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U-네트워크 사회 속 교회 공동체 3/6



반응형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의 교회공동체와 그 역할

#3-1

 

 

 

안도헌 목사 (영남교회)

 

#1. 21세기 교회가 처한 현실 [바로가기]

#2. U-네트워크 사회 이해 [바로가기]

(1) Ubiquitous의 'U' - 새로운 권력, 편재하는 힘

(2) User의 'U' - 새로운 주체, 사용자

#3.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의 공동체 이해

(3-1) 라인홀드 니버(R. Niebuhr)의 견해에 대한 비판 [현재 글]

(3-2)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 [바로가기]

#4.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 교회의 현실 [바로가기]

#5.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의 교회 네트워크 [바로가기]

#6. 결론 [바로가기]


3.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의 공동체 이해의 변화

 

앞서 언급한 사회 이해를 바탕으로 그 안에 존재하는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성을 통해 공동체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개인은 어떠한 존재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개인과 사회를 도덕적인 관점에서 이해한 라인홀드 니버의 견해를 비판하고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관계 이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3-1. 라인홀드 니버(R. Niebuhr)의 견해에 대한 비판



라인홀드 니버의 관심은 이상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어느 정도 선에서 만족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상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근사치적인 가치들의 실현이었고 실현 가능한 가치들로써의 이상이었기에 현실주의적인 관점이라는 평가를 듣게 된다. 그의 유명한 저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는 이러한 니버의 생각과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는 이 책에서 도덕적인 인간들이 모인 사회가 어떻게 비도덕할 수 있는가를 밝혀내고자 했다. 그의 이러한 고민은 1932, 제국주의 국가에 의해 세계가 온통 전쟁으로 얼룩진 시대 속에서의 고민이었다. 그런데 종교적 도덕주의자들이나 세속적 도덕주의자들 모두 제국주의의 형태로든 계급 지배의 형태로든 집단적 힘이 약자를 착취할 때, 그것에 대항해서 다른 힘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낭만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들은 결국엔 도덕적인 세력이 부도덕한 세력에 대해 승리할 것임을 낙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니버는 부도덕한 세력은 결코 꺾이지 않을 것이며 역사를 통틀어 그러한 일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역설한다. 그리하여 도덕적 이상주의자들의 태도를 지양하고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현실적 대안을 찾아간 니버의 고민은 시대적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니버는 개별자들이 갖고 있는 이성의 한계성에 집중한다. 이성은 결국 이해관계의 충돌을 다 해결할 수 없고 충돌의 불가피성에 따라 힘에 대해서는 힘으로 도전하는 수밖에 없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도덕적인 문제가 개인들의 관계에서부터 집단들의 관계로 옮아가면 갈수록 사회적 충동에 대해 이기적 충동이 우세해진다고 보았다.* 가장 이성적인 사람들이라도 그들 자신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때 결코 이성적이지 않다. 자기의 이해관계가 스며드는 영역이 넓으면 넓을수록 위선은 모든 유덕한 노력의 불가피한 산물**이 되어 결국 인간의 이성적 능력의 한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힘과 힘의 충돌이 발생할 때, 그 속에서 도덕적인 기준은 사라지고 일정한 제한이 기능하게 된다. 니버는 개인이 집단으로 나아가면서 도덕은 개별적인 것이 아닌 공동의 것, 곧 정치적인 것으로 바뀌어 간다고 보았다. 그 속에서는 반드시 강제성에 의한 제한이 있게 마련이고 도덕적 인간이라 하더라도 집단 속에서 선한 본성이 강제적인 힘에 의해 제한되는 현실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리하여 니버는 국가의 부정직을 자연스러운 귀결로 본다.

하지만 니버의 개인과 사회공동체 사이의 설명은 그 시대적합적인 측면으로 인해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전쟁의 상황 속에서 국가의 강제력만이 더 큰 부도덕을 막아낼 수 있다는 현실론은 전쟁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전쟁의 불가피성보다 전쟁의 불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현 시점에서는 국가의 강제력이 설득력을 얻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쟁의 상황 속에서 내면화된 국가의 강제성이 전쟁을 경험하지 않는 자유로운 세대들에게는 일종의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시민들의 비폭력적이고 자발적인 집회를 국가와 정부에 반대하는 불법적 집회로 규정하고 공권력을 투입하여 강제로 진압하는 행위를 보고 그들은 전쟁이 내면화시킨 국가의 강제성만이 비도덕한 사회를 통제하는 가장 필요한 힘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시대착오적인 발상일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힘의 불균형에 근거한 니버의 현실론은 오늘날의 U-네트워크 사회에서 부분적으로 전복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것은 몇 가지 비판적 질문을 통해 검증할 수 있다. 첫 번째, 개인과 사회공동체를 파악하는 데 있어 기준이 도덕과 비도덕이어야 하는가이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합리적인 사회로 만드는 힘이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선한 도덕성, 그리고 인간의 이성적 한계를 전제로 할 때 더 큰 집단으로부터 발생하는 강제성이라고만 판단하기에는 오늘날의 개인과 사회는 다양한 기준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니버는 사회적 관점에서 생각할 때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정의이며 개인적 관점에서 볼 때 최고의 이상은 무사성(unselfishness)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세운 도덕이라는 기준이 결국엔 개인의 희생과 집단의 강제성을 옹호하는 논리가 되었음은 비판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만일 개인과 사회공동체의 도덕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능력이 인간의 이성이라고 한다면, 개별 인간의 이성 능력의 한계로 인하여 발생한 국가의 강제성은 개별 인간의 희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환원적인 논리이다. 결국 피해를 받는 것은 도덕적 이상을 위해 강제성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개별적인 인간,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이다. 니버는 무사성이라는 말로 너무 쉽게 인간의 도덕적 이상을 정의내린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두 번째, 개인에서 사회로 넘어가는 시점의 문제이다. 과연 어느 시점부터 사회는 비도덕해 지는가이다. , 어느 정도의 규모가 되면 도덕적인 개인들이 모여서 비도덕한 사회를 만들게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니버는 도덕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를 썼던 1932년보다 약 30년 뒤인 1960년에 쓴 서문에서 그 때와는 다른 관점이 생겼다고 고백하면서 자신이 정한 저서의 제목이 지나칠 정도의 구별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는 개인의 도덕적 및 사회적 행동과 사회 집단 - 국가적, 인종적, 경제적 -의 그것과의 사이에 명확한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또 이 구별은 순전한 개인 윤리로서는 언제나 당황할 것이 틀림없는 정치 정책들을 정당화하고 또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제목이 지나칠 정도로 이 구별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앞으로 집중적으로 다루게 될 주장을 잘 표시하고 있다.⁂*


니버는 도덕과 비도덕의 경계가 어느 정도의 집단 규모에서 형성되는지를 생략하고 있다. 이는 그가 처했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다양한 공동체의 모습을 보지 못한 한계일 것이다. 그가 1960년 서문에서 밝힌 아주 짧은 고백인 지나친 구별30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공동체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래서 세 번째, 진정 많아지면 타락하는가의 질문을 던지게 된다. 많아지면 제한을 받게 되고 특정한 누군가의 강제성이 개별자들을 압박한다는 것이 니버의 주장일텐데 그 패러다임을 깨는 사례가 U-네트워크 사회에서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대규모 촛불집회이다. 2003년 미국 여러 곳에서 광우병 발병 사례가 보고되자 대한민국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금지했다. 하지만 20084, 이명박 정부는 미국과의 FTA 협상의 선행 단계로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는 것에 합의했다. 미국산 소고기가 수입된다고 발표되자 시민들은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그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의 구성원 중 절반 이상이 십대들이었고 대규모 촛불 집회는 지속적이면서도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석 달이 지나도 시위가 누그러들지 않자 급기야 정부는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폭력을 사용하는 공권력이 SNS를 타고 퍼져나가면서 시위 규모는 더 커지게 되었고 전 세계적인 사건으로 확대되었다. 그 심각성을 인지한 이명박 정부는 텔레비전 방송에 나와 국민의 의사를 묻는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고 소고기 수입 금지를 해제한 것과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니버의 주장대로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강제성이 더욱 필요해진다고 본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화적 시위를 진압했던 정부의 논리일 뿐이다. 국가의 정책이 비합리적이고 부도덕한 결정이라고 판단되었을 때, 개별적인 인간들은 모여서 더 큰 도덕적 행동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다 도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들이 도덕적 판단에 근거하여 모였던 것도 아니다. 이는 오히려 니버가 말한 개별 이성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집단 지성의 힘이었다.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정부의 절차를 비판하는 목소리부터, 먹거리에 대한 불안함을 호소하기 위한 주부들, 광장 문화에 익숙해진 젊은이들, 대규모 시민 운동을 정치적 대안으로 여기는 사람들까지 그 목적이 다양했다. 그리고 이렇게 많아지니 타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달라진 것이다.  



촛불아 모여라! 될때까지 모..
촛불아 모여라! 될때까지 모.. by redsoul405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 Reinhold Niebuhr,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이병섭 역, 도덕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 (서울: 현대사상사, 1972), 269.

** 위의 책, 63.

 위의 책, 264.

위의 책, 7.

Clay Shirky, Cognitive Surplus : How Technology Makes Consuners into Collaborators, 이충호 역, 많아지면 달라진다, (서울: 갤리온, 2011), 54.

 

#1. 21세기 교회가 처한 현실 [바로가기]

#2. U-네트워크 사회 이해 [바로가기]

(1) Ubiquitous의 'U' - 새로운 권력, 편재하는 힘

(2) User의 'U' - 새로운 주체, 사용자

#3. U-네트워크 사회 속에서의 공동체 이해

(3-1) 라인홀드 니버(R. Niebuhr)의 견해에 대한 비판 [현재 글]

(3-2)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 [바로가기]

#4. 사회와 공동체 이해를 바탕으로 한 교회공동체 이해와 그 역할



문화선교연구원 공식 계정

블로그 ]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 [ 트위터 ]



반응형
카카오스토리 구독하기

게 시 글 공 유 하 기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밴드

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미지 맵

    웹진/테크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