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영화의 고전들 <성의>(1953):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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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27: 35-36)

 

2016년 봄 개봉한 영화 <부활Risen>에는 빌라도의 명령에 따라 십자가형을 집행한 로마의 호민관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영화는 로마 병사의 입장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영화로 주목받았는데, 사실 로마 병사가 주인공인 영화로 <부활> 이전에 이미 <성의The Robe>(1953)가 있었다. 오늘날 한국 관객들에게는 <벤허>(1959)<쿼바디스>(1951)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성의>는 시네마스코프(종횡비 2.55:1로 넓은 화면 스크린)로 상영된 첫 영화로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의미 있는 작품으로 거론되곤 한다.


로마 군인의 이유 있는 회심

원로원 의원의 아들이자 로마 호민관인 마르셀루스(리처드 버튼 분)는 어린 시절 장난처럼 결혼을 약속했던 소녀 다이애나(진 시몬스 분)12년 만에 다시 만난다.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한 그녀는 아직 마르셀루스를 사랑하지만, 황제의 섭정인 칼리귤라(마이클 레니 분)와 결혼해야 할 처지다. 칼리귤라가 검투사감으로 탐내던 그리스인 노예 드미트리우스(빅터 마추어 분)를 칼리귤라 눈앞에서 수십 배의 가격으로 사들여, 마르셀루스는 칼리귤라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이 일로 마르셀루스는 유대의 호민관으로 좌천되었는데, 빌라도 휘하의 유대땅에서 그가 맡은 처음이자 마지막 임무는 반역죄인 예수의 십자가형을 집행하는 일이었다.

영화 <성의>는 여기서 복음서 말미에 등장하는 군인들 중 하나로 마르셀루스를 지목했다. 십자가 아래서 그는 제비뽑기에 당첨되어 예수의 옷, 즉 성의를 손에 넣었다. 죄 없는 예수를 죽인 것을 비난하며 드미트리우스는 주인을 떠나고, 예수의 옷을 한 번 걸쳐보았던 마르셀루스는 극심한 고통과 발작에 시달리며 그 옷이 자신에게 주술을 걸었다고 믿게 된다. <부활>의 주인공 클라비우스가 예수의 부활이 거짓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의 시신을 찾아 헤맸듯이, <성의>의 마르셀루스는 광기에서 벗어나고 사랑하는 여인을 차지하기 위해 성의를 찾아 없애야 한다.

로마인 신분으로 한때 박해자였다가 제자로서 순교자의 길을 가게 되는 클라비우스와 마르셀루스는 둘 다 신약성경의 바울과 닮았다. 다만, 클라비우스와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 이적을 목격하고 극적인 회심을 경험한 경우라면, 마르셀루스의 회심은 내적인 동기와 외적인 동기를 포함한 몇 가지 과정을 거쳐 서서히 작동하는 쪽이었다. 1953년 영화 <성의>는 이적이 아니라 심리적인 설득과 구체적인 삶의 변화를 그리스도인됨의 지표로 삼았다.

 

죄책감과 죄로부터의 해방

이렇게 생각해보자. 성의는 도대체 무슨 신비한 힘을 지녔기에 마르셀루스를 광기로 내몬 것일까. 제비뽑기에 당첨되어 얻은 성의는 마르셀루스에게 처음에는 약간의 행운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핏방울이 로마군인 마르셀루스의 손등에 떨어진 순간 그가 노획한 옷은 곧 죄책의 상징이 되었다. 그 힘없는 반역자는 피흘리며 죽어가는 순간에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했다. 옷이 주술적인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가 양심을 물들여 그는 막연한 죄의식에 시달리면서 더 이상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었다.

후에 마르셀루스는 죄책감을 먼저 경험한 선배 베드로를 만난다. “내가 예수를 죽게 했어요.”라고 고백하는 마르셀루스에게 베드로는 말했다. “사람들은 나를 마지막까지 예수의 곁을 지킨 충실한 제자라고 말하지만, 사실 나는 그날 밤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어요.” 그리고 십자가상에서 그분이 이미 용서하셨다고 다시 한 번 선언한다.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됨과 동시에 그리스도인이 된 마르셀루스는 비로소 두려움과 광기에서 벗어난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데 사실상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넘기 힘든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영화는 죄와 죄책감의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돌이켜보면, 영화 초반에 드미트리우스가 예수를 찾아 나섰다가 만난 인물은 가룟유다였다. 베드로의 반대편에서, 그는 스스로의 죄책감을 끝내 견뎌내지 못했던 인물의 모델로 등장한다.



그리스도인, ‘이상한사람들

한편, 영화 <성의>는 마르셀루스 회심의 동기를 또 다른 각도에서 살핀다. 성의를 갖고 떠난 드미트리우스를 찾아나섰다가 마르셀루스는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 중에는 날 때부터 다리를 절었다는 소년 조나단과 어려서부터 다리가 마비되었던 여인 미리암이 있었다. 하지만 그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예수를 만난 후 그들이 걷고 뛴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조나단이 자신이 선물한 나귀를 친구(그 친구는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다)에게 아무 조건 없이 주어버렸다는 것과 미리암이 여전히 걸을 수 없지만(예수는 미리암의 다리를 고쳐주지 않았다!) 그처럼 밝게 웃고 행복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눈앞의 이적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조나단의 조부는 또 어떤가. 그는 정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돈을 번 사람들을 질책해서 부당한 이익을 기어이 토해내게 했다.

그 모든 기이한 행동들이 부활한 그리스도 때문이라는 것을 마르셀루스는 곧 알게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자신을 해치러 온 로마군 백부장과의 싸움에서 이겼지만, 복수하지 않고 그를 살려주는 방식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이미 그분의 가르침을 자신의 행동양식으로 받아들였다.

이 모든 일이 성의때문에, 그것을 손에 넣고 잃어버리고 다시 찾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일이므로, 그에게 성의는 틀림없이 신비로운 힘이었을 것이다. , 그것은 주술이나 마법도 이적도 아닌, 상식적인 평범함과 정갈한 원칙이 만들어낸 힘이었다. 영화는 이제 황제가 된 칼리귤라 앞에서 마르셀루스가 재판을 받는 장면에서 이 점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해냈다.

마르셀루스가 다이애나에게 건네주는 예수의 성의와 황제가 입고 있는 옷은 모두 붉은 색이었지만, 황제도 다른 왕(예수 그리스도)’도 배신할 수 없다는 마르셀루스의 답에 화가 나서 돌아서는 황제의 가운은 화려한 선홍색에 금월계관까지 새겨져 있다. 반면 그가 섬기는 다른 왕, 예수가 입었던 성의는 손으로 짠 통옷으로, 도톰하고 차분한 붉은 빛을 지녔다. 이는 <성의> 에서 컬러 시네마스코프 영상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두 장면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마치 갓 결혼한 신랑신부와 같은 표정으로 다른 나라를 향하는 마르셀루스와 다이애나를 담은 마지막 장면.

 

마르셀루스의 회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그리스도인(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었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이후를 살아가는 제자들의 남다른 삶의 양식이었다는 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되짚어볼 가치가 있다. 미로슬라브 볼프의 을 빌자면 신앙이 기능장애를 일으킨이 세대는 구체적인 공감의 표현과 남다른 행동으로 그리스도인됨을 드러내고 권하는 일을 어느 때보다 필요로 한다. 예컨대 되돌려 받을 일 없는 선행과 선물을 베풀고, 고통 받는 이를 위로하고, 원칙과 신뢰가 유지되는 사회를 만들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손해보고 대가를 지불하기를 결심하는, 그리하여 두 세계에서 두 나라에 속한 시민으로서의 공적이고 또 영적인 삶을 고민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대한 갈망을 회복하는 일 말이다.

로마서 1314절에서 바울은 흥미롭게도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라는 표현을 썼다. 유진 피터슨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차려 입으십시오! 꾸물거리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를 옷 입고, 당장 일어나십시오!”

 

최은 | 영화를 매개로 한 크고 작은 만남들과 글쓰기의 기회들에 감사한다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전공하고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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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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