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션>을 보고 - 인간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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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마션>


최성수



감독 리들리 스콧 | SF | 12 | 2015

 

영상 기술의 발달로 영화적인 표현은 과거에 비해 훨씬 자유로워졌다. 영화적 재현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그동안 개인의 상상력에 국한된 이야기들은 마치 현실처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영화는 현실 경험을 강화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현실의 지평을 확장시켜 준다. 실제로 그런 느낌을 받고 있고, 또 현실 변화에 미치는 영화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충분히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특별히 영화 예술의 현실 변혁 능력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SF 영화는 대체로 과학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지지만, 최근의 영화를 보면 오히려 과학적인 상상력을 자극하고 심지어 과학적인 연구를 주도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과학 역시 본질에 있어선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겠지만, 또한 과학적인 검증 과정을 거쳐 제작함으로 영화의 핍진성을 높였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란 생각을 한다. 예컨대 근자에 개봉된 <그래비티>, <인터스텔라>, <엑스 마키나>, <채피>, 그리고 <인사이드 아웃> 등은 과학적인 지식에 영화적인 상상력이 덧붙여져 만들어졌는데, 영화 개봉과 함께 수많은 과학적인 담론들을 촉발하였다. 관건은 인류가 영화적인 현실을 경험함으로써 무엇을 얻어내느냐다. 영화적인 세계로만 남게 할 건지, 아니면 그것의 현실화를 위한 동기로 삼을 것이냐 하는 질문이다. 이를 위해 관건은 무엇보다 영화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한편, 인간을 성찰하는 방식에서 영화만큼 다양한 매체가 있을까? 시나리오의 근간이 되는 소설이 더 다양하다고 말할 수 있으나, 적어도 대중적인 파급력에 있어서 소설은 영화를 따라잡지 못한다. 영화적인 기술 향상이 가져오는 유익은 인간을 성찰하는 방식을 확장시켜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 성찰의 한계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에 있는데, 영화는 컴퓨터 이미지 생산 (CGI, computer generated imagery) 기술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인간을 다양한 환경 속에 놓고 관찰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현실에선 가능하지 않은 인간에 대한 관찰을 가능하게 해준다. 단적으로 말해서 영화는 인간을 다양하게 실험한다. 곧 현실에서 다만 가설의 형태로 혹은 상상으로 존재하는 인간을 영화는 자신의 방식으로 구체화하고, 영화적으로 구성된 인간과 그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의 현실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 영화에서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어느새 관객의 현실 경험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영화는 새로운 인간 캐릭터를 주도한다.

 

엄밀히 말해서 영화적으로 구성된 인간은 아무리 가설에 근거한다고 해도 인간에 대한 정보에 있어서 새로운 것을 담지하고 있다기보다는 기존의 인간 이해를 새롭게 조명하도록 해준다. 영화는 결국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어내는 데에는-결코 불가능하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분명 한계가 있다. 오히려 시대적인 인간이해를 반영할 뿐이다. 이것은 영화를 통해 인간을 이해할 때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다.

 

SF 영화의 소재에 있어서 우주는 이미 여러 영화들에서 사용되었는데, 인간을 지구 밖으로 옮겨 놓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동기들은 매우 다양했다. 외계인과의 싸움을 목적으로 우주로 나서며(<스타워즈>), 지구를 구하기 위한 노력이었고(<인디펜던스>),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얻기 위한 가능성을 실험하는 것이기도 했다(<아바타>, <프로메테우스>). 지구에서 이뤄지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하는 과정이었고(<그래비티>), 시공을 초월하는 가족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인간을 지구 밖으로 보내기도 했다(<인터스텔라>). 가난한 자들에겐 가능하지 않은 삶의 환경을 누리는 부자들을 형상화하기 위해 지구 밖의 인공위성에서의 삶을 보여주기도 했다(<엘리시엄>).

 

앤디 위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 <마션> 역시 인간을 지구 밖 행성, 곧 화성으로 옮겨놓고 인간의 어떠함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우주를 소재로 한 다른 SF 영화들과 다른 점은 영화제목이 말하고 있듯이 화성인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화성인으로서 살아야 했던 지구인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인간이 어떤 존재임을 다시 한 번 환기한다.

 

지구와 가장 가까우면서도 지구보다 태양에서 멀리 떨어진 화성은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못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화성에서의 삶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 가능성을 지구에서 실험할 정도로 화성 탐사는 인간에게 미래를 위해 매력적인 시도로 여겨진다. <마션>은 화성에 대한 지구인의 관심을 반영한다. 그러니 <마션>은 과학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던 관심을 대중화시키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로 화성 자체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고 탐사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1년 넘게 화성인으로 살아야 했던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는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 아니라 대원들과 함께 화성 탐사를 위해 머물던 중에 모래 폭풍을 만나 홀로 화성에 남게 되었다. 그가 사고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대원들은 워낙 시급한 상황이라 시신을 수습하지도 못한 채 급히 화성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무인도에 표류하여 생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할 때, ‘화성판 로빈슨 크루소라고 말할 수 있으나, 마크가 직면한 화성의 환경은 로빈슨보다 더욱 열악하다. 물과 산소도 없고, 아무 생명체도 살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4년 후 다음 화성 탐사선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식량이며 물과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구조될 가능성은 제로다. 화성의 중력만 없으면 우주에서 홀로 유영하며 살아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환경에서 마크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무인도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가 했던 것처럼 마크 역시 화성에서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지구에서 습득한 지식과 문화들을 총동원한다. 심지어 화성의 토양에 인분을 섞어 감자를 재배하는 데에 성공한 것은 화성을 점령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는 일이었다. 지구로부터 구조대가 오지 않으면 그의 생존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진다. 그러므로 그가 구조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구와의 접속을 통해 살아 있음을 알리는 일이었다. 영화는 이점을 매우 비중 있게 다룬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마크 자신이 먼저 알아낸 것이 아니라 지구에서 위성으로 화성을 관찰을 하는 중에 그가 살아있다는 증거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인간이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존재임을 각인시켜 주는 장면이다.

 

사실 영화 이야기는 대부분 화성에서의 삶과 생존을 위한 노력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이것은 재난과 관련된 이야기 구조상 화성에 홀로 남겨진 마크에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오히려 인간이 더 이상 살아갈 희망조차 없는 환경에 처해있을 때, 그는 어떻게 구조될 수 있었는지에 포인트를 두고 있다. 그럼으로써 영화에서 화성은 지구 환경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삶의 조건을 은유한다. 이것은 영화의 말미에 에필로그 형태로 구성된 장면, 곧 마크가 화성에서 지구로 귀환한 후에 우주인 양성을 위해 행한 강의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영화 감상의 포인트는 화성인으로서 생존의 노력이 아니라 인간이 척박하고 황폐해진 환경에 놓여 있을 때, 곧 절망적인 상태에 있을 때 구원의 가능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에 유념하여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수치의 돈을 투자하고 또 국가를 초월해서 세계 도처에서 도움의 손길을 제시하는 등의 장면은 현실에서 너무 멀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중국의 역할을 부각시킨 것도 다분히 중국시장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의아하기도 하고 또한 다소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영화적인 상상력을 통해 다만 그런 일에 대한 인류의 염원과 미래를 엿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부정적인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으로 독해할 수도 있다. 곧 인간을 통한 인간의 구원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포기해서는 안 되며, 그런 구원의 노력에 인류의 미래가 있다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인간의 미래는 인간이 서로 돕는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데에 있다. 영화가 구현하고 있는 인간은 어려운 환경에 놓인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돕는 존재다. 인간은 서로 도울 때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사회 전 분야에서 나타나는 양극화 현상을 현실로 살로 있는 우리가 유념해야 할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만일 이점에서 인류의 미래를 본다면,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기대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돕는 자로서 우리와 관계를 맺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돕는 자로 살도록 부르셨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나지 않고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말한다면, 바로 돕는 자이다. 그리스도인의 사역의 핵심은 세상이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들을 돕는 것이다.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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