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환(장신대 기독교와 문화/도시공동체연구소장)
‘코로나19 이후의 교회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관해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오히려 신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된 일상의 방식을 신앙생활에 적용하는 일을 어려워하지 않는 듯하다. ‘온라인 예배’를 ‘시청 혹은 관람’하고 헌금을 은행계좌로 입금하는 행위는 ‘코로나19’ 이후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우리의 일상만큼 우리의 신앙생활도 크게 바꿔 놓을 것이다. 이제 발 빠르게 온라인 시스템을 갖추고 콘텐츠 제작에 나서야 하는 것일까?
‘온라인 교회/예배’의 가능성이 여러 측면에서 점검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결정적 충분조건은 ‘신앙공동체’의 형성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과 같은 ‘조직적’ 소속감은 아니더라도 신앙과 가치를 나누는 공동체가 형성될 가능성이 확인되어야 한다. 물론 이 때문에 ‘오프라인 교회/예배’만이 정상적인 것이라 주장한다면, 변화에 적응해가는 신자를 진화론자라 비판해야 할지도 모르는 당황스러운 사태를 맞게 될 것이다.
그래서 비록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시작된 일이기는 하나, 최근까지 미국 전역에서 번지고 있는 ‘디너 처치(dinner Church)’에 더 주목하게 된다. 하나의 운동처럼 전개되고 있는 ‘디너 처지’는 전통적인 예전 중심의 예배 순서나 기존 교인들 중심의 교회 운영이 갖는 한계를 인식하고 적어도 주후 3세기까지 ‘처음 교회’의 형태였던 ‘가정 교회’ 혹은 ‘식탁 공동체’를 신앙공동체의 핵심적 신앙행위로 재배치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디너 처치’의 두 가지 흐름
지금은 60여 개의 공식적인 혹은 비공식적인 여러 형태로 미국 전역에서 디너 처치가 개척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선교형 교회’의 교회 개척 프로그램인 ‘교회의 새로운 표현(Fx: Fresh Expressions of Church)’ 운동이 미국에서 초교파적으로 실천되었는데, 디너 처치가 교회개척 프로그램의 한 예로 제시되고 있다. 비공식적인 형태는 이 미국판 Fx와는 상관없이 자생적으로 생성된 식탁 공동체였으며 풀뿌리형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2008년 시작되어 디너 처치의 첫 원형적 시도라고 알려진 ‘성 리디아의 교회(St. Lydia’ Dinner Church)’는 에밀리 스콧(Emily M. D. Scott) 목사와 레이첼 크로(Rachel Kroh) 목사가 보스턴과 뉴욕의 여러 신학교에서 얻은 예전적 예배에 대한 영감을 실행에 옮기면서 시작되었다. 브루클린 지역에서 시작된 이 식탁 공동체는 격주로 모여 식사와 함께 공동의 기도, 공동의 말씀 읽기 등의 순서를 진행했다.
이후 ‘심플 처지(Simple Church, Grafton and Worcester)’, ‘루트 앤 브랜치(Root and Branch, Chicago)’, ‘킨드레드(Kindred, Houston)’ 등의 교회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생겨났으며, 이들은 예전 형식을 식사와 함께 나누었으며, 예전적 삶을 실천하고 싶은 이들의 방문을 환영하였다. 식사 자체가 가장 중요한 예배 순서가 되고, 거룩한 예전이 먹고 마시는 세속적 일과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관점이었다.
여기서 ‘예전적 삶’이란 기존의 순서에 따라 회중은 그저 관람만 하는 형식이 아니라 식사와 함께 모든 이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일상생활의 경험이 성례전적 의미를 갖도록 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기존 교회와는 달리 회중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도 언론의 보도에서는 큰 장점으로 부각되었다. 모든 이들이 음식을 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그런 행동이 곧 예배의 성례전적 의미를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주로 시애틀 지역에서 시작되어 Fx의 공식적인 교회 개척 운동이 된 흐름은 예전적 강조보다는 새로운 방문객이나 손님에게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시애틀 중심부에서 90년이 넘은 노후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포스너 목사 부부(Verlon Fosner & Melodee Fosner)는 더 이상 교회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회중들과 함께 교회 매각과 이주를 놓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노후한 교회가 기존의 교인들을 위한 사역은 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신자들이 진입하기 어려운 교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포스너 목사는 자신의 회중들은 대부분 중산층이며, 도심지의 가난한 이들이 교회의 문턱을 넘어서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중산층 이하의 이웃들을 초청하여 작은 식사 모임을 하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여기에서 그동안 발견할 수 없었던 변화들이 시작된 것이었다. 새로운 이웃들이 교회를 찾기 시작했고, 모임에 와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복음을 듣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런 형태의 교회가 10개로 늘어났고, 각각 150명에서 60명씩 모이고 있다고 한다.
죽어가던 늙은 조직교회에게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준 것은, 바로 교회의 본래 목적에 집중한 덕분이었다.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고 간단하며, 비용이 들지 않고,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셨던 방식 그대로를 따라 음식, 음악, 간단한 말씀 메시지가 전부인 식탁의 교제가 교회가 되었고 날마다 새로운 이웃들이 찾아오게 되었다. 2007년 시작된 이 시애틀의 디너 처치는 현재 ‘디너 처치 컬렉티브(Dinner Church Collective)’를 통해 사역을 지원한다.
포스너 목사는 2019년 기독교 잡지 ‘크리스처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와의 인터뷰에서 “디너 처치는 예수님의 ‘식탁신학(dinner table theology)’을 회복하고, 처음 사도 시대에 실천되었던 그 교회의 정신을 따르려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제도적 예전은 정작 새로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기 어렵지만, 디너 처치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석해서 원하는 음식을 먹으며, 그 모든 대가를 예수님이 지불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디너 처치’의 ‘식탁/음식의 신학’
디너 처치는 주님의 식탁과 음식의 신학을 추구한다. 모든 이에게 열려 있고, 모든 이에게 주어지며, 모든 이가 음식 만들기에 참여한다. 여기에는 성과 속이 구분되지 않고, 성직자와 평신도가 구분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예배와 먹는 일이 구분되지 않는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와 교단, 교파마다 나름의 제도와 예전을 발전시켜 왔는데, 오히려 이 전통이 이제는 복음을 자유롭게 접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렉 마물라(Greg Mamula) 목사는 ‘The Christian Citizen’에 게재한 글에서 “디너 처치가 교회를 새롭게 하는 오래된 해법일 수 있다.”라고 적었다. 그는 포스너 목사의 이야기를 빌어 “‘디너 처치’가 단순히 목회를 새롭게 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사회적 사명에 대해 새로운 도전을 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것은 디너 처치가 개인에 영성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의 낙오된 이들과 소외된 이들에게 교회가 다가가기 가장 좋은 모습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디너 처치의 신학은 스스로 이미 ‘구원받은 자’라고 생각하는 기존의 회중이 아니라, 이방인과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웃들을 초청하는 신학으로 표현된다.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족이 되어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신학적으로 가장 잘 표현할 방법이 디너 처치인 것이다. 예수님이 만난 가난한 이웃들과 그들과 함께 나눈 식사를 오늘의 교회에서는 재현하기 어렵다. 그래서 디너 처치의 식탁과 음식의 신학은 기성 교회에게 강력한 도전으로 다가온다.
시카고의 ‘루트 앤 브랜치’의 리더인 팀 킴(Tim Kim) 목사는 교회가 성장하자 사람들이 서로를 잘 알고 더 깊이 이해할 대안이 필요했고, 결국 작은 소규모 공동체들의 ‘디너 처치’로 전환했다. 그는 디너 처치의 신학을 ‘모자이크 신학’이라 칭했다. 모두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작은 조각들을 보고, 그것을 통해 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큰 비용과 건물이 필요가 없다. 그저 어디서든 함께 만나 식사를 하며 단순한 순서를 가지면 된다.
디너 처치에 대한 참고서 중, 뉴욕 최초의 시도인 ‘성 리디아 교회’를 비롯하여 10여 개의 교회를 탐구한 켄달 밴더슬라이스(Kendall Vanderslice)의 ‘We Will Feast: Rethinking Dinner, Worship, and the Community of God(2019)’이 그 신학을 잘 설명하고 있다. 켄달은 보스턴 신학교에서 음식과 신학에 대한 수업을 듣고, 디너 처치를 시작하는 에밀리 목사와 교제하며 그 신학을 깊이 구성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디너 처치’의 신학은 “음식 그 자체(meal itself)”이다. 여기에는 더 이상 진보나 보수, 교단과 교파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위치나 시간도 구분이 필요 없다. 모든 곳에서, 모든 시간에, 모든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교회이며, 음식이며, 가족이 된다. 그녀는 “복음은 곧 음식의 이야기였다.”고 말한다. 창조, 타락, 십자가, 부활, 새 하늘 새 땅의 이야기가 모두 먹고 마시는 것으로 마치고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켄달은 여러 ‘디너 처치’를 탐방하며 연구하면서 자신이 가진 기존의 교회의 개념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먹고 마실 때 ‘나를 기억하라.’는 말씀의 의미를 진정으로 알게 되었는데, 식탁 공동체를 이루며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눈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가는지를 깨닫고 놀라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일은 기성 교회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어진 내용은 <‘디너 처치’,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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