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슈퍼밴드‘를 보고 : 절반의 환호와 절반의 침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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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음악에 좀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밴드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가워할 프로그램이 있다. JTBC에서 방영중인 ‘슈퍼밴드’이다. 포스터의 문구대로 ‘음악에 미친 천재’들을 발굴하여 슈퍼밴드를 만들어 준다는 새로운 경연프로그램이다.

첫 인상은 참 잘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일단 음향도 훌륭하고 출연자들이 만들어내는 음악들의 완성도가 참 높다. 심사위원들도 이 프로가 차가운 서바이벌 게임이 되지 않고, 젋은 뮤지션들을 격려할 수 있는 축제(?)를 만들어주려고 배려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워낙에 인디스러운 밴드의 세계에서 서식해온 본인은 이런 걸 보면 고맙기까지 하다.(사실 내가 고맙다고 할 건 없는데..좀 오지랖일지도) 하지만 뭐라 쉽게 설명하기 힘든 아쉬움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참 감사하지만, 마냥 박수칠 수 만은 없는, 묘한 양가감정이 있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프로그램을 비평한다기보다는, 밴드 업계에서 오래 종사한 한 시청자의 입장에서, 앞서 말한 솔직한 심정을 두서없이 써보려 한다. 


왜 미스트롯은 되고 슈퍼밴드는 안되는가?

1,2회 정도 방송분량을 보고 조금 흥분했었다. ‘우와! 뭔가 일어날 거 같다’ 더 흥분한 이유는 지인들이 많이 출연했기 때문이다. 본인이 대표로 있는 나니아의 옷장에서 공연한 뮤지션들(그러니까 내가 직접 섭외해서 무대를 만들었던 크리스찬 뮤지션들)이 최소 4~5명은 본선에 올라온 것을 보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을 기준으로 내일 만나서 녹음&영상 촬영을 함께 하기로 한 뮤지션도 마침 슈퍼밴드 본선진출자이다.)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아직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아 쉽지 않은 뮤지션의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이 늘 안타깝던 그들. 이제 티비에 나오고 좋은 결과가 있으면 마음껏 자신들의 음악을 펼칠 수 있겠구나 싶은 반가운 생각.

음악하는 사람들은 모이면 슈퍼밴드 이야기로 주제가 모였다. 그런데 누군가 말했다. ‘근데 미스트롯은 되고 왜 슈퍼밴드는 안될까’ 약간 시니컬한 의견이기도 한데, 요는 그런 것이었다. ‘슈퍼밴드가 엄청 화제가 되고 거기 1등하면 뭐가 될 거 같지만, 찻 잔속에 태풍일 뿐이다.’

사실 음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모두가 슈퍼밴드를 시청하고 결과에 집중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현실속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현실에서 물어보면 슈퍼밴드의 존재조차 모르더라는 것이다. 

내 주위의 음악하는 사람들, 밴드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만. 그런데 그 수는 너무 작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음악하는 사람들은 ‘이번 슈퍼밴드 넬의 김종완이 심사를 한데!’ ‘뭐? 김종완이?’ 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흥분하고, 2000년대 락좀 들었던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린킨팍의 조한이 심사위원이라는 사실에 한번 더 놀라지만...현실세계에서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김종완이 누구야?’ 린킨팍? 이라는 생뚱맞은 표정의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더 많다)

슈퍼밴드의 심사위원(윤상, 린킨 파크의 조한, 윤종신, 이수현, 김종완)

이것은 흡사 ‘뱅뱅이론’의 반대적용일지도 모르겠다. (*뱅뱅이론 : 내 주변에는 뱅뱅청바지를 입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실제로는 뱅뱅청바지가 업계 1위의 매출이고 심지어는 버버리보다 높은 연매출을 기록하고 있더라는 것.)

그러면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컨셉으로 진행된 ‘미스트롯’의 예를 들었다. 트로트 장르를 타겟으로한 미스트롯은 최고시청률이 18%를 기록했는데, 종편으로서 요즘에는 보기 힘든 어마어마한 시청률이다. 미스트롯을 통해 음원시장에서 트롯의 매출이 두배이상 점프했다고 한다.

하지만 슈퍼밴드는 그런 실질적인 타격감은 없다. 시청률은 2-3%대에 머무르고 있다(물론 이것도 상당히 선방한 거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프로그램을 잘 만들었다) 그리고 음원이 발표되어도 차트에 크게 오르지 못한다. 

물론 비약이 좀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렇게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도 역시나 밴드음악은 한국에서 그리 대중성을 보장하지는 못하는 구나 싶은 느낌이 있는 게 사실이다. 밴드음악의 대중화에 도움을 줄 프로그램을 잘 만들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인 것도 사실인거 같다. 그래서 절반의 환호를 보내지만...절반은 침잠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천재들이 다 어디 숨어 있었나?


이 말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것 같다. 

1.정말 그들은 천재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십대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재능넘치는 뮤지션들이다.

2.하지만 저렇게 잘하는 젊은 뮤지션들은 이미 주변에 쌔고 쌨다. 당신이 몰랐던 것 뿐이지.. 

그런데 잘 한다는게 뭘까? 근본적인 질문을 해본다. 음악을 잘한다는 것. 저 사람은 천재야!라고 외칠 만큼 잘한다는 것.

음악은 눈으로 보이는 것, 테크닉이 다가 아니다. 예를 들어, 베이시스트로 출연한 출연자 중에 화려한 슬랩 기술(엄지손가락으로 때리고 검지,중지 등으로 줄을 뜯어서 퍼커시브한 소리를 내는)로 관객을 매혹시키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요즘 실음과 학생 중에 그런 슬랩테크닉으로 입이 떡 벌어지게하는 연주자는 그야말로 너무 많다. 대한민국의 실음과 열풍으로 인해 전반적인 테크닉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올라간 것이 사실이다.

조원상팀이 세계적인 락밴드 Coldplay의 곡 ‘Adventure of a life time'을 연주했는데, 그 영상을 본 Coldplay가 직접 ’Awesome‘이라며 리트윗하기도 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실력이 있는데, 왜 우리에겐 콜드플레이같은 밴드는 없는 것일까. 그렇게 숨은 천재가 많고 유명한 곡을 원작자가 놀랠 정도로 커버는 잘 하는데, 그러한 오리지널 원곡을 만들어내는 세계적 밴드는 나오지 않는걸까. (물론 이런 말이 조심스럽긴 하다. 커버 실력만큼 오리지낼러티있는 원곡이 드러나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물론 그 젊은 뮤지션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말은 하고 싶다. 세션과 밴드아티스트는 다른 것이다. 세션은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게, 시장의 트렌드에 맞게 음악상품을 매끈하게 만들어 내는 프로뮤지션들이다. 밴드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하나의 유기체이다. 

그런 면에서 ‘슈퍼밴드’라는 프로그램은 밴드음악을 존중하는 동시에 해체시키는 묘한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실제로 참가자 중에는 밴드로 참가한 팀들도 있는데, 원칙상 심사위원의 선택을 받은 멤버만 개개인으로 다음 단계로 진출한다. 좀 심하게 말하면 밴드를 깨서 임의로 멤버를 모아 최고의 밴드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물론 의도에 공감하고, 비난하려는 마음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최고의 멤버들을 모아서 누군가가 만들어준 팀이 과연 슈퍼밴드일까.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도 탁월한 퍼포먼스를 보이는 세션맨들의 집합-어떻게 보면 밴드의 반대개념인-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

역사상 유명한 밴드들을 보면 프로필이 한 줄이다. 예를들어, 보노의 프로필은 - U2 - 한줄이다. U2의 멤버 모두 그러하다. 10대부터 함께 해온 그들은 다른 밴드는 한 적이 없다. (물론 프로젝트성 다른 작업을 하기도 하겠지만, 본질상) 그냥 U2는 U2일 뿐이고,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그들의 음악을 한다. 

대부분의 밴드가 그런 식이다. Radiohead는 Radiohead이고 Nirvana는 Nirvana이다. 커트코베인이 빠진 너바나는 너바나가 아니고, 데이브 그롤이 빠진 너바나는 너바나가 아니다. 그것이 그들의 프라이드이다. 하지만 세션맨은 다르다. 프로필이 수십줄에 이른다. 누구의 앨범에 참여했고, 누구와 함께 작업했고.

그래서 밴드음악은 초기에 어설프고 거칠기도 하다. 연주력도 상당히 부족할 때도 있다. (U2 인터뷰를 보면 초창기에는 정말 연주들을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멤버들이 오랜 시간 동고동락하며 누구도 낼 수 없는 자신들만의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문화에서는 그러한 가치를 알아봐주는 눈이 부족한 듯 하다. 유행에 너무 민감하고, 실제로 회사들은 시장을 조사하여 가장 잘 팔릴 음악을 위원회의 회의를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다. 이 산업의 예비 취업자들인 실음과 학생들은 모두 비슷한 음악으로 길들여져서 나오는 게 아닐까 걱정되기도 한다. 

‘천재’라는 호칭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테크닉을 넘어서 진짜 자신만의 소리를 내야한다. 슈퍼밴드가 ‘모든 장르에 능한 엘리트 세션맨들’에 머문다면 참 아쉬울 거 같다. 


인디의 서글픈 아이러니

자본주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음악을 하려면 대부분의 경우 회사에 속해 있어야 한다. 회사는 투자한 자본을 회수할 만한 가능성이 보이는 (바꾸어 말하면 돈이 될 것 같은) 뮤지션을 선점하여 계약을 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선택되지 못한 뮤지션은 회사에 소속될 수 없고, 메이저 음악시장에 발 붙이기 어렵다. 하지만, 오늘의 세상에는 그런 뮤지션들에게 축복같은 기회가 있으니, 바로 인디뮤지션의 길이다. 인디라는 말은 independent의 약자이다. 회사의 자본에 기대지 않고, 독립자본으로 즉 내가 직접 제작비를 대서 원하는 대로 만든다는 것이다.

본인이 의지만 있다면 (예전에는 비용과 장비등의 문제로 정말 어려운 일이었으나) 얼마든지 음반을 만들 수 있다. 뮤직비디오도 찍을 수 있고, 음원싸이트와 아이튠즈 등을 통해 지구 반대편의 사람도 내 음악을 듣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인디의 문제는 노출과 홍보이다. 그렇게 만든 음악이 아무리 좋아도, 알려지지 않으면, 유명해지지 않으면 소위 무명가수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방송출연이나 네이버 메인노출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회사들을 중심으로 한 견고한 시장의 시스템이 선점하고 있다. 그래서 인디뮤지션들은 어떻게 해서든 게릴라적 방법으로 자신의 음악을 알리고 싶어한다.

그들에게 JTBC ‘슈퍼밴드’ 같은 프로그램은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창피를 당할 위험, 때로는 수모를 겪을 각오까지 해야하지만, 그렇게 해서 대중들에게 알려질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 생각하고 많은 뮤지션이 도전한다. 

게다가 이번 슈퍼밴드는 뮤지션들에게 정말 멋진 무대를 만들어주고, 심사위원들의 따뜻한 배려도 보여준다. 그렇기에 환호를 보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 음악시장은 냉정하고 오디션 형식의 음악예능 프로그램의 한계도 명확한 법이다. 소위 신자유주의적 경쟁프로그램으로 결국 최후의 승자만이 기억될 것이다. JTBC의 슈퍼밴드를 보면서도 그런 양가감정이 든다. 결국 이들은 방송을 잘 만들려는 것이고, 하나의 씬을 생각하고 씬을 키워 나가는 것은 다른 부분이므로 어쩔 수 없기도 하다. 방송 하나에 너무 많은 걸 바라는지도.

그렇다면 어딘가 좀 아쉽지만, 인디뮤지션으로서는 이거라도 감사하며 적응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일종의 서글픈 아이러니 아닐까 싶기도 하고. 모쪼록 오랜만에 만난 밴드중심의 웰메이드 음악예능에 환호를 보내면서 동시에 나의 마음 한구석 침잠케하는 요소들이 남아 있는데, 그것들이 기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아직 프로그램은 끝나지 않았으니.

(논의와는 별개로 출연자가 왜 전부 남자인지에 대해서는 좀 궁금하다. 예선 당시부터 제작진에서 출연자를 남자로 제한했다던데. 실력있고 매력적인 여성 밴드멤버도 얼마나 많은데, 왜 그랬을까?)

부록 : 기독교 신앙의 관점으로 본, 사소한 듯 하나 결코 사소하다고 할 수 없는 이야기들

사실 이번 칼럼은 이걸로 마무리되었지만, 기독교신앙의 관점에서 몇 가지 이야기를 보태보려한다. 어떤 분들은 이런 걸 싫어한다는 걸 안다. 그냥 음악이면 음악이고, 영화면 영화지, ‘기독교적 관점’이니, ‘기독교적 해석' 등을 꼭 해야하는가. 너무 강박증적이지 않은가라고 말이다.

충분히 이해가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작지만 다른 기독교적 관점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화영역은 (다른 어느 영역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이 깊숙이 들어가 활동해야 할 영역이다. 그리스도인의 주된 활동무대는 교회울타리 안이 아닌, 월화수목금토 자신의 삶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다.

그런데 거기서 어떻게 존재하고 활동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쉬운 답이 나와 있지는 않다. 

앞서 언급했듯, ‘슈퍼밴드’ 출연자 중에는 크리스찬 뮤지션들이 많이 있다. 모르긴 몰라도 학창시절 교회에서 음악을 시작한 사람까지 친다면 상당수가 그러할 것이다. 심지어 심사위원 중 악동뮤지션의 이수현은 부모님이 몽골선교사이고 본인들도 신실한 크리스찬임을 자주 인터뷰하는 형편이다.

그들이 ‘슈퍼밴드’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음악을 한다는 건 어떤 걸까? 대중음악시장에서 크리스찬이 뮤지션으로 활동한다는 건 어떤걸까?

양쪽 극단이 있다. 먼저는 CCM, 찬양사역만을 제일로 여기고 나머지 음악의 효용은 평가절하하는 형태이다. 그런데 이런 관점을 가진 뮤지션이라면 JTBC 슈퍼밴드에 지원을 안했을테니 여기서 해당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의외로 이런 관점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많은 것을 본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만이 존귀하고, 나머지 음악은 세속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이는 오스기니스가 그의 명저 ‘소명’에서 말했던 바에 따르면, 소명에 대한 ‘가톨릭적 왜곡’이다. 즉, 중세교회에 유행했던, 성직(신부,수녀등)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직업이고 나머지 일상적인 직업은 하나님께서 단지 ‘허락’하신(눈감아 주시는) 2등적 존재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왜곡된 중세교회의 생각을 종교개혁자들이 깨뜨리고 나온 것 아니던가. 주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세상으로 보낸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루터등의 종교개혁자는 ‘한 여종이 주인의 명령에 따라 마굿간에서 똥을 치우고 있다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고 이는 만인제사장론으로 연결된다. 가수버전으로 바꾼다면 ‘JTBC출연해서 노래하고 있으면 그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극단으로 자꾸만 치닫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자칫 오스기니스가 말한 ‘개신교적 왜곡’으로 치우지기 쉽다. 

모든 게 그저 하나님의 일이라는 주장은 결국 하나님의 일 자체가 없어져 버리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선교라면 아무것도 선교가 될 수 없다’는 선교학자 스티븐 닐의 말처럼.

음악에 적용한다면, 음악그냥 열심히 하면 되지 내 기독교신앙은 별개의 영역일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뮤지션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을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 본인이 대표로 있는 나니아의 옷장은 이러한 관점으로 기독교인, 비기독교인 누구나 편하게 (종교적 언어없이도)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는 라이브공연을 매주 금요일저녁 해오고 있다.

그런데 이런 면이 있다. 크리스찬 뮤지션들이 겉으로 보이는 기독교성(어떤 형태로든지)을 모두 빼고 요즘 흔히들 노래하는 대로, ‘일상의 소소함을 노래하고’, ‘알콩달콩한 사랑노래’를 부른다. 다 좋다. 그런데 이런 노래들은 홍대에 가면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노래들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문화와는 차별화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원론적으로 돌아가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빛과 소금’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여러 가지 면에서 참 쉽지 않다. 일단 방송같은 공적인 영역에서는 출연자의 기독교신앙 표현 같은 건 통편집요소이기에, JTBC에 출연한 크리스찬 뮤지션이 뭔가를 표출하는 건 현실적으로 참 어렵다. 

그리고 꼭 노래에서 ‘하나님짱!’, ‘예수님 사랑합니다’를 넣어야만 크리스찬 뮤지션인가.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런 방법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물론 나도 여기서 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은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두가 깊이 고민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이 밥집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걸까. 공기밥을 담을 때 십자가를 그려 넣는 걸까? 그리스도인이 학교 선생님으로 부임했다면 어떻게 해야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걸까? 매 수업시간 끝날 때 마다 성경이야기를 접목하거나 사영리 전도를 시도하는 걸까? 

최근 개인적으로 가요계에서 하나의 좋은 예를 발견한 것 같아 제시해보려 한다. 신실한 크리스찬 래퍼로 알려진 비와이는 모두가 알 것이다. 그보다는 약간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비와이의 친구이자 또한 뛰어난 래퍼인 씨잼이 있다. (쇼미더머니 5 준우승. 비와이와 듀엣으로 부른 무대 <puzzle>에서는 ’비와이 말 잘 들어 먼저 감사 하나님‘이라는 가사와 함께 차트1위라는 큰 반응을 얻었다)

둘은 어릴 때부터 교회 친구이자 동료래퍼로 활동해왔다. Youtube에서 둘이 인천의 모 대형교회에서 고등부 랩 특송을 하는 영상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데뷔 후 모범적 크리스찬인 비와이와는 정반대로 씨잼은 여러 가지 사고를 친다. 급기야 2018년 5월에는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기소되었다. 이후에도 술집에서 한밤중 폭행사건을 일으킨다던지, 끝없는 문제아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씨잼은 자신의 노래에서 그러한 모습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하나님 믿는 놈. 근데 교회 잘 안 다니는 놈.

이런 말하는 나는 하나님 보실 땐 미운 놈.

주의 은혜 받은 놈. 근데 안 갚을 놈.

회개하면 용서받는 걸 이용하는 나쁜 놈.

- ‘Crowd’ 中 (2014)


최근(2019년 5월) 발표한 음원에서는 더 구체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러다 진짜 못하지 갱생

끊어야지 작심삼일 캠페인

...

또 이상한 생각만 해버려

오 사탄아 좋은 아이디어인걸

오 형수님 오 제수씨 오 오

회개해야 돼 이대로면 지옥일걸

...

매일 회개를 하면 지금 데려가셨으면 해 오

목사님 나보고 좀 정신 차리래 꼭

예스 맴 난 크리스천의 엑스맨‘

‘ㅈ(error) - <킁> 앨범 중에서’ (사실은 19금 딱지를 받은 거친 가사가 더 많다)


스스로를 크리스천의 엑스맨이라 부르면서도, 신앙인으로써 중심을 잡고 싶어 하는 내면의 갈등을 솔직히 보여준다. 더 재미있는 것은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주는 비와이와의 케미이다. 절친인 것을 과시하면서 카메오로 등장하는 비와이는 술과 약에 빠져 있는 씨잼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리고 손을 모아 기도한다.

비와이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씨잼과의 뮤비 촬영현장 셀카를 올리며 ‘아 성경책으로 뚝배기(*머리를 의미하는 인터넷 신조어. 유사비속어-대가리) 한 대만 때릴걸 그랬나 #회개하자’ 며 글을 올렸다. 팬들은 (종교를 떠나) 이런 상황이 너무 재밌는 듯 하다. 댓글 보면 ‘씨잼 형 회개하자, 주님께 돌아가자’ 등의 뜨거운 반응으로 가득하다.

글쎄..어떤 분들이 보기에는 술과 약에 취해있는 방탕한 래퍼의 노래가 뭐 그리 대단하느냐 싶겠지만, 나는 이 노래와 상황이 젊은 세대와 (특히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깊이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0대의 왕성한 혈기와 화려한 세상이 주는 유혹. 그 가운데 스스로도 어떻게 주체할 수 없는 갈등과 에너지. 그것을 신앙의 언어로 감추고 위선적으로 포장하기 보다는 이렇게 솔직하게 내면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젊은 세대는 열광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성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신실한 크리스찬으로 자리를 잡아온 비와이와 함께 만드는 케미가 이 상황을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만들고 있다. 그들에게 기독교신앙이 어떤 의미인지, 왜 흔들리는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붙들려고 노력하는지에 대해, 나름의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씨잼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의 노래 말처럼 악마의 실로폰에 이끌려 술과 마약에 빠진 빌런으로 마무리할지도, 또는 회개하고 개과천선하여 션, 차인표와 같은 모범적인 크리스찬 연예인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그들은 노력하고 있다. 자신들의 직업인 랩이라는 음악으로 자신의 신앙과 삶을 담아, 진정성 있게 표현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이보다 더 뜨겁게 뮤지션이라는 직업과 인생에 충실할 수 있을까.

좀 극단적인 예였지만, 정답은 없다.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방식이 있으리라. JTBC에 출연한 크리스찬 뮤지션들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도 강요할 수 없고, 하나의 방식을 제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각자의 몫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JTBC의 ‘슈퍼밴드’, 그들만의 스토리텔링을 기대해본다.



글쓴이_이재윤

20대부터 문화선교 영역에 부르심을 느껴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시도를 해왔다. 인디밴드를 만들어 홍대클럽에서 복음이 담긴 노래를 하는 무모한 시도를 하기도 했고, 문화선교연구원에서 기독교 뮤지컬, 영화, 잡지 만들기 등의 일도 했다. 현재는 성신여대 앞 '나니아의 옷장'(옷장 문을 열면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이라는 작은 문화공간을 운영하며, 같은 장소의 '주님의 숲 교회' 목사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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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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