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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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의미

JOSHUA ROTHMAN


 



최근 메리암-웹스터 사전에서 발표한 2014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단어는 다름 아닌 문화였다. 이 결과가 조금 재미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문화2014년 한 해를 장식할만한 대표적인 단어인 vape(전자담배), selfie(셀카)와 같이 문화적인 단어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메리암-웹스터는문화가 선정된 이유가 추상적이거나 지나치게 포괄적이지 않다는 것을 해명하기 위해 애를 먹기도 했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문화는 웹사이트에서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였다고 한다. “문화의 정의에 대한 혼란이 어쩌면 2014년의 문화였던 것이다. 사람들이 문화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가장 궁금해 했다는 걸 보면 말이다.

 

문화가 복잡한 단어라는 점은 비단 2014년 한 해 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 단어를 정의할 때, 메리암-웹스터는 (생물학적으로배양이라는 단어를 포함하여) 6가지 뜻을 제공한다. 그러나 문화라는 단어의 의미는 이 여섯 가지 뜻을 총합한 것보다 더 크다. 오히려 이 단어의 가치는, 문화를 설명하는 단어들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평론가 래이몬드 윌리엄스는, 그가 자주 사용하는 “Keywords”란 사전에서 문화라는 단어는 세 개의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한다.

(1) 개인의 자기계발적인 측면, 예를 들어 누군가가 세련되고 교양 있다고 표현할 때 (프란시스 베이컨이 1605년도에 “culture and manurance of minds(마음 밭을 경작하고 비료주기)라고 쓰면서 ‘culture’를 이런 용도로 사용했다)

(2) 어느 그룹의 생활 방식을 표현할 때, 예를 들어 프랑스인들의 문화, 한 기업의 문화, 또는 다문화

(3) 그리고 문화를 박물관이나, 콘서트, 책과 영화처럼 문화부 또는 한 문화 활동에 표현할 때이다


윌리엄스는 문화의 이 세 가지 뜻이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서로 경쟁 속에 있다고 표현한다. , 우리가 매번 문화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이 많은 뜻들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사용하게 된다. 박물관에서 접하는 문화,” 더 교양이 있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문화,” 또는 한 그룹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문화중에서 말이다.

 

한편으론, 역사적인 측면에서 문화는 잦은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윌리엄스는 19세기에는 문화가 종종 문명과 상반되어 사용됐다고 발언한다. 문명이 발전과 규율을 권장하기 위해 계획된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이었다면, 문화는 그 반대였다. 문화는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잠재된 양상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이러한 연유로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는 모순어법이다). 현재 우리는 문명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지 않고, 대신 더 세련된 문화라는 단어를 애용하지만, 아직도 그 사용에 있어 갈등을 겪고 있다. 문명화된 우리들의 삶이 문화를 촉진시키면서도 한편으론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박물관은 미술 감상을 편리화 시켰지만, 그 가치를 절감시키기도 했다. 락앤롤 콘서트 또한 공연장에서보다 음악 클럽에서 더 좋게 들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분명한 이유로 문화라는 단어는 꾸준히 검색되는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왜 2014년에 평상시보다 더 많이 검색됐을까? 메리암-웹스터의 편집자들은 이 현상에 대하여 추측하진 않았다. 그저 “체계적인 인간행위에 대한 학문적인 관심때문일 것이라는 짤막한 설명을 덧붙였다. 나는 올해에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의 의미를 검색한 이유가 문화가 불편한 단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문화는 최근까지 긍정적인 의미로 여겨졌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미국의 문화가 안 좋아지고 있다고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미국의 문화 중에는 나빠진 면도 있고, 좋아진 면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문화라는 단어 자체가 예전과는 달리 부정적인 뜻을 지니게 됐기 때문이다. “문화가 가장 긍정적으로 사용됐었던 상황, 예를 들어 개인적인 발전, 세련됨, 교양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던 상황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반면 이 자리에는 이제 무의식적인 집단적 사고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빈도가 더 잦아지고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문화는 개인 성장을 위한 탐색으로 이해되었다. 이미 사회에 만연하게 정립된 문화를 거부하고 싶을 땐, 그것을 겨냥한 () 문화에 참여할 수 있었다. 80년대, 90년대, 2000년대에 들어서도 문화는 자부심의 근원이었다. 다문화 정신으로 인해 우리는 다양한 문화들 속에서도 우리 고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근래 들어 문화는 교활함, 의심스러움, 부정적인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문화라는 단어를 어느 특정 단어와 함께 사용하게 되면, 우리 사회에 팽배해지고 치명적인 영향을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양상을 묘사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연예인 문화같이 말이다. 또한 분명히 현실과는 정반대임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가치를 표방하기 위해 쓰이고 있다. 기업들이 대부분 갖추지도 않은 투명한 기업 문화또는 신뢰가 있는 기업 문화처럼 말이다. 모든 면에서 문화는 다소 천박하게 사용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대표적인 커피 브랜드의 커피 문화에는 실제로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가장 문화적인 기관들에는 오히려 문화라는 단어를 적용시키기가 어려워졌다. 우리는 MOMA(뉴욕시의 현대 미술관)가 미술 문화를 발전시킨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술을 문화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것을 은근슬쩍 폄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54도에 ‘Film Culture’라는 잡지가 처음 출판 되었을 때 독자들은 문화라는 단어 때문에 조금 있어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의미로 문화는 오히려 독자들과 관계자들을 비하시키는 작용을 할 것이다.

 

올해에는 강간 문화라는 강한 용어가 재탄생 했다. (이 용어는 1975년에 만들어진 “Prisoners Against Rape”이라는 단체에 대한 다큐멘터리 “Rape Culture”에서 처음 쓰이기 시작하였다. 이 잡지에 실린 다른 글에서는, 애리엘 레비가 강간 문화를 여자가 화폐이며, 섹스는 남자가 여자에게 받거나 가져가는 가치체계라고 표현한다). “강간 문화라는 단어가 확산됨에 따라 강간에 대한 의식뿐 아니라 문화에 대한 사회의 생각도 바뀌었다. “강간 문화에서 쓰인 문화는 전혀 개인의 발전을 의미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여기서 쓰이는 문화의 뜻은 윌리엄스가 정의한 나머지 두 가지의 의미로 이해된다. 여성을 향한 폭력을 격려하는 단체의 문화(여성 혐오, 남성 우월주의), 그리고 이렇게 관습으로 남은 행동을 지속시키는 문화적인 기관들(영화, 남학생협회)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용어가 사람들에게 수용되는 이유는 단어간 부조화 때문이다. 문화가 강간이라는 단어와 함께 쓰이는 것을 한번 접하고 나면 당신은 문화의 의미를 재정의하여 사용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 경찰로부터 살해된 마이클 브라운, 에릭가너를 포함하여 미국 흑인들의 죽음을 가리킬 때 쓰인 문화에 상응하는 단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은 문화가 비인간적이고 악한 힘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게 하였다. 아마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문화에 대한 여러 사전적 의미가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한 때 문화가 의미했던 부분을 포함하여, 문명이 뒤엎었음 내심 바라게 되는 의미까지 말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의 음악 문화나, 예술 문화, 도서 문화가 악화됐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의 공통적인 생활의 방식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문화라는 단어를 들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와 의미가 어두워지고, 공격적이고, 회의적인 단어가 되었다는 것이다. 단어가 우리의 생각을 위한 도구라면, 올해 문화는 우리로 하여금 사회의 잘못된 부분들을 생각하기 위하여 사용됐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암시하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문화에 대한 우리의 분석적이고 사회학적인 생각 방식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이것은 긍정적인 발전이다. 문화의 의미가 변하면서 생긴 혼란 때문에 사전을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세계를 이해하고 더 좋게 만들기 위한 관심이 더 좋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이런 생각이 문득 들 수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의미들을 단 하나의 단어인, 문화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까? 이 질문에 대해 아니오라는 답변이 나올 수도 있다. 윌리엄스 또한 문화는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추상적인 단어라고 했다. 예술적이고 지적인 생활을 의미하는 단어, 집단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단어, 그리고 내재된 생활 규범을 의미하는 단어를 각각 분리시켜 사용하는 더 합리적인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쓰여지는 단어는, 어느 단어이든 간에, 더 간편하고 명확할 수 있지만, 맥락의 정확도는 감소할 수도 있다. , 예술, 그리고 정치 간에 중첩되는 지점이 애매해질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된다면, 그 단어들간의 의미 또한 절감될 것이다. 문화가 그 고유적인 의미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희망을 반영하기도 한다. , 1) 각각 다른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함께 좋은 삶의 방식을 찾자는 희망, 2) 다른 그룹의 좋은 생활 방식이 습관, 기관과 활동을 통해 표출되는 희망, 그리고 3) 이러한 것들로 인해 개인이 발전하고 번창하는 희망이다. 문화가 최고 정점이 될 때는 아마도 문화의 3가지 의미가 서로 충돌하지 않을 때일 것이다. 아직 우리의 문화는 이렇게 성숙하지는 못했다; 우리의 문화는 분열되었고,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 또한 그렇다. 하지만 우리의 공통적인 태도와 기관들이 모든 개인 구성원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세상이 상상이 되기는 한다. 그러한 세계에서 아마도 문화는 조금 더 분명해질 것이고, 사전을 찾아 볼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The New Yorker’sarchive editorJoshua Rothman의 글 The Meaning of Culture"를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비상업적 목적으로 번역 및 한국적 상황과 독자들을 고려해 편집하였습니다. 본 기사를 이용할 경우 원작자는 'Joshua Rothman', 번역자는 '문화선교연구원'으로 표기할 수 있으며 저작권은 The NEWYORKER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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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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