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소통/영화] (리뷰) 어거스트:가족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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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유전자의 공유인가 함께 함인가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존 웰스, 드라마, 15세, 2014)

 

최성수 박사(신학자·영화평론가)

 

 


 

* 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미국에서 토니상과 풀리처상을 수상한 극작가 트레이시 레츠의 “어거스트: 오세이지 카운티”라는 제목의 희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오클라호마 오세이지 카운티에 거주하는 웨스턴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 가족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측면을 많이 볼 수 있다. 사실 한 가족의 이야기로 현대 미국 사회의 가족을 대변하여 말한다는 것은 섣부른 일이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는 현대 미국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족의 변화를 읽어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가족의 탄생”, “좋지 아니한가”, “바람난 가족”, 이 세 영화를 통해 표현된 것을 한 영화에서 모두 볼 수 있을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서로 다른 캐릭터의 인물들이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모였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족이 가족을 떠나 등지고 살게 된다면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될까? 아마도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서 맘에 품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질문이다.




웨스턴 부부는 넓은 들판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집에서 오랜 기간 살았다. 세 명의 딸 중에 한 명은 부모 근처에 머물고 있지만 함께 살고 있진 않고, 나머지 둘은 모두 떠나 실상 그들 곁에는 오직 구강암을 앓고 있는 아내를 돕기 위해 고용한 인디언 출신의 여성만이 있을 뿐이다. 어느 날 가장이 실종했다는 소식을 듣고 또 곧이어 자살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되자 장례식을 위해 가족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현대 사회에서 모든 가족이 한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가장의 실종과 죽음은 다분히 기획적인 장치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 모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공간 안에 담겨 있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가 어떠할 것인가는 시기적으로 푹푹 찌는 시기인 8월과 오세이지 카운티의 넓은 들판이 갖는 황량함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영화의 주요 장면은 오랜만에 모인 가족이 장례식을 마치고 둘러앉은 식탁 자리이다. 고인의 장례를 마친 사람들에게서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연거푸 일어나는데, 웃음을 자아내는 식사기도, 그리고 이어지는 바이올렛의 독설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브레이크 없는 트럭이 가파른 길을 질주하는 것 같다.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평생을 살면서도 결코 떠나지 못한 채 노인이 되어 버린, 그러나 자녀들마저 모두 떠나버리고 홀로 남아 지독한 외로움을 견뎌내야 했던 바이올렛은 구강암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 진통제를 복용하는데 거의 중독 수준이다. 큰 딸은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맘껏 펼치기 위해 보다 나은 세계를 찾아 가족을 떠났지만 현재는 어린 딸 같은 여자와 외도한 남편과 별거 중이고, 어디로 튈지 모를 정도로 격정의 사춘기 시절을 보내는 14살 딸과 함께 살고 있다. 큰 딸 역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기는 엄마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아버지의 자살을 알고 있었음에도 방치하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고 큰소리치는 엄마를 보며 딸은 분노와 함께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해 결국 엄마 곁을 떠난다.

 

 

 

 

둘째는 맏딸 역할을 감당하며 근처에 머물고 있으나 이모의 아들과 위험한 사랑에 빠져 있다.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포기하지 않자 맏딸은 과거 아버지와 이모 사이에 있었던 불륜 관계를 폭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둘째가 가족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막내는 사랑을 찾아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드디어 적합한 남자를 만났다고 기뻐한다. 그러나 약혼자가 조카를 상대로 못된 짓을 하려다 발각되었을 때, 더 이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그녀는 약혼자를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가족을 떠나는 길을 선택한다. 여기에 바이올렛의 여동생은 남편과 함께 왔지만, 아들을 무시하는 그녀의 태도로 인해 둘 사이의 관계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처음부터 평범하게 시작하지 않았지만, 마지막까지도 평범한 가족에게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들의 연속은 포스터 카피 문구대로 그야말로 ‘고품격 막장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고품격이라 함은 그저 스토리만 그렇고 그런 것이 아니라 뛰어난 연기력으로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흩어진 가족들이 다시 모였다가 다시 돌아서는 가족을 보여주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여운처럼 남겨 놓은 마지막 장면은 변화된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데, 이것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말하려 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바이올렛 곁에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남편이 그녀를 위해 고용했지만, 그녀가 그토록 싫어했던 인디언 여성이었다. 감독은 그녀 곁에 기대는 바이올렛의 모습으로 영화를 끝내고 있는데, 가족이란 것이 유전자를 공유했다는 사실에 있지 않고 함께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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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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