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독교 문화콘텐츠를 기다리며-4] 알.쓸.신.잡.- 드럼에 대한 최근의 논쟁에 부쳐







다음은 인류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때 나온 발언들이다.


1. "640kb 이면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메모리 용량이다." -빌 게이츠, 1981년 


2. "발명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발명되었다." - 찰스 듀엘(charls H,duell), 미국특허청장, 1899년. 


3. "비행기는 재미있는 장난감일뿐, 군사적인 가치는 전혀 없다." - 페르디낭 포슈(ferdinand foch)장군, 프랑스 군사전문가, 세계 제1차대전 사령관. 


4. "텔레비전은 처음 6개월이 지나면 시장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매일 합판으로 만든 상자를 보는데 지겨움을 느낄것이다." - 대릴 자눅(darryl.f.zanuck), 20세기 폭스사 회장. 1946년.


5. 공기보다 무거운 물체가 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영국 학술원장 켈빈경, 1895년 


당시의 최고 전문가들이 한 말이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되돌아 볼 때 해프닝처럼 실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외에도 많지만 기독교인들이 했던 유명한 착각 하나를 들어보자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이었다. 성경에 '해가 뜬다'라는 표현이 있었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이 사는 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닐 리가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기독교인들은 특히 문화영역에서 편견과 논란이 많은 듯하다. 예를 들면 기독교음악으로 EDM이 괜찮은가, 교회에서 이런 저런 악기를 사용해도 되느냐 류의 논쟁들이다.


신학적 논의는 전문가분들에게 맡기고(필자 본인은 딴따라, 파티플래너 계열임 :-)) 여기서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유치한 방법을 통해 (특히 구글링의 도움을 받아) "알고보면 쓸데 없는 신학적 논쟁에 대한 잡다한 수다"를 떨어보려한다.


최근 한 목사님께서 페이스북에서 교회의 드럼 사용을 반대하는 글을 올려서 이슈가 되었다. 근거는 드럼은 음향적으로 저음을 사용하며 사람의 감정을 인위적으로 흥분시키기에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또한 북은 무당이 사용하는 악기라는 이유였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교회에서 드럼을 쫓아내는 개혁(?)을 시도하자는 것이었다.


이번회에서는 이 주제에 대해 '알쓸신잡'의 정신으로 글을 써보려 한다. 


(사실 조금 주저되기도 했다. SNS상에서 원글을 쓰신 목사님에게 원망의 화살이 심하게 가는 거 같아서... 나도 돌멩이 하나 보태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요즘은 기독교계에서 어떤 이슈가 생길 때마다 글 쓰기가 조심스럽다. 서로에게 상처를 너무 많이 주는 거 같아서 그렇다. 물론 원글로 인해서 상처받은 드럼연주자, 사역자분들도 많으시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그냥 묻어 버리고 가기 보다는, 다양한 관점에 대해서 수다(?)를 떠는 것이 오히려 서로에게 득이 되지 않을까 싶다. 너무 무겁지 않게.. 그저 쓸데없는 잡학지식에 대해 수다 떠는 기분으로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1. 중세교회에서 유일하게 거룩한 악기로 여겨졌던 파이프오르간이 최고의 저음 괴물이다.


인간의 가청 한계는 최저 20Hz~20,000Hz이다. 잘만들어진 대형 파이프오르간은 웬만한 고성능 스피커도 내기 어려운 초저음을 낸다. 높이 19m의 파이프에서 울려나올 수 있는 최저음의 주파수는 대략 8Hz정도 된다고 한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것은 소리라기 보다는 진동으로 존재한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이러한 파이프 오르간은 이미 악기를 넘어서 건축의 영역에 들어선다. 이렇게까지 해서 거대한 오르간을 만든 것은 바로 그 압도적인 저음을 내기 위함이었다.




바로크시대에 와서 음악사적으로 엄청난 변화와 발전이 있었는데 그것은 저음의 강조였다. 저음부에서 쉬지 않고 베이스 반주를 하는 통주저음(지속저음, basso continu)이라는 방식은 거의 대부분의 기악곡에 쓰였다. 


많은 분들이 인류역사상 최고의 교회음악으로 꼽는 헨델의 '메시아'에도 물론 통주저음이 사용되어서 그 웅장함을 배가 시키고 있다.


그러니 드럼이 저음을 사용해서 사람을 흥분시킨다는 문제제기는 좀 어패가 있지 않나 싶다.

(재밌는 것은 예전에 모 선교단체의 워십앨범이 한참 인기를 끌 때 유사한 댓글 논쟁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 팀의 음반은 너무 저음을 강조해서 사람의 감정을 이용하므로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는 류의)


*참고. 한 음향전문가의 블로그 "저음 연구 시즌2 / 음악에 있어서의 저음"





2. 헨델의 '메시아'의 가장 클라이막스인 44번째 곡, "할렐루야"에서는 북의 일종인 '팀파니'가 우렁차게 연주된다.


그렇다. 팀파니는 드럼이다. 현대의 셋트드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전부 다 수평으로 눕혀져 있다는 것이다.(현대의 드럼에서는 킥드럼이 세로로 세워져 있다.) 팀파니는 보통 20인치~32인치 크기의 네다섯 개의 북을 설치하여 사용한다. 이는 현대의 드럼셋트의 북보다 사이즈가 크다. (클수록 저음이 풍성하다.)




(클래식 좀 들으러 다니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할렐루야'가 연주될 때는 기립하는 전통이 있는데(필자는 이거 몰라서 어리둥절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관람하던 영국왕 죠지 2세가 졸다가 우렁찬 팀파니 북소리에 놀라서 벌떡 일어난 것이 유래가 되었다는 썰도 있다.


영문 위키 싸이트에 의하면, 팀파니라는 용어는 라틴어인 팀파눔(tympanum)에서 왔는데, 고대 히브리인들이 종교적 의식에서 사용된 것이 유래라고 한다. (Goodman, Saul (1988) [1948]. Modern Method for Tympani. Van Nuys, California: Alfred Publishing Company, Inc. ISBN 0-7579-9100-9.)


* 참고. 영문 위키 Timpani 항목 


북을 너무 미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헨델 '메시아'의 북은 장엄하고 현대의 드럼셋의 북은 저속한 걸까.


(사진-팀파니를 사용하는 레드제플린의 드러머 John Bonham)





3.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가톨릭교회가 예배시 악기 사용에 부정적이었던 때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제고 도움이 된다고 생각될 때는 모든 종과 오르간을 울릴 것이며, 무엇이든지 소리나는 것은 사용할 것이다."(1562년 출판된 '독일미사'서문에서)


그는 예배음악에서 악기 사용에 적극적이었다.


또한 당시 중세교회에서 인간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되었던 다성음악(화음이 있는)을 과감히 시도하였다.


그 시대에는 교회에서 찬양하는 데 감히 화음을 넣지 못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인간의 인위적인 흥분이 들어가면 안된다고 생각하였던 듯 하다. 하지만 루터는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을 그렇게 제한하지 말자 하였고 4성부의 사용을 장려하였다. 그리고 회중찬양을 시도하였다. 이것도 당시에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그의 종교개혁 정신을 따른다면, 더욱 과감한 악기와 음악적 시도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참고로 또다른 종교개혁자였던 츠빙글리는 예배에서 모든 악기의 사용을 금지하고 오로지 목소리 아카펠라 찬양만을 허용했다. 화음도 금지, 오로지 유니즌. 그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오늘 교회는 이미 너무 세속화될 걸까? 칼뱅은 루터와 츠빙글리 사이의 중도파. 세분이 먼저 합의를 좀 하셨으면..)





4.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가장 은혜로운 찬양의 도구로 많이 사용되는 통기타 역시 얼마 전까지 퇴폐적인 딴따라 악기로 취급받았다.


1960년대 통기타 음악을 하는 음악인들은 교회에서 딴따라로 불리며 죄인취급을 받았다. 이를 본 경동교회의 강원룡 목사는 1969년 11월 일 오후 7시에 통기타 가수로 활동하던 기독교 청년들 송창식, 윤형주, 조영남 등을 모아서 '새로운 리듬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찬양예배를 시도했다. 특별한 홍보도 없지만 500여명의 청년들이 모였다고 한다. 엄청난 호응으로 마무리된 후, 교계에서는 강원룡이 교회를 나이트크럽으로 만들었다는 비난이 일기 시작했다. 


강원룡 목사는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 고전음악만 좋아하고 대중음악을 싫어한다면 믿을 마음이 없다"고 하며 CBS라디오를 통해 토론회를 제안했으나 응하는 사람이 없어 무산되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70년 9월 6일 오후 7시 30분 경동교회에서 통기타 음악예배가 또다시 열렸다. 이날은 김민기가 '예수님이 만난 여인'이라는 곡을, 서유석이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조영남이 '주기도문'을 불렀다. 


(1969년 당시 서울 경동교회 예배당 내부 모습. 김형찬 제공)



그 때 그렇게 사탄마귀 취급을 받던 통기타가 이제는 웬만한 소그룹 모임, 노방전도, 선교여행 등에서 없어서는 안될 찬양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1969년 그날 어떻게 500명이 모였는지 모르겠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인데. 요즘 교회마다 청년들이 안 모인다고 걱정들이다. 요즘 아무리 부흥한다는 교회도 찬양집회하는데 500명이 모여들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그 날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 시절의 찬란한 기억은 역사 속에 머물 수 밖에 없는걸까.


(근데 가만 생각해보면 경동교회 통기타 사건은 좀 멋지긴 하다. 한 시대를 휩쓴 뮤지션들 - 송창식, 윤형주, 김민기, 조영남이 청년시절 자신들의 신앙을 담은 곡들로 교회에서 한데 모여 찬양예배, 공연을 했다니. 요즘으로 치자면, 자이언티, 크러쉬, 딘, 혁오, 아이유 등이 서울의 모 교회 청년부 예배에서 EDM, 힙합, 알앤비, 힙합 자신들의 음악으로 찬양예배를 했다는 이야기인데... 강원룡 목사님과 경동교회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도 생각된다.)






실없는 상상을 해 본다. '예수님이 오늘 이 땅에 오셨다면 클럽에서 "비트 주세요~"를 외치지 않았을까'라고 한다면 너무 불경한 상상일까? 왜냐하면 예수님은 당시 죄인의 무리에 늘 함께 하셨고 그들과 먹고 마시는데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물론 교회문화를 다 이런 식(클럽식? ㅎㅎ)으로 만들자는 결론은 아니다. 필자 본인도 개인적으로 예배음악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쪽이 편하다.


하지만 문화예술은 자유로움과 상상력을 먹고 자란다. 문화예술에 대한 편견이 교회만큼 심한 곳도 드문 것 같다. 외형보다는 본질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크리스찬 문화콘텐츠가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젊은 세대와 교감하기를 원한다면 편견과 오해보다는 소통과 포용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글쓴이_이재윤

20대부터 문화선교 영역에 부르심을 느껴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시도를 해왔다. 인디밴드를 만들어 홍대클럽에서 복음이 담긴 노래를 하는 무모한 시도를 하기도 했고, 문화선교연구원에서 기독교 뮤지컬, 영화, 잡지 만들기 등의 일도 했다. 현재는 성신여대 앞 '나니아의 옷장'(옷장 문을 열면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http://facebook.com/narnia2015)이라는 작은 클럽의 사장이자 같은 장소의 '주님의 숲 교회' 목사로 살아가고 있다.



나니아의 옷장 7-8월 공연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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