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은 판단 종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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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도덕적 판단자가 된 기독교인


 CARA JOYNER

(원문 바로가기)

 

마하트마 간디는 나는 예수는 좋아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내가 사는 도시의 경계 바깥쪽에는 커다란 광고판이 하나 있다. 하얀색 캔버스에, 크고 검은 글씨로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고 써있다. 다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관련된 투자 문구 하나, 혹은 혜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그 어떤 언급도 없다. 단지 믿지 않는 자들을 모욕하는 성경구절만이 있을 뿐이다.


전 세계가 기독교인들을 보고 있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들을 보고, 교회의 광고판과 자동차 범퍼에 붙인 스티커들을 읽는다. 그 외에도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많은 것들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정죄의 무게감에 짓눌린다. 그러한 비난 속에 초대는 없다. 뉴스피드 라인에 끝없이 이어지는, 수동적 공격성을 보이는 싸움들 사이에는 어떠한 사랑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어져온 수많은 믿음의 유산들(정죄의 말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지 않다. 세상은 기독교인을 사랑보다는 심판의 이미지로 그린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라 위선자이며, 마치 바리새인처럼 여긴다.

기독교인에게 세상 문화는 종종 믿음의 가치와 충돌한다. 이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역사적으로 믿음을 도전받는 세대가 지금이 처음이 아니며신학의 경우도 그렇다. 고대의 수많은 문화와 관습들이 오늘날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비판과 정죄의 성경 구절들 역시 변하지 않았지만, 시대가 변했으며 문화가 달라졌다는 이유 등으로 미처 예상치 못한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작금을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다음 세대에 닥칠 일들에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할 첫 번째 세대가 되었다.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세상을 향한 예언자적 역할에 충실해 단지 옳은쪽을 선택해 말했을 뿐인데, 이러한 모습은 교회가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정작 와 닿지 않는다. 오히려 기독교인들끼리만 동의하는 신앙의 감각을 강화해왔을 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성()적인 이슈에 대해 설교한다. 그러나 사회 전체가 아닌 교회에만 이야기할 뿐이다.

내 편지에서, 음행하는 사람들과 사귀지 말라고 여러분에게 썼습니다. … 

밖에 있는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심판해야 할 사람들은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악한 사람을 여러분 가운데서 내쫓으십시오.”

(고린도전서 5:9,12-13, 새번역)

 

기독교인은 마치 세상과 분리된 것처럼, 그들에게 성경의 원리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할 어떠한 권한도 없다. 하나님의 구속사에 집중해 세상 문화의 한가운데에서 성경의 원리를 드러낼권한을 부여받았을 뿐이다그렇다면 기독교인이 권한을 부여 받지 않은 역할을 넘어서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문화에 참여하는 태도로 신념과 목적이 있는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예수님의 모습에서 그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시고 친밀한 대화를 나누셨다


출처 The Messiah for Pariahs: God Eats With His Enemies


만일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신앙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신앙이 있더라도 동의하지 않는 것들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나눈다면, 인터넷 공론장은 지금의 모습과 같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대면해서 이야기 나누어야 할 것들을 관계에 무책임해질 수 있는 소셜미디어 이용으로 대체하곤 한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을 향해 손쉽게 타이핑하고 단언하는 말들은, 눈앞에 앉아서 그의 눈을 마주 대하며 입으로 내뱉기에는 어려운 말들이다. 때로 토론이 험악해질 때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리에서 잠시 일어나 토론하는 사람들과 함께 음료를 마시는 등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편, 만약에 어느 누구도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곧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예수님의 사랑과 연민은, 사람들의 회개에 앞선다

영화 <선 오브 갓> 스틸 컷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의 전제조건이 바른 믿음 또는 행동은 결코 아니다종교지도자들이 간음한 여인을 돌로 처형하기 위해 길거리로 끌어냈을 때예수님은 여인에게 어떤 변화가 있기도 전에 가장 먼저 여인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셨다.(요 8:3-11)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인들은 돌을 들고 있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과 같을 수도 있고여인을 보호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간음한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예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예수님은 문화로부터 숨지 않으셨다


Duccio di Buoninsegna, The Calling of the Apostles Peter and Andrew, c. 1308/1311, tempera on panel, Samuel H. Kress Collection


예수님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찾아가 그들을 만나시고, 함께 먹고, 이야기하고, 와서 함께 하자고 초대하셨다. 해안가에서 예수님은 멀리 떨어져 있는 베드로를 향해 큰 소리로 나를 따라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너는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외치지 않으셨다. 베드로를 관계 안에 초대하시고 예수님의 이야기 안에서 하나의 역할을 제안하셨다.(5:1-11)


 


예수님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둘러싸여서 그들이 거주하는 마을에 캠프를 만드시기보다, 무엇이 위급한가를 아시고 계속해서 움직이셨다. 예수님의 목표는 무리들 주변에 머물러 지지받고 세력화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 받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회복과 치유였다.

만일 주변 사람들과의 논쟁과 토론이 없다면, 어떻게 기독교인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소통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무엇으로 알려질 수 있을 것인가?

만일 조감도로 세계를 바라본다면, 전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의 이미지가 사랑이 아니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세상에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전하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즈 칼럼리스트인 David Brooks는 최근에 보수적인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적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어떠한 사회경제적 혜택도 받지 못하는 지역으로 찾아가 가족의 안정적 양육을 도울 수 있도록 조직을 이루는 것. 지원이 드문 곳에 지역사회를 세워가는 것. 실직과 영적 빈곤이 상호 강화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고 도울 수 있도록 하는 것. 일상에서 초월적인 부분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라고 했다.[원문 보기]





출처 Hayward Wesleyan Church 홈페이지


만일 기독교가 진실로 근본적인 사랑과 정의를 열렬히 추구하는 이들로 알려진다면 어떠할까? 그렇다면 베드로가 자신의 배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좇았던 것처럼, 와서 보라는 초청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이제 심판의 말씀들에 대하여 사도 바울의 구절로 출발점으로 삼을 때가 되었다. 바로 이 구절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믿음직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씀입니다.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딤전 1:15, 새번역)

 

CARA JOYNER프리랜서 작가대학 학생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며 Scrubs(미국 메디컬 시트콤 드라마) 보는 것과 초콜릿 먹는 것을 좋아한다. CARA JOYNER에 더 많은 정보를 보려면 그녀의 블로그 트위터 @cara_joyner를 방문하면 된다본 기사를 이용할 경우 원작자는 'CARA JOYNER', 번역자는 '문화선교연구원'으로 표기할 수 있다본 글은 비상업적 목적으로 한국적 상황과 독자들을 고려해 번역 및 수정되었다저작권은 ‘RELEVANT’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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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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