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칭 포 슈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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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고 있는 것들을 다시 보자

<서칭 포 슈가맨>(말리크 벤디엘로울, 다큐멘터리, 전체, 2012)

 

예술사에는 당대보다 오히려 후대에 천재성을 인정받아 대단한 인기를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 음악에서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 미술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 영화에서는 조르쥬 멜리에스이다. 그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세 사람만 들었다. 이들 모두는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고 죽은 후 후대인에 의해 그 가치가 새롭게 발견되어 유명해졌다. 이런 역사를 통해 우리는 예술정신과 시대정신 사이에 일치점이 있다 해도 많은 경우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아이러니한 역사를 통해 명심할 일이 있다. 시대정신을 바로 알 뿐만 아니라 예술정신을 바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시대정신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일이다(롬12:2).

역사를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서칭 포 슈가맨>은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질 뻔한 예술가와 그의 정신을 당대에 발견하는 놀라운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영화다.

영화는 제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되었는데 라틴계 락 스타 시스토 로드리게즈에 대한 음악다큐이다. 미국 디트로이트 부둣가 작은 클럽에서 기타를 치며 시작한 그의 음악의 특징은 도시에서 떠도는 소외된 영혼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 자신이 그렇게 살았고, 그는 자신의 삶을 음악으로 표현하였다. 그의 리얼리티 정신은 비록 미국에서는 외면당했지만 멀리 남아공에서 꽃을 피웠고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는 음악이 되었다. 영화는 무엇보다 그의 음악에 매료된 팬들 사이에서 제기된 강한 의문으로부터 시작해서 로드리게즈에 대한 충격적인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으로 엮어져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의문은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의식과 저항정신을 깨우친 락 스타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영화는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를 물으며 그를 발견하기 위한 여정으로 진행된다. 로드리게즈의 첫 번째 앨범(Cold Fact)의 제작자를 찾아 인터뷰하는 것으로부터 음악의 가사에 나오는 내용을 음미하고 또 지명을 찾아서 결국 잊혀진 락 스타 로드리게즈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가 전혀 누려보지 못했던 남아공에서의 영광을 재현하는 콘서트를 개최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일련의 노력을 통해 드러난 충격적인 사실은 몇 가지다. 첫째, 로드리게즈는 남아공에서는 50만장이나 넘게 앨범이 팔려 당대의 세계적인 스타 앨비스 프레슬리보다 더 유명세를 탔을 뿐만 아니라, 당시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저항정신을 심어주어 심지어 해방자요 구원자로까지 여겨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의 나라 미국을 포함해 다른 나라에서는 철저한 무명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둘째, 갖가지 형태의 사망설이 파다했지만 그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셋째, 비록 락커로서는 실패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신념을 정치를 통해 실현하려고 했고, 그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척박한 현실을 가치 있는 것으로 변화시키는 긍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충격적인 발견들 앞에서 관객들은 마치 부활의 현실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받는 감동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어디선가 들어 귀에 익숙해진 그의 음악을 다시 듣게 된 것에 관객은 새로운 감동에 젖을 것이다. 필자에게 특별한 감동은 연출에 있어서는 발견의 과정을 긴장감 있게 보여준 것이며, 또한 내용에 있어서는 잊혀진 한 인간이 자신의 본래 영광을 되찾게 된 것이다. 예술가의 기쁨은 현실에서 자신의 예술 곧 자신의 정신을 만나는 일이다. 로드리게즈가 미국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자신의 예술과 정신을 남아공에서 발견하는 순간은 그 자신은 물론이고 관객 모두를 감격하게 할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인간적인 측면에서 받은 감동이라면 그러한 화려한 영광을 마다하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는 로드리게즈의 소박한 모습이었다.

예술이 빛을 보는 데에는 때와 장소가 있다. 당시 미국의 분위기는 라틴계 음악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더군다나 라틴계 출신임을 말해주는 이름에서부터 로드리게즈는 미국인의 관심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당시 남아공 젊은 세대의 억압된 현실을 일깨워주었고 또 해방의 정신을 일깨우는 음악으로서 각광을 받았다. 미국의 정신과 일치하지 못해 외면 받았던 그의 예술혼은 남아공에서 빛을 발했다.

이처럼 로드리게즈의 예술과 정신을 발견하는 과정이 필자에게 의미 있게 다가온 까닭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사람을 발견하고 또 주목받지 못한 사람에 관심을 가진 팬들이 기울인 열성적인 노력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멘델스존이 바흐를 발견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우리들 가운데 소외된 채 살아가는 작은 자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또 다른 이유가 된다. 특히 스타에 집중하고 스타와 스스로를 동일시하며 살아가는 현대인, 그리고 언제나 크고 강한 자와 많이 가진 자의 곁에서 스스로가 발견되기를 바라는 현대인에게는 하나의 경종에 해당된다.

물론 로드리게즈를 발견하는 과정 역시 그가 스타였다는 사실에 있었다. 무명인으로 살았던 미국에서 시작된 질문이 아니라 유명인으로 살았던 남아공에서 시작된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스타에 집중하는 태도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필자가 말하려는 것은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사람을 몇 사람이 기울인 관심 때문에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며, 현재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작은 자들을 우리의 관심과 섬김을 통해 드러나게 하는 것,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세계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다시 한 번 작은 자의 가치와 의미를 돌아볼 기회를 영화를 통해 가질 수 있겠다는 말이다.

혹시 우리의 삶에서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사람과 그의 정신이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는 일은 없는가? 우리는 과연 작은 자의 팬이 될 수 있을까?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 비유가 말하고 있듯이, 작은 자에 대한 관심이 구원론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단지 선행으로만 이해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작은 자를 섬기는 일은 잊혀진 가치를 다시 살리는 일이며 사라지는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다. 달리 말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다. 그러니 작은 자의 팬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작은 자에 대한 관심은 작은 자가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되는 데에 크게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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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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