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치플랜팅] 교회의 미래3- 생존을 위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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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미래3] 생존을 위한 조건



성석환 교수(장신대)


올 초 본원에서 발표한 문화선교트렌드에서 건물 없는 교회, 처치 플랜팅의 새로운 트렌드[바로가기] 제시되었습니다. 예배당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교제임과 동시에 주님의 몸이며 제자 삼으라는 선교적 사명을 받아든 공동체라는 교회론의 조명이 일어나고, 진정한 교회를 향한 새로운 형태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모두가 교회의 위기를 말하고 교세가 줄어들 것을 걱정하지만, 그 가운데 새로운 형식의 교회가 개척되고 있다는 현상은 본질을 향한 갈망이 여전하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에 문화선교연구원에서는 오늘의 문화 상황을 짚고 본질로 돌아가 교회의 의미와 존재 의미를 신학적으로 성찰, 장차 다가올 미래 교회의 방향성에 대해 짚어보는 연재 기사를 기획했습니다. 

교회의 미래1 / 기성 교회들의 위기와 변화를 위해

 교회의 미래2 / 시대의 표징, '읽기(discerning)'와 '되기(becoming)' 사이에서

 교회의 미래3 / 생존을 위한 조건 [현재글]


미래에도 교회는 생존할 수 있을까이 질문에 답하기가 만만치 않다. 한국교회 일부에서는 여전히 부흥을 외치고 있긴 하지만, 부흥은 고사하고 생존을 염려하는 이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우선 각종 지표가 그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더 교회에 가지 않는다. 성경과 신앙의 권위가 개인의 삶에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순위에 들지 못한다. 교회에 속한 이들조차 습관적이고 의례적인 수준에서 교회를 갈 뿐, 특별한 의미는 사라져간다.

교회의 부흥을, 그리고 목회의 성공을 숫자나 건물의 규모로 평가하는 수준은 이제 넘어섰다고 해도, 웬만한 교회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병리적 현상은 교회의 변화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업처럼 교회를 운영하는 일은 이제 상식적인 것이다. 목회자는 경영자처럼 군다. 교회의 리더들은 마치 이사처럼 행세하고, 간혹 알려지는 교회 성장이 있다해도 그것은 대부분 회심된 이들이 아니라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옮겨다니는 이들로 인한 것이다.



가나안 성도와 비종교인들

 

교회는 교회를 떠나가는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 민감한 것 같다. 속칭 가나안 성도100만이나 된다고 하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이유와 사정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가나안 성도들은 기성 교회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하고 나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다시 교회로 복귀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섣불리 하는 이들을 만나게 되면 오히려 그쪽이 준비가 덜 됐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보다 더 걱정스러운 현실이 있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집을 나간 이들보다 아예 집이 없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갤럽의 <1984-2014 한국인의 종교> 조사에 따르면 2014년 현재 '불교:개신교:천주교:기타'의 비율이 '22:21:7:0'이다. 그런데 비종교인이 나머지 50%가 된다. 같은 조사에서 개인의 삶에서 종교의 중요성을 묻는 질문에는 1984년 불교가 88%였으나 2014년에는 59%, 천주교는 97%에서 81%, 그리고 개신교는 97%에서 90%로 떨어져있다. 종교 인구의 증감도 중요한 수치이지만, 사실 동일 신앙군 내의 충성도 또한 중요한 지표가 될텐데, 비종교인구의 증가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 안에서도 예전과 같은 충성도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더 결정적인 것은, 비종교인들에게 호감가는 종교를 물었는데, 기독교의 호감도는 최하위(::=25:10:18)이며, 여기서도 호감가는 종교가 없다는 응답이 46%이고, 10-30대로 특화해서 살피면 기독교에 대한 호감도는 현저하게 떨어진다. 이는 2004년에 비해 더욱 강화된 특징이다. 이 상황에서 부흥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은 북미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2007-2012년 조사된 LifeWay Research의 결과에 따르면, 회의론자들과 무신론자들을 포함하는 비종교인들은 15.3%에서 19.6%로 상승했다. 최근 조지 바나와 데이비트 키네먼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교회 밖의 사람들을 조사하여 Churchless라는 보고서를 출판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최근 6개월 내 예배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이들과 교회와 전혀 상관 없는 이들을 포함하는데, 이들의 비율은 43%에 달하며, 90년대 초에는 10명 중 3명 정도였으나 지금은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된다. 두 사람은 이제 미국에서 교회에 출석하는 이들이 비주류가 되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교회 밖의 사람들이 교회 밖에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회의 때문이라고 제시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예배에 참석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들의 삶에 교회의 종교생활이나 예배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북미 전체에서 나타나고 있다

 

"'가나안 성도들의 탈출기가 의미 있으려면, 그들의 광야 40년의 순례길이 필요하고,

그 시기에 그들은 진정으로 가나안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그들이 어디로부터 나왔고, 누가 그들을 인도했는지를 기억하는 훈련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갈릴리의 사역으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증언자들이 되기 위한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교회를 향한 여정들

 

가나안 성도들을 다시 복귀시키겠다는 어떤 전략이나, 교회 밖 사람들을 다시 교회로 초청하겠다고 제시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 ‘가나안 성도의 담론을 이끄는 이들은 대부분 그들 스스로 대안을 찾고 자신들의 공동체를 새롭게 꾸리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진단한다. 기성교회에서 복귀한들 자신들이 제기했던 질문의 답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조지 바나가 제시하는 대안은, 예컨대 교회 밖 사람들은 교회의 전통적인 예배나 종교생활보다는 그 교회가 하는 사회봉사나 지역봉사 프로그램에 동참하거나 가정의 대화자리에 초청하는 등에 더 호응이 크다는 점을 들어 소모적인 전도행사나 미디어 선교를 자제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틀린 이야기들이 아니다. 더 적절하고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서는 모두 필요한 조언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필자는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방법론으로 해결될 사태가 아니라고 본다. ‘가나안 성도들의 탈출기가 의미 있으려면, 그들의 광야 40년의 순례길이 필요하고, 그 시기에 그들은 진정으로 가나안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그들이 어디로부터 나왔고, 누가 그들을 인도했는지를 기억하는 훈련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갈릴리의 사역으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증언자들이 되기 위한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교회 밖 사람들은 더 좋은 교회나 더 좋은 예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교회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존재의 의미가 있는지 확인하기를 원한다. 세상을 위해 교회가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다. 후기세속사회의 종교담론을 이끌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자들 조차 지금은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마당이다. 물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나 깊은 신앙심의 발로는 아니지만, 세상이 그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나쁜 조건이 아니다.

지금 새로운 교회의 실험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교회를 표방하고, 선교적 교회를 주장하기도 하며, 공간에 매이지 않고 전통적인 방식도 벗어 버리고 문화적 유연성을 높이며 등장하는 다양한 교회의 형태들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실험들이 대안이 될 수 있으려면, 다시 갈릴리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스도가 어디 계신가?”를 묻기보다는 그리스도가 누구와 함께 하시는가?”를 묻고, 교회 역시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교회를 떠난 이들이나 교회 밖에 있는 이들 모두가 제도와 형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이상을 담은 제도적 공동체를 다시 세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무교회주의자나 재세례파 운동의 파격과 급진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21세기의 네트워크 사회에서 하나님 나라와 만인을 향한 해방과 자유의 구원 사역은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도시와 지역 사이에서, 경계와 경계들 위에서 더 절실하게 요청될 것이다.

새로운 교회들의 여정은, 누구와 함께 하는 교회가 될 것인가? 주님이 하신 것처럼, 이 시대에 가난하고 소외되고 억압받고 배제된 이들과 함께 하는 교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주류가 되기 위해 끊임 없이 자신의 욕망을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이들과 함께 할 것인가? 하나님의 편에 서기 원한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원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정직한 것이다. 새로운 가나안을 향한 여정은, 다시 갈릴리로 가는 여정일 때, 진정으로 새로울 것이다. (이번 기사를 끝으로 성석환 교수의 '교회의 미래' 기획연재는 마지막입니다. 다음 달에 다른 연재로 만나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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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환 교수는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와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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