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소통/영화]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지도자 <역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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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지도자

<역린>(이재규, 역사드라마, 15, 2014)

 


최성수(신학자, 영화평론가)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후에 장헌세자)가 죽고, 그의 손자 정조가 즉위한 지 1년여 뒤인 1777728일 노론 세력이 주도가 되어 정조를 암살하려는 계획이 실행된다. ‘정유역변이다. ‘역린이란 제목은 왕의 분노를 말하지만, 영화가 풍기는 분위기는 오히려 고요한 게 역설적이다. 분노를 체력 단련과 학문으로 승화시키는 장면은 차분하고, 연약한 왕권에 비해 정조를 연기한 배우(현빈 분)가 주는 아우라는 강력하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였던 정유역변을 다시금 영화로 만들면서 감독이 얼마나 큰 부담감을 가졌을 것인지를 충분히 느껴볼 수 있다. 새로운 주제나 아니면 색다른 연출을 고민했을 것이다. 혹시 이런 부담감을 감독은 무게감 있는 배우들을 등장시킴으로써 감당하려고 했던 것일까? 조연급 배우들의 출현은 오히려 내용에 대한 집중을 방해하는 면이 없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잘 알려진 소재에다 분명한 주제와 메시지는 관객들로 하여금 큰 고민 없이 감상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다수 주연급 배우들의 출연과 영화 속 다양한 캐릭터는 스토리텔링을 다소 산만하게 만든 이유가 되었다.

정조는 조선시대 역사에서 개혁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불행했던 개인사와 불안정한 정국에서 이뤄진 개혁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인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높이 평가 받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 착안하여 감독은 다른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개혁의 단초에 집중했다. 다시 말해서 정조를 암살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개혁 의지를 꺾으려 했던 세력을 어떤 자세로 극복하고 또 개혁에 임했는가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영화가 정유역변이 일어난 하루의 시간에 집중한 것은 영화의 긴장감을 북돋기 위해 연출된 것이었지만, 급박한 상황을 표현하려는 의도에 맞지 않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물론이고 자신을 암살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정조의 태도를 보여주는 데에는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감독은 크게 두 개의 방향에서 보여주었다. 첫째는 원수들까지도 품을 수 있는 포용능력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깊은 배려, 그리고 둘째는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침착함이다.

무엇보다 그의 곁에 늘 머무는 내시인 상책(김재영 분)에 대한 깊은 배려는, 살수를 위해 어려서부터 선택되어 훈련을 받았고 정조를 암살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상책으로 하여금 정조에게 돌아서도록 했을 정도였다. 정조가 주의 사람에 대해 어떤 태도로 대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아동학대 문제 해결을 위해 왕이 직접 나서는 장면들은 왕이 얼마나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며 살았는지를 입증해 보이기 위한 장면이었다. 마찬가지로 연출을 통해 삽입된 반대 장면이라고 생각되는데, 자신을 입양한 아버지에 의해 모멸감을 느낀 월혜(정은채 분)가 노론의 암살 계획을 정조에게 알려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암살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드는데 직접적인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은 정조의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달랐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영화는 정유역변을 계기로 시대의 개혁을 실행해 나갔던 정조의 초기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다. 무엇보다 감독의 관심은 구체적인 개혁 과정이나 개혁과 관련해서 얽히는 복잡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태도와 개혁에 임하는 정조의 정성스런 자세였다.

정조의 개혁 의지와 열정을 감독은 중용23장을 통해 해석하였다. 중용은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것을 성이라 하며,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하고, 도를 마름질하는 것을 가르침()이라 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사람이 천성을 닦아 하늘의 뜻과 일치할 것을 추구하되, 지성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한 것이다. 이 가운데 중용23장은 지극한 정성에 이르는 차선의 방법을 제시한 것으로 치곡을 말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치곡(致曲)을 영화에서는 작은 일이라고 했으나, 원래는 인덕목 가운데 하나라도 다하면 그것을 통해 지성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정조가 개혁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로 삼은 것은 비록 작은 일이라도 정성을 다하는 삶이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결과적으로 개혁의 단초는 거시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작은 일이라고 해서 결코 무시하지 않는 태도임을 역설한 것이다. 이런 정조의 인생관 혹은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용23장의 내용은 그리스도인에게 그렇게 낯설지 않는데, 왜냐하면 작은 일에 충성하라는 것이 성경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작은 일에 충성한다고 해서 스스로 온전함에 이를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작은 일에 대한 정성어린 태도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영광의 자리에 앉는 약속이 주어져 있음을 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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