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
“한 사회를 뒤흔들어 동요시키려면
그 사회에서 가장 불행한 자들의 운명을 개선하는 데에
노력을 집중시켜야만 성공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중에서)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될 것인가? 현재 탄핵 정국과 동시에 대선을 코앞에 둔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이슈이다.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가 어찌되었든 차기 대통령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렇게 기대된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풍자하는 내용을 가진 영화의 제목에 정관사를 붙인 것으로 보아서 잘 알 수 있다. 하기야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으로 나라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니고 또 이런 시국을 바로잡으려 힘을 모아 촛불을 밝힌 국민들의 염원을 생각한다면, 누가 되든 국민의 기대는 자연히 클 수밖에 없고, 그 기대에 부응하는 대통령에게 특별한 기대를 거는 건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차기 대통령이 어떻게 국정운영을 수행하느냐에 따라 영웅이 될 수도 있고 형편없는 정치인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런데 관건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을 뒤 흔들어 바로 잡을 수 있기 위해선 무엇이 가장 큰 관건일까? 감독은 바로 이 질문과 관련해서 나름대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를 들여다보면 검사, 부패한 정치 검사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동안 짐작만 하고 있었던 대한민국 일부 검사들의 권력의지와 권력의 편에 줄을 서기 위한 처절한 노력, 그리고 일면 개 같은 인생을 살면서도 마침내 권력을 움켜쥐고는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력의 칼을 휘두르는 정치 검사들의 치부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다분히 판타지로 제작되었으니 검찰에서 쉽게 건드리지 못할 것이나, 사실 판타지로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영화의 매력이다. 부패한 정치 검사들과 차기 대통령의 자격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영화는 바로 이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
영화의 오프닝은 데칼코마니로 시작한다. 역사 속에서 굵직한 이슈가 되었던 장면들을 데칼코마니로 처리했다.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데칼코마니는 한 쪽 면에 사용된 물감이 다른 쪽 면에 도장 찍듯이 그대로 찍혀지도록 하여 환상적인 모습을 자아내게 하는 미술기법이다. 양쪽 면은 비록 그림의 방향에서는 다르지만 동일한 것이다. 이정도면 대체로 짐작하겠지만, 현실과 영화의 관계를 비유한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영화라도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며, 만일 현실이라면 영화는 그것을 스크린으로 옮겨 놓았다는 의미다. 비록 가상현실이라도 결코 그렇게만 보지 말라는 감독의 암시적인 지침이랄까. 그래서 영화는 가상현실로 독해되든 아니면 현실을 묘사했다고 여겨지든 대한민국 일부 정치검사들의 개 같은 인생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추악한 현실을 그대로 투영한다.
이제 전략을 바꾸지 않으면 국민들은 정치 검사들의 속내를 다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이미 많이 알려진 일이지만, 고급 정보가 영화를 통해 대중화됨으로써 이제는 상식이 되었다. 부패한 정치 검사들의 뒤에는 조폭의 그림자가 늘 따라 붙고, 스폰서들이 줄지어 서 있다. 프레이밍 효과는 물론이고 팩트로 팩트를 덮는 전략을 다 알아버렸다. 왜 유명정치인의 비리가 폭로될 때마다 연예인들의 스캔들이 보도되는지, 그리고 그 뒤에 정치 검사들의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공작하는지도 잘 알게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틀림없이 김기춘과 우병우를 포함한 정치검사들의 민낯을 그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어떤 이슈로 세월호 침몰 사건을 덮으려 했는지, 국민들의 합법적인 시위를 무엇으로 덮으려 했는지, 국민들은 이제 분별할 수 있게 됐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대한민국의 권력을 주물러 왔고 온갖 특권을 누리면서 또 치부하였다. 정경유착으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현실이 되어 사회적인 정의는 사라진지 오래고, 부익부빈익빈의 경제현실은 사회적인 불평등 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착화시키는 과정에서 검찰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음을 영화는 거침없이 폭로한다.
부패한 검사 및 검찰과 대통령의 긴장 관계는 이미 노무현 대통령 시절부터 화제였다. 김대중 정부 때에도 국민은 검찰 개혁을 기대했지만 속수무책이었고, 그래서 국민들은 크게 실망하였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대선공약이 검찰 개혁이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기대는 상당했고 또 임기 초기에 그 실현을 보는 듯 했지만,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급속도로 힘을 상실하여 노무현 대통령 역시 뿌리 깊은 검찰 조직을 끝내 개혁하지 못한 채 운명을 달리 했다. 그 이후 이어지는 두 정권을 거치면서 검찰은 괴물이 되어 버렸다. 권력은 검찰을 이용했고, 검찰은 권력을 누리면서 몸을 키웠다. 이 괴물은 국민의 힘으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존재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 볼 수 있듯이, 비록 힘없는 시민들이라도 힘을 합쳐 맞서 싸우면 마침내 이길 수 있는 그런 존재일 것인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권력과 자본력에 의해 신음당하는 국민들의 운명을 개선하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검찰 개혁은 대한민국을 뒤흔들어 깨워 바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방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지만 김기춘과 우병우에 대한 검찰의 태도를 보면 다소 절망적이다. 사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쥐고 있으니 아무리 정의를 외치며 싸워도 검사의 권력 앞에선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시민의 힘은 진정 좌절할 수밖에 없는 걸까? 한재림 감독은 1000만 촛불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검찰 개혁이라고 생각한 걸까? 김기춘과 우병우에 대해 보이고 있는 검사의 태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아무리 모이고 또 외쳐도 그들은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다. 사실 시민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질문이 제기된다. 대체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 검사의 비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며, 그들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영화를 통해 검사의 비리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잘 알려졌으니, 이제 이 일을 책임질 사람, 곧 현재 대한민국의 구조에서 이 일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 밖에 없다. 그래서 한재림 감독은 검찰의 민낯을 모두 드러내면서 동시에 묻는다.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되어야 할 것인가, 아니 국민은 어떤 공약을 걸고 또 실현할 의지가 있는 사람을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해야 할 것인가? 영화는 바로 이 질문의 배경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또 영화 말미에 가서 이 질문을 관객에게, 국민에게 던진다.
대답은 간단하다. 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든 검찰 개혁이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고 또 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일이라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관건은 대통령 선출에 달려 있다. 진정으로 검찰 개혁을 원한다면, 국민은 검찰개혁을 실현할 의지가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해야 할 것이다. 시민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권력 위의 권력을 누리고 있는 검찰 조직을 개혁할 수 있는 “더 킹”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로써 영화는 대선을 앞둔 대한민국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를 제기했다고 생각한다.
한편, 대한민국의 미래는 진정 검찰 개혁에 달려있을까? 이 질문은 그동안 대한민국이 추구했던 경제회복이라는 가치와 맞서 싸울 필요가 있다. 과연 검찰개혁은 경제회복을 목적으로 둔 정치세력과 맞서 싸워서 이길 승산이 있을까? 과거 MB와 박근혜는 경제 살리기를 화두로 제시하여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사람들이 정치적인 선진화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가치를 두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경제 회복은 차치하고 4대강 사업이며 국정농단이며 해서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렇다고 경제 회복에 대한 의지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쩌면 더 강해졌으면 강해졌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정치 때문에 힘들지만, 사실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어려움은 먹고 사는 문제에서 온다. 그러니 경제회복에 가치를 둘 수밖에 없는 국민들에게 정치개혁 혹은 검찰개혁에 가치를 둘 수 있도록 설득하기 위해 <더 킹>은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 대통령 선거에서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할 지는 미지수다. 정치 후퇴가 경제 후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으면서도, 단지 필요성과 절박함 때문에 다시금 정치 후퇴를 감수한다면, 개가 토해낸 것을 다시 먹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며,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차기 대통령의 조건은 국민의 염원인 검찰 개혁의 의지와 실행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최성수 박사가 본 <더 킹>은? 기독교적 가치 작품성 대중성
최성수 |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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