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으로 영화 <악녀> 보기 - 악녀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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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았다면 오프닝에서부터 시작되는 강렬한 액션장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관객을 스크린 속으로 빨아들이는 힘이 대단하다. 일인칭 시점은 정말 놀라운 시도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관객은 영화를 감상하는 자로서가 아니라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복병을 만난 것 같은 충격적인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 뿐 아니라 후반부에 등장하는 오토바이 위에서 진행되는 액션은 영화의 백미 중 백미로 마치 말을 타고 싸우는 과거의 무사들을 현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액션 영화를 많이 본 관객들은 곳곳에서 어느 정도의 기시감을 느껴 몇몇 영화로부터 차용했음을 눈치 챘겠지만, 그래서 비록 액션 장면 전체가 창의적이라 말하기는 그렇다 쳐도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시도들이 많은 건 사실이고, 또 고난이도의 액션장면들을 소화해 냈다는 사실만으로 영화는 칭찬 받을 만하고 또 한국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작품으로 꼽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액션 영화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내용적인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스토리와 액션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기에는 조금 역부족이었을까. 화려한 액션에 묻혀 의미를 구현하는 데에 실패한 영화들과는 달리 그래도 깊이 생각할 만한 이슈는 충분히 제시했다고 본다. 이 글은 바로 이점에 천착하여 쓴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영화는 최고의 액션의 주인공이 여자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그녀가 어떻게 악녀로서 거듭나게 되었는지를 사회비판적으로 설명하려는 의도를 분명하게 각인하고 있다. 물론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진행되고 있어서 일관성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지만, 이야기는 언제나 그녀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을 따라 전개된다. 마지막 한 장면을 향해 모든 것이 수렴한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따라서 영화 이야기의 흐름은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악녀 이미지가 부각되는 지점까지 진행된다. ‘악녀의 탄생이 더 정확한 제목일지 모른다. 그녀가 왜 영웅이 아니라 악녀로 평가되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확실하게 드러나는 그녀의 웃음은 악녀로서 이미지를 굳히기에 충분한대, 관객으로 하여금 후속편이 곧 이어 나타날 것 같은 기대감을 유발한다.

 

(스포일러 있음)

결말에 가서 온전히 밝혀지지만 중국 조선족 출신의 숙희(김옥빈)는 중상(신하균)에 의해 살인병기로 만들어진 존재다. 중상은 아버지가 잔인하게 살해된 뒤에 홀로 남은 그녀가 아저씨라 부르며 따르던 인물이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한 명분이라 하지만 중상은 숙희를 살인병기로 키운다. 숙희는 그런 중상을 사랑하고 그와 결혼까지 한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서울로 온 숙희는 중상이 마약 조직에 의해 살해당하자 혼자서 아지트를 찾아가 그 많은 사람들을 해치운 후에 경찰에 체포된다.

현장을 수사하던 경찰들이 확보한 CCTV에 녹화된 영상을 통해 그녀의 놀라운 능력을 알아본 국가는 특수 임무수행에 그녀를 이용하기로 하고 재교육한다. 숙희는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부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임신 중임을 알게 되면서 아이와의 평범한 삶을 보장해준다는 회유를 받고는 마지못해 수락한다. 10년 후에는 자유로운 신분으로 살 수 있길 소망하며 특수 임무를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그녀를 밀착 감시하는 정보원인 현수(성준)와 사랑에 빠진 숙희는 그와 결혼한다. 숙희는 정확한 사실 관계를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자신의 숙명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그런데 죽은 줄만 알았던 중상은 살아 있고, 자신이 제거해야 할 표적이 되어 나타난다. 심리적으로 대단히 혼란스런 상황이지만, 영화는 이런 상황을 이해할 만큼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플래시백 장면들을 통해 추측하게 할 뿐인데, 종합해보면 이렇다. 중상은 숙희의 아버지를 죽인 장본인이다. 그래서 숙희를 사랑하여 결혼을 했으면서도 더는 사랑의 관계를 지속할 수 없었던 중상은 마약 조직으로부터 중요한 것을 얻어내야 할 상황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숙희를 이용하려 한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 숙희의 복수심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중상은 자신이 마약조직에 의해 처참하게 당해 죽은 것처럼 꾸민다. 숙희는 남편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마약 조직으로 찾아가 마지막 한명까지 제거하고는 경찰에 붙잡힌다. 그녀가 국가의 비밀조직으로 끌려가 재교육을 받아 새로운 임무를 받는 일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런데 죽은 줄로만 알았던 중상이 다시금 나타나 자신의 표적이 되고 있는 현실 때문에 숙희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분명 매우 괴로워했을 것이지만 영화는 그녀의 갈등하는 모습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생략한다. 관객의 상상과 추리에 맡기려는 의도라 할지라도 이점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이에 반해 자신을 저격하려 한 킬러가 숙희임을 알게 된 중상은 현수가 자신의 보스인 권숙(김서형) 부장과 나눈 전화통화를 녹음한 것을 숙희에게 보내 그녀로 하여금 현수의 정체를 알도록 한다. 그 결과 중상은 다시금 숙희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는데, 숙희는 심지어 국가의 조직원이 중상을 암살할 것이라는 정보까지 노출해 그를 위기에서 구해낸다.

그러나 숙희가 숨 가쁘게 오가는 동안에 딸과 현수가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리고 자신을 책임지고 있는 권 부장을 통해 사건의 배후에 중상과 그의 범죄조직이 개입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숙희는 자신을 살인병기로 키운 중상을 상대로 싸우는데, 마지막 액션장면 역시 영화의 백미 중 하나다.

 

이런 질문이 든다. 영화의 제목처럼 그녀는 악녀일까? 아니면 그녀는 그저 자신의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만 그녀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악녀가 된 걸까? ‘이다된다는 동사는 주객의 관계에서 많은 차이를 드러낸다. 관객은 이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질문과 관련해서 생각해볼 때 영화에서 발견되는 특이한 점은 침대 밑에 숨어 있는 어린 숙희가 아버지가 살해되는 끔찍한 모습을 목격하는 장면을 비교적 오래 그리고 상세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장면은 숙희의 복수심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보여주려는 의도로 계산된 것이다. 비록 중상에 의해 인간병기로 키워졌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사실 숙희의 내면적인 동기가 더 크게 작용하였으리라고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 설상가상으로 숙희의 복수심은 다시 한 번 남편 중상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게 살해된 모습을 보고 더욱 증폭되는데, 그 폭발적인 에너지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하는 오프닝 액션 장면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자신을 감시했던 그러나 그 정체를 알지 못했던 남자 현수와 결혼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일이나, 딸의 죽음을 다시 한 번 경험해야 했던 숙희의 복수심은 용암이 분출하듯 분노로 폭발한다. 버스에서 벌어진 마지막 액션은 바로 그 복수심에서 분출되는 에너지를 표현한 장면이다.

 

결국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서 숙희는 동일한 상황에 놓인다. 경찰에 에워 쌓인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숙희는 처음 장면에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처음에는 힘든 싸움을 끝낸 사람으로서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면, 마지막 장면에선 그야말로 악녀 이미지다. 감독은 악녀의 탄생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먼저 떠나보내면서 그들이 끔찍하게 죽는 순간을 바라만 보아야 했던 적도 있었지만, 또한 자기 스스로 죽이기도 해야 했던 숙희는 고통의 끝자락에서 오히려 슬픈 웃음을 웃는데, 여기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앞서 제기했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녀는 악녀일까? 마지막 장면으로 악녀의 탄생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보다 정확한 질문은 이렇게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악녀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존재론적으로 악녀가 아닌 실존적으로 만들어진 악녀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질문과 함께 필자의 관심을 끄는 또 다른 면은 악녀의 탄생에는 여성과 남성 혹은 여성과 사회의 부조리한 관계가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본래부터 악녀가 아니라 악녀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면, 영화에서 그것의 주체는 남성과 국가이다. 영화 속 악녀는 남성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 국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렇게 볼 수 있다면 영화는 분명 현실 사회를 비판적으로 은유한다.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은 이렇다. 여성은 대체 어떤 방식을 거쳐 남성과 국가에 의해 악녀로 만들어지는 걸까? 이 질문과 관련해서 영화에서 제시되는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장면은 관찰이다. 숙희는 자신은 아무것도 기여할 수 없는 상태에서 아버지가 무참한 폭력으로 살해당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다. 이것은 나중에 숙희의 딸이 중상의 조직원들에 의해 현수가 폭력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이나 현수와 함께 딸이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보는 것에서 거듭 반복된다. 숙희의 아이는 사망했기 때문에 악녀로 거듭나는 일이 더는 발생하지 않겠지만, 숙희는 세 번(아버지, 남편을 가장한 시신, 그리고 남편인 현수와 딸의 추락사)에 걸쳐 처참한 시신을 직접 목격해야만 했다. 여성으로 하여금 깊은 자괴감과 절망감을 느끼게 만드는 일이다.

두 번째는 자신을 지켜주고 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잔인한 죽음을 보게 함으로써 뜨거운 복수심을 자극한다. 자신이 아무것도 기여할 수 없는 죽음을 세 번씩이나 본 것이다. 아버지와 남편과 딸의 죽음으로 이어지면서 잊을 만하면 새로운 복수의 상대가 설정이 되어 복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모두에 대한 분노가 공교롭게도 자신을 키워주고 또 이용한 중상에게로 귀착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사회에서 혹은 남성들 중심의 삶에서 철저히 배제될 뿐 아니라 또한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여성의 위치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세 번째는 딸과의 평범한 삶을 미끼로 암살 임무를 수행하도록 요구하는 국가이다. 모성애를 자극하여 여성에게 악의 역할을 강요하는 건 남성이며 또한 국가이다. 여기서 여성은 결국 남성에 의해서든 국가에 의해서든 인격체로 여겨지기보다는 단지 소비되는 존재로 이용될 뿐이다. 악녀의 탄생 배후에는 그녀의 능력을 이용하려는 남성과 국가의 욕망이 있음을 폭로한다.

 

액션 영화에다가 복잡한 스토리라인을 통해 형성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가미하는 일이 쉽지는 않은 일이고, 그래서 스토리가 명료하게 전개되진 않았지만, 그런대로 스토리의 내용면에서나 영상미학적인 면에서 만족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여성이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역할에 관한 영화적인 표현은 얼마나 공감적일까? 숙희를 악녀로만 보려는 것 자체가 이미 남성 편향적인 시각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숙희는 남성에 의해 악녀로 만들어진 캐릭터이다. 여성 관객만이 느낄 수 있고 그래서 남성이 볼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어느 정도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겪는 부조리한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여성은 하나님에 의해 돕는 존재로 만들어졌지만, 그것은 자주 남성의 부속품 정도로 인지되어 왔다. 이 말은 남성의 부속품이나 남성에 의해 이용되는 존재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돕는 배필로서 여성은 오히려 우리를 돕는 분으로서 하나님의 본질을 더욱 분명하게 각인하는 이미지다. 돕기 위해 함께 있는 자를 자신을 위해 이용하는 것만큼 큰 죄가 있을까.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악녀의 탄생은 어쩌면 이런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심판 이미지를 부각하는 건 아닐지 싶다. 청소년 관람 불가


최성수 박사가 본 <악녀>는?   기독교적 가치  (3.5)        작품성   (4.5)      대중성 (4.0)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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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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