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성경]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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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16)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빛이라 하셨다. 착한 행실로 자신을 증명하는 사람을 빛이라 하셨다. 사람을 빛이라 불러 주신 예수의 말씀은 감사하나, 사람이 빛이라 불릴 만큼 착한 행실을 일삼진 않는다. 가끔, 어쩌다가, 더러 착한 행실을 한다 해서 그걸로 빛이라 불릴 자격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예수께선, 가끔, 어쩌다가, 더러 착한 행실을 하는 사람을 빛이라 불러 주신 거다. 사람이 착한 행실을 해서 빛이라기보다, 예수께서 빛이라 불러주시니 가끔, 어쩌다가, 더러 착한 행실을 하게 되는 거다. 그러다가 장차 진짜 빛이라 불릴만한 사람이 될 거라고 믿어주시는 거다. 이런 예수의 믿음으로 사람은 진짜 뭐가 돼도 된다. 그렇게 구원받는다. 

가끔, 어쩌다가, 더러 빛을 비추는 게, 비추고자 하는 게 우리네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이다. 그런데 스크루지는 안 그랬다. 그마저도 빛을 비추고자 하질 않았다.

스크루지는 맷돌 손잡이를 꽉 움켜쥔 손아귀처럼 인색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쥐어짜고, 누르고, 움켜쥐고 벅벅 긁어모으고, 한 번 잡으면 절대 놓지 않는 탐욕스러운 늙은 죄인! 게다가 부시에 쳐서 불꽃 한 번 제대로 피워 보지 못한 부싯돌처럼 단단하고 날카로웠으며 굴처럼 음흉하고 좀처럼 속을 내보이지 않는 외톨이였다. 

사람은 부싯돌 같다. 가끔, 어쩌다가, 더러 불꽃처럼 빛을 비추는 부싯돌 같다. 부싯돌이 가끔 불꽃으로 빛을 비추듯, 사람도 어쩌다가 착한 행실을 한다. 부싯돌이 불꽃을 비추는 순간만큼, 사람은 가끔, 어쩌다가, 더러 순간만큼 착한 행실을 하곤 한다. 2천 년 전 야트막한 언덕에서 울렸던 예수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귓바퀴에 여전히 공명되기 때문일 것이다. 스크루지의 귓바퀴가 막혀 있었던 걸까. ‘불꽃 한 번 제대로 피워 보지 못한 부싯돌’이라니. 그냥 날카롭고 시커먼 돌멩이 같은 사람이라니. 

스크루지는 19세기 영국 자본의 번영의 상징이다. 거대한 자본을 보유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사회가 19세가 영국이었다. 물자가 부족해 가난한 게 아니라, 나눔이 없어 가난했다. 극단적인 빈부 차이 때문에 가난의 고통은 더 크게 느껴졌다. 스크루지는 가난해질까 불안했고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 돈을 움켜쥔 채 사람과의 단절도 감수했다. 스크루지의 꿈 속 유령은 스크루지의 불안에 대한 신의 응답이다. 불안에 빠진 자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야 했다. 불안이 고통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고통이 너무 크면 언어로 표현되기 어렵다. 고통을 언어로 뭉쳐 입 밖으로 던지면 조금이나마 고통은 줄어드는데, 너무 큰 고통은 언어로 뭉쳐지지 않는다. 언어로 뭉친다 해도 고통이 너무 크면 아무리 입 밖으로 던지고 던져도 줄어들지 않는다. 우정과 선의로 고통의 뭉치를 받아주는 사람도 상처를 받고 고통 받는 자의 곁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외톨이가 된다. 불안때문에 고통받는 스크루지는  '구두쇠(screw)'요 '사기꾼(gouge)'인 되어 ‘외톨이’가 되었고, 하나님이 아니고는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12월 14일 성탄전야에 하나님은 스크루지의 꿈 속으로 세 유령을 선물로 보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게 하신다. 

구두쇠 사기꾼 스크루지(Scrooge)에게 유령들이 찾아온다. 꿈속에서 나마 스크루지는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니다. 과거에 건실했던 청년 스크루지를 되돌아보고, 현재 가난해도 행복한 사람들의 일상을 엿보고, 미래 비참하고 부끄러운 자신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다시 태어난다. 하룻밤 꿈 속 경험만으로도 스크루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난 새털처럼 마음이 가볍고, 천사처럼 행복하고 아이처럼 즐거워. 술 취한 사내처럼 마음이 들떠. 여러분,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어이, 여기도! 안녕하시오!

돈을 지니고만 있었던 스크루지는 외톨이였지만, 다시 태어난 스크루지는 사람들을 위해 돈을 쓰게 된다. 돈은 커다란 칠면조가 되고, 구호 자금이 되고, 직원의 인상된 급여가 되고, 장애가 있는 어린 아이의 생활보장이 된다. 교환수단으로서 돈은 얼마나 맛있고, 든든하고, 따뜻한가. 흘러간 돈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흐르며 장애 아이 팀에겐 생명이 되고, 가난한 가족을 배부르게 하고, 구빈원 밖 사람들도 일상을 살게 한다. 돈은 흘러가야 한다. 

갑자기 이상한 사람이 된 듯 변해버린 스크루지를 비웃는 사람도 있었나보다. 돈을 소유하는 것을 힘으로 여기는 사람들일 터다. 세 유령을 만나기 전의 스크루지처럼 현실을 냉혹하게 인식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스크루지는 개의치 않는다. 

처음에 사람들의 비웃음을 당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이 세상엔 영원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스크루지에게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스크루지에게 발생한 일은 함께 일하는 직원과 동네 어린 아이와 조카 가족과 지역 사회에까지 어떤 “일”이 된다. 어떤 “일”이 일어날 때면 비웃음이 따르기도 하지만, 뭐 어떤가. 하나님께선 기꺼이 비웃음거리가 되기로 작정하셨다. 왕으로 오시며 가부장의 권위를 무시한 채 처녀의 몸에서 아기가 되시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로 오시며 여물통을 요람으로 선택하신 것이다. 천국을 세우려 오시며 국적 없는 목자들의 알현을 받기로 하신 것이다.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시며 두 살 아래 아기들이 학살당해야 했다. 이런 황당한 “일”이 어디 있는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던 날을 기념하며, 사람들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한다. 다들 제정신들이 아니다. 스크루지가 성탄 전야에 유령들과 만난 후 갑자기 이상해져 “술 취한 사내처럼” 비웃음거리 되었듯, 사람들이 이 어처구니없는 예수의 생일을 메리 크리스마스라 부른다. 온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다. 

기쁜 성탄이라니 말이 안 되지만, 올해도 기꺼이 비웃음꺼리가 될 것이다. 스크루지처럼 크리스마스를 기뻐하는 사람들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올해도 술 취한 사람처럼 인사할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글/ 김영준
: 민들레교회 목사다.
전라도 광주에서 자랐고,
서울 이문동과 광장동에서 놀았다.
열심히 공부할 걸, 후회하는 중년 아저씨다,
김포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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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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