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 인정 욕구의 결국 - 영화 <폭스캐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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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구의 결국

<폭스캐처>

(베넷 밀러, 드라마/미스터리, 청소년관람불가, 2014)

 


최성수 목사(신학박사/영화평론가)








폭스캐처 (2015)

Foxcatcher 
7.9
감독
베넷 밀러
출연
채닝 테이텀, 스티브 카렐, 마크 러팔로, 안소니 마이클 홀,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정보
미스터리 | 미국 | 134 분 | 201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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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를 뒤흔든 충격적 살인사건, 그날의 미스터리가 밝혀진다!

레슬링 선수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는 금메달리스트이자 국민적 영웅인 친형 데이브 슐츠(마크 러팔로)의 후광에 가려 변변치 않은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에게 미국 굴지 재벌가의 상속인인 존 듀폰(스티브 카렐)이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는 자신의 레슬링 팀, ‘폭스캐처’에 합류해 달라고 제안한다. 선수로서 다시 없을 기회라고 생각한 마크는 생애 처음으로 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폭스캐처 팀에 합류하고 존 듀폰을 코치이자 아버지처럼 따르며 훈련에 매진한다. 

 하지만 기이한 성격을 지닌 존의 예측불가능한 행동으로 둘 사이에는 점차 균열이 생기고 존이 마크의 형인 데이브를 폭스캐처의 코치로 새롭게 초청하면서 세 사람은 전혀 예상치 못한 비극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 네이버 영화 정보



영화는 199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일어나 미국 사회를 경악케 한 살인 사건을 다룬다. 재벌 기업가 억만 장자인 듀폰이 1984LA 올림픽 레슬링 부분 금메달리스트 데이브 슐츠를 살해했다. 관심은 살해 동기에 집중되었다. 정신분열 혹은 지나친 코카인 남용에 따른 부작용이 거론되었으나, 실제적인 동기는 베일에 가려진 채 듀폰은 수감 중 생을 마감했다.

이런 미스터리한 사건을 영화로 제작하면서 베넷 밀러 감독은 무엇을 의도했을까? 흥미 있는 사건이라 여겨 재현하려 했을까. 아니면 나름대로 살해 동기를 추측해 밝혀내려 했을까? 영화를 본 후에 갖게 된 두 개의 질문이었고, 필자는 후자에 초점을 두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다섯 단계(Hierarchy of Need)를 말한 매슬로(Abraham H. Maslow)의 이론이 떠올려졌기 때문이다.

 





베넷 밀러 감독은 우리에게 <카포티>(2006)<머니볼>(2011)로 잘 알려져 있다. <카포티>에선 완벽한 추리소설을 위해 살인자와의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은 소설가 카포티의 집념을 담았고, <머니볼>은 야구 선수 등용에 있어서 직감을 사용하지 않고 철저한 확률적인 계산에 의지해 전과 비교할 수 없는 성적을 이뤄낸 감독의 모습을 그렸다. 두 작품 모두에서 베넷 밀러는 처음부터 끝까지 목표를 향해 일관된 집념을 가진 사람을 그려냈는데, <폭스캐처>에서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듀폰의 살인 사건을 영화적으로 재현하면서 사건의 중심에 있는 세 사람 곧, 마크와 데이브 그리고 듀폰의 욕망을 상호 연결시켰다. 다양한 형태의 욕망이 공존하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파열음을 심리 연기로 표현하였다. 듀폰과 마크, 마크와 데이브, 듀폰과 데이브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 관계가 자아내는 긴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고조되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가 된다. 놀라운 사실은 특별한 효과를 자아내기 위한 연출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오직 등장인물의 캐릭터 연기만으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특히 사건의 전모를 기술해나가면서 감독은 두 가지에 관심을 집중한다. 하나는 듀폰이 알게 된 돈의 힘이다. 어린 시절 유일하게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엄마에 의해 돈으로 매수된 사실을 뒤늦게 알았는데, 이를 통해 듀폰은 돈의 힘을 실감하였다. 이 경험은 듀폰으로 하여금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인생의 성공과 조국에 대한 충성 등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확신하며 살았다. 그가 많은 단체의 후원자로서 사회 저명인사가 된 것이나, 마크와 데이브를 영입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자신이 후원하는 레슬링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돈의 힘 때문이었다.

 

다른 하나는 듀폰의 모자 관계에서 비롯하는 듀폰의 욕구불만이다. 모친은 듀폰이 레슬링을 하려는 요구에 반응하지 않았다. 레슬링을 천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자아실현을 통해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늘 좌절을 경험해야만 했다. 듀폰은 결국 자신의 꿈을 접고 조류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듀폰은 심리적으로 엄마로부터 독립하지 못했고, 레슬링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해 그의 마음에는 언제나 욕구불만으로 가득했다.

이로써 감독은 듀폰의 내면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두 개의 욕구를 보여주었는데, 다시 말해서 인정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다. 듀폰은 신체적으로는 어른이었으나 내면은 여전히 어린아이였다.

 

더 이상 자신의 꿈을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한 듀폰은 폭스캐처 팀을 구성한다. 레슬링에 대한 자신의 꿈을 이룰 뿐만 아니라 엄마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실현하려고 했다. 심지어 어려서 가지고 놀던 기차를 버리면서까지 자신이 성장했음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두 개의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적합한 자를 물색하던 중에 듀폰은 이미 세계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슐츠 형제를 개인 연습장으로 불러들일 계획을 세우지만, 형 데이브의 거절로 일단 마크만 영입한다.

 

마크 역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면서도 늘 형의 그늘에 머물러 있는 것이 불만이었다. 마땅한 후원자를 얻지 못해 경제적으로도 허덕였다. 후원자가 필요했던 마크에게 듀폰의 제안은 천혜의 기회였다. 둘은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관계가 되었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나갔다. 그러나 둘 사이 관계는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는데, 결정적인 계기는 레슬링 코치를 자처하며 그에 합당한 지위와 권위를 인정받으려는 듀폰의 욕망이 레슬링에 관한한 마크의 자존심을 심하게 해치는 행동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마크에게 실망한 듀폰은 데이브를 새로운 코치로 영입한다. 이로써 형으로부터 독립하려던 마크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고, 마크는 듀폰과의 어색한 관계에서 벗어나려 한다. 형과 함께 떠나길 원했지만 데이브는 어려서부터 안정된 삶을 살지 못한 트라우마 때문에 가족에게 안정된 삶을 보장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며 듀폰 곁에 안주하려 한다.

 


듀폰과 마크, 마크와 데이브, 그리고 듀폰과 데이브의 관계는 각각 인정과 성공과 안정을 추구하는 욕망 때문에 서로 충돌한다. 그러나 데이브를 영입했어도 마크는 88 서울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이루지 못했고, 올림픽 후 마크는 듀폰을 떠났으며, 데이브 역시 듀폰이 원하는 대로 따르지 않았다. 듀폰의 욕구는 실현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데이브가 자신을 멘토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듀폰은 확인해야만 했다. 듀폰은 비디오에서 데이브가 자신을 멘토로 여긴다고 말하는 장면이 빠져 있음을 알게 되었고, 살해 사건은 그 후에 발생하였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추측하는 살해 동기는 분명 좌절된 욕구다. 듀폰은 자신의 인정욕구가 좌절됨으로 무시를 당했다고 느꼈고,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신념이 무너졌다. 이 때문에 내면에 깊은 상처를 입었으며, 레슬링을 통해 이루려던 자아실현 욕구마저 좌절감을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입은 상처에 성숙하게 대처하지 못한 듀폰은 결국 살해욕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감독의 이런 추리는 미국 심리학자 매슬로의 이론에 기반을 둔다.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다섯 단계로 분류하였는데,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소속과 애정에 대한 욕구, 자기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등이다. 매슬로에 따르면, 이들 욕구는 차례대로 진행한다. 상위 단계의 욕구를 성취하기 위한 동기가 부여되는 조건은 하위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는 것이다. 자기존중의 욕구는 인정욕구를 말한다. 인정욕구가 좌절당했을 때 사람들은 무시당함을 느끼고 깊은 상처를 입는다. 듀폰의 살해는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은 사람이 존중받지 못하고 오히려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분출된 분노를 통제하지 못한 결과였다. 통제되지 않은 인정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가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무섭게 작용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성경적인 인간이해는 인정욕구와 자아실현 욕구와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관점을 제시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성경에서 보는 인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인정받고 또 사랑받고 있는 존재이며, 인생의 목적을 자아실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둔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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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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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 굉장히 제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논리적인 글이라 처음 도입부에 신학연구웡이란 소개에 비해 합리적이구나 감탄하며 읽었고요. 제 주변엔 교회 다니며 (신이 아니라) 목사나 장로회가 쉽사리 결론짓는 '기독교'나 '성경'을 맹신하는 사람들만 있거든요. 하지만 좀 아쉬웠던게 글 마지막 결론은 그 사람들 하고 같네요. 최소한 저런 두리뭉실한 결론보다는 그 하나님의 영광이란 것의 형태에 대해 신자들만이라도 이해하기 쉬울법한 성격적인 예시를 들 필요가 있었다 생각합니다. 제가 믿는 신이라는 존재는 욥기의 결말인 (인간에게 바라는게 뭔지 알수조차 없다는) 불가지설을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인격신을 주체로 보느냐 범신론으로서 현상을 신으로 보느냐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이란건 굉장히 다른형태로 구현되거나 인간 따위가 이러쿵저러쿵 할 대상이 못되어버리는 법인데 저렇게 두리뭉실하게 결론 내곤 생각하기 싫어하는 기독교인들 홀리면서 헌금이나 털어먹는건 주변에 흔하디 흔한 목사들이 다 하는거거든요. 욕구에 관한 글이니 이런 내용으로 결론짓겠습니다. 글로 자아실현 욕구를 달성하시고 싶으셨다면 좀 더 온전한 결론을 맺으셔야겠고, 신앙으로 달성하고 싶으셨다면 성경 구절을 '접목'하는 결론을 습관화하하시는게 좋을거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하나님은 글쓴이분리 뭘 하시든 이미 세상을 창조한거 만으로 영광스러워서 더는 증명될 필요도 없고 하나님에 대해 그런식으로 일컫는거 자체가 하나님 입장엔 모욕이겠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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