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독교 문화콘텐츠를 기다리며] 혁신은 변두리에서 시작된다: 야마가타 트윅스터





1. 이 시리즈의 제목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기독교 문화콘텐츠',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가. 내가 기독교 영화제(현 서울국제사랑영화제의 전신)에서 일했을 때 스텝들이 매년 열띤 논쟁을 벌였던 주제는 '과연 기독교 영화란 무엇인가'였다. 실제 기독교영화제 기간 중에 어떤 크리스천 관객은 '이게 무슨 기독교 영화냐'며 강한 문제 제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정의조차 힘든 '기독교 문화콘텐츠'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게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서는 답을 제시하기 전에 현실의 예를 살펴보는 데서 시작하려고 한다. 오늘의 크리스천 아티스트들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그들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이끌림을 따라가다 보면 무언가 만나지 않을까.

나는 성신여대 앞에 '나니아의 옷장'이라는 작은 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거기서는 매주 금요일 저녁 라이브 공연이 진행된다. 기독교 문화콘텐츠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CCM 공연만 하지는 않았다. 아티스트 본인이 크리스천이라면 어떤 장르라도 오케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장르에 제한을 둔 것이 아니라 사람에 키워드를 두었다. 재미있는 작품들을 만날 거라 예상했고 그 예상은 나름 적중했다.

그러던 중 "야마가타 트윅스터"를 만났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기독교계에서는 생소한 아티스트일지 몰라도 일반 음악계에서는 문화에 관심 좀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핫한 아티스트이다. (개인적 견해로는 문화계에서 유행하는 이슈에 대해 교계 쪽은 약 2.5년 정도 뒤처지는 것 같다. 몇 가지 구체적 사례를 들고 싶지만 범위를 넘어서는 관계로 다음 기회에) 




그는 섹시하다.
그는 길 위에서 춤을 춘다.

그는 프랑스, 독일, 일본 등지에서 초청받아 공연을 했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이빨이 부러진 이후 앞니의 절반이 없는 상태로 공연을 해왔으나 2003년 무렵 팬인 치과의사의 도움으로 임플란트 수술을 통해 이빨을 되찾았다.


그는 2009년에 남성지 GQ* '올해의 남자'로 선정되었다.
2017년 한국 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수상했지만, 50만 원에 트로피를 경매에 내놓아 이슈가 되었던 이랑은 한 때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백업댄서로 활동했었다.

* GQ(Gentlemen's Quarterly)는 세계적인 월간 남성잡지로 패션, 스타일, 문화 등을 다룬다. 한국에서 출간 중인 GQ Korea도 한국 남성들의 라이프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 편집자 주






그는 투쟁의 현장에 홀연히 나타나 춤을 춘다.
그가 나타나면 싸움에서 이긴다는 전설이 있다.

그는 크리스천이다.



2. 그는 '한받'이라는 본명을 가진 한국 사람이다. 그는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하며 그 사연으로 직접 가사를 삼아 노래를 만든다. 그리고 개러지밴드(맥에 들어있는 작곡 프로그램)를 활용해 만든 비트에 맞추어 막춤을 춘다.



그는 장애인 등급제 폐지 집회부터 탈핵 집회, 불법 해고 노동자 투쟁현장, 세월호 집회 등 다양한 현장에 나타난다. 사람들은 처음에 '뭐 이런 게 다 있나' 표정을 짓기도 하지만 그날의 행사가 끝날 때쯤 되면 모두가 팬이 된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그는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사람들을 데리고 동네 한 바퀴를 돈다. 사람들은 뭔가에 홀린 듯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EBS 공감에 출연했을 때에도 관객들을 데리고 공연장 밖으로 나가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출연자가 관객을 다 데리고 나가버리자 일부 관객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EBS 공감 야마가타 트윅스터편 2014.4 방송분. (클릭)) 


그의 노래들은 얼핏 보기에는 그저 괴상한 예술가의 퍼포먼스처럼 보일지 몰라도 깊은 진정성을 담고 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명곡은 '돈만 아는 저질'이다. 수유시장의 김 굽는 할머니의 애창곡을 조사하다가 알게 된 <동숙의 노래>의 한 소절 '저질러 놓고~'를 샘플링했다. '저질러~'는 이내 '저질~'이라는 외침으로 바뀌고 아주 단순하고 강력한 한 줄의 가사 '돈만 아는 저질'이라는 곡이 되었다. 길 위에서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하체를 에로틱하게(!) 움직이며 '저질~'에 시동을 걸면 모두가 쳐다보게 되고 그때부터 강력한 마법이 시작된다.


이 노래는 이 사회의 대부분의 불의한 현장 어디에서나 들어맞는다. 세월호 집회에 모인 이들이 그동안 무책임했던 책임자들에게 '돈만 아는 저질'을 외칠 때에도 강력하다. 불법 해고노동자들의 집회 현장에서 사장이 나오기를 요구하며 함께 '돈만 아는 저질을' 외칠 때에도 강력하다. 어느새 그곳의 모두가 하나 되어 외치고 있다. 이 말처럼 오늘의 자본주의 사회 모순을 고발하는 단순하고 정확한 말이 있을까?




그는 홍대 부근에서 '구루부구루마'라는 리어카에 자신의 음반과 책을 싣고 다니면서 팔아 자립음악가로서의 삶을 모색하고 있다. 자칫 주목받고 싶어 안달난 괴상한 예술가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의 모든 콘텐츠는 그것을 관통하는 굵은 주제들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보여주는 해악과 무분별한 개발, 효율성만을 최고로 여기는 이 시대에 선지자 같은 외침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야마가타 트윅스터이다. 




(지나가는 말. 홍대에서 활동하는 주변의 젊은 뮤지션들은 그를 예수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이것은 전태일을 성인으로 만드는 류의 것이 아니라 외모에서 오는 가벼운 농담에 가깝다. 마치 주호민(웹툰 '신과함께' 작가)이 스님으로 불리듯이...)





3. 그의 이러한 모습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나 안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크리스천이다. 그에게 종교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본적이 있다. 일반 음악계에서 활동하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종교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속회사와의 문제 또는 자신의 작품 방향성의 제한 등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충분히 이해하기에 조심스럽게 묻는 편이다.

그러나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지만) 유명한 교회의 성도이고(구역장도 했다는 듯) 집에서는 아내와 두 아이와 가정예배도 드린다는.(목사 가정인 우리 집보다 낫다..)

그러면서 교회 식구들에게 자기 공연은 와보시라고 하기가 좀 죄송하다고 멋쩍어했다. (마침 그때 그가 부른 노래는 '우리가 싸는 굵은 똥, 건강한 똥'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지저분한 세상에 온갖 쓰레기를 먹고살아도 절망이 아닌 희망의 똥을 누자는 노래였던 듯하다. 이렇게 그의 노래는 좀 하드코어하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자신의 창작 활동이 기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부분도 참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야마가타는 야마가타이지 '크리스천 아티스트 야마가타'는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어서 뉴스앤조이 소속 기자와 야마가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 분 취재 한번 해보시면 재밌을 거 같아요'라고 권유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취재가 성사되어서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오게 되었다.

"현장에서 노래로 연대할 때 그곳에 성령이 함께 하심을 느낀다"(클릭)


그동안 한국의 CCM은 삶의 현장에 대한 노래가 부족했다는 지적들을 많이 들었다. 사회의 정의와 공의에 대한 노래가 너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정의와 공의"에 대해"(about) 노래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직접 정의와 공의의 "행동을" 한다.(do it) (아, 한국교회가 얼마나 찔리는 말인가. 우리는 정의에 대해 설교하지만 정의를 행하지는 않는다. 마치 고3 학생들을 매주 모아놓고 '공부가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는 3가지 이유', '공부에 목숨 걸어라'는 강의만 하는 것 같지 않은지. 집에 가서 실제 공부는 안 하는데)

그가 노래하며 춤추다 경찰에게 밀려나고 들려가는 장면을 몇 번 보았다. (위의 영상에서 장애인 인권 집회에서 경찰에게 끌려내려오는 것 같은) 무표정하게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는,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춤을 계속해서 추는 모습은 때론 숭고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춤추게 만들었을까.

분명 예전에는 없던 크리스천 아티스트의 유형이다. 한때 인기를 누렸던 어떤 전형적인 CCM의 유형이 힘을 잃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이런 새로운 크리스천 아티스트가 생겨나고 있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예수'와 '십자가'의 단어가 들어 있지 않는데 어떻게 기독교 문화콘텐츠와 연관시켜 이야기할 수 있느냐고. 여기서 결론을 낼 수는 없겠지만(시리즈 끝날 때쯤 좀 더 진지하게 다뤄보고자 한다),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음악과 춤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강도 당한 이웃과 함께 행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동안 한국교회의 전형적인 설교와 CCM 곡들에서 말로만 했던 부분을 직접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 아닌가.

여기에 나는 무언가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분명 이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어떤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는 아티스트였다.



『기독교는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가』라는 책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기독교 문화에 대해 날카로운 주장을 펼쳤던 데이비드 제임스 헌터는 말한다.


"혁신은 대개 명성 밖에 있는, 즉 변두리의 엘리트에게서 시작된다."


물론 새로운 기독교 문화콘텐츠가 무엇인지 해답을 제시하기에는 아직 무리다. 이렇게 시작해서 다음 회에는 다른 아티스트들을 계속 찾아가 보자.


 



2016년도 나니아의 옷장에서 기획했던 야마가타트윅스터의 공연 <너무 아름다운 도시> 영상





글쓴이_이재윤


20대부터 문화선교 영역에 부르심을 느껴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시도를 해왔다. 인디밴드를 만들어 홍대클럽에서 복음이 담긴 노래를 하는 무모한 시도를 하기도 했고, 문화선교연구원에서 기독교 뮤지컬, 영화, 잡지 만들기 등의 일도 했다. 현재는 성신여대 앞 '나니아의 옷장'(옷장 문을 열면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http://facebook.com/narnia2015)이라는 작은 클럽의 사장이자 같은 장소의 '주님의 숲 교회' 목사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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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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