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으로 영화 <나는 부정한다> 보기 : 역사 왜곡에 대처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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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확실하다고 여겨진 사실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스스로를 비주류로 자처하는 역사가가 객관적으로 입증되지도 않은 자료에 근거해 그 사실을 부정한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로 여겨진 기록들이 단지 시대의 흐름에 편승한 주류 역사가들의 신념에 따른 결론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역사적인 사실이 졸지에 거짓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진실은 어떻게 지켜지는가? 이 질문은 법정 영화 <나는 부정한다>를 이끄는 핵심에 해당한다. 곧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질문 자체만을 두고 본다면, 대한민국의 현실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고대사는 물론이고 근현대사와 관련해서 주변국들에 의한 역사 왜곡에 대처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주변국들은 차치하고 국내에서도 근현대사를 왜곡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권에 의해 추진된 국정교과서 사태를 통해 드러났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기존의 역사적인 평가를 뒤집으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런 시도는 앞으로도 틈만 나면 계속 나타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역사의 진실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부정한다>는 바로 이런 현실에 놓인 대한민국 국민에게 역사의 진실을 지키기 위한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지를 숙고하게 하는 의미가 있는 영화라 생각한다.


<나는 부정한다>는 홀로코스트의 사실성 여부를 두고 전개되는 법정 드라마다. 홀로코스트를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지만 홀로코스트의 사실성 여부를 두고 전개되는 영화이니만큼 홀로코스트 영화로 분류하기에 부족하지 않다고 본다. 홀로코스트 영화의 의미는 결국 관객이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공감적으로 느끼게 하는 데에 있지만 또한 기억할 수 있도록 재현하는 데에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공감하기에는 부족하지만, 현대적인 맥락에서 그것을 기억하는 또 다른 방식일 수 있다.


영화는 실제 소송 사건에 기초하며, 원작은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드보라 립슈타트(Deborah Lipstadt)가 쓴 “History On Trial: My Day In Court With A Holocaust Denie”이다. 이 글은 이미 법정 투쟁이 끝난 후에 쓴 것이며, 립슈타트와 어빙(David Irving) 사이의 논쟁의 발단은 1993년에 출간된 립슈타트의 책(“Denying the Holocaust”)의 출간이었다. 이 책에서 립슈타트는 어빙을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자로 규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실을 왜곡하고 문서를 조작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어빙은 1996년 그녀와 책을 출판한 출판사를 상대로 역사가로서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영국 법정에 고소하였다.

이 소송 건에서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명예가 훼손되었음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원고인 어빙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영국의 법에 따르면 오히려 피고인인 립슈타트가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했다. 이것은 곧 홀로코스트가 실제로 발생했으며, 가스실이 유대인 학살을 위해 사용되었고, 어빙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실과 문서들이 정치적인 의도에서 조작되고 왜곡되었다는 것 역시 그녀가 입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이 소송은 단순히 립슈타트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빙은 바로 이점을 노리며 치밀하게 계산해 고소한 것이었다. 소송은 홀로코스트가 단지 피해자들의 증언에만 근거하여 재구성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인 사실인지 여부를 판별하는 세기의 문제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재판 결과에 따라 홀로코스트의 역사성이 부정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사실 나치는 전쟁 막바지에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조직적으로 증거물들을 파괴했기 때문에 홀로코스트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과학적인 증거 수집이 부족한 상태였다. 단편적인 증거들과 오직 피해자들의 증언과 기록, 그리고 단편적인 기억만이 남아 있는 현실에서 이 재판의 승리는 과연 쟁취될 수 있을까? 영화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하고 소송 과정을 재현하며 전개된다.


영화에서 특히 부각되는 점은 소송을 준비하는 과정과 재판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이다.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라고 단정하고는 법정에서 그것을 반복한다고 해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에 피고 측 변호인들은 철저히 객관적인 사실에만 집중할 필요를 강하게 느꼈다. 어떤 형태의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해야 했기에 변호인들은 피고인의 인터뷰와 법정 진술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가장 강력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의 증언마저도 사용하지 않았다. 소송은 자신의 확신을 표현하는 장이 아니며 또한 상처받은 감정을 치유하는 일이 아니라는 확신에서였다.

변호인들은 무엇보다 어빙의 책과 일기의 내용을 근거로 오류를 찾아내었고 또한 그가 인종차별주의자이며 반유대주의자임을 입증하였다. 따라서 어빙이 정치적인 의도에서 고의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문서들을 오독하여 자신의 주장을 전개했다는 점에 집중하여 반론을 제기함으로써 결국 소송에서 이길 수 있었다. 영화는 바로 이런 전략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을 부각시킨다.


그동안 홀로코스트 영화에서 흔히 접할 수 있었던 참상을 공감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영화임에 분명하다. 홀로코스트 현장을 방문하여 그 당시의 희생자에게 예의를 갖추는 장면이 있었지만, 그것은 참상을 느끼거나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관건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뜨거운 기억이 아니라 객관적인 증거에 근거한 역사로 기억하는 것임을 말하는 걸까?


한편, 영화의 말미에 드러난 판사의 판결문에서 필자는 역사 왜곡과 관련해서 중요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역사적인 사건을 어떻게 보고 또 기록물들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결국 믿음과 신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어빙이 홀로코스트를 부정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또 각종 문서들을 자기 편의에 따라 해석한 까닭을 그 자신이 반유대주의자이며 인종차별주의자로서 이런 사상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판사는 보았다. 역사를 왜곡한 이유가 믿음 혹은 신념에 따른 결과였다는 판결이었다. 그런 어빙의 논리를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었던 데에는 세계관이 아니라 냉철한 논리였다는 것이 영화를 통해 얻은 교훈이다.


결국 문제는 세계관이라는 말이다. 어떤 세계관을 갖느냐에 따라 사실과 문서들에 대한 이해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팽배한 현실에서 무슨 세계관이냐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이것이 영화가 말하는 핵심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이해와 감정의 관계에서 이해보다 먼저 감정이 작용한다는 사실은 뇌 과학의 연구로 밝혀진 바다. 세계관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체계로 이해의 과정과 비교해보면 현실에선 다분히 비합리적인 체계로 작용한다. 사실을 접할 때 그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기에 앞서 먼저 사실에 대한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 세계관이다. 사람이 문화와 관습, 제도 그리고 교육을 통해 습득하는 세계관은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 왜곡의 문제는 세계관 전쟁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세계관이 작용하여 일어나는 역사 왜곡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영화를 감상하면서 필자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5.18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고, 국정교과서 제작을 시도함으로써 그 정치적인 의도가 폭로되었지만,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역사마저도 왜곡하고 또 문서를 조작하려는 시도가 없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벌어진 위안부 운영 사실에 대한 일본정부의 부정과 왜곡, 그리고 중국의 역사 왜곡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역사의 진실을 지키려고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가? 교과서에도 명시된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하는 대한민국 일부 정치인들과 국민들의 주장에 대해 그리고 주변국들의 역사왜곡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이들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기 위해 우리에겐 얼마나 확실한 객관적인 증거들이 있는가? 그 증거들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가?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세계관이 작용하여 일어나는 역사왜곡의 현실에 대해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해서 그들의 주장에 결정적인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논리적인 대응이 아쉽다.


최성수 박사가 본 <나는 부정한다>는?   기독교적 가치  (4.0)         작품성 (4.0)         대중성 (2.5)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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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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