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독교 문화콘텐츠를 기다리며-최종회]기독교 문화콘텐츠란 어떤 것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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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지만 이제 16회를 마지막으로 ‘새로운 기독교문화콘텐츠를 꿈꾸며’ 시리즈를 마무리지으려 한다. 

사실은 ‘기독교문화콘텐츠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케케묵은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도 있다. 본인의 제안은 기존의 교회 안으로만 향하는 좁은 의미를 넘어, 세상속에서 세상의 언어로 통용될 수 있는 ‘열린’ 기독교문화콘텐츠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아티스트 본인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의 작품의 뿌리에 자신의 신앙이 어떤 형태로든(확신과 열정이든 또는 의심과 질문이라도) 자리잡고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문화콘텐츠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예들을 음악, 영화, 드라마, 공간, 게임 등의 예를 통해 지난 15회차 동안 살펴보았다.

이제 마무리하며, 조금 생뚱맞게도 영화 ‘곡성’(나홍진 감독)의 2016년 5월 개봉 당시 본인이 쓴 짧은 글을 나누어보려 한다. 열린 마음으로, 세상 속에서 세상과 대화할 수 있는 기독교문화콘텐츠가 어떤 것이 되어야 할지에 대해 작은 인싸이트가 되기를 희망한다.



*주의) 영화 ‘곡성’에 대한 치사량의 스포가 들어있음. 

곡성에서 감독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써 보려한다. 물론 이것이 정답은 아니다. 영화엔 문외한인 한 목사가 감독의 인터뷰들을 중심으로 퍼즐조각을 맞추어본 정도로 생각하면 될듯하다.

내 생각에 곡성은 기독교(적) 영화라고 과감히 말하고 싶다. 그 이유로 우선 감독 본인이 말하길 ‘이 영화는 신에게 던지는 자신의 질문’이라했다.

물론 영화라는 건 엄연히, 만원 내고 사람들이 어두컴컴한 데서 두 시간동안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놀이상품이 본질이다. 감독들이 폼잡고 GV 등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하지만 사실은 어떻게 관객을 많이 끌어들이고 돈 많이 버느냐가 일차적으로 이 장르의 미션이다. 그렇기에 영화 자체에 너무 거룩하고 숭고한 의미를 부여하는 순진함도 지양해야겠지만..(물론 곡성도 서양식 오컬트와 동양식 민간신앙이 짬뽕된 완벽한 오락물임에 틀림없다. 분명 세계시장을 노리고 노련하게 기획된 상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진정성을 가지고 말을 걸어오는 순간들이 있기에 그런 부분에 집중해보려한다.

워낙에 영화 내용이 혼란스럽기에 감독인터뷰에 의해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외지인(쿠니무라 준 분), 일광(황정민 분), 무명(천우희 분) 의 정체에 대해

1. 원래 감독이 끝까지 관객을 헷갈리게할 의도로 플롯을 짰기 때문에 여러 반응이 나올 수 있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 씬 별로 관객의 예상반응을 %로 계산했다고 한다. '이 씬을 보면 관객 80%는 외지인을 악마로 볼거야' 그리고 다른 씬에서는 그 퍼센트를 뒤집는 설정을 하는 식이다. 그래서 보다 보면 '그래서 이 새끼가 나쁜 놈이야 좋은 놈이야?' 하는 짜증과 혼란이 수도 없이 온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재미를 주려한 부분이다.


2. 하지만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외지인과 일광은 한통속이고 악마(또는 하수인)이다. 감독은 다음과 같은 단서를 넣었다했다.

(1) 둘다 일본식 속옷(훈도시)를 입고 있다

(2) 제사의식에서 닭을 사용하는 동일한 방식

(3) 엔딩장면 일광이 가지고 있는 동일한 사진들, 사진을 찍는 동일한 행동

(4) 원래는 엔딩장면을 하나 더 찍었다고 한다. 일광이 운전석에 앉아있는데 외지인이 와서 하나로 합쳐진다. (빙의 개념?) 그리고 운전하며 가는데 무명이 앞에 있고 그녀를 통과할 때 차가 뒤집어진다. 편집실에서까지 넣을까 말까 하다가 군더더기 설명 같아서 뺐다고.

(5) 일광이 살을 날리는 굿을 하는 대상이 외지인 같지만 그것은 감독이 관객을 속이려는 교차편집이었다. 일광은 종구의 딸을 향해 살을 날리고 있었다. 무당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은 알아봤을 거라 했는데 굿의 모든 셋팅은 방안에 있는 사람을 향한 것이었다. 그리고 일광은 장승(마을의 수호신)에 못을 박았다. 외지인과 한통속이라는 뜻이다. 같은 시간 외지인도 제사의식을 하는데 그것은 박춘배를 좀비화시키는 의식이었다고 감독은 말했다.


3. 무명은 처음부터 신으로 설정했다(인터뷰에서는 신이라고 표현했는데 딱 들어맞진 않지만 어떤 면에선 하나님이라고 볼 수 있겠다. 감독은 자신이 크리스찬이며 신을 믿는다고 인터뷰했다. 물론 감독의 기독교 신앙에 대해 너무 순진한 기대를 갖을 필요는 없다. 다원주의적 신 관념을 가졌을 수도 있고... 하지만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신에 대한 한 인간의 질문이라는 점에서 아래의 논의는 분명 유효하다.)

(1) 종구 일행에게 쫓겨 가까스로 도망친 외지인이 무명과 산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찍었으나 통편집했다. 인터뷰에서 천우희는 온몸에 멍이 들어가며 외지인과 격투신을 찍었다고 했는데 감독은 오랜 고민 끝에 이 씬을 통편집했다고 한다.(너무 명확한 설명이 되는 것 같아 별로라) 무명은 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지만 악마와 싸웠고 나름 해를 입혔다.

(2) 앞서 말한, 찍기만 하고 넣진 않은 숨은 엔딩에서도 무명은 한번에 일광과 외지인에게 일격을 날린다.


정리하자면

*외지인(일본인), 일광(황정민) = 한통속. 악마(내지는 하수인). 마을 사람들과 종구의 가족을 죽게 만드는 목적.

*무명(여자) = 마을사람들을 지키는 역할. 외지인과 일광에 대항해서 싸운다.


감독은 이 영화는 가까운 사람이 어이없는 죽음을 맞았는데 도대체 이유가 뭘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내가 처음 물었던 질문은 인간이 피해자가 되는 데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 피해를 입었는지는 알겠는데, 왜 피해를 입었는지는 모르겠더라. 이건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데, 내 존재와 직결된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

그 때 신에게 물었다. 선입니까, 악입니까. 진짜 존재는 합니까. 존재한다면 왜 방관합니까. 여러 참사나 이유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피해를 당하는 겁니까. 그 질문을 이 영화를 통해서 하고 있는 거다. 누구나 종구가 될 수 있다.‘ (인터뷰 중)

신으로 설정된 무명은 영화에서도 실제 그렇게 묘사된다. 멀리서 바라볼 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두 가지 장면이 있는데

(1) 외지인이 종구일행의 트럭에 치여서 일행이 절벽으로 시신을 던져 버릴 때 무명은 흰 옷을 입고 산 중턱에서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감독은 이 장면이 제일 마음에 든다고 했는데 감독이 느낀 신의 모습은 딱 이런 모습이다.

(2) 클라이막스에서 무명은 종구에게 닭이 세 번 울때까지 집에 가지 마라하는데 무명은 그늘 속에 숨어서 소극적으로 믿기 어려운 말만 할 뿐이다.


감독: 영화를 본 관객들은 무명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다. '신이냐 악이냐', '누가 죽인거냐', '사람이냐 귀신이냐', 뭐 이런 것들일 거다. 만약 신이라면 '왜 아무 것도 안해', '왜 방관하고 있냐', 이런 질문도 할 것이다. 관객들이 무명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 곧 내가 신께 여쭙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기자 :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치열하게 영화를 만들면서 신에게 질문을 했다. 그런데 그 대답을 못 들을 가능성이 높지 않나. 이렇게 힘들게 질문을 했는데, 죽을 때까지 대답을 듣지 못하면 어떡하나.

감독 : (답을) 하셔야 한다. 지금 신이 존재의 위협을 받고 있고, 세상도 많이 바뀌었지 않나. 어떤 대형사고가 터져도 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나는 신이 무명 같다. 때론 초라해보이기도 하고, 실패한 자 혹은 고독한자, 외로운 자 같다. 저 멀리 어디 구석에 쭈그린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회적 분위기는 어떤 하나의 이유로 만들어진 게 아니지 않나. 선량한 사람들이 더 힘들고 다치는 세상이다.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게 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힘든 상황이 긍정으로 나아가고 더 나아지려면 신이 컴백을 해야된다고 생각한다.

기자 :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감독: 그렇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 줄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나는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다. 선을 지향한다. 영화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다. 영화가 어둡다고 나까지 오해하지는 않길 바란다.(웃음)


(인터뷰 중)


감독의 질문은 ‘팽목항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는 질문에 다름 아니다. 1,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겪고 난후 유럽의 신학자들이 제기한 질문, ‘과연 그 때 하나님은 어디계셨는가’는 질문과 같은 것이다.

이 영화를 본 날 강남역 부근에서 한 여성이 이유없이 잔인하게 피살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악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세상의 질문에 우리는 답해야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설교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책임감이 너무나 엄중하게 다가온다. 돌아오는 금요일에 나니아의 옷장에서는 세월호 유가족이신 창현 어머니 최순화 님을 모시고 간담회를 한다. 그 아픔과 억울함 앞에 우리는 어떤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선과 악이 공존하고 그 경계도 점점 모호해지는 이 불의한 시대속에, 마치 그늘속에 숨어계시는 것만 같은 하나님을 어떻게 세상에 이야기할 것인가.

곡성이라는 한 편의 완벽한 오락영화를 보고 난후 감독이 던지는 이 칼날 같은 질문, 도발적이지만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이 계속 나를 파고든다.


글을 마무리하며

그래서 나는 곡성이 기독교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느꼈다. 선과 악의 존재. 그 모호함.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

기독교영화가 무엇이냐에 대해는 많은 논쟁거리가 있지만, 이 영화는 신의 존재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예전에 어떤 독립영화가 기독교영화를 자처하며 개봉하였는데 ‘노방전도씬이 나온다’, ‘어떤 씬에서 컴퓨터 배경화면에 십자가를 보이게 했다’ 정도의 피상적인 수준이라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기독교영화는 ‘하나님 짱짱맨’ 정도의 홍보영화여야만 하는가. 오늘의 영화문법에서 좋은 영화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다. 곡성은 신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그 자세가 모범생 기독교인 스타일은 아닐 수 있겠다. 예술가들에게 그런 걸 요구하는 건 무리일지도. 하지만 인터뷰에서 질문에 대한 어떤 진정성이 느껴졌다.

감독은 중립성을 나름 지킨 것 같지만 통째로 삭제된 두 장면에서 보면 신에 대한 기대가 나름 있지 않나 싶다. 종구일행이 벼랑에서 추격하다 놓친 외지인을 보이지않는 숲속에서 무명이 공격하였고 치명타를 입혔다.(그래서 결국 종구 트럭 앞에 떨어졌고.)

또 삭제된 엔딩에서도 무명은 외지인+일광의 차를 뒤엎는다. 결국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구체적 액션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닭 세 번 울기 전 장면, 처마 밑 그늘에서 그저 ‘집에 가지 말라. 나를 믿어라’고 말만 하던 무명의 모습은 야속하기만 하다. 도와줄 마음이 있는건지 없는 건지. 그런 양가 감정이 감독의 심정 아닐까. 어디까지나 개인적 추측이다.

곡성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답해내야 할 것이다.


사족

* 곡성에 직접적으로 기독교나 교회가 전면에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부제와 종구가 성당의 사제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할 때 나이 많은 사제는 너무나 심드렁하게 ‘우리는 해 줄게 없다. 병원에 가보라’고 말한다. 지금 종구의 가정에는 악마가 쳐들어 오고 있고 종구는 어떻게든 막아내려 목숨을 걸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세상이 던지는 요청에 너무나 나이브하게 응답하고 있는 교회의 현실을 보는 듯하다.

* 부제가 동굴에 찾아가 외지인을 만나는 장면은, 감독 말에 따르면 보너스 게임같은 거라고 한다. 영화 전체 플롯에 큰 영향을 주기보다는 또 하나의 작은 이슈를 다뤄보고 싶은 외전? 같은 느낌으로 생각하면 될듯하다. 짧은 장면이지만 나름 독립적 이슈를 던진 듯 하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

* 흥미로운 것은 종구의 딸 혜진역할을 한 아역배우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역할인데 너무 잘 해냈다.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는데, 아이 엄마가 독실한 기독교신자라 촬영전 아이와 손잡고 기도를 많이 했다고 한다.

* 엔딩에서 종구가 산거냐 죽은거냐 논란이 많은데 감독은 산거라 했다. 살아남은 피해자 가족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려는 맘이라 했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고 당신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희망이라기 보다는 위로를 드리고 싶었다. 종구를 보면서 누군가를 떠나 보내고 남은 가족들이 위로를 받았으면 했다. 나약한 한 인간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 지키고자 했는지 다 보셨을 것 아니냐. 딸을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종구의 얼굴을 통해 남은 분들이 위로받았으면 한다.' (인터뷰 중)



여기까지가 2016년에 썼던 글이다. 전통적 시각에서 ‘곡성’이 기독교영화다!라고 말하면 많은 혼란이 올 것이다. 하지만 위의 글을 읽어보신 분이라면 본인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전달될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지금 시대에 새로운 기독교문화콘텐츠를 바라며 다음과 같은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 새로운 기독교문화콘텐츠를 향한 제안

1. 교회 안의 수요만을 향한 내수용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세상의 언어로 소통될 수 있다면 좋겠다. 예전에는 월화수목금토일 교회에 와서 봉사하는 교인을 최고로 쳤지만, 오늘에는 주일예배에서 얻은 생명으로 주중에는 세상에 들어가 빛과 소금의 삶을 사는 것을 장려하듯이 말이다.

2. ‘하나님 짱짱맨’ 스타일의 확신에 찬 신앙고백만이 아니라, 진솔한 질문과 진정성이 담긴 내용들도 포함할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신실한(?) 크리스찬만이 기독교문화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아직 세상과 하나님사이에 갈팡질팡한다고 스스로 부끄러워 하는 자칭 날라리(?)교인도 자신 만의 신앙의 고민과 몸부림이 담겨 있다면 얼마나 귀한지. 바리새인적 가르침보다 오히려 그 진솔함이 하나님나라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설교도 이제는 강압적이고 선포하는 내용보다는, 설교자의 자기고백적이고, 좋은 질문을 제시하는 방식들이 청중들에게 소통이 이루어진다고들 하지 않나.

3. 이렇게 좀 넓게 보면, ‘기독교문화콘텐츠’라고 하는 정체성이 외면적으로는 오히려 흐릿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그 길이 더 힘들 수도 있다. 서로 하나의 끈으로 연결하여 연대하기도 어렵다. 그냥 ccm만 하면, ‘어 그거 ccm이야. 교회음악.’이라는 식으로 후원받기도 쉽고. 하지만 세상과 소통하는(하지만 복음의 가치를 담은) 음악을 하려면 그만큼 더 외롭고 힘든 길을 가게 된다. 그래서 그들-세상 속에서 활동하는 크리스찬 아티스트-을 지원하고 하나로 엮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보면 본인은 나니아의 옷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그 일을 하고 싶은 것이고.


쉽지 않은 그 길을 함께 가고 있는 

모든 크리스찬 아티스트분들이여!

그대들이 있어 이 여행길이 지루하지 않고 유쾌하며 

때로는 주저 앉은 그 자리에서 다시 한번 일어날 힘을 얻을 때마저 있으니

우리 함께 계속 이 길을 가봅시다.


이대로 끝 ? 아니죠~!


새로운 기독교 문화콘텐츠를 기다리며 시리즈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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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_이재윤
20대부터 문화선교 영역에 부르심을 느껴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시도를 해왔다. 인디밴드를 만들어 홍대클럽에서 복음이 담긴 노래를 하는 무모한 시도를 하기도 했고, 문화선교연구원에서 기독교 뮤지컬, 영화, 잡지 만들기 등의 일도 했다. 현재는 성신여대 앞 '나니아의 옷장'(옷장 문을 열면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http://facebook.com/narnia2015)이라는 작은 클럽의 사장이자 같은 장소의 '주님의 숲 교회' 목사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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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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