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영화의 고전들 <에스더와 왕>(1960): '홀로코스트'를 막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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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허>(1959)의 이듬해 개봉한 라울 월쉬의 영화 <에스더와 왕>(1960)은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의 성경사랑(?)이 막 정점을 찍고 내려오던 시기의 작품이다. 영화가 아직 말 없는 흑백세계이던 1910년대, 미국영화의 아버지 D.W. 그리피스의 조감독으로 초창기 영화사에 이름을 올린 라울 월쉬가 50여년 영화 인생 끝 무렵이자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몰락기에 만든 것이기도 해서 그 자체로 역사적인의미가 있다. 10회의 성경영화의 고전들연재를 마무리하는 작품으로, 이만하면 됐다.

 

왕을 거역한 두 여인

 

통치하는 지역이 127개나 될 만큼 기세등등하던 페르시아(바사)왕 아하수에로 시대(BC486-BC465), 유다 포로 출신 에스더는 아하수에로의 궁에 왕비 후보자로 들어가게 된다. 당대의 실세였던 재상 하만은 모르드개라는 인물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믿고 그가 속한 유다 민족을 모두 멸하기로 결심한다. 모르드개는 부모를 일찍 여읜 에스더를 친딸처럼 보살펴온 사촌오빠였다. 곤궁에 처한 모르드개와 자신의 민족을 위해 에스더는 법을 어겨가면서 왕 앞에 나아가 하만의 계략을 폭로한다. 이로써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계획한 바로 그 날은 유다인이 그들의 원수들을 멸하는 축제의 날이 되었고, 이는 유다인의 명절 중 하나인 부림절의 기원이 되었다. 신구약 66권 중 여성의 이름이 제목으로 채택된 역사서 두 편 중 하나, 에스더서의 간략한 내용이다.


라울 월쉬의 영화 <에스더와 왕>은 본디 원톱 주인공인 에스더(조안 콜린스 분) 옆에 아하수에로(리처드 이건 분) 왕을 나란히 세웠다. 전쟁에서 막 돌아온 왕은 와스디(다니엘라 로카 분) 왕비의 외도를 확신하여 그를 내치고 새 왕비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왕은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으나, 와스디의 외도 상대는 하만(세르지오 판토니 분)이었고, 에스더는 왕의 호위무사 사이먼(릭 바타글리아 분)의 오랜 약혼자였다. 모르드개(데니스 오디 분)가 에스더 입궁 전에 이미 왕의 충신이 되어 있다는 점도 원전과 다르다. 그는 선대로부터 왕의 눈과 손이 되어 비밀문서를 작성할 만큼 유능하고 신뢰받는 고문이었고 자신이 유다인임을 처음부터 숨기지 않았다. 왕권을 노리는 하만은 충복 모르드개를 모함하여 왕과 모르드개를 함께 멸망시키려고 한다. 욕망과 음모를 중심으로, <에스더와 왕>의 플롯과 인물의 모든 유형은 가장 할리우드스럽게각색되어 있다.


2500년 전 성경의 와스디가 왕이 잔치에 나오라고 했는데 거절해서 문제가 되었다면, 20세기의 와스디는 자유분방하게 살다가 마음대로 왕 앞에 나와 요염한 춤을 추며 왕을 모독한 죄로 쫓겨나고 정부 하만에 의해 암살당한다는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가장 최근의 에스더 영화인 마이클 O. 사즈벨의 <왕과 함께한 하룻밤>(2006)은 이 부분을 의식한 듯 와스디가 아하수에로의 그리스 정복전쟁에 대한 정치적 반감의 표현으로 왕의 명령을 거절한 것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어떤 이유로든 와스디와 에스더는 왕의 절대권력에 도전한 보기 드문 여성들이었다.


그런데 왜 와스디는 처벌받고 에스더는 살아남는가? 라울 월쉬의 영화에서 에스더의 저항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민족 대표로서의 희생이었다. 여기에 개인적 성품의 미덕, , 에스더의 순결함과 순수함은 희생의 전제조건이다. 할리우드의 이중플롯 관습대로, 민족 구원 뿐 아니라 사랑에도 성공하는 에스더는 페르시아의 대왕을 사랑에 목말라 외로운 한 남자로 먼저 대함으로써 여러 모로 와스디와 대조되는 인물이었다.



여인과 민족, 대학살의 유비가 된 희생

 

2017년인 오늘날 보아도 그렇지만, 1960년의 관객이라면 특히 이 영화를 보고 히틀러의 학살을 떠올리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모르드개와 유다 민족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숨기지 않는 하만은 모르드개에게 당신네 유다인들은 왜 그렇게 평화에 집착하느냐고 따지고, 모르드개는 우리는 그만큼 오랫동안 수많은 압제와 폭력을 견뎌왔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는 하만의 계략에 대해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를 직접 발설하기까지 했다.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1959)<다윗과 밧세바>(1951)에서 그랬듯이, 영화의 말미에는 유다인의 법궤와 다윗의 별이 장면과 장면을 잇는 이미지로 계속 등장하기도 한다. 나치에 희생된 20세기 유태인들의 문제를 두고 생각하면, 에스더가 하필 사이먼과의 결혼식 도중에 끌려왔다는 설정은 에스더의 순결(그는 아직 처녀다)과 이스라엘의 결백을 유비적인 관계로 재현하는 알리바이가 되었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생생히 기억하는 당대의 관객들에게 <에스더와 왕>이 주는 특별한 메시지나 위로가 혹시 있었을까? 아니면 단지 이 영화의 공동제작사이자 배급사인 20세기 폭스사를 장악하고 있던 유태인 사업가와 자본의 힘이었을까? 뉴욕의 아일랜드 이주민 가정에서 나고 자란 라울 월쉬는 이전 작품들(The Yellow Ticket(1931), The Naked and The Dead(1958))에서도 반유대주의를 비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태인 이웃이 있었고 자신도 소수민족 태생으로서 차별과 억압에 대한 공감을 지니고 있었으리라 짐작해 볼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대중영화가 현실의 불안과 고통에 대한 상상적인 해결책을 제공한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사실 구약성경 에스더의 결말은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상당히 당혹스럽고도 잔혹하다. 하만의 계략을 처벌하는 것이 하만을 목매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부림절, 즉 유다인들이 다른 민족들에게 복수할 수 있도록 살육을 허용하는 날로 제정되고 심지어 축제로 기념되기 때문이다. 폭력이 폭력을, 학살과 학살 음모가 다른 대학살을 낳는 기록인 셈이다.


영화 <에스더와 왕>은 이 피의 복수전을 플롯에서 과감하게 제외시켰다. 하만은 죽어 마땅했으나 그것은 그가 직접 왕의 암살을 주도하고 반역을 꾀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에스더의 약혼자였던 사이먼은 죽을 뻔한 모르드개를 교수형 직전에 살려낸 후 전사하고(이로써 에스더는 약혼자를 버린 여성이라는 오명마저 피한다), 왕은 에스더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상실감에 빠져있다가 그리스 전투에 참가한다. 그는 그리스전에서 패배하여 귀환한 후에야 에스더와 결합할 수 있었다. 절대권력의 왕이라고 하더라도 약자 앞에서 왕권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 아하수에로, 학살을 학살로 되갚지 않는 평화주의자유다인 모르드개와 정절과 신의를 지킨 에스더의 이미지는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20세기가 갈망했을 세계의 이상적인 모습이었을 법하다.


1960년 당시 뉴욕 타임즈에 게재된 한 칼럼은 가짜 성경영화들의 명을 재촉할 또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에스더와 왕>을 혹평했다. 하지만 성경영화의 좋았던 그 시절이 끝나가던 시기, 대중영화의 관습적 서사가 성경의 서사를 잠식해버린 대표적인 이 영화가 그래도 혹시 옹호할 가치가 있다면, 바로 이 상상적 해결이 담아낸 당대의 공포와 불안 때문일 것이다. 가짜 성경영화에서 나는 학살은 똑똑히 기억되되 재력과 권력을 이용한 어떤 보복도 폭력도 되풀이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영화적 상상력과 대중의 열망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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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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