리기 위함이거나 내 교회를 알리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는 연결의 단절로 금새 드러나게 된다. , 자기 교회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설 때, 네트워크는 깨지는 것이다.

이 네트워크 사역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기대이며 바램이다. 같아짐을 초월한 다름 속에서의 진정한 하나됨을 발견하기 위한 마음이 이 사역에 동참하는 교회공동체들의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야 한다. 창발적인 결과들은 기대하는 것이지 예상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교회가 이것을 통해 어떠한 유익을 누리게 되는지는 창발과는 거리가 멀다.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허락하실지 기대하는 마음,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 바로 진정성인 것이다. 개별 특수성이 유지되지만 그 곳에 욕심이 서리는 것은 불순한 것이 된다.



6. 결론

 

사실 U-네트워크는 결국 오늘날 상용되고 있는 네트워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다만 두 가지의 ‘U’가 더욱 강조되는 네트워크라는 측면에서 U-네트워크이다. 명확한 시기를 가를 수는 없지만 네트워크 안에서도 급격하게 변화되었음을 감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 첨예화된 네트워크와 그것으로 인해 형성된 사회 구조 및 개인의 인식은 확정되어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문제라기보다는 머지않은 때에 분명히 변화될 사안이라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왜냐하면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인간의 상상력에 점점 근접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떠한 사회가 도래하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오늘의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적응력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기술, 기계 혹은 도구들보다 인간이다. 지체(lag) 현상의 심화는 적응과 도태, 인정과 소외의 갈림길에 인간을 몰아세울 수도 있다. 사회 구조는 그렇게 구성될 것이고 그러한 적응력을 기르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인간은 변화되어 갈 것이다. 잘 적응한 인간은 인정을 받으며 그렇지 못한 인간은 도태되고 소외당할지도 모른다. 미래 사회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이들의 진단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이유가 분명 U-네트워크 사회 속에 배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미래의 사회를 기계에 의존하는 사회로 둘 수는 없다. 비록 사이버네틱스의 기획이 인간과 기계의 동질화에 있고 인간에 대한 의식과 몸에 대한 개념이 점차 기계화 되어 간다 하더라도 인간은 할 수 있고 기계는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창발이며 책임이라는 것은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기계는 무한을 계산하지 못하지만 인간은 무한을 직관할 수 있고 기계는 자기제어는 가능하지만 인간처럼 자기의 실존을 자각하지 못한다.그것이 인간과 기계의 질적 차이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교회공동체를 대입해 보았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안타까움아쉬움이었다. 이는 본 연구가 갖고 있는 한계이자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사회는 급변하고 있지만 교회공동체는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사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아야 할 교회공동체의 가치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 안에 변화해야 할 것들까지도 무비판적으로 포함시키는 태도가 교회공동체 안에 잔존하고 있다. 그렇기에 좀 더 바른 태도를 가지고 분별할 수 있는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했으며 본 글은 사회학적인 관점을 차용하여 교회공동체가 처한 사회 모습(U-네트워크 사회)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주체들의 모습을 그려 보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네트워크 사회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바탕으로 신학적 관점을 제시한 자료들이 부족했고 그나마 존재하는 자료들은 네트워크 도구를 선교적 차원으로 활용할 때 필요한 자세나 실용적인 대안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좀 더 깊이 있는 통찰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에 다시 봤던 영화 스텝업(Step Up) 2’에서 주인공 앤디가 했던 말을 떠올려 봤다. 거리의 춤꾼인 주인공 앤디는 사정에 의해 예술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본래 팀을 이탈하게 된다. 하지만 학교 안에 숨어 있던 여러 친구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스트리트 댄스 대회에 참가하려 하다가 기존 팀들의 텃새에 밀려 대회 참석을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봉착한다. 그 때, 앤디는 배타적인 그 사람들 앞에 서서 외친다. 그녀의 외침의 요지는 바로 거리(street)’에 대한 정의였다. “거리는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고 닫힌 공간이 아니라 모두가 만들어가는 열린 공간이다.”

교회공동체도 세상에 대해 앤디가 말한 거리의 정의에 부합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통제되고 닫혀 있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에 대해 활짝 열려 교회를 통해 창발적이고 책임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껏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소원해 본다.


 

* 본 글의 기초가 되는 필자의 논문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 교회공동체의 역할에서는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 교회공동체로의 변화와 그 역할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 네트워크 사역을 하다보면 사정에 의해 지속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 정죄하고 비판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일시적인 아름다운 이별은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지나친 사명감의 강조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골을 만든다. 네트워크 사역은 좀 cool할 필요가 있다.

 김용정, “기술정보화 시대에 있어서의 인간의 의미”, 정신문화연구통권61호 제184(1995. 12), 29.


 

 

#1. 21세기 교회가 처한 현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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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Ubiquitous의 'U' - 새로운 권력, 편재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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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 [바로가기]

(3-2)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 [바로가기]

#4.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 교회의 현실 [바로가기]

#5.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의 교회 네트워크 [현재글]

#6. 결론 [현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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