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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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고 싶은 대로 놓아둘 때

<우리도 사랑일까>(사라 폴리, 드라마, 청소년 관람불가, 2011)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본 후 필자는 중년 여성이 가족과 금지된 사랑 사이에서 가족을 선택하는 마음을 이해해보고자 했다. 마음으로는 사랑하는 남자를 평생 그리워하면서도 몸은 남편과 가족에게 붙들어 매놓고 사는 모습은 일상의 지루함을 가족을 위해 참아내며 살아야 하는 수많은 중년 여성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이 영화가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훌륭한 스토리텔링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그리고 흔한 불륜이야기와는 다른 사랑의 이야기가 돋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랑과 가족의 관계에서 갈등하는 중년 여성의 고민하는 마음을 공감적으로 아주 잘 표현한 것 역시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남녀 관계에서 특히 여성은 자신의 몸이 아니라 마음이 끌리는 것을 두고 진정한 사랑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몸은 어떻게 취급을 당해도 마음만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또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혹시 몸에만 관심을 두고 여성을 대하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부자연스럽게 습득한 처세술은 아닐까.

 

바로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크리스티안 노스럽은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라는 제목의 책에서 여성성이 갖는 가치를 건강의 관점에서 조명하였다. 그녀는 질병의 문제와 관련해서 볼 때 여성의 몸은 그 자체가 지혜라고 말한다. 여성이 여성성을 회복하고 자신의 내면에 담겨진 지혜를 잘 활용하면 갖가지 질병을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외과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도 자연적인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남성 중심적인 사회와 가부장적인 사고에 길들여진 여성은 자신의 몸과 내면을 억압하며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는데, 그녀는 바로 이것을 여성의 몸에 질병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본다. 여성의 몸은 남성의 몸과 달라서 더 민감하게 몸의 호르몬에 반응을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여성은 자신의 몸이 느끼는 것에 주의하고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아야 건강해진다고 주장한다.

 

노스럽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임상사례들이 말해주고 있거니와 사실 여성이 직감을 말하는 이유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성을 회복해야 여성이 질병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점은 전적으로 긍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임상사례를 통해 여성이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 가는 대로 살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정당한 일인가? 만일 여성이 자신의 마음이 가고 싶은 대로 놓아둘 때, 그때는 정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도 사랑일까>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여성 감독의 예리한 시각으로 잘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크리스티안 노스럽과 전혀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다시 말해서 적어도 남녀의 사랑에 관한한 마음이 원하는 대로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역설한다. 불륜에 빠지는 여성의 마음과 몸의 갈등 관계와 그로부터 일어나는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아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는 데, 여성 감독의 시각과 분석이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연출에 있어서 매우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어 영화가 더욱 맛깔스럽게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장면과 대사들이 뒤에 이어지는 장면들을 계속 복선적으로 지시하고 있고 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로 일관되게 수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루와 마고는 결혼 5년차에 접어든 부부다. 루는 닭 요리 전문가로서 다양한 닭 요리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마고는 프리랜서다. 부부는 수시로 닭살 돋는 대화를 즐기지만 사실은 결혼 생활에서 서로에 대한 긴장감이 풀어진 상태다. 이와 관련해서는 루에게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마고는 여전히 루와 긴장된 몸의 관계를 즐기고 싶은데, 루는 그렇지 못하다. 서로의 몸을 탐닉하는 것조차도 루에게는 지루한 일상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동상이몽의 모습에서 서로가 공중부양을 한 채 착지할 곳을 찾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마고는 글을 쓸 목적으로 혼자 여행길에 오르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남자 대니얼을 돌아오는 공항 환승장에서 만나고 또 같은 비행기 옆자리에 동석하게 될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그가 자신의 앞집에 살고 있음을 알고 놀라게 된다. 우연히 벌어지는 일을 겪으면서 마고는 대니얼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지만, 자신이 기혼자임을 의도적으로 의식하려 한다. 그러나 대니얼의 마음은 이미 마고에게 꽂혔다. 그가 자신 주변을 맴도는 것을 의식하면서도 마고는 결코 싫은 내색을 비치지 않는다. 오히려 남편 몰래 이뤄지는 그와의 만남과 대화에서 남편에게서 얻지 못했던 감정이 솟아오름을 느끼며 놀란다.

 

둘 사이에서 연이어 일어나는 감정의 줄다리기에서 마고는 철저히 자신이 유부녀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몸은 남편 루에게 속해 있으나 마음은 이미 대니얼에게 강하게 끌리고 있음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결국 마고가 취하고 있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를 감당하지 못한 대니얼이 떠나버리자, 그때서야 마고는 자신이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그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남편에게 그 사실을 밝힌 후에 남편을 떠난다.

 

몸의 예속에서 자유로워진 마고는 대니얼과 만나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며 세월을 잊은 듯 살아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그와의 관계도 전 남편 루와의 관계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게다가 알콜 중독자가 된 루의 누나를 통해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외갓 남자에 마음을 빼앗겨 살다 결국 몸마저 남편을 떠나게 된 마고나 알콜에 이끌려 정신을 놓고 사는 자신이나 별로 다를 게 없다는 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마고는 결국 사랑이라는 관계에서 뜨거운 열정도 한 순간이고, 사람은 철저히 혼자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사라 폴리 감독은 마음 가는대로 살면서 대니얼과 사랑을 나누는 마고의 모습으로 영화를 끝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의 결론은 그렇다. 그럼으로써 두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했고 사랑은 그런 것임을 말할 수 있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낯선 자와의 조우를 꿈꾸게 하면서 뒤늦게 찾아오는 사랑을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감독은 그렇게 마무리 짓지를 않았을까? 그리고 또 한 차례 지루한 결혼 생활의 모습을 살짝 비쳐주고 마지막에는 혼자 있는 모습을 클로즈업하며 마무리했을까?

 

서두에서 말했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사랑의 관계에 있어서 적어도 몸이 아니라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것이 최선의 길임을 확신한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의 상처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 그것을 사랑의 용기로 치부한다. 그것이 때늦은 후회와 실망과 함께 진리가 아님을 알게 된다. 감독은 바로 이 사실을 관객이 경험적으로 따라가며 확인하도록 해주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말했다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미련에 아쉬워할 것이고, 만일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삶에서 행복을 찾은 모습으로 끝냈다면, 그것은 결코 리얼리티를 반영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영화의 수영장 샤워신에서 노인들이 젊은 여성들을 향해 말하고 있듯이, 새것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 역시 옛것이 되는 것임을 감독은 환기하고 싶은 것이리라.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가는 부부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도 있지만, 둘 사이에서 관계가 흐트러지든가 아니면 새로워지는 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나를 어떻게 새롭게 만드느냐, 상대의 가치와 의미를 어떻게 새롭게 발견하느냐 하는 것은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은 남녀 및 부부 관계에서도 유효하게 적용된다. 아무리 열정적으로 시작되는 만남이라도 그것 역시 결국 옛 것이 된다. 성경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든 사람에 대해서 이미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17:9) 그러니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것이 결코 최선의 길은 아니며 어쩌면 인간의 삶에서 최고의 착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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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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