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을 향한 두 가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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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을 향한 두 가지 시선

  

                                                                                                                     문화선교연구원 김승환 연구실장

‘평화와 화해’의 아이콘으로 등장한 교황 프란시스코가 한국을 방문한다. 전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의 방한으로 최근 긴장과 갈등의 상황에서 화해의 분위기가 연출될지는 미지수이지만, 남북의 평화를 담은 메시지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그 효과가 얼마나 될지 기대가 된다. 교황은 가톨릭 신자들 외에도 갈등과 차별로 눈물을 흘리는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14일날 방한해서 16일 충북 음성의 꽃동네를 방문하고 18일 명동 성당의 미사에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밀양 송전탑 예정지 주민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한국 사회가 외면하고 감추고자 했던 부분들을 하나둘 끄집어 내려는 것 같다. 또한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향한 교황의 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의 방한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그가 가톨릭의 수장으로서 보여준 행보를 감안할 때, 오히려 종교적 행보로 바라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물론 종교와 정치를 명확하게 나눌수는 없다. 그동안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탈리아의 마피아들과 전쟁을 선포하면서 바티칸의 금융개혁을 시도했고, 팔레스타인을 방문하면서 중동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도 제 3세계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금융정책을 주문한 바 있다.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라기보다 성직자로서, 신앙인으로서 마땅히 행동해야할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그를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시선은 긍정과 부정으로 나뉜다. 두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인데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가톨릭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오류와 역사적 잘못 등을 꼬집고 있으며 환영하는 진영에서는 교황의 방한으로 한국교회의 자성적 목소리와 함께 갱신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어느 한쪽의 입장에 따르기보다 교황 방한으로 한국교회가 얻어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교회의 자성과 회복의 기회를 삼아야

첫째. 목회자다움의 모습을 회복해야

프란치스코 교황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가 이전 교황들과는 분명히 다른 행보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유럽권이면서도 예수회 출신으로 잘 알려진 교황은 남미의 해방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관심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들이다. 로마의 길거리 벽화로까지 등장한 교황은 대중친화적인 이미지를 넘어서 사회변혁의 상징으로까지 올라섰다.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교황은 트윗에서도 맹활약중이다. 이러한 모습을 비추어볼 때 오늘날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의 각성이 요청된다. 일부 목회자들이 보이는 사회적 추태, 높은 보수와 좋은 차, 권력의 자리를 추구하는 성공지향적 목회적 술수를 내려놓고, 교회 안팎을 넘어서 사회적 약자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려는 낮은 자세가 요청된다. 자신만의 왕국안에서 누려왔던 지위와 혜택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합당한 목회자의 모습으로의 변화를 요청하는 바이다. 교회안의 복음으로 가둬두지 말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려는 목회자들의 모습을 통해 교회의 회복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둘째. 약자들을 위한 교회에서 약한 교회로.

한국교회는 60-70년대 역사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시기에 대중들과 함께 한 길을 걸어왔다. 여러 산업선교회를 중심으로 공장 근로자들의 인권과 차별의 목소리를 대변해왔고, 농어촌 지역에서도 교회와 선교회를 중심으로 계몽운동에 일조했다. 민주화시기에 함께 거리로 나가 부조리한 사회와 정권에 향해 비판의 칼날을 세워왔다. 거리에서 울고 광장에서 소리친 교회였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서 교회의 급격한 성장이후 대형화와 고급화로 인해 점점 사회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개교회주의와 신앙의 사사화가 이루어지면서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것이다. 물론 타종교에 비해서 여전히 사회봉사와 구제사역에 열심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과는 분명 다른 위치와 모습을 하고 있다. 강한자가 베푸는 시혜가 된 것이다.


교회는 약자들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교회가 곧 약자이어야 한다. 어느덧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이 되어 정치권에 한 입김으로 작용하고 있다. 교회가 가지는 인적 물적 자원을 무시할 수 없기에 일부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권력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국민정서와 반대되는 교회의 이런 행보는 기독교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주요한 요인이 작용한다. 교황이 보여준 약자에 대한 관심과 친서민적인 행보로 시대가 종교에 요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교황의 방한으로 한국교회는 낮은 교회, 약한 교회로의 모습, 즉 예수 그리스도의 케노시스(자기제한)의 성육신적 삶과 자세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셋째. 기독교의 신뢰성 회복이 급선무

지난 6년간 4번에 걸친 사회적 신뢰도 조사에서 기독교는 항상 가톨릭, 불교 다음이었다. 약 20%를 넘지 못한 수치를 보임으로서 가톨릭과 불교의 절반정도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독교는 이 시점에서 가톨릭으로 집중되는 대중적 관심이 무엇인지 그리고 교회를 향한 사회적 불신의 요인이 무엇인지 그 이유를 면밀히 검토해야할 할 것이다. 가톨릭에 대한 호의적인 몇가지 요인을 생각해보면, 타종교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와 세속화되지 않은 종교적 영성일 것이다. 반대로 기독교는 목회자의 윤리적 문제를 비롯해서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 등이 거론된다.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복음의 진리를 포기하라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복음의 온전한 삶을 살고 있는 돌아보는 동시에, 사회적 소통과 공감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나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타인의 잘못을 들추어내는 식의 행동은 언제나 비난받을 수 밖에 없다. 교황의 방한으로 기독교 신도수가 급감할 것을 염려하는 식의 행동은 우리에게 다가온 변화와 갱신의 기회를 걷어차버린 꼴이 될 것이다.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면서도 시대정신과 대중적 요구를 외면하지 않는 교회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황의 방한에 따른 부정적 시각도 고려해야

첫째. 신학적 오류와 역사적 갈등

교황의 방한이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경계해야할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반대자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가톨릭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오류와 교리의 문제점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한다. 물론 제2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어느정도 수정과 보완을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가톨릭을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시각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제기되는 문제를 살펴보면, 교황무오류, 성모마리아 숭배, 가톨릭의 성직 계급, 행위 구원론, 성상 숭배, 죽은자를 위한 기도 등 기독교 일각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을 다 풀고 가기에는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상당한 입장차가 존재한다.


종교개혁 당시 수많은 개혁자들과 신도들이 목숨걸고 싸워왔던 부분들을 있는데, 그것을 덮어두고 다시 일치와 연합을 이야기하기엔 상당한 시각차가 존재한다. 사회참여와 선교적 차원에서 부분적인 연합은 있을 수 있지만, 가톨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고 해서 그들을 다 받아들이고 본받으라는 주장은 결코 쉽지 않는 요청이다. 하지만 신학적 교리적 갈등보다는 복음의 본질, 성서의 참된 가르침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자세가 요청될 것이다.

둘째. 다원주의에 대한 염려

가톨릭은 토착화 과정에서 현지의 문화와 전통을 상당히 존중하는 입장이다. 한국에서도 제사를 허용하고, 명절과 민속 문화들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보여왔다. 타종교와 문화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결정한 것처럼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으로 선회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에는 칼 라너, 라이문도 파니카, 한스 큉, 폴 니터와 같은 신학자들의 역할도 주요했다.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론을 보면,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그것역시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취지이다. 타종교에도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애매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파니카는 조금 더 나아가 정상에 오르는 다양한 길이 있음을 언급했다. 수많은 종교중에 기독교를 하나로 여기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성을 부인했다. 폴 니터 역시 하나님 중심적 입장에서 종교간의 대화와 통합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복음의 절대성을 포기한 채 타종교와의 관계맺기를 시도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모습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선교적 사명이 무의미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교회의 존재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국제적 교류와 세계화의 추세에 따른 다원화 사황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관용과 대화적 자세와 함께 기독교 진리에 대한 확고한 입장이 필요하다.

셋째. 개신교의 영향력 약화

교황의 방한으로 가장 염려하는 부분은 바로 개신교의 위축이 아닐까 싶다. 2000년대 들어서 성도수가 급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황의 방한은 교회에서 성당으로 성도들이 이동할 것을 염려하는 눈치이다. 어떤 학자는 교황 바오로 2세의 방한부터 개신교의 성장이 둔화되다가 감소했다는 의견을 펴고 있다. 사회적 신뢰도에서 한참 밀린 개신교가 구심점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교황의 등장으로 여론몰이와 함께 가톨릭의 조직적, 제도적 역량이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이 점은 개신교가 두려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교황으로 풀어내려는 국내의 여러 목소리들을 바라볼 때 교회는 한참 부럽기만 할 것이다.


대승적 차원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형제라고 하기에는 너무 멀리 있는 가톨릭의 성장으로 기독교의 자리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외적인 영향력을 고민함과 동시에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교황의 방한이 임박했다. 오는 손님을 문전박대하는 야박함을 보일 수 없다. 손님이 편히 머물다 갈 수 있도록 모두가 협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나뭇잎하나 띄워 조롱박에 찬물을 떠주던 넉넉한 인심이 우리네 모습이다. 혹 손님이 머무르기에 불편한 부분들이 있다면 집안을 청소하고 부서진 곳을 청소하면 된다. 아니 평소에도 스스로를 돌아보며 단정히 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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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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