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으로 읽는 영화<생일>: 곁이라는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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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당한 이들에게는 곁이 필요하다. 무례하게 침범하지 않되, 무심하게 멀리 있지 않는. 저만치 앞서 있어 주눅 들게 하지 않고, 뒤쳐져 있어 실망하지 않게 하는. 기대어 울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곁은 그런 시간과 거리와 마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일은 곁의 영화다. 곁을 떠난 이와 남겨진 가족들, 그 곁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슬픔의 나무를 베어 집을 짓지 않는다. 대신 슬픔의 숲 속으로 들어가 나무 사이를 거닌다. 그게 최선인지 아는 영화다.

알려진 것처럼 생일은 세월호 사건 이후 유가족들의 이야기다. 세월호 사건으로 아들이 죽고, 빛바랜 사진처럼 무기력한 일상을 살아가는 순남(전도연)과 예솔(김보민)에게 해외에 오랫동안 나가있던 남편이자 아버지인 정일(설경구)이 돌아온다. 아들을 잃었던 상실의 시간 동안 홀로 모든 슬픔을 겪어내야 했던 아내는 남편을 거부한다. 정일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지만, 이해를 구하기엔 상흔이 너무 컸고, 부재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러나 구원은 본디 밖에서 오는 법. 뒤늦게 가장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던 정일에게 한 가지 제안이 찾아온다. 죽은 아들의 생일을 기념하는 모임을 열자는 것이다. 순남은 이년 째 거부하고 있지만, 정일은 이를 받아들인다.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은 사람에게는 또 다른 가해가 될 수 있어 두려운 일이지만, 떠나있던 사람에게는 진실과 마주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라져 버린 가족과의 시간을 늦게나마 속죄와 화해로 채울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서서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깨진 관계의 조각들을 하나 둘씩 주워 담는다. 그리고 아내가 겪었을 고통의 무게가 얼마나 가혹했는지 체감한다. 

예배학자 박종환은 죽음에 대해 공동체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며 예배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예배미학>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유가족에게는 죽은 자의 고통에 함께하지 못했음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 책임감과 서로에 대한 원망이 존재한다. 죽음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으나 개인적 고통은 사회적이고 집단적 원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예배는 이러한 인간의 복잡한 감정이 그대로 공동체와 하나님 앞에 드러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더불어 개인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고 고통을 나눌 때 개인과 공동체는 해체의 위기를 넘어 공동체성이 강화되는 경험을 한다.

영화는 이러한 공동체적 위로를 관객들이 생생히 경험케 한다. 떠난 자를 향한 기억은 모두가 달랐다. 누군가에게는 장난꾸러기 친구였고, 누군가에는 친절한 이웃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밀려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동료들을 먼저 구했던 영웅이었다. 한 때의 추억이 될 운명이었던 각각의 사연들이 한 날 한 곳에서 만나게 되자 새로운 생명의 이야기로 태어나게 되었다. 과거를 추모하는 기일(忌日)이 아니라 새로운 날로 나아가는 생일(生日)이 된 것이다.

슬픔을 당한 이들에게 무언가 서둘러 지어낸 말을 건네지 말자. 슬픔이 된 상황을 완벽히 파악했다고 착각하지도 말자. 슬픔 후에 얻게 될 그 어떤 유익이 생각날지라도 머릿속에서 밀어내자. 곁으로 가자. 귀를 열고 마음으로 보기 시작하자. 앞서지도 뒤서지도 말고 곁에 있자. 슬픔이 우리를 불러들여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까지 그냥 있자. 그래도 모르겠다면 이 영화를 보자. 곁에 머무는 법을 안내해 줄 것이다


성현 목사(기독교영화관 필름포럼 대표, 창조의정원교회 담임)

* 이 글은 국민일보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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