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인의 성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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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보는 다양한 시각과 인지부조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시드니 루멧 , 미스터리, 15, 1957)

 

사람들은 똑같은 사건을 보아도 다르게 생각한다. 프랑스 철학자 메를리 퐁티는 지각현상학 연구에서 지각의 차이가 이론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입증해보였다. 보는 것 자체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여기에 덧붙여서 자신이 본 것을 생각하는 것에는 또 다른 역학관계가 작용한다. 또한 사람은 지각이 이뤄지는 환경에 따라 달리 볼 수 있고 또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 그리고 양자 사이에는 쉽게 정형화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작용하고 있다. 대체로 믿음, 지식, 경험, 편견, 의지, 이념, , 자아의식, 문화, 환경 등의 영향 때문이지만, 사실 대단히 복잡한 심리적이고 사회환경적인 작용에 의한 결과임에는 분명하다.

다르게 보고 또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사회적인 다양성을 낳는 원천이다. 민주주의가 태동할 수 있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전체주의와 독재는 이런 경향에 대해 강압적으로 반응한다. 다양성은 특히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누구에게는 갈등의 요인이 되어 문제가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기회로 여겨질 정도로 한 사회에서 다양성은 다층적인 가치를 갖는다. 따라서 이것에 대한 의식이 없고 또 성찰이 없으면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에 실패할 수밖에 없고 또 사회적인 갈등을 해소할 방법을 발견할 수 없다. 만일 다양성을 다루는 일에서 숙련되지 못하고 지치거나 귀찮다고 해서 사유를 포기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독재 혹은 우민화 정책 혹은 획일적인 사고와 삶에 스스로의 판단을 위임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위험한 결과는 명약관화한 일이 된다. 따라서 민주시민으로서 꼭 필요한 덕목이 있다면 다양성을 이해하고, 다양성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을 건전하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일이다. 특히 민주적이고 다양한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논의를 보장하고 올바른 인식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일이다. 민일 이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다양성은 상극적인 성격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지각의 차이, 지각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다양성, 그리고 다양성 때문에 나타나는 갈등과 문제들을 민주적인 논의를 통해 해결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 영화가 있다. 배심원 제도를 도입하고 있고 또한 토론 문화를 정착해나가려는 노력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매우 귀감이 될 만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영화는 1957년 신인 감독 시드니 루멧의 작품으로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받았고, 미국 영화연구소의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할 영화 100편에 속해 있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11명의 배심원은 일급 살인범(존속살해)으로 몰린 피의자에 대한 증언과 법적인 해석을 듣고 유죄와 무죄를 결정해야 했다. 유죄로 결정될 경우 피의자는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만장일치제이기에 누구 하나도 다른 배심원의 결정에 이의가 없을 때까지 토론해야 한다. 문제는 쉬워보였다. 증언은 한 결 같이 피해자의 아들이 범인임을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살해 장면을 보았고 살해를 확신할 수 있는 소음을 들었으며, 또한 평소에 피해자인 아버지에 의해 폭력을 당했다는 정황 역시 피의자의 살해동기를 충분히 설명하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10명이 유죄를 선언했을 때 오직 한 사람만 무죄를 주장했다. 한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결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반대에 부딪힌 사람들은 그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하기로 한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사건을 보는 다양한 시각과 그 이유를 알게 된다.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 생각 자체를 귀찮게 여기는 사람, 중립적인 사람, 부화뇌동하는 사람,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 등.

영화는 사건을 보는 다양한 시각과 그것의 이유들을 드러내며 폭로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우리가 특별히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자신의 생각과 주장에 대한 타당한 이의가 제기되면 그 논리에 수긍하는 태도다. 각종 토론의 과정에서 볼 수 있고, 특히 이번 대선 토론을 지켜본 유권자들의 태도에서 잘 나타나 있지만, 한국인은 대체로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태도를 바꾸기 보다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인지부조화 이론이 유효하게 적용되는 사회인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올바른 의견에 동의하면서 과감하게 자신의 의견을 철회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런 태도 때문에 한 사람의 반대와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서 나머지 전체의 의견이 수정되고 결국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합리적인 토론을 보장하고 또 진실에 복종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기독교인은 세상을 지각할 때 믿음 소망 사랑을 통한다. 그리고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한다. 그렇다고 해서 합리성이 배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누군가의 해석이나 설교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복종은 성경이 요구하는 바다. 기독교인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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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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