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심야식당>를 보고 - 식사를 통해 삶을 소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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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통해 삶을 소통하다

<심야식당>

 

최 성 수






심야식당 (2015)

Midnight Diner 
8
감독
마쓰오카 조지
출연
코바야시 카오루, 오다기리 조, 타카오카 사키, 타베 미카코, 키쿠치 아키코
정보
드라마 | 일본 | 120 분 | 2015-06-18




아베 야로의 원작 만화 <심야식당>ⓒ미우


<심야식당>은 아시아 최고의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아베 야로' 작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채널 W에서 드라마로 제작한 것인데, 2014 하반기에 총 10회에 걸쳐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만화의 인기는 드라마의 인기로 이어졌고, 드라마의 인기는 영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영화 <심야식당>은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이야기로 전개되지만 기본적인 골격에선 드라마의 극장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식당에 고정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없어 만화나 드라마를 보지 않고 영화를 처음 접하는 관객들에게는 아마도 조금은 낯설게 여겨질 것이다. 심지어 마스터에 대한 소개조차도 영화에는 없다. 그러나 영화는 캐릭터 중심이 아니라 마스터가 운영하는 심야식당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음식과 더불어 전개되는 이야기가 중심이기 때문에 굳이 자세한 설명이 없다 해도 영화 내용을 공감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만 영화의 심층적인 이해를 위해 식사의 다양한 의미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식사는 일상이면서 생명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기본적인 욕구 충족 행위다. 이 땅에 생명 탄생과 함께 먹는 행위는 시작되었고, 앞으로 생명이 남아 있는 한, 아니 예수님의 말씀대로 천국에서도 먹고 마시는 일이 계속된다면, 아마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인간은 생명 활동을 위해 필요로 했던 먹는 일을 지역과 환경의 특성에 따라 혹은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음식 문화를 개발해왔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식사는 더 이상 단순히 생명 활동을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 식사에 함의된 혹은 부여된 의미는 상황과 사람과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작용한다.

2009년에 고양아람누리 미술관에서 식사의 의미-여덟 가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전시회가 열린 적이 있었다. 8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식사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곳에서 매우 깊은 인상을 받은 부분은 사형수들의 마지막 식사를 담은 사진이었다. 이생을 떠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먹는 음식은 물론이고, 그것을 먹는 표정까지도 담겨져 있는 사진을 보고 식사의 의미를 깊이 묵상해본 기억이 새롭다. 이 사진을 계기로 필자는 제자들과 함께 나누었던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에 대해 이전 보다 좀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살펴보게 되었다.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식사는 그저 끼니를 때우는 의미에 불과하지만, 사실 식사는 생명을 받아들이는 행위이며 생명을 만드는 행위라고 한다. 재료를 선택하고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삼가야 하겠지만, 끼니를 때우는 방식의 식사행위는 생명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결코 적합하지 않다. 생명을 받아들이고 또 나누는 시간인 만큼 식사에선 삶의 이야기를 소통하는 시간이어야 할 것이다.

안타까운 일은 식사에 대한 이런 기본적인 관점을 뒤집는 일이 소비지향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엇을 소비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달리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이 소득 수준에 맞지 않는 명품 소비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이런 경향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음식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음식으로 바벨탑을 쌓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특정 장소와 유명 쉐프와 특별한 음식 그리고 유명인사와 함께 하는 식사와 연결되면서 식사는 부와 신분 과시를 위한 방법으로 전락되었다. 어디서 누가 만든 음식을 누구와 함께 또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사람의 품격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천박한 자본주의의 폐단이지만, 사실 식사를 부와 신분과시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다. 루이 스트롱은 권력자들의 만찬이란 제목의 책에서 상류계층에서의 과거 식사와 식사문화가 어떠했는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부와 신분을 과시하고 상류계층 간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소비지향 사회가 잘못된 과거를 재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그런 경향이 없지 않으니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밥 한 번 같이 먹자.”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식사는 단순히 먹는 행위만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식사는 사귐과 소통의 방식이다. 함께 식사한다 함은 서로 소통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 자체로 사귐이고 또한 관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맘에 들지 않는 사람과는 함께 하는 식사하지 않는다. 다수 인원이 참석하는 경우라면 혹 모를까 단 둘만의 식사는 결코 이뤄지지 않는다. 식사에는 음식이 얼마나 고가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은 정성을 갖고 만들었는지, 그리고 음식을 나누면서 얼마나 진지하게 서로 소통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소통할 의욕이나 기회가 없기도 하지만, 때로는 소통할 사람조차 없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식사의 중요성은 숙지하고 있다 해도, 그것을 함께 공유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소외되고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준비된 식당은 어디에 있을까?




작품 심야식당은 바로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일본에서 도쿄라는 도시는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곳이다. 오가는 사람들도 뜸한 뒷골목에서 분주함을 모두 내려놓고 잠들 시간인 12시에 열리는 식당이 있다. 이름 하여 심야식당이다. ‘마스터로 불리는 식당 주인의 영업 철학은 모든 것이 고요해지는 시간에 오픈해서 아침 7시까지 영업하면서, 몇 가지 고정메뉴 이외에 손님이 원하는 대로 가능한 한 요리해주는 것이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야쿠자, 게이, 스트립댄서, 노처녀, 가출소년, 프러포즈가 거절당한 사람, 도시 노동자 등이 식당의 손님들이다. 손님들이 다양한 만큼 그들이 원하는 음식도 다양하고 또 삶의 이야기도 다채롭다. 영화는 음식을 매개로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먹방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다. 식당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내놓는 음식마다 갖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다. 식사는 단지 먹는 행위가 아니라 기억하고 추억하며 삶을 나누는 행위임을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 마스터의 심야식당엔 만남이 있고, 과거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 있으며, 서로 다른 지역 출신이고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의 어우러짐이 있고, 상처 받은 사람들에겐 치유가 있고, 회복이 있으며, 사랑과 이별과 분노 그리고 슬픔과 기쁨이 있다. 어떤 손님이라도 서로 말 걸기를 주저하지 않고, 자기가 먹는 음식을 서로 나누기를 또한 주저하지 않는다. 기쁨을 함께 나누고, 슬픔도 함께 나눈다. 마스터의 음식 솜씨와 다소 관조적인 태도도 사람을 끄는 이유이겠지만, 공간이 넓지 않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엄밀히 말해서 일본에서 이런 분위기의 식당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두 번에 걸친 여행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혼자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칸막이를 설치하는 식당이 있는 곳이 바로 일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현실 때문에 작품이 만들어졌고, 이런 정서를 잘 아는 일본인이 자성의 분위기에서 작품에 깊은 관심을 보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다시 말해서 색다른 이미지의 가공물을 통해 개인주의적이고 서로 분리된 삶에 익숙해져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60-70년대 분위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그 가능성을 시험해보려는 의도가 매우 강한 영화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교회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매 주일 식사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동체적인 식사 혹은 애찬의 의미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과연 교회는 얼마나 처음의 정신을 보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당회원은 당회원끼리, 교역자는 교역자끼리, 성도들은 서로 잘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 먹는 일은 다반사고, 오후 예배를 위해 점심 끼니를 때운다는 생각을 할 정도의 분위기로 가득하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는 생각하기 쉽지 않다. 예배 후 이어지는 교회의 일을 위해 서둘러 식사를 해치우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식탁에는 삶을 나누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행사와 업무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식사 당번으로 봉사하면서 혹은 심지어 식사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성도들이 적지 않다. 교회 내 끼리끼리 문화를 확인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교회 내 식사는 더 이상 애찬이 못되고 있다. 하물며 그런 곳에서 어떻게 치유와 회복이 이뤄질 수 있을까. 비록 심야식당은 아니라도 누구라도 교회에 와서 음식을 나누면서 더불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작품 가운데 Tischrede(식탁 담화)로 알려진 것이 있다. 식탁에 둘러 앉아 음식을 먹으면서 신앙의 문제에 관해 나눈 가벼운 대화인데, 오늘날의 독일의 목회자들에게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목회적인 전통이 되었다. 식사를 통한 삶의 소통, 문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회복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성수 │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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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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