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영화인가? <제자, 옥한흠>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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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영화인가?

<제자 옥한흠>(김상철, 다큐, 전체, 2014)

 

최성수 박사

<제자, 옥한흠>은 평생 목회과제로 삼았던 제자도의 삶을 직접 실천하며 살다 생을 마친 고 옥한흠 목사의 모습을 담고 있다. 고인은 열정을 갖고 제자교육을 시작했지만, 국내에선 신학적인 근거에 대한 고민을 해결할 수 없었다. 결국 어려운 선택을 거쳐 유학을 갔고, 유학생활 중에 교회론적인 연구를 통해 얻은 근거로 자신만의 독특한 제자양육 방식을 확립할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제자 훈련에 전념하게 되는데, 영화가 강조하고 있는 점은, 고인이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로까지 성장하면서도 결코 변질되지 않은 까닭이 한 사람 한 영혼에 대한 목자의 마음과 관심을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한편, 내용과 상관없이 고 옥한흠 목사의 사역, 특히 제자 삼는 사역을 영화로 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논란이 클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염려를 했었다. 현재 사랑의 교회에 대한 상반된 입장들이 교회 안팎으로 난무하기 때문이다.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선, 특히 교회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갈등 상황에선, 어떤 편에 있는 사람이 어떤 말을 해도 갈등을 잠재우기보다는 더욱 증폭시키는 결과로 이어지는 법이다. 이럴 땐 침묵으로 하나님과 대면하는 일이 최고의 해결책이다. 세상을 떠난 지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고인에 대한 영화가 제작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두고 사람들은 현 사랑의 교회를 비판적으로 겨냥한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비록 오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떤 내용을 담아 만들어지든 논란의 중심에 설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간단하게 생각해본다면, 김상철 감독은 한경직 목사 혹은 김수환 추기경 혹은 법정이 세상을 떠난 후에 제작된 영화 같은 형태의 다큐 제작을 염두에 두었다고 볼 수 있다. 마태복음 2818~20절의 말씀을 평생의 목회과제로 삼고 제자교육에 헌신한 고인의 모습은 여타의 목회자와 비교해볼 때 매우 독보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에 충분히 조명 받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자교육의 결과도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칠 정도로 현출했다.

그러나 시기적으로나(갈등상황) 내용적으로 볼 때(특히 마지막 장면인 현 사랑의 교회에서 음소거 장면을 연출했을 때), 특정 교회에 대한 경고 혹은 비난으로 여길만한 장면이 있기 때문에 영화 자체를 심히 불편하게 받아들일 사람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이런 까닭에 이 영화의 주 관람객이 사랑의 교회성도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외면당하고 또 비판을 받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관객의 반응만으로 영화를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적어도 관객 동원에 있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즈음 해서 감독의 영화제작 의도를 묻지 않을 수 없는데, 목사이기도 한 감독에게 관객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제작 의도에 있어서 신학적인 혹은 목회적인 전문성이다. 그러나 신학적인 혹은 목회적인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는 내용보다는 <쿼바디스>처럼 대형화된 교회를 비판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고인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제자교육에 대한 고인의 헌신적인 노력과 삶을 소개하면서도 정작 제자교육이 어떤 것인지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 영혼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둘째, 고인이 목회자로서 그토록 절규하며 기도하며 살았다면, 제자교육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실제로 있었을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제자교육과 고인의 관계를 하나의 신화로 여기지 않도록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셋째, 제자교육과 성도수의 상관관계는 사실 고인의 의도도 아니고 또 제자교육의 철학도 아니다. 그럼에도 감독은 제자교육의 결과를 말하면서 인격의 변화가 아니라 숫자와 성장만을 제시함으로써 마치 그것을 통해 고인이 기울인 헌신과 결과를 말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제자교육을 교회성장 프로그램으로 생각하게 했다는 것이다. 넷째, 고인의 설교 내용을 편집하면서 유독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거의 전부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은퇴 후에 교계 활동을 하면서 했던 설교였지만, 그 이전의 설교부분도 마찬가지다. 제자교육을 받아본 사람들은 알지만, 제자 교육은 교회비판 능력을 기르는 데에 있지 않다. 오히려 먼저 나의 변화부터 시작해서 제자로서 바르게 살면서 교회의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 제자교육을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한국교회를 비판하는 고인의 모습에만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결과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필자는 감독이 끝까지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았던 제자 옥한흠 목사에게 집중하면서도 특히 한국교회 목회자를 비판하는 그의 설교에 큰 비중을 두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고인의 생애와 사역 자체를 조명하거나 제자교육의 의미와 가치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 아님을 확신하게 된다. 고인을 한국교회에서 존경받는 목회자로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는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그런 일이 실제적으로 현 한국교회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필자는 <쿼바디스>처럼 영화가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을 겨냥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옥한흠을 기호로 삼아 현 한국교회 목회자를 비판하고 경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 자체가 흠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영화를 보면서 고인의 목회적인 열정에 감동을 받아 눈물과 함께 존경의 마음이 한꺼번에 분출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설령 비판적인 의도가 현저하다 해도 한국교회와 목회자는 필자를 포함해서 비록 채찍을 맞는다 해도 불평할 처지가 못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사람의 생애를 고인이 된 후에 영화로 제작하려 할 때 마땅히 갖춰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내용에서 많이 아쉽고 또 제자사역을 통해 고인을 새롭게 조명하거나 고인의 목회철학을 한국교회에 알리려는 의도를 발견하기 쉽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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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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