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6일 토요일 아침 9시부터 좋은영화관 필름포럼에서 'KPI 평화 씨네토크'가 있었다. 'KPI 평화 씨네토크'는 평화통일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형성하고자 한반도평화연구원에서 3년 여 진행해오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그 내용을 녹취해 게시한다. 지난 시간 함께 보았던 <액트 오브 킬링>과 이번 <침묵의 시선>이 모두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인도네시아의 쿠데타 이후 학살 현장을 증언 중심으로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점에서 같지만, 전작인 <액트 오브 킬링>이 가해자 중심의 좀 더 화려한 화면으로 만들어졌다면, <침묵의 시선>은 피해자의 시선에서 그려낸 정적인 작품이다.
참고
네이버 스페셜 리포트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두 편의 다큐멘터리 비하인드 스토리" 보러가기
※ 영화소개
1965년 인도네시아 군부정권 대학살의 기억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람리’라는 이름은 곧 학살을 의미했다. 그는 비밀리에 사라졌던 100만 명의 사람 중 유일하게 목격당한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알고도 모른척 숨죽여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람리’의 또 다른 이름은 침묵이자 망각. 그러나 그의 동생 ‘아디’는 50년 만에 형을 죽인 살인자를 찾아가 그 때의 이야기를 묻기 시작하고, 가해자들은 누구보다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자신이 저지른 소름 끼치는 살인을 증언한다.
.
※ 참여자
토론 오동진(영화평론가) / 사회 전우택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연세대 교수)
전우택 원장(이하 전)
<침묵의 시선>은 영화관에서 개봉했지만, 군과 경찰의 협박으로 상영이 취소되는 사태가 여러 번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무료로 접근을 가능하게 해서 인도네시아에서 30만 명 이상이 봤고 계속해서 보게끔 했습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이하 오)
지금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조코 위도도’인데 굳이 한국과 비교하면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영화가 나와서 30만 이상이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인도네시아가 위도도라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고, 형식적이나마 직접 민주주의를 성공시키고 그러한 궤도로 들어가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인데 그만큼 좋아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위험을 감수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변화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30년, 40년, 50년 그냥 세월이 흘러갈 수밖에 없고. 예술작품이 제일 먼저 저항할 수 있지만, 공적 논의가 이루어지거나 박물관, 기념관이 만들어지는 건 30년 정도가 지나야, 소위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의 정상적 작동이 시작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영화를 보고 떠오른 질문들 중 하나는 가해자 쪽에서 “세월이 지났는데 왜 상처를 다시 여냐”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언뜻 들으면 맞는 이야기인데 정말 그럴까요?
오펜하이머 감독은 이 영화를 찍을 때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비슷하게 생긴 두 얼굴, 가해자 아버지와 딸이 함께 나온 장면에서 딸이 “나는 전혀 몰랐고 가족처럼 지내자”는 장면을 찍을 때를 꼽았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여기서 나오는 가해자, 피해자는 모두 종교적입니다. 가해자는 빨리 예배 드리러 가야 한다고 면담을 그만둘 만큼 종교적이고, 공산주의자들이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죽이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것으로 종교가 작동합니다. 반대로 피해자들은 언덕으로 도망쳐서 살아남은 사람이 기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우리가 아니라 신이 복수해달라고 합니다. 종교가 두 집단에게 작동하는 작동기제가 다르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내재적 관찰에 대해 앞서 이야기했지만, 내 시각만이 아니라 다른 시각으로 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으면, 종교는 모든 것을 초월한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종교조차 자기 수준에서 이용하는 인간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미묘함을 보게 됩니다.
관객(이영준 교수. 심리학 박사. 연세의대)
성폭력 가해자, 학교 폭력 가해자 등 가해자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해자들과 관련된 치료적 접근에서 중요하게 연관된 주제가 몇 가지 있는데, 하나는 인지구조와 자기 인식에 따른 인지구조, 또 하나는 자존감, 또 하나는 피해자 공감. 이 세 가지가 서로 밀접하게 상관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가해자들이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부인하거나 합리화하는데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인지구조를 왜곡하고, 피해자에 의한 것이라고 합리화하지 않으면 자신이 나쁜 놈이라는 걸 인정해야 하므로 세 가지가 맞물려 있습니다. 가해자 교육과 치료의 차원에서 초반에 인지의 왜곡, 부조화를 해결해야 치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할 때 치료가 시작된다고 보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그것을 요구하면 가해자에게 무장해제를 하라는 말이고, 그들은 다른 사람의 잘못이고 자기 자신의 문제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으므로 도리어 치료 과정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가해자로서 너의 문제를 직시하고 실토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치료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사회에서 벌어지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회복에 대한 것을 접근할 때, 정죄하는 분위기, 그들로 하여금 더 움츠러들고 방어하고 경계하게 만드는 것들이 좋은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대화의 장이나 자기 인식의 변화에 있어서 각성시키려는 시도들, 가해자를 참여시킴으로써 인식하게 하려면 실제로 사회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오 49 대 51처럼 역사 인식이 양분되어 있는 것은 맛사지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쉬운 말로 역사를 가르치고. 자유주의 교과서, 공산주의 교과서가 아니라 역사를 다양하게 풀어놓으면 되잖아요. 팩트에 있어서 대단한 차이가 아니거든요. 누가 그것을 구성했느냐에 따라 담론화 시키고 논란을 만드니까 그러는 것 같고요.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역할은 예컨대 정치나 거대한 국가적 무언가의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무형의 살풀이가 됐든, 터치를 느꼈을 때 그것을 토로하잖아요. 그림을 보든 무엇을 하든 무장해제, 마음의 문을 열어야 같은 피해자를 만나서 울다가 가해자를 만나서 용서를 구하기도 하고 자기 변명도 할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분위기를 숙성시킬 필요가 있는데 우리 사회가 아직 그런 단계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걸 예술이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쿠바를 다녀왔어요. 쿠바에서 한국영화제가 열린다고 해서 갔는데, 수교가 안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19살 쿠바 아이가 K-POP을 부르는 정도가 아니라 심수봉 노래를 또박또박 부르는 거예요. 심수봉 노래가 왜 좋니? 하니까 ‘한’이라는 표현을 못 쓰고 가슴이 뛴대요. 그렇게 만들어주잖아요. 거기서 한국 영화 다 보고 있어요. 부패 경찰 이야기를 다룬 <끝까지 간다> 마지막 장면에 어마어마한 돈 더미가 나오거든요. 쿠바가 국가 사회주의잖아요. 쿠바 관객들에게 열화와 같은 박수가 나오는데, 한풀이를 하는 거예요. 쿠바가 지금 아주 잘 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가서 느낀 점이 뭐냐면, 어쩌면 그게 맞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정치적 신념을 갖고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 위에 있고요 그 밑에 인민, 국민들은 노는 거예요. 제일 맞는 나라는 노는 공산주의. 노는 공산주의적 이념과 신념을 갖고 있는 청렴하고 깨끗한 지도자가 있고, 그 밑에는 노는 거예요. 좀 모자라도. 쿠바 사람들은 놀아요. 살사를 추는 사람들을 어떻게 억압해요. 통제 못해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보셨잖아요. 그 재즈 추는 사람들을 어떻게 통제합니다. 그러니까 인민들은 놀고, 위에 신념을 갖고 있는 이른바 소셜리스트들이 깨끗하고 청렴하게 나라를 이끌어 나간다면 그게 파라다이스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소셜리즘이 기독교 이념과 많이 맞닿아 있잖아요.
지금 쿠바가 돈이 없어도 교육과 의료가 최고잖아요. 그래서 젊은 애들이 낮에는 의사하고 밤에는 택시기사하고 그러거든요. 자존심이 강해요. 교육을 많이 받았잖아요. 한국 사람들이 자존심 강하잖아요. 어려서부터 고등교육을 받았잖아요. 배웠기 때문에 자존심이 강하거든요. 저는 그게 인적자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베네수엘라의 우고차베스가 쿠바에 기름을 계속 대주고, 쿠바는 의료와 교육을 무상으로 보내줬거든요. 그런데 우보차베스가 서거하면서 기름이 떨어지고, 물도 부족하고 그래서 어렵습니다. 한국에 돌아왔더니 드는 생각이 쿠바가 사람들이 사는데 인생의 만족도가 더 나은 것 같아요. 우리는 삶의 만족도가 거의 최하위입니다.
전 지금 오 선생님의 고민이 사회 전체의 고민과 맞닿아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이영준 선생님 좋은 말씀 주셨는데 제주 4·3사건 갖고도 느끼는 게, 그러면 경찰이 사과해야 하나. 그건 우리 사회에서 있을 수가 없는 얘기에요.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투쟁했던 민중의 영웅들인데, 그러면 공산주의가 옳았다는 얘기냐고 물으면 이건 불가능한 싸움이 됩니다. 일부 공산주의 남로당 계열에 의해 움직인 부분도 있었지만 과잉진압에 의해 진짜 무고한 2만 몇 천 명의 양민들이 죽었던 사건이라고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인정할 때만 해답에 접근이 시작돼요. 그런데 양쪽이 다, 공산주의자가 없었다거나 경찰 측에서도 죽인 것이 다 공산주의자들이라고 주장하고 양민 학살이 없었다고 하면 끝까지 대화가 안 되는 거예요. 그 엄혹하고 혼란스러웠던 시대 속에서 유감스럽게도 그때 거기 두 가지가 다 있었다는 것을 서로가 인정할 때만 대화가 시작되게 되어 있거든요. 이것은 단선적 사고를 갖고는 불가능합니다. 화해라는 것, 새로운 역사에 함께 하는 것은 단순한 지적 수준만이 아닌 이것을 훨씬 넘어서 차원이 다른 세상 속으로 생각이 들어갈 때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그걸 만드는 능력이 아직 너무나 낮다고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모여서 복잡한 영화를 보면서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죽어봤자 2만 5천 명 죽었다고 난리고, 사실 광주 사태는 아무리 쳐도 현장에서 그 당시 죽었던 사람은 300명이 안 되는데, 세계적 학살 수준에서 보면 규모면에서 아주 작은 사건이거든요. 그런데 외국은 기본적으로 단위가 100만이 넘어가는 일이 너무나 많았던 거예요. 아르메니아 학살, 터키 쿠데타 났다고 하지만, 학살이라고 하면 단위가 100만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그들의 아픔과 고통의 문제에 한국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면 숫자를 갖고 따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한국 사회 문제에 대해 얼마나 깊이 숙고했느냐에 따라 달려있고 해결을 위한 우리들의 독특한 방법이 인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오 저는 평생을 종교 없이 살았습니다만, 그게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 아닙니까. 한 영혼을 구하는 것이 인류를 구하는 것, 작은 우주를 구하는 게 큰 우주를 구하는 것 이런 거겠죠. 남영동 고문했던 곳이 경찰청 인권센터에요. 거기서 일하는 경찰들과 제가 좀 가깝습니다. 거기서 인권영화제를 해요. 경찰들이 영화를 직접 만들면서 연기도 해요. 같이 밥 먹고 술 먹으면서 그네들이 이야기했어요. 경찰들 마음도 똑같다. 그런데 경찰청장이 사과하면, 공권력이 무너지고 질서가 무너진다는 거예요.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죠. 민간인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 경찰, 공복은 국민 단 한 명이라도 지키는 것이다. 단 한명의 목숨과 인권이라도 지키려고 끝까지 지키는 게 공복이고 공무원이다. 자기가 공무원이고 경찰이라면 사수의 정신, 데드라인의 정신을 지키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 단 한 사람에 대한 숭고한 인권에 대한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열 사람을 지키고 백 사람을 지키고 역사적인 문제를 어떻게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저는 그 대화의 자리가 굉장히 유용했어요. 가능성을 봐요. 50대 이상과는 대화가 안 돼도 30대, 40대 초반 친구들은 대화가 가능하고요. 피 터지는 논쟁을 하기보다는 얘기를 듣고 귀를 열고 하는 차원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국 사회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는 거죠.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정치 공학만 내세우는 거예요. 인생은 사회는 어쩌면 심플한 겁니다. 대통령이 가서 경찰청장이 가서 마음을 다해 누워있는 사람 손 잡아주면 돼요. 그러면 해결할 수 있어요. 국가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대통령이 사과하면 끝까지 사과해야 한다고 매우 심플한 걸 복잡하게 생각하니까 문제입니다.
대통령의 문제는 국가만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가 임포텐트(impotent)의 시대라고 생각해요. 불임의 시대. 대통령이 연애나 사랑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국가만 생각하니까. 그런데 그게 국가를 생각하는 것 같지가 않아요. 차라리 사람을 사랑하라고. 남자를 사랑하면 그 남자 때문에 남자가 더 잘 살기위해서 국가를 더욱 윤택하게 만들 거 아니에요. 한 명을 사랑해야 열 명을 사랑하고 백 명을 사랑하는 거 아니겠어요. 작은 우주가 만들어져야 큰 우주가 만들어지죠. 만날 거대담론만 생각하면 어떡해요. 구체적인 일상들을 회복해야죠. 저는 그래서 불임의 시대라고 생각해요.
씨네토크 중. 왼쪽이 전우택 원장, 오른쪽이 오동진 평론가.
전 만날 콘퍼런스만 하다가 영화평론가와 시간을 가지니까 훨씬 더 따뜻한 상상력이 끝없이 펼쳐지는 체험이 즐겁습니다. 오늘 이렇게 좋은 토론자를 모시고 좋은 시간을 가지게 되어서 즐겁고요. 몇 가지 광고를 드립니다.
첫째는 KPI에서 9월 5일(월) 오후 2시부터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CBS와 공동으로 현 정부와 차기 정부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정책 제안이라는 프로그램을 갖습니다. 전 KPI 원장인 윤영중 교수님 등이 주제발표하시고 토론하십니다. 지금 사드를 포함한 한반도 상황이 어느 때보다 아주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프로그램을 하나 할 꺼기 때문에 주변 분들 많이 모시고 오셔서 들으면 도움이 될 자리라고 생각하고요. 계속 시리즈로, 11월 17일에 CBS와 KPI가 통일과 사회통합이라는 주제를 갖고 같은 포맷의 프로그램을 갖습니다. 그날은 제가 기조발제를 하고 임성빈 교수님이 한국 교회가 통일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른 좋은 교수님들이 논의에 함께 하실 겁니다. 그래서 9월 5일과 11월 17일에 시간을 비워주시고 함께 하신다면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KPI가 창립 10주년이 내년 2월입니다. 10주년 기념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고요. 홍정길 목사님이나 김동호 목사님, KPI와 깊은 관련을 맺고 계셨던 목사님들과 함께 한국 교회와 한반도 통일에 대한 대토론회를 가질 계획입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한반도평화연구원 바로가기 www.koreapeace.or.kr
◆ 문화선교연구원의 소식 받기
* 페이스북 www.facebook.com/cricum << 클릭 후 페이지 '좋아요'를,
* 카카오스토리 story.kakao.com/ch/cricum << 클릭 후 '소식 받기'를 누르시면 새롭고 유익한 글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게 시 글 공 유 하 기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밴드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