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으로 영화 <너의 이름은.> 보기 : 관계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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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늘 무엇인가를 추구하며 산다. 종교적인 것일 수 있고, 예술적인 것일 수 있으며, 삶의 욕망에서 비롯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확실한 목적의식이 생기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때까지 늘 갈망하며 산다. 뜻밖의 순간에 발견하기도 하지만, 방황과 실패를 거듭하기도 한다. 불현 듯 만나는 우연한 사건들 혹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것이 정말 자신이 찾는 그것인지를 확인할 단서를 찾으려 노력한다. 갈망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모른 채 사는 건 아는 것 같으면서도 또한 알지 못한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어렴풋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두 세계 사이에 두 발을 걸쳐 놓은 상태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있는 상태, 꿈인지 생시인지 분명치 않은 상태, 그야말로 긴가민가한 상태다.

 

영화 <너의 이름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보았을 이런 애매한 상태를 소재로 삼아 만들어졌다. 특히 이성 관계에 대한 갈망에 천착하여 전개한다. 너와 나 사이의 경계도 모호하고, 꿈인지 생시인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 기억 속에 분명히 들어있으나 현실에서 결코 확인할 수 없는 상태, 이 상태를 감독은 인간관계에 빗대어 내가 너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또 부르지 못하는 상태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 상태를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장르에 담아 최근의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유행처럼 등장하는 시간 여행을 매개로 설명한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2004)<초속 5센티미터>(2007) 그리고 <언어의 정원>(2007)으로 한국에서도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이라 스토리텔링이 그렇게 낯설지 않다. 일본에서는 15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인데, 벌써부터 각종 영화상 후보작으로 예상되고 있을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나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포일러 있음)

도쿄에 사는 고등학교 남학생 타키는 시골에 사는 여고생 미츠하와 영혼이 서로 뒤바뀌는 경험을 한다. 거주지가 몸을 중심으로 설정되어 있으니 몸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영혼이 바뀌었다는 말이 옳다. 몸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다만 의식에서만 차이를 느끼다보니 그들은 서로 꿈이라 여기지만, 결코 꿈일 수 없는 단서들이 즐비하다. 그들이 경험하는 것들은 분명히 현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타키는 더 이상 미츠하와 영혼이 뒤바뀌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되고, 또한 그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증명해 줄 단서들마저도 사라지는 현상을 경험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달라진 현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타키는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현실을 되살려보려 애를 쓴다. 오래 전 운석이 떨어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마을임을 알게 된 타키는 그림과 일치하는 지역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타키는 미츠하가 더 이상 자신에게 나타나지 않은 이유가 몇 년 전에 혜성의 운석이 마을에 떨어져 모든 마을사람들은 물론이고 미츠하가 사망했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과거의 미츠하와 현재의 타키가 서로 소통하였던 것이다. 일본의 종교문화적인 배경을 모르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타키는 미츠하와 연결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을 찾아내고는 과거의 미츠하에게 들어간다. 그리고 재난이 일어나기 전에 마을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다. 갖가지 우여곡절 끝에 미츠하와 그녀의 친구들은 마침내 마을 사람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킨다. 타키가 과거로 돌아가 미츠하는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 모두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한편, 다시 서로의 몸으로 돌아온 타키와 미츠하는 안타깝게도 서로에게 일어난 일은 물론이고 서로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잊고 싶지 않은 사람이고, 또 잊으면 안 되는 사람이지만 서로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진 못한다. 비록 이름은 기억하진 못해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의 흔적들을 통해 그들은 늘 무엇인가를 갈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바쁜 일상에서도, 직장에서 면접을 보는 긴장 속에서도 떨쳐버릴 수 없는 갈망이다. 그 혹은 그녀는 누구이며, 그 갈망은 대체 무엇을 혹은 누구를 향한 걸까? 누구를 만나도 또 무엇을 통해서도 쉽게 해갈하지 못하는 갈망, 오직 서로에게서만 해갈할 수 있는 갈망. 서로를 기억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이 갈망은 대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감독은 인연의 우연성에 맡긴다. 모든 만물은 서로 이어져 있다가도 끊어지고, 끊어져 있다가도 서로 이어지는 운명을 겪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불교적인 세계관이다. 맺어질 인연이라면 언젠가 반드시 서로 만나게 된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관건은 쉬운 해결책에 기대지 않는 것이다. 비록 지루하고 또 힘겨운 여정이라도 충분히 해갈할 수 있는 인연을 만날 때까지 찾고 또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운명적인 만남이 성사될 것을 믿는 것 같다. 인연의 의미와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는 종교문화적인 배경에서 충분히 가능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에서는 비록 불교에서 말하는 형태의 인연을 말하진 않아도, 관계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관계와 관련해서 모든 인간은 누구도 쉽게 해갈할 수 없는 갈망을 갖는다. 이미 창세기의 인간 창조과정에서 나와 있듯이, 인간이 홀로 있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좋아 보이지 않는 상태다. 이것이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갈증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이 갈증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을 만날 때 비로소 해결된다. 그 때 비로소 인간은 서로에게 이름을 불러주는 관계가 된다. 아담은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자신 앞에 나타난 여성을 보고 감탄하며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하고 그녀를 여자라고 부른다. 관계가 맺어지기 전까지는 아직 너의 이름은 무엇인지를 물을 수 없고 또 알 수도 없다. 그러므로 너의 이름은이라는 영화 제목은 관계를 맺기 전의 인간이 서로를 향한 갈망의 표현이며, 또한 관계를 맺은 후에 서로가 서로에게 부르는 이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토록 소중한 관계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제대로 인지되지 못하고 너무 쉽게 이어지고 또 너무 쉽게 끊어지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다.

 

끝으로 국가적인 재난을 대하는 방식은 당시의 상황인식을 반영한다. 이런 까닭에 대한민국의 재난영화들에는 대체로 정치적인 부조리에 대한 인식이 강하게 작용한다. 이와 더불어 사회적으로 반드시 지켜져야 할 가치들이 전면에 등장하는데, 최근에 한국 재난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건 사회적인 정의와 가족 그리고 휴머니즘이다. 가족과 휴머니즘은 세계적으로 공통점이지만, <터널> <부산행> <판도라> 등의 재난 영화에서처럼 특히 사회적인 정의가 중심적인 주제로 부각하는 건 한국이 그만큼 정의롭지 못하다는 인식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국가적인 재난은 정의롭지 못한 사회가 결과적으로 맞게 되는 파국을 은유한다. 정치와 경제, 정치와 검찰, 권력과 돈, 그리고 돈과 권력과 성()이 서로 이어진 것 같아도 결국엔 끊어짐을 면치 못한다는 메시지다.

 

이에 비해 잦은 지진으로 재난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일본은 어떨까? 끊어지는 것 같아도 결코 끊어진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은 서로 이어져 있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숱한 재난으로 끊어질 수밖에 없는 각종 인연을 경험해야만 했던 수많은 일본인에게 충분한 힐링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너의 이름은.>은 재난을 대하는 일본인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국가적인 재난과 시간여행 그리고 인간의 근원적인 갈망을 날실과 씨실로 삼아 엮어 이야기로 풀어낸 감독의 상상력과 연출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최성수 박사가 본 <너의 이름은.>은?   기독교적 가치     작품성      대중성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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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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