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성경] 박경리의『토지(土地)』: "오래된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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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는 코로나19와 콜레라를 구별하지 못했다. 독감주사를 맞았다고도 했다. 코로나19에 대한 감염 여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독감주사를 맞았기 때문에 콜레라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한 셈이다. 이런 이만희에게 사람들이 미혹되는 건 괴이한 노릇이고(), 이런 이만희에게 추수당하는 교회라면 모종의 기저질환()에 걸린 건 아닐까. 이만희가 코로나19와 헷갈려하는 콜레라는 괴질(怪疾)이라 불리기도 했다.

1908년 전국에 괴질이라 불리는 호열자가 돌았다. 호열자(虎列刺)는 콜레라를 중국어로 음역한 호열랄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1904년에도 기호지역과 경상도에 호열자가 돌았었는데, 당시 사람들에겐 원인을 알 수 없는 괴이한() 질()이었다. 박경리가 쓴 <토지>1904년과 1908년에 돌았던 콜레라를 배경으로 삼은 이야기가 소개된다.

박경리

최참판 댁의 김서방이 가을걷이할 땅을 둘러보고 귀가하는 길에 병을 얻었다. 토사곽란을 하다가 탈수증으로 죽음에 이르는 호열자에 걸린 것이다. 호열자에 걸려 마지막 숨을 쉬고 있을 때, 걱정하며 모였던 사람들이 몇 년 전에 겪었던 괴질을 기억해냈다. 그 벵은 걸리기만 하믄 죽는다!”라는 탄성이 들리자 김서방을 빙 둘러싸고 있던 사람의 울타리가 무너졌다. 말대로 호열자에 걸린 김서방은 곧 죽었다. 문병하러 온 사람들은 조문마저 포기했다. 사람들은 괴질에 걸리는 이유를 몰랐지만 치사율이 높은 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신을 피했다. 김서방뿐만 아니라 마을의 여럿이 호열자에 걸려 죽었다. 보건체제도 구축되지 않았고 관에서 내려오는 지침도 없었지만 읍내에서는 아픈 사람들을 병막에 끌고 간다는 말이 나돌아 모두 문들을 닫아걸었다. 요샛말로 자가 격리를 했다.


2020년 전염병이 돌고 있다. 이만희가 헷갈려하는 콜레라만큼 치사율이 높진 않지만 감염된 사람은 치료시설에 격리되어야 한다. 조선시대에도 격리된 병자가 따로 지내는 ‘병막’이 있었나 보다. 병막에 격리되지 않기 위해 집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 건 병막이 치료시설이 아니라, 죽음을 기다리는 공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1908년 콜레라가 돌던 때와 달리 2020년 대한민국엔 보건체계가 있고, 감염전문가들이 있으며, 음압병실 같은 특별한 치료시설도 있어, 코로나는 콜레라보다 치사율이 현저히 낫다.

그럼에도 감염될까, 감염시킬까 두렵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손잡지 않는다. 악수하지 않는 게 일상의 예절이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려된다. 모이더라도 2미터 이상 떨어지자고 한다. 손잡지 않기, 거리두기, 떨어져 있기가 미덕이다. 코로나19의 위력은 옛날 콜레라처럼 그 치사율에 있지 않고 사람과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데 있다.

옛날 예수께서 살던 마을에도 병자가 있었다. 전염성이 있는 피부병이나 전염성이 있다고 의심되는 병에 걸린 사람들이 마을 밖에 격리되었다. 심지어 생리를 해도 사람들과 접촉할 수 없었다. 바이러스와 감염에 대한 지식이 없던 시대, 병자를 마을 밖에 격리하는 건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어쩔 수 없이 취해진 강제 격리 조치는 부득이 억울한 사람을 낳았다. 전염성이 없음에도 마을 밖에 격리되거나 집안에 갇힌 사람들이 있었다. 낫지 않는 부인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마을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수께서는 무지와 오해와 편견 때문에 마을 속으로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셨다. 예수께서 마을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을이 확장되었다. 예수께서 경계를 넘어 마을 밖으로 가시면서, 격리된 땅 마저 마을이 되었다. 만남이 있다면 격리가 아니다. , 예수께서는 억울한 몸을 끌고 마을 속으로 침입한 사람을 보호하셨다. 부인병에 걸린 채로 군중 속으로 침입해 들어와 예수의 옷을 잡아 감히 접촉을 시도한 여자의 행위를 믿음이라 인정해주신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2020년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분리와 격리의 일상을 산다. 그런데 말이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없던 때에도 격리와 분리의 일상을 살던 사람들이 있다. 노숙자, 탈북민, 장애인, 이주민, 난민, 소수자 등 소위 주류가 살고 있는 일상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19라는 신종 바이러스가 생겨나기 전에 이미 우리 사는 일상 속엔 격리와 분리를 강제하는 바이러스가 오랫동안 창궐했었다. 세월호 가족들, 강남네거리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 신도시의 철거민들이 이미 격리되어 있었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치기하며 이미 창궐해있는 사회적 바이러스에 비하면 코로나19나 콜레라 같은 전염병은 역설적으로 모두가 평등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한 가지 좋은 것은 흉년하고 달라서 있는 놈 없는 놈 차별이 없는 그기라. 벵이사 어디 수숫대 우막집만 찾아가나?” 죽은 강청댁을 장례 치러주며 던지는 동학당이었던 윤보의 말이다. 1908년 전국을 덮쳤던 콜레라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했다. 콜레라는 강청댁 사는 수숫대 우막집’에도 찾아갔고 최참판댁 안방마님의 거처까지 넘어갔다.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에 노출되어 있다.

콜레라와 코로나19를 구별하지 못하는 이만희의 무지하고 무책임한 말들은 그의 노추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코로나19와 콜레라를 구별할 줄 아는 건전한 시민의 한 명으로서 나는, 이미 우리 사회에 창궐해있던 차별과 배제와 혐오의 바이러스를 구별할 줄 아는가. 이미 오랫동안 존재했던 사회적 바이러스 때문에 사실상 격리된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는가. 코로나 19와 콜레라를 구별하지 못하는 노추한 이만희처럼, 세상에 창궐한 차별과 배제와 혐오의 바이러스에 대한 내 지식이 누추하지 않은지, 요일에 맞춰 약국 앞에 줄 선 우리에게 묻는다.

 


글쓴이 김영준 
:민들레교회 목사다. 
전라도 광주에서 자랐고, 
서울 이문동과 광장동에서 놀았다. 
열심히 공부할 걸, 후회하는 중년 아저씨. 
김포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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