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아브르>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르 아브르>(아키 카우리스마키, 2011, 드라마, 전체)


 

로마 식민 통치기에 가난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사는 삶이며, 그래서 물질적으로 가난은 정의로운 삶의 한 방식이었다. 산상수훈의 첫 번째는 이런 삶에 긍지를 갖고 가난을 자랑했던 유대인들을 염두에 둔 예수님의 꼼수다. 꼼수라 함은 당대의 이념에 일격을 가하는 말씀이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은 물질의 가난이 아니라 마음의 가난에 있다는 가르침은 당시의 유대인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는 말씀이기도 하다.

가난한 마음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이며, 철저히 타자로서 살아야 했던 예수님과 그의 말씀을 갈망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이런 마음에서 나온다. 아니, 하나님은 바로 이런 마음을 가진 자들을 통해서 세상에서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신다. 삶의 소망과 능력은 물질의 부유함과 가난함에 있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드러내려는 의지와 실천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영화 <르 아브르>는 성서의 이런 가르침을 구체화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작품이다. 영화의 느낌은 마치 전쟁으로 황폐해진 도시 이탈리아 로마를 배경으로 당시 ‘가난한 사람’의 현실을 보여주는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1948)을 연상케 하는데, 관객과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평점을 받으며 2011년 칸 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감독은 항구 3부작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는데, 10년 안에 항구를 중심으로 하는 또 다른 두 개의 영화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벌써부터 기대되는 까닭은 영화로부터 받은 감동이 그만큼 크다는 말이겠다.

영화는 프랑스 서북부 지역, 대서양을 접하고 있는 작은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프랑스의 여느 도시들에 비해 별로 주목할 것이 없는 곳이다. 영화는 이곳의 한 가난한 마을과 이곳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이곳에서 일어난 한 난민 소년의 탈출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구두닦이 마르셀에게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 자신에게 과분하다고 생각하는 그는 아내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간다. 가끔은 사람들에게 천히 여겨지기도 하지만, 귀가 후 동네 선술집에서 마시는 한 잔의 포도주와 함께 인생의 재미를 만끽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에게 두 개의 사건이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하나는 아프리카 가봉에서부터 엄마를 찾아 영국으로 가려다가 프랑스로 밀입국한 흑인 소년 이드리사를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내가 치료가 가능하지 않은 병에 걸린 일이다. 물론 그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아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마르셀은 여론의 주목 속에 경찰에 쫓기고 있는 이드리사가 영국에 있는 엄마를 찾아 안전하게 떠날 수 있는 방법을 마을 사람들과 협력하여 모색하는데, 마르셀은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부족한 돈을 채워 넣는 희생정신을 발휘한다.

요즘같이 화려한 비쥬얼을 추구하는 시대에 소박한 화면구성과 자연스런 촬영, 그리고 배우들의 전혀 과장되지 않은 연기로 가득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색다른 경험이지만, 무엇보다 영화 안의 세계가 오늘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지극히 공감적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 병원에 가지 않고 있다가 결국 불치의 질병으로 판정받는 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고, 평생 남의 이름을 갖고 살아야 하는 외국인 이주자, 그리고 부자 나라로부터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아프리카 출신의 밀입국자들의 삶을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타자들과 그들의 환경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비록 유쾌하지 않은 환경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라도, 필자는 전혀 마음의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이유는 스크린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그다지 내색하지 않고 돌보는 마을 사람들, 직업적인 소명보다 긍휼에 더 큰 비중과 가치를 둔 경찰, 그리고 합리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들, 곧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라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기적 같은 일들을 보면서,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를 떠올리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닐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자, 곧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와 스스로를 동일시하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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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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