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소통/영화] (리뷰) 가봤자 벽인 세상, <한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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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봤자 벽인 세상

<한공주>

(이수진, 드라마, 청소년관람불가, 2014)

 

최성수 박사 (신학자, 영화평론가)




"공주 니는 꿈이 뭐야?"

“풀장 완주.”

“엥? 25미터?”

“딱 25미터. 고만큼만 가보고 싶어. 진짜로.”

“공주야. 가봤자… 벽이야, 벽.






세월호 침몰의 희생자들은 몇 명의 어른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다. 어른들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아이들이 희생당한 것이다. 세월호의 침몰을 한국호의 침몰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부실이 낳은 사건이고,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 실제로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말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대형 참사는 기회가 되면 언제 어디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늘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역시 대한민국의 기성세대임을 가끔은 잊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 무엇을 서둘러 말하기 전에 사실 어른으로 이 땅에 살아있다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느껴야 한다. 유럽의 68세대가 보여주었듯이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과 반발이 여진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두려워진다.


우연한 일치일까? 세월호의 침몰을 선취한 듯한 영화 <한공주>가 사고 하루 뒤에 개봉되었다. 비록 일반 상영관에선 하루 뒤였지만, 이미 18회 부산영화제에서 소개된 후에 CGV 무비꼴라쥬상과 시민평론가상을 수상하고 각종 외국 영화제에서 수상하여 호평을 받은 영화다. 세월호 사건을 선취했다는 인상을 받은 까닭은 바로 대한민국 어른들의 철면피적인 행위로 무자비하게 희생당하는 어린 여중학생의 희생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에서 물의 이미지가 강력하게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한공주>2004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에 착안하여 만들어진 영화다. 피해자의 인권은 유린당하고, 오히려 가해자를 두둔하는 분위기로 때문에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된 바 있었다. 경찰은 물론이고 여론조차도 가해자 편에 섰던 당시 사건을 오늘날 다시금 상기하게 만든 까닭은 무엇일까? 사실 제2의 도가니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감상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감독은 정말 그것을 기대한 것일까? 그러나 필자는 다른 관점에서 영화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한 감독 역시 사건의 재현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분노가 무시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도가니>가 주로 사건과 법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한공주>는 사건 이후 피해자의 피신 생활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시 말해서 사건에 대한 진위공방이나 사건의 내용을 극영화의 형태로 재현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은 것이다. 감독은 오히려 성폭력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우리 사회, 특히 기성세대의 부조리한 모습을 폭로하려는 의도를 강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물론 수시로 나타나는 플래시백을 통해 사건을 재현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실제 사건을 모른 채 영화를 본 사람들은 분명 사건의 진상을 궁금해 할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드러내지 않고 중반부부터 하나 둘씩 밝혀지는 과정을 통해 더욱 큰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서 뛰어난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다.



내용은 이렇다. 집단 성폭행 피해자인 공주(천우희 분)는 오히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피신생활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트라우마로 시달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 위해 애를 쓴다. 선생님의 어머니 집에 기거하면서 살게 된 공주(천우희 분)는 이미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 천부적인 음악적인 재능 탓에 친구들과의 생활도 익숙해지려는 때에 나타난 가해자 부모들의 폭력적인 행위는 피해자인 공주로 하여금 또 다시 피신생활로 내몰게 된다. 그녀가 가는 곳은 안전한 곳일까? 아니면 가봤자 출구가 없는 벽인 것일까?



이창동 감독은 <>에서 성폭행의 가해자인 손자를 고발함으로써 그야말로 한 편의 시를 삶으로 살아낸 한 여성을 말하고 있다. 비록 투신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것은 아이의 잘못에 대한 어른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는 고백의 표현이었고, 또한 시를 삶으로 표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아름답게 여겨졌다.


이점과 비교해볼 때, 제 자식의 비행 때문에 받아야 하는 피해자의 고통보다 제 자식의 안정된 미래만을 원하는 비뚤어진 부모들의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며 어이없는 처신은 그야말로 코미디에 가깝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어른들의 탐욕이 빚어낸 세월호 침몰 사건에서 재현된 것이다.


아이들을 수장시킨 장본인인 선장과 선원들은 배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은 채, 자기들 목숨 구하기에 바빴고, 정부관리들은 제 이익을 챙기기에 분주했으며, 최고 통치자는 책임전가에 열을 내었다. 어디 그뿐인가 여론은 진실을 포기한 채, 조작된 정보를 화려하게 포장하여 보도하기에 급급했다. 사고와 희생자는 있었지만, 책임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가봤자 벽인 세상,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공주가 수영을 통해 해방감을 느끼는 것도 사방으로 에워쌓인 벽을 넘어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었기 때문은 아닐까? 세월호 속 아이들이 가봤자 벽인 세상을 벗어나 물속에서나마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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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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