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성경]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어떤 이는 사회주의, 어떤 이는 자본주의, 어떤 이는 파시즘, 어떤 이는 종교라는 태양을 하늘에 걸고 산다. 태양은 ‘전체적이었으면 싶은 어떤 정의’가 되어 심지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전쟁에 명분을 제공한다. 태양이 반짝하고 신호를 보내면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것이 카뮈가 <이방인>을 쓰던 당시 대륙의 분위기였다. “우리 대륙은 온통 전체적이었으면 싶은 어떤 정의를 찾느라고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우리는 취한 하늘에다가 우리가 원하는 태양들을 불붙여놓고 있다”(카뮈,<여름>중) 태양의 명령을 핑계로 사람의 생명이 숫자로만 기록되는 끔찍한 전쟁을 정의의 실행이라 왜곡했다. 카뮈가 살던 당시 유럽이 그랬다. 

하나님께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서로 죽여도 되는 전쟁이라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전쟁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의가 될 수 없다. 바오닌이 맞다. “아무리 좋은 전쟁도 가장 나쁜 평화보다 낫지 않다.” 전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침입한 바이러스다. 끔찍한 <페스트>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에덴을 떠난 사람들은 모두 이방인이 되어 태양을 핑계로 전쟁에 감염되어 사람을 죽이곤 했다. 카뮈는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람을 <이방인>이라 부르고, 그 이방인의 이름을 뫼르소라 이름지었다. “뫼르소(Meursault)는 어원상 죽음(meur=morr)과 태양(sault=soleil)의 합성어”다. 

옛날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난 아담의 후손들은 다 <이방인>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고 더 이상 하나님의 생기를 호흡하지 않는 흙덩어리 같은 <이방인>이다. 카뮈는 <이방인>의 대표로 뫼르소를 내세웠다. 뫼르소는 의심할 여지없는 살인자다.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이유 없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끔찍한 짓이다. 그런데, 

카뮈는 뫼르소를 ‘우리들의 분수에 맞는 그리스도’라고 소개한다. 분수에 맞는 이라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끔찍한 살인지 뫼르소를 그리스도라 부르는 건 과하지 않은가. 카뮈는 우리 분수에 맞는 그리스도가 무엇일지 뫼르소를 통해 제안한다. 

뫼르소는 태양의 빛 때문에 살인을 했지만 핑계대지 않고 꼿꼿하게 죽음을 맞는다. 뫼르소가 범정 검사의 질문에 조금만 비굴하게 대답했다면, 배심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사회통념에 자신을 맞추었다면, 작품 속 프랑스 법정은 아랍인을 죽인 것을 큰 죄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아랍인은 식민지 사람 아닌가. 칼을 들고 있었던 식민지 사람 아랍인을 죽인 게 프랑스법정에선 대수롭지 않은 사건인 것이다.  아랍인은 한낱 <이방인>인 거다. 

그런데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 직후에 여자 친구와 코미디 영화를 보고, 섹스를 하고, 포주와 친구가 되는 따위의 이상한 행적을 확인하고는 사형을 언도한다. 뫼르소는 죽은 아랍인보다 더 <이방인>이라고 법으로 판결한다. 뫼르소는 살인했기 때문이 아니라 솔직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이방인>이지만 솔직한 뫼르소를, 아니 솔직하기 때문에 <이방인>인 뫼르소를 카뮈는 ‘우리들의 분수에 맞는 그리스도’라고 선포한다. 

카뮈는 이 이상한 <이방인> 뫼르소에 관한 이야기를 1942년에 썼다. 2차 대전이 한창일 때다. 5천 5백만 명이 죽어가고 있을 때다. 사람들이 이름으로 기억되지 못하고 숫자로 기록된 채 죽어갈 때, 장례 절차와 장례에 참여하는 태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카뮈는 <페스트>에서 눈물도 슬픔도 격식도 없는 장례를 소개한다. <페스트>로 죽은 후 던져지고 쌓이고 태워지는 시체들을 위한 적절한 장례절차가 있을 수 없듯이 뫼르소는 ‘이러나 저라나 상관없어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거다. 사람이 이유 없이 오로지 태양 때문에 즉 ‘전체적이었으면 싶은 어떤 정의’때문에 죽어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뭐가 중하겠는가. 뫼르소는 다만 솔직했고, 솔직했기 때문에 죽어야 하는 뫼르소는 ‘우리들의 분수에 맞는 그리스도’인 아니냐고 카뮈가 묻는다. 

모든 <이방인>들 중에서 적어도 뫼르소는 솔직하다는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을 보든 보지 않든, 어머니를 모신 안치소에서 담배를 피우든 피우지 않든, 안치소를 지키며 졸든 졸지 않든, 어머니 장례 행렬을 따르며 슬퍼하든 슬퍼하지 않든, ‘이러나 저라나 상관 없’는 것이요,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2차 대전이라는 <페스트> 때문에 5천 5백만 명이 죽어가고 있을 때, 어떤 장례가 옳고, 장례식에서 지켜야 하는 격식이란 무엇인가. ‘이러나 저라나 상관 없’는 것이요,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적어도 뫼르소는 솔직했고, 그 솔직함 때문에 맞이해야 하는 죽음을 회피하지 않았다. 어쩌면 뫼르소는 우리들 분수에 겨운 그리스도다. 다들 뫼르소만 못한 소시민 아니던가. 

알베르 카뮈 묘비 (출처:위키피디아)


카뮈는 그냥 소시민은 아니었다.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다. 1913년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청각장애인이었고 스페인계 하녀였다. 아버지는 포도농장 노동자였다. 아버지는 카뮈가 1살 되었을 때 1차 대전 때 전사했다. 청각장애인 홀어머니 밑에서 카뮈는 가난했다. 학업 연장과 포기의 갈림길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장학생 선발 시험을 치러 합격하고 공부를 이어갔다. 철이 들어선 스승이자 친구인 작가 장 그르니에를 만나 본격적으로 글을 썼다. 기자가 되었고,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고, 작가가 되었고,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였고, 40대 초반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많은 일을 겪었고 높이 성취했다.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다. 이야기 마디마다 카뮈는 <이방인>이었다. 가난했고, 비난받았고, 외로웠다. 카뮈는 죽을 때도 이야기처럼 죽었다. 예약했던 기차표를 호주머니 속에 넣고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알제리 루르마랭에 카뮈의 묘가 있다.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이야기 자체였던 카뮈의 비석엔 아무 것도 새겨져 있지 않다. “Albert Camus 1913-1960” 1913년에 태어나고 1960년에 죽었다. “그는... 살고 죽었더라”(창5:5,8,11,17,27,31) 우리는 다 <이방인>으로 살고 죽을 것이다. 살고 죽었다는 생물연대만 새겨진 작은 돌비로 <이방인>카뮈는 여전히 묻는다. 적어도 솔직하냐고. 분수에 맞게나마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냐고 묻는다. 

함께 읽기 > [문학 속 성경]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행복한 도시

글/ 김영준

민들레교회 목사다. 전라도 광주에서 자랐고, 서울 이문동과 광장동에서 놀았다. 열심히 공부할 걸, 후회하는 중년 아저씨다. 김포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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