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후] 사회의 ‘갑을’ 관계와 기독인의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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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갑을관계와 기독인의 소명에 대해서

 

정재후 목사

 

via zdnet


사회 생활의 관계에서 좀 더 지배적이거나 좀 더 권위를 갖는 주체가 있다. 반면에 다소 종속적이거나 복종해야 하는 주체도 있다. 이 둘이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흔히들 그것을 의 관계라고 한다. 대부분의 직장 생활이 갑과 을의 관계로 그려진다. 그래서 우리들의 보통 생각에서는 갑은 권력을 쥐고 흔드는 가해자의 이미지, 을은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기분이 나빠도 참고 견뎌야 하는 피해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상당 부분이 이미지가 아니고 현실에서 경험한 사실, 곧 우리들의 체험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대중들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을의 마음과 더욱 연결이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갑의 횡포에 대해서 통쾌하게 대처하는 을의 활약을 다룬 소설과 드라마를 좋아하기 쉽다. 아마도 일명 땅콩 회항 사건은 갑의 횡포에 대한 반감이 가득 찬 대중들에게, 충분히 갑의 횡포와 권력의 오용을 보여준 사건으로서 갑질을 해대는패밀리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준 사건이기에 더욱 더 우리들의 입에 자주, 그리고 오래도록 오르내리고 있는 것 같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사회생활이기에, 갑과 을에 대해서 생각하면, 그저 일반 사람들과 비슷한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인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의 관계에 대해서 건설적인 담론은 불가능한 것일까? 갑을 관계를 소명으로 풀어보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중세사회에서는 돈을 버는 일을 세속적이며 천한 것으로 생각하고 영적인 생활과는 무관하거나 영적인 생활을 방해하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나 중세 사회를 끝나게 했던 칼빈의 종교개혁은 단지 종교 영역의 개혁만을 가져 온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사회 생활에 대한 의식을 근본적으로 개혁했다. , 성도의 신앙 생활과 사회 생활의 연결을 가져왔다. 중세 식으로 직업 의식을 쉽게 표현했을 때, “내가 집안도 안 좋고 공부도 못했으니 빵이나 팔아서 연명이나 해야지!”라고 했다면, 칼빈의 공동체에서는 나를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우리 마을에서 빵을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것을 아시고 나를 빵 장수로 부르셨으니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 팔자!”고 다르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성도들이 다른 의식으로 경영을 한다면 그 결과도 매우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칼빈의 개혁교회에서 성실하게 일한 사람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그 결과로서 돈을 모으게 되면, 그것으로 나를 위한 사치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의 고아, 과부, 나그네를 위해서 기부하고, 한편으로는 나라의 기업을 위해서 은행에 저축을 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 결과로 개혁교회가 있었던 마을에서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이 제도화되었다. 지금의 사회 복지 제도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이 검소한 생활을 통해서 모은 잉여 자금을 저축함으로 그 도시에는 자본이 축적되었다.


막스 베버는 중세의 노동에 대한 가치를 개혁교도들이 바꾸어 놓았음을 사회학적으로도 논증하였다. 베버는 특별히 장로교도들이 자신들이 구원을 정말 얻은 것인가에 대한 검증 수단으로도 직업의 만족할만한 성과를 기대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 대충 먹고 살려고 일을 했던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유익을 주고 하나님께는 영광’(Soli Deo Gloria)을 돌리기 위해서 사회 생활을 했던 것이다. 성도들이 열심히 일해서 좋은 열매들이 나타나는 것이 구원의 방법은 아니지만, 성도가 이미 구원을 얻은 것에 대해서 아 그렇구나!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구나!”, 하고 안심감사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직업에 대한 신학화를 칼빈이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양 사회 보다 여러 면에서 뒤쳐져 있었던 유럽이 놀랍게도 먼저 자본을 축적하게 되고 상거래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도시가 유럽에서 발달하게 되었다는 것을 베버는 지적했었다.

어떤 기독교인 사업가가 한 달에 1억씩이나 적자가 나는데도 기업의 문을 닫지 않고 경영을 계속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회장님 재산만 가지고도 여행 다니면서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적자를 보면서 경영을 계속 합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갑이라 칭해지는 그 자본가는, “내가 손실나는 것 때문에 문 닫으면 우리 종업원들은 뭐 먹고 삽니까? 내 자산이 줄어들어도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아야지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사업이 잘 될 때 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응답으로서, 장애를 가진 채 버려진 어린이들을 입양해서 기르고 있었다고 한다. (너는 갑의 앞잡이냐? 이런 비난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이 글을 읽지 않으면 좋겠다. 갑의 권한이 을을 위해서 견제되어야 함을, 그리고 갑이 을을 더 우선적으로 배려해야함을 당연한 전제로 생각하고 있다.)

다소 낭만적인 생각이라고 비판을 받을 수 있겠지만, 수많은 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소득이 있도록 제공해 주는 주체가 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나를 착취하는 악마가 아니라 내가 소명’ - 곧 이 땅의 직업을 단순히 경제 소득을 위한 것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부르신 일 - 을 실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고마운 대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반면에 은 갑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소명이 있음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나(부모)에게 자본이 있게 되었고 그것을 이 성실한 들에 의해서 보람 있게 사용하여, 나의 자산도 늘어가고 사회적인 유익을 줄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을과 사회에게 정당한, 아니 이에 더하여 후하게이익을 배분해야지, 하는 소명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런 신뢰 관계 속에서, 책임 있게 일하는 을들이 많은 사회에서 갑은 그 수많은 을들의 땀에 대해서 아낌없이 보상하고(그래도 남는 돈들을 세계 선교와 북한 선교, 그리고 사회복지를 위해서 사용도 하고) 함께 번영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속의 미담들은 감춰지기 쉽고 부정적인 사건들은 뉴스로 보도되기 쉽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다루고 있듯이 언론의 경쟁적인 선정주의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 드라마에서 물론 언론사들의 경쟁에 대해서 단면적인 것을 소개하고 있지만, 보다 더 시청률이 나오는 뉴스를 만들기 위해서 자극적인 소재를 찾기도 하고 때로는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채 추측성 보도를 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관행을 꼬집고 있다. 갑과 을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들이 많다. 갑과 을, 노와 사가 함께 공존하며, 신뢰 관계 속에서 정당한 분배가 이뤄지며 보람 있는 기업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좋은 모델들이 여러 채널들을 통해서 소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들은, “이런 회사도 있어요!” 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회사는 직원들에게 집을 살 때 중도금을 회사가 내주기로 했어요!”, “우리 회사는 만약에 일하다가 사고나 재해를 당하면, 그 직원의 자녀에게 회사에서 학비를 대주기로 했어요!”라는 말을 듣고 놀랬었다.


우리의 현실은 경쟁적이고 각박하고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만, 기독교인의 소명을 실현하는 일터로서, 이웃에게 유익을 주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는 삶의 공간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갑과 을은 공존할 수 없는 대적자들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책임과 신뢰, 배려 속에서 공존해야만 하고, 공존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나를, 우리를 이 땅의 여기에 부르신 하나님의 소명에 응답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정재후 목사는 문화선교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지냈으며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와문화로 신학박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문화선교연구원 객원연구원이자 푸른나무교회 부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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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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