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으로 영화 <박열> 읽기 -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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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은 그 내용에 비해 다소 방향성을 상실한 느낌을 받는다. 그 까닭은 개봉 시기에 있다고 여겨진다. 다시 말해서 만일 박근혜 시대에 개봉되었다면 폭발적인 현실 비판적인 힘을 발휘했을 영화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신화에 근거한 박근혜 정부의 허구성을 꼬집는 영화로 독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로 시대가 바뀌어 다소 힘은 떨어지겠지만, 그렇다 해도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지 이어지는 글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



# 익숙치 않은 이름, 박열 : 우리가 그를 알지 못했던 이유


시대극으로서 <박열>은 등장인물이 모두 실존했던 인물이고 또 실화라는 사실만을 알려줄 뿐, ‘박열이라는 중심인물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제시하지 않은 채 시작한다. 마치 등장인물 박열(이제훈)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존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학교에서 역사 공부를 하면서 한 번도 들어본 기억이 없는 이름이다.


박열에 관해 들어본 적이 없었던 이유는 우선적으로 박열이 한국전쟁 당시 납북인사이기 때문이겠다 싶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였기 때문이리라. 정부를 국가와 동일시했던 유신정권이라는 현실에서 비록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인물이라 해도 쉽게 소개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그의 사후인 1990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수여함으로 이뤄졌다,


국가 보훈처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그는 일본에서 사회주의자로서 그리고 아나키스트로서 활동하다 황태자를 겨냥하여 폭탄테러를 모의했다는 이유로 22년의 옥고 끝에 광복 후 미군에 의해 풀려났고, 그 후 일본에서 우익 교포 단체인 거민단(재일본조선거류민단)을 조직하고는 단장을 맡았다.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고국으로 돌아와 반공주의자로 전향하였는데, 한국전쟁 중 납북된 이후의 활동은 거의 알려진 바 없으며 1974년에 사망하였다.

 


# 익숙치 않은 영화, <박열> : <박열>이 일제 강점기를 다루는 방식


인물도 그렇지만 영화 속에서 소개되는 법정 투쟁도 그동안 알려져 있는 일본 강점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과 비교해볼 때 많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전에는 독립을 위한 항쟁 내지는 전쟁 그리고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는 영화들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에서 제작된 일본강점기 관련 영화들은 대체로 한국인의 반일감정과 항일투쟁에서 구체화되는 애국심 혹은 최소한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에 대한 분노를 마케팅 전략으로 삼아 제작되었다. 그동안 애국심이나 보편적인 인류애를 동시에 자극하는 것은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조건으로 유효하게 작용했다.


그런데 2015년에 제작된 <동주>를 보아서도 그렇지만 이준익 감독이 일제 강점기를 다루는 방식은 이전의 것들과 비교해볼 때 새롭다 말할 수 있다. 이 감독은 <동주>에서도 윤동주의 생애를 그의 시와 함께 조명하면서 윤동주를 시인으로서뿐 아니라 강한 신념의 사람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번 영화 <박열> 역시 일제에 항거한 실존인물 박열을 다루면서 어떠한 위협과 협박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는 조선인의 신념을 구현한 인물로 표현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짙다. 기존의 일제강점기 영화들을 고려해볼 때, 일제 강점기 중 일본 본토에서 조선인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정 투쟁을 다루는 영화는 처음이지 않나 생각한다.

 

한편, 또 다른 특징은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치고는 일본에 대한 표현이 매우 객관적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엄격한 고증을 바탕으로 제작되었고 사실 관계를 매우 중시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영화 속 일본인은 상반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야만인의 모습과 문명국가의 국민으로서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다. 물론 영화 감상 후 인터뷰 기사에서 이준익 감독이 <박열>은 반일영화가 아니라는 말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긴 했지만, 관객들이 그동안 일제 강점기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와 비교할 때 다른 점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만일 항일투쟁이나 반일감정을 기대하고 영화를 본다면 실망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요소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가 치열한 법정 투쟁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이전의 영화와 비교해볼 때 크게 다른 점이다. 무고한 혐의로 기소되어 법정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조선인을 대표해서 벌이는 법정투쟁 역시 군자금 조달이나 직접 항일 전투를 치르거나 암살테러 운동에 가담한 독립 운동가들의 다양한 형태의 투쟁 방식 가운데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 일제 강점기 시대의 아나키스트, 박열 : 박열이 일제 강점기를 살아낸 방식


영화가 주목하는 시기는 관동대지진 전후에 일어난 1923년부터 그의 아내인 가네코 후미코(최희서)가 죽은 해인 1926년까지의 시기인데, 곧 두 사람의 만남과 동거 그리고 대역죄 혐의로 체포된 이후 두 사람에 대한 일본 대법원에서 진행된 재판 과정이다.

두 사람이 만난 계기가 된 것은 박열이 쓰고 <청년조선>에 게재된 개새끼란 시이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로 시작하는 시는 비록 일제에 침략을 당해 나라의 주권을 잃어 하찮게 취급당하지만 결코 굴하지 않는 조선의 강인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 하늘을 보고 짖는 / 달을 보고 짖는 / 보잘 것 없는 나는 / 개새끼로소이다. /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 뜨거운 것이 쏟아져 / 내가 목욕을 할 때 / 나도 그의 다리에다 /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영화는 바로 이 시를 영화로 구현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보다 분명한 영화 이해를 위해선 영화가 생략하고 있는 점을 알고 보는 것이 좋다. 특히 그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였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그는 경성고보 재학 중에 3.1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퇴학당했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은 물론이고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진 일본인과 연대하여 사회주의 운동을 펼쳐 나갔고 또 직접 재일본 조선인을 중심으로 다양한 조직을 구성해 활동을 했다. 사회주의자였던 박열이 아나키스트가 된 데에는 러시아가 혁명 이후에 보여준 사회주의의 심각한 왜곡이 한 몫을 한다.


그런데 박열을 단순한 아나키스트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발생한다. 적어도 영화 속 박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아나키즘에 대한 다음의 이해가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사전적인 의미가 아니라 아나키즘에 대한 필자의 이해임을 밝힌다.


누구에게도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할 권한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인간의 이성과 양심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아나키즘은 보통 무정부주의로 번역되나, 운동으로서 아나키즘의 본래 관심은 정부 자체의 해산보다는 정부에 대한 비판, 곧 정부가 권력을 독점하는 현상을 비판하는 것은 물론이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조작된 각종 신화와 이념을 해체하는 데에 있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권력의 지지기반이 무너지면 혼란이 극심해져 무정부 상태가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정부가 일시적으로 공백인 상태는 있었다 해도, 무정부 상태가 온전히 실현된 적은 결코 없었다. 러시아 혁명이 실패한 이유도 부패한 짜르 정부를 무너뜨리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대변하는 공산당이 들어섰으나 결국 일당 독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나키즘의 의미는 무정부 상태를 실현하기보다는 정부를 비판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신화와 이념을 해체하려는 운동에서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국민의 주권을 대신할 만한 어떤 이념도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나키즘은 국민주권 사상의 극단적인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외치며 대한민국이 촛불혁명으로 뜨겁게 달궈졌을 때 일각에선 무정부주의를 염려했던 것이다.


영화 속 박열의 항일 투쟁이 색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무조건 반일 사상에 심취해있지 않고 오히려 사회주의 운동을 위해 당시 일본사회주의자들과 연대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법정 투쟁에서도 그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일본을 대상으로 직접적으로 싸웠다기보다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함께 제국주의의 야욕을 뒷받침하는 정신적인 지주인 천황제를 비판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천황제 비판에 집중한 까닭은 그가 재판의 일차적인 원인이 황태자를 겨냥한 폭탄테러 혐의로 기소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 이외의 행적에 대해서는 단지 추측할 수 있을 뿐 영화는 철저하게 침묵한다. 영화는 오로지 천황제의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우회적으로 거짓 신화와 조작된 이념에 근거한 일본제국주의적인 야망을 비판하는 내용에만 집중한다.

 


# 영화가 박열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


영화의 대략적인 얼개는 이렇다. 일본 내각은 관동대지진을 계기로 일어난 일본 내 폭동을 잠재우기 위해 일본인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일본 내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탔다는 소문을 조작하여 확산한다. 이 때문에 일본 자경단에 의해 6천여 명이 넘는 조선인이 학살당한다. 겉보기에는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을 부각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중심 소재일 뿐이다.


한편, 조선인 학살의 실상이 외신에 의해 보도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이 쏟아지자 스스로를 문명국으로 인지하고 있었던 일본 내각은 비난을 피하기 위한 구실을 찾기에 고심한다. 이 와중에 일본은 자신의 만행을 숨기기 위한 희생 제물로 당시 조선인 가운데 요주인물이었던 박열을 폭동의 주동자로 선택한다. 이에 비해 박열은 오히려 조선인 학살이 일본이 천황제를 옹호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했으며 외신의 비난이 쇄도하는 현실을 모면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양으로 선택한 것일 뿐임을 간파한다. 그래서 그의 투쟁은 조선을 침략한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넘어 권력 유지를 위한 신화인 천황제를 비판하는 태도로 일관한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박열의 친구인 유학생 김중한을 심문하는 중에 그에게서 폭탄테러 계획을 들은 일본은 이 사건을 국면 전환의 호기로 삼고 박열과 그의 아내를 대역죄로 기소한다. 이것이 박열과 그의 아내가 일본 내각의 주목을 받고 대역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된 이유이다.

 

이준익 감독이 박열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나타내려 했던 모습은 그가 강인한 신념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또 실천한 박열은 마침내 광복을 맞이해 역사의 증인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의 시간적인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광복 후에 그가 반공주의자로 바뀐 이유에 관해 침묵하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 강인한 신념의 사람이 어찌해서 사회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그리고 다시금 반공주의자로 바뀌게 되었을까? 혹시 박열에게 있어서 관건은 신념이 아니라 독립에 대한 의지가 아니었을까? 일본이 천황제를 바탕으로 제국주의와 그것을 실천하는 정부를 정당화했듯이, 천황제를 해체하려는 논조로 재판에 임하면서 일본의 제국주의적인 야망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박열에게 관건은 아나키즘 자체의 실현이 아니라 국가라는 것이 무엇에 근거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겠다. 이렇게 되면 그가 사회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그리고 다시 반공주의자로의 전향한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곧 박열의 관심은 올바른 국가 건설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전향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승만의 초청을 받고 귀국한 것도 바로 이런 배경이 아닐까 생각한다.

 


# 국가란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 영화는 오늘 우리에게 국가란 어떤 존재인지를 묻는 질문으로 이끈다. 오늘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일까? 행정부를 표현하는 말인 정부는 국가와 결코 동일시할 수 없으며, 또한 3권 분립의 원칙이 적용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는 국가를 대표하는 기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정부를 국가로 인식하는 까닭은 과거 독재 정권의 신화 만들기 때문이고, 또한 국민들이 과거 독재 형태의 정치행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결코 신성한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의 잘못에 대한 국민의 비판은 헌법적으로 보장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많은 경우 정부의 독재가 자주 출현했고, 정부는 국민을 무시했으며, 국민은 이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정부를 국가로 오인하기까지 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무정부주의자, 곧 아나키스트의 등장은 정부의 부조리함 때문이다. 정부의 부조리함은 좁게는 한 국가 내에서 독재로 표현되고, 더 나아가서는 일본 제국주의나 히틀러식 전체주의에서 볼 수 있듯이 세계 침략의 야욕으로 표출된다. 달리 말해서 아나키즘은 부조리한 정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일 뿐 국가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최소한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정부라는 것이 국가 기관의 하나에 불과하지만 정부가 권력을 독점함으로써 나타나는 피해가 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다. 특히 정부가 권력을 독점하는 방법은 신화와 이념(이데올로기)이다. 예컨대 유신독재는 대한민국의 번영을 실현할 길을 경제부흥에서 보고 단군신화에서 이념을 찾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경제부흥을 제시해 국민의 욕망을 자극했다. 새마을 운동은 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운동이었다. 정부가 권력 유지에만 관심을 가질 뿐 국민의 진정한 행복과 안정에 기여하지 못할 때 정부의 존재에 대한 의심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무정부주의의 태동은 비슷한 맥락에서 이뤄져 왔다. <박열>은 비록 시대가 바뀌어 현실비판적인 힘은 떨어졌다 해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라고 생각한다.

 

한편, 교회는 무교회주의를 카운터 파트로 가지고 있다. 요즘 한국에선 가나안 교인(신앙은 있으나 교회에 나가지 않는 성도를 지칭하는 말)’ 현상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무교회주의 역시 궁극적으로 교회가 없는 상태를 추구하진 않는다. 교회는 성령의 사역이 이뤄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상운동으로서 무교회주의는 오히려 교회를 비판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런 점에서 가나안 교인현상은 그 자체로 신학적인 의미를 얻기보다는-물론 역사적인 의미를 얻긴 하겠지만-오직 현실교회를 비판하는 의미로 남을 전망이 크다. 비록 교회의 잘못 때문에 생겨난 일이지만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현상이다.

 

최성수 박사가 본 <박열>은?   기독교적 가치  (3.5)        작품성  (3.5)       대중성 (4.0)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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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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