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선교리포트] 두 손 맞잡고 하나를 이루다│남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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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발간하는 잡지 <오늘> 2013년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오늘> 블로그 http://onul1.tistory.com/1531 에서도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두 손 맞잡고 하나를 이루다│남촌교회




6월. 더 깊이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게 하는 한달.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한반도에 언제쯤 평화가 찾아오려는 지 알 수없지만 그 일에 삶을 내려놓는 이름 모를 작은이들이 있어 감사하다. 얼마 전 라오스에서 9명의 북한 청소년이 한국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다가 북으로 강제 송환된 일이 있었다. 뉴스를 통해 전해오던 그들의 소식에 국민 모두 안타까워했다. 동시에그 일에 선교사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탈북자와 함께 고난받기를 자처한 선교사의 이야기. 남촌교회는 그렇게 시작했다. 글 김승환 · 사진 남촌교회



탈북자를 만나다


남촌교회가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 옆에 작은 쉼터를 연 지도 10년이 지났다. 탈북자를 위한 예배 처소이며 그들의 삶을 돌보
는 고향집과도 같은 곳. 교회를 담임하는 신정국 목사는 늦은 나이에 하나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영광이라 고백한다. “북한을 상대로 선교하는 일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하던 사업이 힘들어지고 남은 인생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3일간 열린 부흥집회에서 그만 선교사로 서원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안수기도를 받았는데 탈북자들을 위한 사역으로 인도하시더라고요.”
2002년, 신정국 목사 가정은 영락교회가 2년간 진행한 북한선교대학을 수료하고 1기생으로 캄보디아로 파송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두 달 동안 선교사 사역에 동참하여 탈북자를 돕고 국내로 인솔하는 일을 맡았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국내에 있는 탈북자를 위한 사역에 헌신했다. 탈북자를 잘 보살펴서 한국으로 데리고 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신 목사는 국내로 들어온 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까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그물로 몰아주신 것 같아요. 큰 교회에서 새터민 사역을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정서와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작은 공동체, 가정이 필요함을 알았어요. 그래서 저희 집을 개방했습니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장으로 삼는 거죠.” 
남촌교회는 신 목사의 가정집에서 시작했다. ‘거룩한씨그루터기선교회’로 문을 열어 7년간 사역을 이어오다가 2010년에 남촌교회를 개척했다. 정부에서 주는 집을 기다리면서 몇 개월간 함께 머물고 한국 문화와 상황에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도왔다. 탈북자 선교가 힘든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배신감이다. 열심히 돕고 섬겼지만 어느 순간 뒤돌아서버리는 모습에 눈물을 훔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참으로 외롭고 힘든 길이다.


북한을 품고 고민하며 기도하다
북한에 대해 많은 교회가 관심을 두고 있지만 여전히 개교회 중심이다. 혹여나 교회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사역인 경우도 있고, 다른 기관과 단체와 연합하지 못하고 독단적인 경우도 더러 있다. 
“북한 사역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요. 첫째는 연합회 차원에서 주도적인 그룹이 부재합니다. 총회 북한 선교부에서 10년 전에 했던 의제나 지금 나오는 고민이 똑같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파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참 안타깝습니다. 둘째는 각 교회에서 하는 사역인데 1세대에서 해오던 사역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동남아나 아프리카 선교에 집중하고 있어요.” 
신 목사는 북한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교회가 지니고 있던 경험에만 의존하지 말고 시대 흐름에 걸맞게 변화를 모색하고 다양한 상황에 대한 인식을 북한 선교 사역에 투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탈북자가 통일 이후를 준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복음의 역군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손으로 그들의 교회를’를 세우도록 하는 것이 남촌교회의 비전이다. 보이는 교회를 세우기보다 보이지 않는 교회, 사람을 훈련하고 세워가며 스스로 복음의 빚을 북녘에 갚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남촌교회의 사명이다. ‘내가 가겠다. 우리가 해야 한다’ 식의 선교 자세는 힘들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그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세를 당부했다. “탈북자에게 먼저 복음을 제시하기 전에 형제애적 사랑과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품고 있는 은근한 우월감을 버려야 해요. 북을 버리고 남을 선택한 자책감에 살아가는 마음의 무거운 짐을 벗겨줘야 합니다. 그들의 인간적인 존엄성과 자존심만큼은 꼭 지켜줘야 해요.” 그의 말은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오늘을 사는 그들의 모습


기독교만 탈북자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불교와 가톨릭 할 것 없이 최근에는 거의 대부분
의 종교가 뛰어들고 있다. 하나원에도 대순진리회가 들어와 있는 실정이다. 동북 3성은 그야말로 종교 전쟁터다. 탈북자를 상대로 하여 포교하는 것은 타종교도 열을 올리는 상황이다. 
하지만 더 걱정인 것은 이단의 움직임이다. 태국에서 만난 한 탈북자는 여호와의증인 교회에 갔었다고 말한다. 그 뿐 아니라 만민중앙교회, 신천지 등도 공격적인 포교 활동을 벌이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기독교가 탈북자 선교를 주도권을 쥐고 제대로 끌고가지 못한다면 통일 이후의 북한을 향한 교회의 사역은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한국 교회의 모습이다. 지금껏 몇몇 대형 교회는 탈북자에게 돈을 나눠주어 모았다. 탈북자가 모이는 수에 따라 교회가 이만큼 북한에 대한 관심을 두고 있다는 식의 허울뿐인 자랑을 아주 쉽게 했다. 그들을 가슴으로 품어 복음을 전하고, 진정한 한 사람의 생명으로 다룬 것이 아니라 교회가 가지고 있는 그 물질로 매수한 것이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남촌교회 같은 작은 교회가 탈북자를 상대로 목회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 교회는 우선 탈북자라는 호칭부터 없앴어요. 구별짓지 않고 평등하게 합니다. 예배와 성경공부도 똑같이 합니다. 그리고 드러내놓고 하지 않습니다. 드러내놓고 하는 선교는 중국과 북한 당국에 노출되어 있어요. 하지만 이름없이 선교하는 분들과 연대합니다.” 


현재 남한에 정착한 새터민들이 2만 3천 명이다. 일부는 다른 나라로 떠나기도 한다. 신 목사는 그들을 잘 훈련 시
키면 다이아몬드이지만 잘못하면 다이나마이트일 수 있다고 분명히 경고한다. “정치적 이념 안에서 한국 교회가 휘둘리고 있는 것을 보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마음으로 임해야 합니다. 물론 어디에 어떻게,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는 치밀하고 정확하게 검토하고 살펴야죠. 그렇지만 인도적이고, 생명을 살리는 마음으로 접급해야죠. 예수님처럼 하면 돼요. 이념과 지역, 인종을 뛰어 넘어야죠. 왜 그 안에 갇히고 마는지… 예수님의 사랑! 그게 정답이예요.”

막연한 기도와 달리 좀 더 구체적 기도의 제목을 나눠 줄 것을 부탁하자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북한을 위해 기도 많이 하는데요. 제가 탈북자를 상대로 목회를 해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나라 안에 있는 탈북자가 복음의 선교사가 되도록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그들 한 사람이 1천 개 교회가 할 수 있는 사역보다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들과 한 가족을 이루어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려는 작은 관심에서 북녘땅에 대한 복음의 소망을 피워볼 수 있을 것이다.



남촌교회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723-13
070-4085-0391



인·터·뷰 남촌교회 신정국 목사

끝까지 주님 하신 대로


“저는 대한민국 꼴지 목삽니다.” 

뒤늦게 목회자로 부름을 받고 탈북자의 아버지 노릇을 자처하고 있는 신정국 목사는 자신을 ‘대한민국 꼴지 목사’라고 소개한다. 남들은 은퇴를 생각하고 목회를 슬슬 정리할 시점에 목사 안수를 받았으니 그렇게 말한 만도 하다. 하지만 그를 대하는 주변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신학교에 들어설 때도 ‘그 나이에 목회자가 돼서 뭐하려 하느냐? 이력을 하나 더 추가하려 하느냐?’등 그를 반겨주는 이들은 없었다. 젊은 친구들이 하는 공부를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래저래 힘든 길을 선택한 그였지만 신 목사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의 손에 붙들려서 단 하루만이라도 사역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영광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누구에게는 흔해 보이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일이 많았다. 하던 사업이 어렵자 섬기던 교회의 담당 목사님이 찾아와 폐업예배를 드려줬을 정도다. 새로운 무엇을 시작하기보다 남은 인생 하나님께 쓰임받고자 하는 큰 소망을 품은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탈북자를 만나는 그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한번은 그들을 인솔하고 비행기를 타려는데 공항에서 북한 대사관 직원들을 만났던 일촉즉발의 순간을 전해주기도 했다. 뜻하지 않은 탈북자 사역이었지만 그 시간과 만남들이 계기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지나온 10년이란 시간. 그에게는 눈물, 웃음이 교차했던 시간이었다.
“사랑도 무한히 필요하지만, 냉정할 때는 아주 칼 같이 냉정한 모습도 필요합니다.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해도 모자를 만큼 참 많은 사연, 이야기가 있네요. 참 부족한 저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거죠. 죽을 때까지 이 사역 하고 싶어요. 그들의 형제이고 싶고요.” 
6월이라도 이렇게 찾아주는 매체가 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라는 신 목사는 한국 교회가 지속적이고 꾸준한 관심과 열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언젠가 하나님이 하시는 그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믿습니다. 우리 힘으로 통일에 이르기는 이미 너무 어려운 지경에 있는 것 같아요. 그날을 꿈꾸며 섬기는 거죠.”
신 목사의 간절한 외침에 한국 교회의 북한 선교에 큰 변화가 있길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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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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