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액트 오브 킬링> - 폭력정치의 재현을 꿈꾸는 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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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정치의 재현을 꿈꾸는 자들에게

영화 <액트 오브 킬링>

(조슈아 오펜하이머, 다큐, 15, 2014)

 

최성수 박사

 


근대시기의 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서구 제국주의에 희생되어 살아야 했다. 2차 세계대전 후에 비로소 식민통치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 후유증으로 대부분의 나라들은 총체적인 혼돈의 국면을 겪으며 불행의 역사를 살아내야 했다.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인도네시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해방되자마자 집권했던 사회주의 성향의 정부가 군사 쿠데타로 무너지면서 정권은 반공주의자들에게 넘어갔다.

영화는 60년대 중반, 그러니까 인도네시아 역사에서 반공주의가 득세하던 때를 회상하며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려고 한다. 피의 역사로 기억되는 당시는 테러와 비인간적인 행위들이 반공 이데올로기를 기초로 세워진 국가의 묵인 하에 버젓이 행해졌고, 국가의 치안은 공권력이 아닌 반공으로 정신무장한 무장단체들의 폭력 행위를 통해 유지되었다.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공산주의자로 몰려 처형당했고, 여성은 나이와 상관없이 겁탈 당했으며, 그들의 집은 불태워졌다. 사망자의 숫자는 100만에서 250만을 헤아릴 정도다. 더욱 놀라운 일은 반세기가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행동대원들이 지금까지 국민영웅으로 추대 받고, 자신들의 살해행위를 영웅담 삼아 말할 수 있도록 하는 현실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그들은 누구에게도 비난 받지 않고 호화스런 삶을 살고 있다. 심지어 자신들의 살해 행위를 가족들 앞에서 재현하면서도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몇 번에 걸쳐 분노가 치밀어 오를 정도의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역사가들이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되새겨보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역사의 진실을 알려주려는 것이고, 망각됨으로써 잘못된 역사가 부지중에 반복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갖기 위함이며, 그리고 가해자든 피해자든 공동의 역사를 유산으로 물려받고 있는 현재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길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주로 후대 역사가들에 의한 평가를 통해 일어난다.

문제는 당시의 가해자들이 현재에도 득세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평가가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역사라는 것이 비록 승자에 의해 기록되면서 정치적인 승패와 함께 부침을 반복하는 것이라 해도 비인간적인 행위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는 일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에게 도덕적인 자각조차 일어나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필자의 생각에 감독은 아마도 처음부터 이런 의문을 갖고 다큐제작에 임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만일 그가 영화의 결말을 위한 계획을 갖고 연출을 시작했었다면, 다큐로 분류될 수 없을 것이다. 다큐의 매력은 감독조차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보여주는 데에 있다. 그렇다고 감독에게 어느 정도 결말에 대한 예상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음에 이어지는 글에서 필자는 바로 감독이 예상하고 있었던 것들이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일임에도 정당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사건을 제대로 조명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증언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가해자가 득세하고 있는 현실에서 피해자의 증언을 녹취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서 오펜하이머 감독은 당시 사건의 재구성을 위한 내용을 가해자의 기억을 통해 얻는 방법을 택했다.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조금이라도 반성을 하였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작업이 가능했던 이유는 분명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도 영웅대접을 받고 있는 그들에게 과거는 일종의 영웅담으로 여겨지는 일이기에 기억을 영화로 옮겨놓는 작업은 그들의 현재를 정당화하는 일이며 유희에 불과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끔찍하고 섬뜩했던 과거를 현실로 재현하는 과정이 마치 코미디같이 여겨지는 까닭은, 그것이 가해자의 기억을 통해 재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비극의 역사도 반성이 없는 가해자들에겐 여전히 희극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역사는 반드시 제대로 평가되어야 할 이유다.

감독의 또 다른 전략이기도 했지만 결국 연기에 몰입했던 가해자를 당황케 했던 장면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기억을 재현해보도록 했을 때이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유희하듯이 연기를 했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연기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가해자의 내면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는 헛구역질을 해대는 모습은 그의 내면에 일어나는 변화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면이었다. 역지사지라는 말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이지만, 피해자가 겪어야 했을 고통과 느낌을 온몸으로 느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변화였다.

가해자의 기억을 통해 당시 상황을 기록하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분명 공감의 효과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로먼 크로즈나릭은 공감의 능력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공감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여섯 가지습관을 제시한다. 살해 연기를 하면서 피해자의 입장을 연기한 사람에게 일어난 변화는 여섯 가지 가운데 두 가지, 곧 직접적인 체험과 안락의자 여행을 통한 공감을 통해 설명된다. 다시 말해서 영화를 좋아했던 가해자는 직접 시나리오도 쓰고 연출도 하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영웅담을 영화로 만드는 일에 협력했다. 그는 직접 피해자를 연기하고 또 피해자가 겪는 고통의 장면을 영화를 통해 봄으로써 피해자를 공감하게 되었고, 결국 자신이 그동안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의 깊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공감을 통해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감독이 처음부터 결말을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가해자의 기억을 통해 역사를 기록하려고 했을 때부터 공감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을 이유가 충분하다는 생각을 한다.

여하튼 오늘날에도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이었던 유신정치의 재현을 꿈꾸는 사람들이 반드시 감상할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유신정치의 가해자나 수혜자들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영화를 찍고 또 감상한다면, MB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런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인지 매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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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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