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선교리포트] 하나의 불빛으로 그들과 함께 살다│광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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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발간하는 잡지 <오늘> 2013년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오늘> 블로그 http://onul1.tistory.com/1569 에서도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하나의 불빛으로 그들과 함께 살다│광야교회





빅이슈라는 잡지는 이젠 파는 이가 가판대 앞에서 어떤 취지의 잡지인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널리 잘 알려져 있다. 노숙인의 자립을 돕고 동시에 그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하여 시민들에게 단순히 동정심만 요구하지 않았다. 올해 8월 18일에 폴란드 포즈난에서 폐막한 홈리스 월드컵에서 한국은 참가한 60개국 나라에서 거의 꼴찌에 머물렀지만 참가한 이들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산다는 기쁨을 얻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노숙자를 그 지역의 관광 가이드로 활용해 여행객들을 맞이하게 한다. 하나같이 사회 일원으로서 자신의 중요성을 인정해 주는 것으로서 생의 의미를 경험케 한다. 이렇듯, 그 어느 한 명도 이 사회에서 소외되는 것이 당연한 사람은 결코 없다. 그들도 사랑받는 자녀였고, 가정이 있었고, 꿈이 있었던 사람들이었으니까. 1987년 개척하여 올해로 27년째를 맞고 있는 영등포 쪽방촌의 대부격인 임명희 목사의 광야교회를 찾아보았다. 글 김준영 ·사진제공 광야교회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다
같이 살고 있는 도시에 이런 데가 있나 싶을 정도로 차에서 내리자마자 곰삭은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곳곳 도로와 인도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교회 위치를 물으니 거기 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한쪽을 가리켰다. 이미 광야교회는 거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다. 길을 따라 걸었다. ‘미성년 출입금지’ 표지판이 덩그러니 걸려있다. 성매매 집창촌 입구 간판이다. 광야교회는 서울이라는 도시 내에 성매매 집창촌과 노숙인들이 널브러져 있고 약 200여 세대의 쪽방촌이 있는 곳 가까이 있다.
광야교회가 이곳에 자리잡은 것은 1988년, 쪽방촌 대부격인 사람에게 3평 남짓 쪽방 한 칸을 12만 원에 사면서부터이다. 거기에 얇은 베니어판으로 비가 새지 않을 정도로만 막고 예배를 드렸다. 
“청량리 역으로 전도를 나갔다가 곳곳에 누워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아저씨 왜 거기서 그러고 계세요’ 하는데 눈물이 나더라고. 그리고 여기 처음 와서는 그냥 울었어요. 여기저기 싸움질 하고 있고, 술마시고 누워 뒹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광야 그 자체더라고.” 
광야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필요했다. 교회에 사람을 많이 모으고 건물을 크게 지은 것이 성공이라고 한다면, 광야교회는 단호하게 그런 평가를 거부하고 벗어나 자유하길 자처한다. 오히려 광야 같은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한 사람에게 생명을 온전히 경험하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생명 안에서 지속적으로 그렇게 살아가게 한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광야 같은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다
광야교회가 위치한 곳은 가히 광야다. 10년 전쯤만 해도 여기서 사람이 죽어 업혀 나가도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만큼 성장했다고 하는 이 나라 현실에서도 사정은 그때와 별반 차이가 없다.
“이곳은 광야와 같아요. 쉼도, 집도, 행복도, 생명도 거의 메말라 있는 광야지. 그런데 재미있게도 여기 있는 사람들도 사랑과 꿈, 행복을 추구하죠. 당연하죠. 사람의 기본적 욕구니까요. 그런데 현실은 너무 다른 거죠. 괴리감이 너무 커요. 깨어나서 보면 환상이에요. 좌절, 체념, 절망해요. 그래서 술에 취해요. 아니면 퇴행을 거듭하죠. 자신이 설정한 편안한 상태로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중독 성향에 빠지는 거예요. 경마 중독, 도박 중독, 술 중독에 빠지는 거죠. 말 그대로 어두움입니다.” 
이곳에 필요한 것은 생명과 빛이다. 이들에게 약물 치료, 심리 치료, 상담 치료, 경제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광야교회는 그것이 온전한 해답이 아님을 알았다. 현재 약 100여 명이 광야교회 홈리스복지센터에서 산다. 처음에 10년은 아무런 열매도 없었다. 그만 두고 싶었던 순간이 수없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광야교회는 다음의 다섯 가지 원칙을 굳게 붙잡았다. 첫째, ‘주다 망하자.’ 손해 보며 주시는 하나님처럼 살자는 것이다. 둘째, ‘다 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예수님이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며 복음을 전하셨던 것처럼 살자는 것이다. 셋째로, ‘사랑은 미워도 다시 한 번.’ 사랑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넷째로, ‘버티기를 잘하자.’ 사람 기준으로 열매가 없어 보여도 절대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다섯째로, ‘기도가 능력이다.’ 이 모든 것은 기도로만 가능하다는 다짐이자 고백이다. 여느 교회에서 볼 수 있는 미사여구를 붙여 상투적 표현으로 치장한 실천 사항이 아니었다. 20년이 넘게 이곳 쪽방촌 사람들, 노숙인들, 포주들과 뒹굴며 삶으로 써낸 원칙이었다.




더 넓히고, 더 깊이, 끝까지 하다
광야교회는 현재 100여 명의 홈리스가 사는 곳에 함께 위치하고 있다. 그들의 먹고 자고 입고 사는 것을 다 보살피고 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이 일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꾸준히 제공하고 있다. 게다가 매일 세 끼 무료 급식도 교회 앞에서 하고 있다. 화요일 자정엔 영등포역 3층에서 전도 집회를 한다. 합동 결혼식을 하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장례식을 치른다. 이ㆍ미용 봉사도 빠지지 않는다. 작년엔 서울시, 해당 구청들과 함께 쪽방촌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했다. 무척 더웠던 올여름엔 무더위 쉼터를 운영했다. 이 일 모두 교회 성도들이 한다. 성도들은 대부분 이곳 쪽방촌 사람이고, 노숙자 출신이다. 
그들은 보이는 열매가 아닌 한 사람에게 집중하여 한 가족이 사람을 키우듯 돌보는 것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한다. 또한 앞으로 10명 정도를 수용해서 약 10년 간 꾸준히 치료할 수 있는 치료원을 충북 음성에 준비 중이다. 이곳 쪽방촌 사람으로 악단을 구성하여 다른 쪽방촌, 어려운 곳에 가서 공연도 계획했다. 이들이 직접 신명나게 춤추고 노래하고 놀며 자신이 살아온 삶을 전하는 것을 통해 생명을 깨우고 싶은 것이다.
“이 지역, 이 어둠의 지역을 복음으로 정복했습니다. 자랑으로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이 광야교회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인정하지요. 우리가 받은 사명인 게야. 사실 교회가 받은 사명이 우리와 같을 거예요. 사실 이 시대 대다수 사람의 마음은 광야와 같으니까 말이지.”



주변을 잘 보면 실제로 우리의 친구들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가 교회 건물과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물려주기 위해 안달하는 중에도 이들은 예수님의 모습으로 우리 주변을 거닐고 있다.


광야교회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423-37
02)2636-3373
kwangya.org



인·터·뷰 광야교회 임명희 목사

생명과 복음을 자유로이 전하는…


“제 콧털이 말이죠. 이게 예사 콧털이 아닙니다. 안중근 의사, 슈바이처 박사, 김좌진 장군 등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이 콧수염 길렀죠. 절개와 기상을 표현하는 콧털입니다. 목회자로서 너무 정형적인 모습으로 사역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는 잘 생겼다. 그리고 목소리도 호탕하다. 게다가 눈빛이 세다. 
그와 함께 사역하는 신권인 목사는 이렇게 그를 소개한다. “이런 목사 처음이죠? 임 목사의 목회를 일반 목회에 적용하면 금방 쫓겨납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지 못하는 아주 다양한 사역을 폭넓게 해요. 그런데도 목회 본질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않죠. 그게 없으면 목사라고 하기 힘들지. 그게 임 목사의 장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인터뷰 도중 노래를 불러 젖혔다. 그리고는 ‘노숙자 아리랑’이라는 것을 작사했다고 보여주며 한 자락 또 했다. 그는 군대에서 처음 교회에 나갔다. 교회에 발은 디뎠으니 양심상 말씀을 읽자 하고는 마태복음을 읽었다. 그리고 1장을 넘기지 못하고 매번 졸았던 그였다. 그리고는 스물일곱에 생명과 빛이신 예수, 만족과 참 행복으로 이끄시는 그 예수를 만났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다 죽자라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책은 <상록수>고, 최영신을 참 좋아합니다. 목표를 잃고 꿈이 없는 이들이 지금도 많습니다. 현대인들의 내면은 노숙자와 같죠. 모양만 달라요.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꿈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신은 한강을 건너는 대교를 물 속에서 떠받치고 있는 기둥의 일부분이어도 좋다고 한다. 드러나지 않아도, 세상적 기준의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 오직 복음으로만 살면 된다며 웃는다.
“제가요, 목사로 불리기보다 학생으로 불리고 싶어요. 끊임없이 공부하는 학생이고 싶어요. 사실 젊었을 때는 공부를 많이 못했어요. 환경도 그랬고요. 그런데 요즘은 전방위적으로 책을 읽고, 여러가지 철학, 인문학, 역사 등에도 관심을 많이 두며 읽고 있어요. 그런데 읽을 수록 모르겠더라고!”
살아있는 동안 순교자 정신으로 하루 하루를 산다는 임명희 목사는 앞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생명을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를 만나니 그 무언가 뜨거운 것이 마음에서 쑥하고 일어났다. 그의 사역과 목회가 더 왕성해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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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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