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에 대한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다양한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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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에 대한 신학적, 신앙적 성찰


참 많이 슬프다.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아물기 마련인데 가슴 한켠에 무엇인가 깊숙이 파고들어와 내 몸의 일부가 된 듯. 슬픔이 온 몸을 감싸버린 채 하루를 산다. 애통하는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5:4). 모두가 애통하고 애통했지만 위로를 던져주는 이는 많지 않다. 어쩌면 사치로 여겨질지 모른다. 그래도 주님의 위로와 평안의 말씀을 갈망한다. 이름 없이 살아가던 수많은 애통하는 무리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말씀하시던 그분의 따스함이 그립니다. 이 기간 부활의 주님을 외쳐야하는 목회자들에게도 상당한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사고에 대한 안타까움, 성서적 신학적 비판을 통하여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자는 말씀은 슬픔 중에 있는 이들을 위로하는 동시에 신앙의 자세를 견지하게 한다. 세월호의 사고로 슬픔에 잠겨 있는 가족들과 모든 국민들을 향한 교회의 성찰과 위로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돈의 우상과 구원파적 복음을 버려야

손봉호 교수(고신대 명예교수)JTBC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고의 원인을 돈이라 말했다. ‘돈이 우상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이러한 참사는 되풀이될 수 있으며, 이러한 배경에는 초월적 신에 대한 개념이 없고 이 땅에서 성공과 성취를 누리려는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한다. 특별히 문화와 가치관을 새롭게 해야 할 종교계가 그 기능을 상실했으며 오히려 돈에 대한 욕망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경제 성장이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여겨지면서 국민들도 잘 살게 해주는 정부를 좋은 정부로 생각하고 있는 행태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현세 구복적인 신앙은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구원관에 기초한 것이다. 김세윤 교수는 지난 1216일 서울영동교회에서 '칭의와 성화'를 주제로 강연하면서 한국교회의 위기를 '도덕적 타락과 신학적 부패'로 규정하고 사제주의를 비롯한 왜곡된 복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싸구려로 전락해 버리고, 구원파를 이단이라고 하면서도 사실상 구원파적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칭의를 구원의 전 과정으로, 성화도 구원의 새로운 단계가 아니라 전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 말했다. 그렇기에 윤리적 행위가 필요하며, 자아 성찰적 신앙의 전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세월호 배후에 자리하고 있는 구원파의 잘못된 교리를 지적해야 하지만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는 잘못된 신앙과 구원관도 함께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옳지 않습니다를 외치며 견제의 역할을 해야

박동현 목사(전 장신대 교수)는 최근 한 교회의 주일 설교에서 진실을 가리고 권력에 유리하도록 거짓 보도를 일삼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외쳐야 한다고 말한다. 다윗의 잘못을 지적하는 나단 선지자의 외침처럼 옳지 않습니다를 말하는데서부터 이 나라의 희망이 싹트기 시작한다고 외쳤다. 더 나아가 주님께서 옳지 않다고 외치다가 괴로움과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했지만 다시 사심으로 인류 구원의 위업을 이루신 것처럼, 부활의 주임이 우리에게 옳지 않습니다를 외칠 수 있는 용기와 슬기를 주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박동현 목사의 지적처럼 교회는 정부, 가정, 문화에 대하여 책임적 목소리를 내야한다. 국가 권력과 기득권에 기대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모습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적극적 견제의 역할을 해야 한다. 교회와 사회는 하나님 나라의 두 축을 담당한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아래 두 영역은 서로 견제하고 비판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우리는 삶의 각 영역은 하나님의 권한을 부여받아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행동한다. 하나님이 주신 위임의 과제에 응답하면서 그리스도인은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며, 그리스도를 위한 창조적 사역에 동참한다. 하지만 동시에 상호 관계적인 위치에서 서로 공존과 견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임과 역할 수행에 있어서 잘못된 모습을 보일 경우 비판과 함께 저항적 행동을 하는 것이다.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꼭 반대의 입장에 서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공존과 협력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잘못된 길을 걸어갈 때 강력한 저지 운동을 시도해야 한다. 독일교회의 예를 보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났을 때 독일 내의 원전 감축 정책에 목소리를 내는 동시에 사회적 공론장 역할을 감당했다. 좌우의 이념 논리를 떠나 생명을 지향적인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향한 요청이기도 한데, 성숙한 그리스도인과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의 건설적 참여를 위한 연대의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대의 아픔 속에서 주님만이 소망임을 기억하십시오.

김지철목사(소망교회)는 부활절 메시지에서 시대를 향한 징조로 회개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한국교회가 세상을 향해 죽지 않고, 영적 지도자들이 먼저 죽지 않으니 혼란과 고통이 따르는 것이라 했다. 또한 하나님은 고통의 자리에 함께 계시며 생명의 역사는 밑바닥에서부터 낮은 곳으로부터 다시 시작되고, 죽음에 제일 가까운 신음의 자리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아픔 속에서 주님만이 소망이며 부활의 기쁨과 위로, 생명을 주신다고 전했다.

 

김지철 목사의 메시지와 더불어 생각해보면 세월호 참사는 그들만의 일이 아니다. 본회퍼는 대리의 개념에서 그리스도가 인간을 대리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설명한다. 그분의 죽음안에 우리의 죽음이 있고, 그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도 부활을 소망하게 된다. 대리의 개념은 인간 공동체 안에서도 적용된다. 한 개인이 타자와 공동체, 집단을 대표하기도 한다. 공동체 전체의 선택과 의지가 한 개인을 통해 표출되기도 하고 한 개인의 선택에 공동체가 따라가기도 한다. 이러한 대리의 개념으로 보자면 수많은 이들의 죽음은 곧 의 죽음이다. 나를 대신한 죽음이다. 물론 그리스도의 죽음처럼 대속의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우리의 죽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죽음이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나를 대신하여 죽은 것인데, 어찌 통곡스럽지 않단 말인가? 어찌 분노하지 않는단 말인가? 고난의 한복판에 계신 주님, 사고의 현장에 함께 하신 주님을 생각해본다면 우리의 죽음이고 우리의 아픔일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아무 일도 안 하신 걸까

김영봉목사(와싱톤 한인교회)는 칼럼에서 슬픔이 정도 이상을 넘어서면 할 말이 없는 유구무언이 된다며 이러한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지 묻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이 사고 현장에 함께 계셨고, 그곳에서 함께 우셨고 아파하셨을 것이라고 전한다. 왜 하나님이 이러한 사고를 막지 않았을까에 대한 질문에, 이 사고는 수많은 사람들의 크고 작은 탐욕과 그릇된 선택이 쌓이고 쌓여서 발생한 것이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고치고 회복시키는 것이 사고를 막는 방법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고 현장 뿐 아니라 구조의 과정, 애도의 현장에도 함께 하실 것이라고 했다.

김영봉 목사의 말처럼 하나님은 모든 과정에 함께 하신다. 하나님의 부재처럼 느껴지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이 현실에서 더 진실하게, 신실하게 살아내야 한다. 죄악된 세상 한복판에 들어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를 사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죄악된 사회와 현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 살아내야 한다. 복음으로 살아내야 한다.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며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 모든 부조리한 구조와 체제 앞에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입술과 마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신 구체적인 고난의 한 자리에 서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셨다. 모든 것을 다할 수 없더라도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그것을 하는 것이다. 소망없는 그곳에서 주님을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



세월호 사건과 악()에 대한 고민

류호준 교수는 세월호 사건과 악()’에서 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한 창조 세게의 샬롬이 붕괴되어 혼란스런 상태가 되었을 때 극성을 부리는 세력이라 말했다. 악에는 도덕적 악, 자연적 악, 구조적 악이 있는데 도덕적인 악은 죄를 근거로하며, 자연적 악은 사람의 통제 밖에 있는 것으로, 구조적 악은 불의한 사회구조 경제구조 정치구조가 만들어낸 악으로 구분했다. 세월호 참사는 선장과 승무원의 무책임한 행동 즉 극도의 이기주의와 생명경시 풍조를 가능케 한 도덕적 악과 관피아라 불리우는 돈에 기반한 정경 유착구조의 구조적 악들이 깊숙이 퍼져 있다고 보았다. 또한 교회가 개인적인 축복과 성공을 위해 하나님을 종교적 영역에서 길들이는 죄악을 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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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교수의 지적처럼 악은 인간의 죄와 타락의 결과이다. 만약 악의 근원을 하나님으로 돌린다면 인간은 죄의 책임에서 자유로워 질 것이고 모든 자연재해와 사건사고를 하나님의 책임으로 돌려야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어거스틴은 악을 선의 부재로 이해했는데 선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모든 곳에 편재하시기에 하나님의 부재 상황이 발생할 수 없지만 어거스틴은 악이 실재의 다른 어떤 한 측면으로 인간의 연약한 의지에도 악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고, 도덕적 조화의 차원에서 선을 위해 악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악의 발생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아니라고 정리한 것이다. 결국 세월호의 참사가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비도덕적 양심과 행위의 악함의 문제인데, 이 악함이 인간으로부터 온 것이지,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 인간의 책임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인간의 선택적 행동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전적인 주권을 가지고 세상을 창조하고 섭리하시지만 창조 후, 인간과 함께, 인간을 위하여, 인간을 통하여 세상을 이끌어오셨다. 세상을 관리하도록 선한 청지기적 사명을 부여받은 우리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타락의 길을 걷는다. 선한 의지를 버리고 악한 의지, 곧 탐욕, 교만, 이기심, 무절제, 방탕, 사기 등과 같은 악의 현실을 받아들인다. 세월호는 인간의 죄악상을 결정적으로 드러내는 증거이며 경영진과 관리자의 탐욕과 함께 이를 관리해야하는 당국자의 도덕적 책임의 소홀, 더 나아가 사회전반에 걸친 악함의 요소들의 결합체이다.

 


김승환 연구실장(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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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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