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대중문화 읽기 영화<기생충> “모멸의 자격, 존엄의 자격”



글_김지혜 목사


기택(송강호)을 두고 박사장(이선균)이 “지하철 냄새가 난다”고 할 때, 기택이 자신의 냄새를 맡는 것처럼, 관객들은 자연스레 자신에게 어떤 냄새가 나는지를 질문하게 된다. 그리고 “지하철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는 순간, 대다수의 관객은 자신이 어디에 이입할 지를 안다.”(네이버 ID ‘리오’)

영화 <기생충>은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에서 함께 만났던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다시 한 번 합을 맞췄다는 점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의 기대가 모아진 작품이었다. 베를린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 한국영화계가 받은 선물과 같은 작품이자,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 되었다. 뛰어난 미쟝센은 물론, 블랙코미디와 풍자, 스릴러 등 각종 장르를 오가며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화두인 양극화와 빈부 격차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영화적으로 잘 다루면서 많은 영화인들과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층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작 <설국열차>가 열차라는 수평적 메타포를 통해 계급의 불연속성과 연속성을 표현하고,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는 기득권 계급의 특권을 무너뜨리는 투쟁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면, <기생충>은 계단이나 폭우 등 다양한 수직적 상징들을 네 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두 가족의 상황에서 대조적으로 사용하면서 계급의 차이와 갈등을 일상적인 차원에서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박사장(이선균)의 집에서 운치 있게 내리는 비가 기택(송강호)의 집에서는 가슴팍까지 차올라 생존을 위협하는 재해가 되고, 해외 직배송한 고급 장난감 텐트는 방수 처리가 되어 비에 젖지 않지만, 반지하에 사는 동네 주민들은 살림살이가 물에 잠겨 그나마 쓸 수 있는 것 하나라도 건지려 폭우를 맞으며 갖은 애를 쓴다. 두 가족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넘을 수 없는 선

기택은 박사장의 운전수이다. 기택은 박사장이 그어놓은 선을 넘을 수 없다. 고용주(雇用主)와 고용인(雇傭人)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여느 갑을 관계처럼 말이다. 그러나 기택은 결국 어느 지점에서 선을 넘고 만다. 바로 박사장이 근세(박명훈)의 몸을 대하며 경멸과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을 때이다. 박사장은 근세가 오랜 시간 지하실에서 머물면서 몸에 베인 지독한 냄새를 견딜 수 없었다. 근세가 자신을 “리스펙트”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근세는 죽은 이후에도 한 인간이 아니라 모멸의 대상이었다. 박사장의 말대로 “냄새가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기택은 근세에게 자신을 이입하면서 이성의 끈을 놓고, 딸까지 잊어버린 채 박사장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 분노로 변한 수치의 칼날을 휘두르게 된다. 

사회학자 김찬호는 『모멸감』이라는 책에서 모멸이란 감정을 개인의 심리나 일상의 차원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적 지평에서도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멸이란 의도적으로 혹은 무심코 다른 사람을 낮춰 보거나 하찮게 봄으로써 그에게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이며, 반대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고 격하될 때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사람을 모멸할 기준이 되는가? 누군가에게 모멸감을 줄 자격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분열과 차별이 무너지는 자리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성만찬을 둘러싼 계급 갈등의 이슈를 다룬다.(고전 11:17~34) 당시 성만찬은 애찬과 성만찬이 결합된 형태로, 교인들은 각자 자신의 집에서 음식을 준비해와 교회에서 공동식사를 나누는 애찬과 함께 성만찬을 하곤 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이 늦게까지 일하는 사이에 부유한 사람들이 교회에 먼저 와서 자신들이 준비해온 음식을 다 먹고 마셨던 것이다. 때문에 음식을 준비해오기도 쉽지 않았던 가난한 사람들은 굴욕감을 느끼고, 부유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하거나 무시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책망한다. 성만찬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으로,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하나됨을 확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흘리신 피와 찢긴 몸은 모두를 위한 것이므로 성만찬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들 간에 '하나'라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는 분열이나 차별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모든 것이 돈으로 수렴되는 사회에서는 사람의 가치 역시 돈으로 환산되곤 한다.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사람의 급을 나누고 가치를 매긴다. 위계화시키고 존재마저 서열화한다. 누군가에게 인간다움을 포기하게 만들고 누군가는 관계를 비인간화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마땅히 그 존엄을 존중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제외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고전 12; 갈 3:26, 28) ‘사람이 되신 하나님’께서 사회적으로 멸시 당하던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죄인들의 편이 되어 주셨는데, 그리스도인은 어떤 냄새가 나는 사람의 편에 설 것인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이며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낸다는 것(고후 2:14~15)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지점이다.

김지혜 목사(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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