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너 처치’,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2)



(글의 앞 부분은 <‘디너 처치’,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1)>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디너 처치’의 ‘식탁/음식의 신학’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신학적 강조점은 바로 ‘상황적’이라는 것이다. 켄달도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시애틀의 지도자 포스너 목사도 그의 저서 ‘Dinner Church(2017)’에서 이러한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처음 새로운 디너 처치를 시작할 때 먼저 한 일이 시애틀이라는 도시를 사회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이었다고 증언한다. 결국 자신들의 공동체가 도시 가운데 있지만 도시인들로부터 고립되어 멀리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시인들에게 필요한 것들에 대한 고민보다는 건물을 지어놓고 사람들이 오기만을 기다렸으니, 당연히 멋진 건물과 공간에 어울리는 이들만 오게 되었고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적인 사람들, 쉴 곳과 의지할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이들에게 교회는 더 이상 중요한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시애틀 도시의 두 가지 모습

포스너는 이것이 현대 교회가 ‘암’에 걸린 상황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주장하기를 새로운 비전은 반드시 그것이 자리를 잡을 사회적 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놀랍게도 그는 그러한 새로운 구조로서의 디너 처치의 신학이 종교개혁이라는 옛 부대를 버리고 새 부대를 찾아 담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디너 처치를 지역 선교활동처럼 여기면 안 되고, 푸드뱅크나 시민단체 활동으로도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또한 여러 사역 중 하나일 뿐이거나, 파라처치 운동도 아니라고 명확히 한다. 단지 그 자체로 온전한 교회이며, 새로운 상황에 새로운 표현으로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래서 디너 처치는 모델이거나 유일한 전형이 있을 수 없고, 장소마다 다른 상황에 맞게 첫 교회의 그 본래의 존재양식을 오늘의 상황에 따라 재현하려는 시도이다. 교회가 더 이상 ‘이미 자신들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서비스를 하는 업체처럼 존재하거나 사교집단이 되지 않고,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들을 위한 교회”로서 가장 기본적인 식탁에 초대하여 함께 복음을 이야기하는 교회로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적 주장이다.

디너 처치를 실험하고 운동하는 이들이 재현하고자 하는 처음 교회의 모습은 사도행전 2장과 4장에 그 대표적인 설명이 등장한다. 성령이 임하시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이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였고, 함께 밥을 먹었으며, 함께 물건을 통용하며 필요에 따라 나누어 사용했다. 지금으로서는 꿈과 같은 일이다. 심지어 고립된 공동체나 집단 거주 공동체도 아니었고, 예루살렘 한가운데 존재했던 ‘디너 처치’는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디너 처치의 지도자들은 이 교회의 비전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우리가 끊임없이 돌아가려고 노력해야 하는 원형적 양식으로 상황에 따라 문화적 조건에 맞는 방식으로 재현되어야 할 모습이며, 그것은 아직 복음을 만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사회적으로 약자이며 고립된 이들을 위해 오늘도 개방되어야 할 음식을 나누는 복음 공동체의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오늘 많은 교회에서 하는 것처럼 예배와 형식적으로 구분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선교적 교회’로서의 ‘디너 처치’, 그리고 ‘코로나19’ 이후

자신의 블로그에서 디너 처치를 소개했던 선교적 교회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마이크 프로스트(Mike Frost)“‘디너 처치가 유일한 그리고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시도이다.”라고 보았다. 그는 분명 선교적 교회의 관점에서 디너 처치를 살피고 있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애틀에서 시작된 디너 처치는 지금 Fx의 교회개척 운동으로 공식화되었으니 틀린 분석도 아니다.

다만 북미의 ‘선교적 교회’의 실천에 비해 성공회의 ‘선교형 교회’의 실천이 보다 정치사회학적 상황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우리는 디너 처치를 단순히 교회 성장의 프로그램으로 전락할지도 모를 한계가 있는 ‘선교적 교회’의 또 다른 실천으로 보기보다는, 보다 단순하고 분명한 방식으로 복음을 상황화하려는 시도로 봐야 한다. 

자본주의라는 옛 부대를 그대로 두고 ‘선교적 교회’를 실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가? 더구나 교단, 교파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며 제도적 예전 중심의 예배 공동체가 과연 본연의 ‘선교적 교회’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반성이 결국 ‘디너 처치’라는 새 부대를 요구하게 되었고, 보다 단순하고 명확한 표현으로 복음을 증언하는 개방된 공동체를 갈망하게 되었다고 본다. 주님을 만난 이들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코로나19’ 이후의 교회의 존재양식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다.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문제는 두 가지인데, ‘온라인 예배/교회’에 대한 신학적 정당성과 기술지원, 그리고 재정 감소에 따른 목회 구조 변경 방안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그동안 한국교회의 고질적인 병폐이지만 극복하기 어려웠던 문제들을 해결하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하면, ‘고비용(유지비용) 저효율(선교적 효과)’의 구조를 ‘저비용 고효율’로 바꾸는 것이다.

‘온라인 교회/예배’는 오프라인의 그것에 비해 임시적이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동등한 존재의 장으로 인식하고 그에 맞는 ‘온라인 예전과 공동체’의 신학적 제안이 필요하다. 또한 불가피한 재정 감소 국면에 계속 건물과 공간에 막대한 예산을 지불하는 방식이 유지되기 어렵다면, 디너 처치와 같은 소규모 식탁 공동체로 전환하거나 한국적 상황에 맞는 ‘밥상공동체 교회’를 개척하는 것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

따라서 코로나19 이후의 교회는 온라인 메커니즘과 관계 맺음 양식에 적합한 새로운 성례전과 예배 양식을 고민해야 한다. 여기에 만약 디너 처치와 같은 탈제도적 양식을 접합시킨다면 새로운 예전의 필요성은 더 강화된다. 뉴욕의 ‘성 리디아 디너 처치’가 처음 성례전적 식탁을 고안할 때는 매우 간단했고, 회중의 참여가 보장된 예배 순서가 제공되었기 때문에 모든 이가 부담 없이 방문하고 또 누구나 초청에 응할 수가 있었다.

재정적 문제도 새롭게 해결해야 한다. 90년이 넘은 오래된 교회를 포기하고 ‘디너 처치’를 하기로 결정한 포스너 목사 부부는 본래의 큰 교회를 임대공간으로 전환하여 그 비용을 작은 ‘디너 처치’ 개척을 위해 사용하거나 사역자들을 지원하는 기초 기금으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디너 처치 커넥션’의 목회자 대부분은 이중직을 가지고 있으며, 이전에 안정적인 임금을 보장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신학적으로는 어쩌면 가장 부담스럽고도 중요한 문제일 수 있지만 그 누구도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문제는, 그렇지만 우리가 ‘디너 처치’이든 ‘선교적 교회’이든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교회의 비전을 고민할 때 반드시 넘어서야 하는 제도적 장애물은 바로 ‘교단/교파 체제’이다. 리처드 니버(Richard Niebuhr)는 일찍이 “교파주의는 교회의 도덕적 실패”라고 단언했고, 교회의 분열은 정치적 권력화, 경제적 계급화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오늘 한국교회가 겪는 대부분의 폐해는 바로 이 ‘교파주의’에 근거한 ‘개교회주의’에 기원이 있다. ‘디너 처치’는 초교파적인 개척교회 운동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교단과 상관없이 서로 협력하고 지원한다.

Calvary Christian Assembly, 6801 Roosevelt Way NE, Seattle, United States

‘디너 처치’의 지도자들이 말하고 있는 바, ‘디너 처치’의 예배는 사적 예배가 아니라 공적 예배라는 점도 강조되어야 한다. 식사 모임이라고 해서, 사적인 사교적 만남이 결코 아니라 분명히 처음 교회가 했던 것과 같이 주님을 기억하고 서로 복음을 나누는 공적 예배라는 점을 강조한다. 개교회주의는 일부 교권주의자들의 정치행위로 인해 본연의 선교적 방향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탈제도적인 ‘디너 처치’가 복음의 공공성을 증언한다. 물론 미국에서도 일부 비판자들이 예배를 인본주의적 관점으로 실행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기보다는 인간의 친교와 음식에 과도하게 집중한다며 ‘디너 처치’를 반대한다. 하지만 정작 교회의 본질을 훼손한 이들은 교리와 형식에 과도하게 집착한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갈리디아 교회나 고린도 교회에서 명확히 알 수 있다. 신학적 점검이 분명 필요하겠지만, 복음은 인간이 만든 규칙과 제도를 넘어선다. 식사는 제도가 아니라 삶이다.

코로나19’ 이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교회가 그 대안적 삶의 방식을 선도하는 사회적 공간이 될 수 없을까? 마치 그 처음 교회의 때처럼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단순하고 명확히 증언할 수는 없을까? ‘디너 처치가 그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생명의 떡이다.”라고 말씀하신 주님처럼, 이제 교회가 한국사회의 배고픈 이들과 아픈 이들을 위한 밥 공동체가 되어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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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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