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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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과 거짓말의 상관관계

<플라이트>(로버트 저메키스, 드라마, 청소년관람불가, 2013)

 

<플라이트>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과 배우 덴젤 워싱턴을 아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볼 것 같은 영화다. 두 사람 모두 관객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이는 매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차례 수상했지만 덴젤 워싱턴은 이 영화로 제85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도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존 커틴스가 각본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겨주기도 했다. 게다가 내용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구성해놓아서 저메키스 감독의 연출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다양한 취향의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아 아쉽지만 좋은 영화다.

영화는 실제로 일어난 몇 개의 항공사고들을 조합해서 하나의 사건으로 재구성하였다. 실화에 근거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영화에 나타난 그대로의 사건은 아니다. 추락 직전에 비행기를 뒤집은 것이나 추락하는 상황에서 승객들을 구출하기 위해 헌신의 노력을 기울인 승무원들의 모습은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장면에 주목해서 만들어진 것이니 감독이 남다른 정성을 쏟았다는 말이고, 또한 그에 따라 재미를 기대해도 좋다는 말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저메키스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은 이런 항공기 사건 안에 한 남자의 이야기를 삽입해 넣은 것에서 나타났다. 재난 영화로 전개될 수 있었던 구조에서 휴먼드라마를 삽입함으로써 매우 인간이해에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영화가 되었다. 문제의 남자는 기장 휩 휘태커(덴젤 워싱턴 분). 그는 알코올 중독자다. 알코올 때문에 이혼했고, 아들에게조차 매몰차게 외면당해 집밖으로 쫓겨나는데, 이게 다 알코올 때문이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영웅 대접을 받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104명의 승객을 태우고 난기류를 간신히 뚫고 비행하던 비행기가 수천미터 상공에서 고장으로 추락의 위기에 처했을 때 능숙한 실력과 뛰어난 기지를 발휘해 불시착시킴으로써 몇 명의 희생자만 내고 모두를 살려낸 것이다. 그가 영웅으로 추대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여러 베테랑 파일럿에 의해 모의 비행을 실시해본 결과 비행기는 승객 전원이 사망할 정도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어떤 유능한 파일럿도 해낼 수 없었던 일을 휩이 해낸 것이다.

그러나 휩은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사고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드러난 갖가지 의문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휩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법정 구속에 해당할 정도 이상이었고 심지어 코카인까지 검출되었다. 이 때문에 휩은 자신을 영웅으로 추대하는 대중 앞에 나서지도 못한 채 숨어 지내야만 했다. 비행기 사고가 늘 그렇지만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까다로운 절차들을 거쳐야 한다. 이런 와중에 휩은 자신의 공은 인정해주지 않고 알콜 운전만을 문제 삼는 사람들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한동안 끊은 것 같았던 알콜에 다시금 손을 대기 시작한다.

음주상태에서 운전했다는 것이 밝혀질 경우 희생자들에 대한 책임 때문에 종신형을 선고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휩은 당시 비행기 운행과 관련해서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 부탁한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 거짓말을 하며 사람들을 설득했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위해 거짓말을 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친구들의 호의와 변호사의 능숙한 변론으로 위기를 모두 넘긴 휩은 마지막 관문인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하게 된다.

청문회에서 제기한 의문과 질문은 이것이다. 난기류 때문에 기체가 심히 흔들려 음료 서비스가 이뤄질 수 없었고 또 실제로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내에서 쓰레기 통에서 발견된 빈 술병을 비운 사람은 누구냐 하는 것이었다. 휩의 연인으로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던 그녀의 혈액에서 알콜이 검출되었기 때문에 모두가 그녀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참이었다. 마지막 한 번의 거짓말이 통하게 되면 모든 위기를 넘기게 되고 그는 영웅이 되어 대중들 앞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었다.

알콜 중독이 되기까지, 그리고 알콜 중독자로 살아가는 동안 거짓말은 그의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청문회에서, 그것도 이미 사망한 자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거짓말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 있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청문회에 앉아 있는 중에도 그는 이미 밤새 마신 술 때문에 취한 상태였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자기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돌릴 수 있었던 순간에 그는 영웅이 되기보다 진실을 택했다. 자신이 술을 마셨고 음주 운전을 했다고 시인한 것이다. 결국 감옥에 수감되고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재난 영화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비행기 사고를 재현하는 장면이 대단히 리얼해 재미가 있지만, 그 이외에도 한 인간이 알코올로 파멸해 가는 과정과 그 결국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환기하는 점은 각종 중독과 거짓말의 상관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떨쳐버릴 수 없는 질문은 이것이다. 영화는 왜 마지막 순간에 휩의 입을 통해 진실을 말하도록 했을까? 그것은 영화 전체, 아니 휩이라는 캐릭터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영화에서는 마약과 알코올 그리고 니코틴 중독이 나온다. 중독이라는 것이 의존적인 상태를 말하고,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중독자들에게 공통적인 부분은 자신의 행위를 감추기 위해, 다시 말해서 외부의 통제를 피하기 위해 주변인에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알코올이나 약물 그리고 니코틴에 대한 의존의 정도가 더욱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되고 거짓말은 도를 넘어서게 되며 결국엔 주변인들조차도 통제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중독에 이르기까지 거짓으로 일관된 삶은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인격의 파괴로 이어진다. 영화는 비록 휩의 알코올 의존에만 집중하고 있어도 거짓말하는 마약과 니코틴 중독자를 간간이 등장시킴으로써 이 사실을 강조한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거짓으로 일관된 삶을 살아온 휩이 결정적인 순간에 거짓을 피하고 진실을 선택한 것 때문에 휩의 인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휩의 진실은 결국 그의 삶에서 전환점이 되며 새로운 삶을 위한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진실을 선택한 것은 새로운 삶을 향한 그의 용기였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각종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건전하게 푸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면 술과 약물과 담배 혹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게임이나 섹스의 도움에 손을 뻗게 된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것들이어서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지 않은 채 계속해서 손을 뻗으려 한다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의존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건전한 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런 것들은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진다. 따라서 주변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며, 결국 본인을 위해 조언이나 충고를 주는 사람들, 특히 간섭하거나 만류하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변명하거나 거짓말을 하게 된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이나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하는 거짓말은 진실이 밝혀지면서 주변인을 실망시키게 되고,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중독으로 진행하는 과정은 거짓말의 도움으로 가속된다는 말이다. 저메키스 감독은 바로 이점을 부각시키면서 중독과 거짓의 상관관계를 드러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가 시사하는 내용 가운데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진실이 갖는 의미이다. 이것은 거짓과 상관있는 것이지만 또 다른 맥락에서 다뤄볼 수 있을 정도로 영화는 잘 짜여 있다.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삶의 위기와 전환점을 경험한다. 청문회 장면에서 휩이 놓인 상황이다. 거짓말을 통해 평소와 같이, 아니 영웅으로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는 진실을 선택함으로써 위기를 피하거나 모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통과해 갔다. 다시 말해서 삶의 위기와 전환점을 만나는 순간에 우리가 결코 회피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진실이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와 상관하지 않고 나 스스로의 진면목을 숨기거나 피하지 않으며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새로운 인생의 길이 열리게 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것을 회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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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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