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교회와문화]신학적 논쟁이 놓치기 쉬운 4가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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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논쟁이 놓치기 쉬운 4가지 문제

 

신앙에 있어서 신학적 토론과 논쟁은 필요합니다. 자신의 믿음과 신념이 건강한 것인지 다른 사람들과의 깊은 토론과 나눔으로 점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유다서 3절을 보면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과 성도들을 세워나가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을 증거하고 변호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목회자와 교회 구성원들은 기독교 교리를 포함하여 교회의 평화와 순전함을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진리를 변호하기 위해서 지혜의 원칙들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최근 몇 년동안 성화의 교리에 관하여 계속되는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면, “칭의가 성화를 완성시키는 것인가?”와 반대로 “성화가 당신의 의로움을 세워나가는가?”입니다. 그리고 “성화가 성도의 삶에서 구원의 주관적 확신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입니다. 또한 “칭의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면 연합이 칭의를 이루는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질문들로 인해 진리를 변호하고 선명하게 해야할 이유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쟁들이 가져오는 몇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1. 부정적인 영향의 위험

 

여러 가지 질문들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거짓된 가르침이 다른 사람들을 오염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Scottish Divines에서 ‘말씀의 가르침’ 부분에서 하나님을 향한 공적 예배를 위해 교회에서 거짓 가르침에 대해 반박해야 할 책임이 목회자들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거짓된 가르침에 관해 말하는 위험성과 함께, 거짓 가르침을 반박해야 할 필요성을 동시에 지적하고 있습니다. 거짓 교리에 맞서는 것이 오래된 이단 논쟁을 다시 끌어들이거나 불필요한 모독적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거짓 가르침의 위험에 놓여 있을 때 목회자는 자신의 판단과 양심을 걸고 그것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거짓된 가르침은 친한 관계안에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믿었던 친구로부터 들었던 잘못된 가르침이 계속해서 그것을 그리고 상상하게 만듭니다. 신학적 논쟁이 진행될 때 그것에 반대할지라도 우리는 잘못된 가르침에 영향을 받을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분명하다면, 실제로 위험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훨씬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과 신념이 올바르게 서 있지 못한 이들은 공적인 신학 논쟁을 하고 난 뒤에 거짓 가르침에 빠지기에 교회의 훈련과 양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대다수의 성도들은 교리에 대해 적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또 잘못된 신념에 빠져 있기에 위험이 될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오래된 이단 논쟁을 소개했을 경우 오히려 복잡해질 수 있고, 진리로 가득차야 할 마음에 신학적 이론과 잘못된 정보들이 자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위조지폐를 분별하는 전에 진짜 지폐를 사용하고 익히듯이 성서가 말하는 진리의 미묘한 차이들을 분별할 수 있도록 본질적인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알고 있는 성경지식으로 누군가의 의견에 반대할 때 사람들은 불평과 비난하는 것이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교회에서 논쟁을 일으키는 말과 행동을 따르지 않음으로 거짓된 가르침을 따르는 누군가를 밀어낼 수 있습니다. 신학적 논쟁에 있어서 불평하는 영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가 이런 논쟁에 빠져들 때 온전한 신앙인들보다 신학적 논쟁꾼들로 가득 찰 수 있습니다.

 

2. 과잉 반응의 위험

 

부정적인 영향에 빠질 위험 외에도 과잉 반응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반대의 의견을 제시할 때 우리는 극단으로 나아가는데 이 역시 또 다른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James Henley Thornwell은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가 가지는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한쪽으로 치우치는 입장을 경고합니다. 복음은 두 강도 사이에서 못박혀 있는 십자가처럼,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게 합니다. 율법주의는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는 그분의 구원의 영광을 추구하지만, 반-율법주의는 우리안에서 일하시는 그분의 영광을 향합니다.

 

우리는 오늘날 율법주의에 빠지는 것이 반-율법주의에 빠지는 것보다 훨씬 드문일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싱클레어 퍼거슨은 율법주의가 반-율법주의로 치유되거나, 반-율법주의가 율법주의로 치료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중요한 것은 너무 쉽게 올바른 것이라 판단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우리는 교리적인 반-율법주의와 실천적인 반-율법주의, 교리적인 율법주의와 실천적인 율법주의를 구별해야 합니다. 앎과 실천이 일치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우리는 교리와 실천에서 하나의 특징에 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앎과 실천의 일치에 있어서 우리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C.S 루이스는 The World's Last Night에서 신학적 논쟁의 불균형의 강조와 해석으로 인해 과잉 반응하는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생각을 하게 한다. 한쪽으로 치우신 생각과 행동들은 종교에 대해서 뿐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존재하며, 반대에 대해 증오와 불신으로 인해 더욱 올바르게 반응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3. 바보가 될 위험

 

논쟁의 반대편에 설 때 우리는 한쪽으로 치우칠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청교도인 Robert Traill은 개인의 경험과 배경, 성향에 따라 논쟁의 한쪽에 대해 부드럽게 존재하는 위험에 대해 관찰했습니다. 교리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은 한쪽 편에 서 있는 극단에 대해 친절하게 반응합니다. 반대편의 잘못에 대해 부드럽게 대처하면서 자신을 두 극단 사이에 위치시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잘못된 가르침과 교리에 대해 동정적인 입장을 취하게 될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논쟁을 피하고자, 또는 개인적인 성향과 경험으로 인해, 중심에 자리하려는 것은 좋은 태도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중요한 사항에 대해 건전하면서도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수 있습니

다.

 

인간적인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논쟁의 중심에서 균형있는 시각가 태도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심에 서고 싶다면,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 바로 우리가 따라야 할 연합의 미덕이고, 그를 통해서만이 칭의와 성화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죄악된 뷸균형을 인정하고 십자가로 나아가야 합니다.

 

4. 자기 의에 빠질 위험

 

반대자의 의견에 대항하는 일은 자칫 개인의 의로움과 교만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John Newton은 진리를 변호하는 일조차도 자기 의에 빠질 위험이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자신이 믿고 따르는 신념이 곧 자신이라고 착각하면서 자신의 지식이 스스로를 완전하게 만든다는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지식의 칭의와 존재의 칭의로 인해 스스로를 완전한 사람으로 오해하게 합니다.

 

이러한 독선적인 태도는 교리와 사역을 전복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마음과 함께 지식적으로 정통교리의 개념을 수호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께 신실한 사람이라면 신학적인 논쟁에 있어서도 무엇을 위해서 또 어떻게 해야할지를 심사숙고 해야 합니다. 진리를 변호하는 일은 타락한 세상에서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오류를 피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늘 거짓된 것임을 기억하면서 성서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반추하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정직하게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져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만 다른 사람들이 거짓된 가르침에 빠지는 것을 볼 수 있고, 거기에 과잉반응하거나, 동정적으로 그냥 넘어가는 위험성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http://www.churchleaders.com/pastors/pastor-articles/175071-nicholas-t-batzig-critical-dangers-of-jumping-on-theological-controversies.html?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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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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