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은 교회 됨 회복을 위한 도전과 출발의 기회입니다 <목회와신학> 12월



반응형






성탄은 교회 됨 회복을 위한

도전과 출발의 기회입니다




일자 11월 1일 목요일

장소 장로회신학대학교

진행 이창규 편집장

정리 김보경 기자

사진 정화영 기자

인터뷰 임성빈교수(장신대)

 


성탄의 계절이다. 태양력에서 성탄은 종착역 전 마지막 정거장이지만, 교회력에서 성탄은 출발역이다. 그러나 대선 엿새 후 맞이하는 2012년 성탄은 한국 사회와 교회 모두를 출발점에 서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위대한 탄생 앞에 다시 선 한국 교회의 과제는 무엇이고, 그 시작 지점은 어디인지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와문화 교수이자 문화선교연구원 원장인 임성빈 교수에게 들어 보았다.

 


성탄절은 기독교의 가장 큰 절기이자 출발점입니다. 2012년 성탄을 맞이하는 교수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2012년 성탄은 대선 이후 맞이하는 성탄입니다. 대선은 앞으로 5년 동안 이 땅의 정사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선출하는 큰 행사입니다. 성탄도 우리의 지도자, 우리가 바라는 아주 이상적인 지도자가 이 땅에 오신 사건으로 새로운 삶을 출발할 동기를 제공합니다. 대선에서 뽑힌 지도자가 과연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지, 또 예수 그리스도의 리더십과 얼마나 괴리가 클지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우겨쌈을 당한 한국 교회의 한 일원으로서 볼 때 성탄은 한국 교회 위기 극복에 중요한 단초를 제공해 줍니다. 성탄은 둘째 아담으로서 생명을 보여주시고, 또한 그 생명의 길을 예시해 주신 사건으로, 교회를 교회 되게 하고, 신앙인들을 신앙인 되게 하는 궁극적인 모델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들은 이번 성탄을 교회 됨의 회복을 위한 새로운 도전과 출발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개개인은 나의 모습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삶의 모습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돌아보고, 신앙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되겠는지, 또 하나님이 내게 바라시는 삶은 어떤 삶인지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지 2,000여 년이 지난 현대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서 성탄절이 갖는 참 의미와 중요성을 짚어주십시오.

현대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문화가 짝하는 시대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전 시대의 권위적인 억압, 위계적인 구조에 답답함을 느낀 사람들이 전통이나 경험에 근거하지 않고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자기를 찾는 몸부림이라는 의미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새로운 관점에서 자신을 찾고자 과거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몸부림만 칠 뿐 대안적인 발견을 하지 못합니다. 진정한 ‘나’는 여전히 없는 것입니다.

또 이와 동시에 현대 사회에는 복고 문화가 공존합니다. 이것 역시 나를 찾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요즘 TV 사극들은 대개 정통 사극이 아니라 퓨전 사극입니다. 사극은 사극인데 현대적인 감각이 있습니다. 나를 찾기 위한 포스트모던적인 몸부림입니다. 뿌리에서부터 시작하겠다는 것이지요.

소비문화도 나를 찾아 떠나는 포스트모더니즘 세대의 몸부림의 일종입니다. 소비문화는 소비를 통해 자신과 타인을 차별화함으로써 자신을 찾을 수 있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킵니다. 현대 문화는 이 소비문화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에 비판적이고 나름대로 잘못을 잘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기성세대와 다른 대안적인 삶을 살고 있을까요? 사실 긍정적으로 답하기 어렵습니다. 소비문화만 봐도 현대 젊은 세대가 훨씬 더 소비적인 문화에 깊숙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문화 속에서 성탄은 함의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성탄은 나를 알게 하는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인간과 같이 되셔서 오심으로 친히 참 인간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성육신 사건입니다. 성탄에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낮아짐과 생명을 세상과 나누기 위해서 일생을 살아가신 예수님의 삶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칼뱅과 종교개혁의 핵심 사상 중 하나도 내가 아무리 나를 찾으려고 해도 나 스스로는 나를 알 수 없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결국은 나를 아는 지식이므로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결국 나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성탄절에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거워하며 선물과 사랑을 나누었는데, 근래에는 성탄의 분위기가 많이 침체된 것 같습니다. 성탄절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일반 대중과는 분리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기독교의 과제는 신앙을 삶에 뿌리내리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에 신앙의 씨가 뿌려진 후 첫 100년은 신앙의 뿌리를 내리는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복음 전파 2세기를 맞은 현재는 신앙의 뿌리에서부터 삶의 줄기가 뻗어 올라와야 하는 시기입니다. 신앙 1세대들의 역할은 신앙의 뿌리를 깊게 내려주는 일이었고, 이제 2세대들은 삶의 올곧은 줄기를 뻗어 올려 주어야 합니다. 신앙의 줄기를 뻗는 일이 신앙의 생활화입니다. 이 삶의 줄기 끝에 맺히는 열매가 문화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뿌리는 보지 못하지만 줄기와 열매, 곧 삶과 문화는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에요. 신앙이 좋은지 나쁜지는 아무도 모르고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결국 신앙의 척도는 줄기로서의 삶과 열매로서의 문화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성숙도의 가늠줄도 삶과 문화입니다.

한국 기독교는 성도들끼리 믿는 신앙에서 세상 사람들과 나누는 삶으로 신앙을 “가시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도 기독교인들이 맺은 열매를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이 덕을 보는 것이 문화선교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성탄 문화는 한국 기독교가 문화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기독교 문화입니다. 기독교가 문화화되지 않은 나라와 동네에 가면 아직도 성탄절을 모릅니다.

성탄절을 아는 것은 성탄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크리스천의 삶은 뿌리에서 시작해서 열매로 향하지만, 사실 선교는 크리스천의 삶과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문화라는 열매를 맛보면서 기독교인들의 삶의 줄기로 시선이 가고 뿌리에까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신앙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호감 가는 이성을 만나기 위해, 노래를 배우기 위해, 좋은 얘기를 듣기 위해 등 복음 외적인 이유로 교회에 발을 딛게 되는데, 이런 것이 모두 문화입니다.

성탄의 핵심 정신은 낮아짐과 섬김과 나눔인데, 우리 사회의 성탄절 문화는 성탄의 핵심 정신과 일치합니다. 한국 교회는 성탄 문화의 세속화에 성공했습니다. 원래 세속화는 복음이 교회 안에 머무는 게 아니라 세상으로 나가 세상에서도 복음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소비문화와 산업주의 영향이 강해져 나눔과 섬김의 문화가 즐김과 쾌락의 문화로 바뀌는 등 성탄 문화가 소비문화에 포로가 돼가고 있습니다. 세속화가 뒤집혀 세속주의, 즉 세속에 있는 것들이 교회를 물들여 버렸습니다.

성탄의 기본 정신인 섬김과 나눔을 솔선수범하고 강력하게 펼쳐나갈 책임이 교회에 있습니다. 쾌락적 소비문화의 포로가 돼가고 있는 성탄 문화를 우리가 다시 한 번 소화해 본래의 자리로 돌려놔야 합니다. 소비문화적 쾌락주의에 물들지 말고, 섬김과 나눔을 문화화하는 일에 적극성을 가져야 합니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승산이 있는 과제입니다. 교회와 상관 없이 시대 윤리도 이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탄절을 요란하게 보내는 것을 세상이 원치 않으니 교회도 조용히 지내자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성탄절을 기독교 문화로 발전시키고 또 이 세대와 소통하는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일이 중요함을 말씀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탄의 본질인 섬김과 나눔을 세상과 연결하고 소통할 수 있을까요?

성탄을 성탄답게 보내려면 추수감사절을 잘 보내야 합니다. 감사의 마음을 가질 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되고, 삶의 방향과 방법에 대해 질문하게 됩니다. 감사에서 시작해 삶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성도들에게 성탄은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기독교 윤리는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추수감사절의 감사는 대림절을 보내면서 회개로 바뀌어야 합니다. 개인적인 회개를 넘어서 교회와 사회의 죄상을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총체적인 구원에 대한 소망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데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성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 섬김, 나눔을 개인적·교회적 차원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섬김과 나눔의 프로그램들도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 중심으로 전 세대가 함께 어울려서 이웃을 섬기는 성탄 문화를 만든다면 사회적으로도 반향을 일으킬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21세기 과제 중 하나는 가정의 회복입니다. 교회학교가 생긴 이후에 오히려 자녀 교육이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일주일에 한 시간 내지 두 시간 하는 교회에 자녀 신앙 교육을 맡겨버리고는 교회학교에 책임을 전가합니다. 사실은 자녀 신앙 교육의 일차적인 책임은 부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 중심으로 성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이 회복되려면 먼저 부부가 회복돼야 하는데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남자와 여자가 따로 활동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변할 것입니다. 구역예배나 셀 모임도 부부 중심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점차 가족으로 중심이 이동할 것입니다. 교회 행사들도 될 수 있으면 부부가 함께하는 모임으로 기획하고, 사회봉사도 가족 단위로 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사실 일반 사회에서는 가족 중심의 문화가 많이 강화되고 있는데, 교회는 여전히 가족을 뿔뿔이 흩어 놓으니 사회의 흐름에 역행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성탄은 문화 변화를 시도할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람직한 성탄 문화를 개발하고 정착시키기 위해 문화선교연구원은 어떤 일을 할 계획이신지 궁금합니다.

연구원에서 해야 할 일차적인 임무는 문화를 통한 선교에 대한 성경적 토대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화는 굉장히 선한 도구도 되지만 분쟁의 도구도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세대에게는 통하는데 어떤 세대에게는 시험이 되는 문화도 있습니다. 문화적 도구 때문에 불필요한 갈등이 생기는 경우죠. 그래서 연구원은 이에 대한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서 불필요한 논쟁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세대 간의 불평과 갈등을 예방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특강이나 책자를 제공하고 매달 잡지를 발행합니다.

또 연구원의 가장 중요한 일은 대안 제시입니다.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실제적인 대안입니다. 콘텐츠를 제공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연구원은 이런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연구원에서는 지금까지 서울기독교영화제를 해 왔는데 내년부터는 서울국제사랑영화제(Seoul International Agape Film Festival)로 이름을 바꿔 개최합니다. ‘기독교’라는 단어가 빠졌어요. 기독교적 정체성을 가지지만 세상과 눈높이를 맞춰서 소통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좋은 영화가 제작돼도 배급사들의 독점 구조 때문에 소비자의 선택권이 없고, 이들의 문화적 다양성이 굉장히 위축돼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면서도 일반 문화물들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기독문화 자체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하나는 좋은 기독문화가 있지만 소통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복합적인 문제죠.

창작자들을 격려하고 지원해서 좋은 문화 생산물들을 생산케 하고, 좋은 창작물들을 많이 발굴하고, 이것들을 유통해서 소비하는 단계까지 잘 연결해주는 역할이 바로 기독교문화연구원이나 서울기독교영화제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성탄절 예배나 행사를 준비하는 교회와 독자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교회는 성경적 기본을 중시해야 합니다. 성탄은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셔서 생명을 주신 사건입니다. 그 사건의 동기는 사랑이고, 방법은 섬김과 나눔입니다.

성탄 행사를 준비하는 모든 교회는 궁극적인 목적을 생명에 두어야 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세상 사람들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핵심으로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3:16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면 교회에서 하는 행사라도 또 하나의 소비적, 쾌락적, 유희적 이벤트로 끝나고 맙니다. 근본적인 토대와 목적을 분명히 해야 됩니다.

그리고 생명을 향한 방법은 성탄 사건과 같이 섬김과 나눔이어야 합니다. 일반 은총의 영역에서 살고 있는 세상 사람들의 문화는 매력적인데, 교회는 너무 고지식하게 목회자 위주의 설교라든지 일방적인 행사로 그칩니다. 일반 은총 영역의 지혜들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초점을 잘 맞춘 예배를 기획해서 영감 있는 예배를 드리도록 노력하고, 포스트모던적 소비문화에 매몰되어가는 성도들을 일깨우는 교육을 하면서 사회봉사나 선교적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세상과 나눌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연약한 상태에 있거나 구도자 상태에 있는 분들에게는 지난 9월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한경직>과 같은 성탄의 정신을 구현한 분들에 대한 영화를 제공하고, 지역사회의 어려운 분들과 함께하는 찾아가는 섬김, 찾아가는 나눔을 제공하면 좋겠습니다. 지역사회와 연계하는 일은 성탄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려고 성육신하셨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너무 우리끼리 있습니다.

12월이 되면 사역에 매몰되는 목회자들에게는<야곱 신부의 편지>라는 핀란드 영화를 소개해 드립니다. 주인공 야곱 신부는 은퇴한 이후에도 전국에서 오는 상담 편지들을 읽고 답을 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편지가 안 옵니다. 야곱에게 상담을 받기 원하는 사람이 없는 거지요. 야곱은 하나님이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사용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여 크게 실망하고 좌절합니다. 내가 당신한테 잘하려고 하는데 나를 늙었다고 버리시는 거냐고 하나님께 따집니다. 그러나 실망의 시간 끝에 지금까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오히려 일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푼 은총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것이고, 나를 위해 주신 것이지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드린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일을 하다보면 사람들의 인정과 보상에 민감해집니다. 12월은 특히 인정과 보상의 정도가 겉으로 드러나기 쉬운 계절이다 보니 목회자들이 우울해질 수도 있고, 시험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선물을 많이 받는데 나는 왜 선물이 없나, 보상에 대한 이런 고민들이 있을 수 있어요. 수평적으로도 그렇지만 수직적으로 하나님께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역은 무익한 종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인류의 소망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목회자의 삶 속에서 다시 회복되어 성탄의 정신으로 위로받고 새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목회와 신학>2012.12

반응형
카카오스토리 구독하기

게 시 글 공 유 하 기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밴드

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미지 맵

    웹진/임성빈의 문화칼럼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