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제임스 스미스의 <왕을 기다리며>를 읽고 "종교적 국가와 정치적 교회를 상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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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이민형 박사 

이 글의 목적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목적에 충실한 책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첫 느낌이었다. 좋은 글일수록 저자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한다. 그렇기에 어떤 글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서문에 밝힌 글의 목적을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굳이 이를 서평의 서두에 언급하는 이유는 그것이 이 책, 『왕을 기다리며』를 선택하는 데에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목적은 현대 사회 내에서 교회 (혹은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에 대한 실천적인 제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해서 (나와 같이) ‘교회가 현대 정치에 어떻게 개입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이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대신 이 책은 당장의 (정치적) 실천에 앞서 그에 임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이런 면에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상케 하는 책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베케트의 연극에서 중요한 것은 “기다림” 그 자체이다. “고도를 만나기 위해 무슨 일을 어떻게 했다”의 서술이 아닌 기다리는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태도가 극의 주요 내용이다. 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설정을 통해 부조리극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베케트의 연극과는 달리 제임스 스미스의 글은 말하는 바가 명확하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스미스의 글 역시 (교회의 정치적 사명을 실천하기 위한) 기본적인 “자세,” 혹은 “태도”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기본적인 논의는 스미스의 전작들 -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 -에서 이어진다. 인간의 정체성은 그/그녀가 욕망하는 것에 의해 형성되며 그것은 “예전(liturgy)"이라는 방식을 통해 교육되고 습관화된다. 스미스는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정치”를 정의한다. 모든 사회는 구성원들이 욕망하는 덕과 선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동시에 그것은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구성원 사이에 합의된 덕과 선을 향한 마음의 갈망이며, 그것을 조직화하여 공동체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사회로서의 국가는 예전적 체제이며 그렇기에 종교적이라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구성하는 것은 공적 담론의 형평성에 대한 개개인들의 갈망이다. 또한 민주주의 사회의 다양한 의례들은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주체적으로 사회에 반영될 수 있다는 일종의 자기 이해를 형성한다. 하나의 방향으로 체제의 구성원들이(을) 이끌어 나간다는 점에서 국가는 종교적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는 역으로 교회를 정치적 집단으로 이해하는 데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이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은 교회의 예전적 요소들을 형성된다. 궁극적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라는 정치적 질서를 추구하는 체제이다. 이는 단순히 내세적이거나 형이상학적 논의가 아니라 현실 사회 내의 질서와 연관된 구체적인 정치성이라 할 수 있다.


차갑던지 혹은 뜨겁던지가 아니라...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국가는 종교적이고 교회는 정치적이라는 통찰에 근거한 거룩한 양가성”의 한 가운데 놓인 이들이다. 따라서 정치와 관련된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는 교회와 국가라는 두 체제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분별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스미스는 이러한 이해의 근거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 주목한다. 흔히 알려진 바와 달리 아우구스티누스는 천상 도성과 지상 도성의 단순하고 명료한 이분법만을 주장하지 않는다. 또한 천상 도성의 영역을 내세로 지상 도성의 영역을 현세로 환원하지도 않는다. 천상 도성이 이 땅에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한다면 지상 도성은 인간의 타락 이후 이 세계에 자리 잡게 된 무질서한 체제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무질서는 혼돈이 아니라 특정한 욕망에 의해 체계적으로 조직된 정치적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한 욕망은 그 구성원들을 하나님 중심의 사랑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천상 도성과 지상 도성(의 지향)이 공존하는 현대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여된 정치적 책무는 단순히 지상 도성으로부터의 분리나 고립이 아니다. 그들의 일차적인 목적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근거한) 덕과 선이 세속 정치의 운영 원리에 동화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더불어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에 근거한 집단적 무질서를 벗어나 질서 있는 사랑을 실천하는 건강한 사회를 형성하도록 지속적으로 종용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적 제도와 의례에 대한 신학적 해석, 복음에 근거한 정치적 지향, 그리고 예전을 통한 교육 등을 통해 형성된 ‘백성들’이다. 이들이 매 일요일 예배 후에 세상으로 보내지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들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다양한 (사회적) 결정에 대한 기독교 신앙의 관점을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종교적이며 동시에 정치적인 행위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기다려야한다.

그렇다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분별된 모습을 보여주는가?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스미스의 의견은 회의적이다. 물론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실패를 단정 짓는 것은 아니다. 다만 거룩한 양가성이 존재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더 구체적이고 영향력이 강한가에 대한 너무나도 분명한 답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정체성은 여전히 특수하다. 평범하지 않기에 구체적인 실천에 대한 지침이 요구된다. 하지만, 서두에도 밝혔듯이 이 책은 지침서가 아니다. 스미스는 실천적 제안 대신 다른 가치를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종말론적 관점의 기다림”이다. 날카로운 분별력을 가지고 사회를 지켜보는 것과는 별개로 그리스도인들은 “이미”와 “아직”의 어딘가에 있는 하나님의 통치가 완성되는 동안 성령께서 일하시는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의 기다림은 소극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저 바닥에 앉아 고도를 기다리는 이들의 소모적이고 부조리한 기다림과는 달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기다리며 여러 가지를 꿈꾸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책의 여러 부분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정치적 행위를 상상, 소망, 사랑과 같은 단어와 연결시킨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기다린다는 것은 그것의 실재가 이 땅에 어떻게 이루어질지를 상상하는 것이다. 먼 미래에 대한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그것이 오늘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나라의 백성으로, 다시 말해서 다른 정치적 정체성을 갖게 되기를 소망한다. 이러한 소망은 목회적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 차원의 선교라 할 수 있다. 같은 나라를 상상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넓어지는 - 동시에 이 땅의 무질서가 변화되는 - 실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의 기다림에는 사랑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대 계명을 지키는 이들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 구체화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비록 그러한 사랑이 온전히 이 땅에서 실현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이뤄질 때에야 가능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기 전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이웃 사랑에 근거한 질서가 확립될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하며 구성해 나간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기다림은 실제적이다. 그것은 구체적인 체제를 상상하는 행위이며, 그러한 상상을 주변의 사람들과 나누는 행위이며, 궁극적으로는 사회에 반영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더 나은 정치 체제를 갈망하는 것, 그것이 이 땅에서 왕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실천이다. 

이민형 박사 

Boston Univ. Ph. D

성결대학교 객원교수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소속연구원

팀 <오래된 미래>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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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예배를 행동하라 그것이 곧 우리다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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