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 영화 <쎄시봉>을 보고 - 이것은 ‘쎄시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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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쎄시봉이 아니다

<쎄시봉>

(김현석, 드라마/로맨스, 15, 2015)

 

 최성수 목사(신학박사, 영화평론가)






쎄시봉 (2015)

C'est Si Bon 
5
감독
김현석
출연
김윤석, 정우, 김희애, 한효주, 장현성
정보
로맨스/멜로, 코미디 | 한국 | 122 분 | 201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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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재현하는 방법에서 사극과 복고풍 작품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사극은 역사를 조명하고 해석하면서 집단적인 무의식을 자극한다. 현실에 되새겨볼 가치와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도 재현까지 생각하진 않는다. 이에 비해 복고풍 작품은 역사가 아니라 과거의 삶과 분위기 그리고 이야기를 추억하며 어느 정도 현실적인 재현을 겨냥한다. 둘 다 비록 그 시대로 돌아갈 수 없지만 심적으로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해도, 사극은 추억이 아니라 다만 해석이 관건인데 비해, 복고풍 작품은 해석보다는 우선적으로 추억을 자극한다. 이런 점에서 <쎄시봉>은 복고풍 영화이다. 시대를 해석하기보다는 추억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어려서 말로만 들었던 무교동에 위치한 음악 감상실 쎄시봉(‘매우 좋다는 뜻)60-70년대 청년 문화를 주도했던 곳 중에 하나였다. 조영남, 이장희, 송창식, 윤형주, 양희은, 김세환 등 유명 가수들이 바로 이곳 출신이다. 이흥원 선생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곳에서는 노래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요구에 따른 즉석 콘서트도 마련되었다고 전해진다. 시낭송과 문학에 대한 토론도 열려 당시 청년 문화의 산실이었다. 때로는 정치 강연장으로도 활용되어 정치인들의 방문도 빈번했다고 한다. 낭만은 물론이고 철학과 정치가 자유롭게 소비되었던 곳이었다. 유신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영화는 당시의 비인권적 법제도(장발 단속, 미니스커트 단속, 야간통행금지 등)가 빚어낸 몇 개의 코믹한 해프닝만을 보여줄 뿐, 당시를 정면으로 비판하진 않는다. 다만 쎄시봉을 문 닫게 만든 직접적인 원인으로 연예인 대마초 사건을 다루면서 어느 정도 유신정치의 폭력성을 우회적으로 비판할 뿐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금지곡들에 얽힌 이야기는 모두 생략되었다.



hankyung.com



제작 소식을 접할 때부터 설레는 마음 때문에 영화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왜냐하면 쎄시봉 출신의 가수들의 노래와 그들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달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중년 관객들의 관심 역시 동일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한편으로는 영화적인 완성도가 높고 또 감미로운 추억의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대와 전혀 다른 내용 전개에 실망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쎄시봉이란 제목의 미끼에 낚였다는 인상을 받았다. 쎄시봉 혹은 쎄시봉 출신의 가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절 젊은 청춘의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쎄시봉 멤버들의 실제 이야기도 아니다. 가상 인물들의 로맨스다. ‘쎄시봉은 단지 20대 사랑의 열정과 기쁨과 슬픔을 담고 있는 배경일 뿐이었다. 쎄시봉과 이곳 출신 가수들에 대한 약간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크게 실망할 뿐이다. 쎄시봉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관객은 <쎄시봉>에 대한 다른 기대감을 갖고 감상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야기는 듀엣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트윈폴리오가 원래는 트리오로 시작했었고 또 그들에게 뮤즈같은 여성이 있었다는 사실에 기반을 둔다. 곧 트리오가 왜 듀엣으로 활동하게 되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인데, 이것에 집중하면서 영화는 쎄시봉 출신의 몇몇 가수들의 노래를 매개로 청춘 남녀의 가상적인 로맨스를 지향한다. 엄밀히 말해서 스웨덴 출신의 인기 그룹 아바음악의 노랫말에 따라 한편의 드라마로 만들어진 <맘마미아> 같은 영화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다시 말해서 당시 쎄시봉 출신 가수들이 불렀던 노래의 노랫말을 가상적인 인물 근태(정우, 김윤석)와 자영(손효주, 김희애)의 사랑 이야기로 풀어내었다. 특히 트윈폴리오의 웨딩케이크를 듣다보면 경쾌한 리듬에 담긴 원곡의 가사와 달리 왜 그렇게 슬픈 의미를 가진 노래가 되었는지 궁금해지는데, 영화는 바로 이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고 있다. 캐스팅에서 심혈을 기울인 흔적은 출연한 배우들과 실제 인물들 사이에서 높은 싱크로율을 통해 분명해진다.


요즘 대중문화의 경향은 복고풍이다. 세대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7080 세대를 위한 문화가 생산되었지만, 특히 50대 이상의 삶을 내용으로 하는 작품들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고 또 흥행하고 있다. 7080 음악 이외에도 영화에서는 <국제시장><허삼관>이 대표적이지만,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응답하라시리즈가 있다. 복고풍의 작품들에 특별한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중문화는 본질적으로 대중적인 관심과 상품적인 가치를 지향한다고 생각한다면, 과거를 추억하는 일이 그만큼 대중들의 관심에 부합하고 또 시대의 화두로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겠다. 앞서 나가기도 바쁜 때에 왜 과거를 추억하는 것일까? 문화 심리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과거를 갖지 않는 세대는 없다. 다만 과거를 향유할 문화가 없었거나 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과거를 추억하는 문화가 있다 함은 과거 세대와 달리 현 세대에게 그만큼 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심적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는 사실을 의미한다한편, 과거를 추억하는 일이 현재를 벗어나는 일탈의 한 방법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온고지신, 곧 옛것에서 오히려 새것을 배울 수 있듯이 혹시 과거를 추억하면서 현재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사회 경제 문화적인 측면일까, 아니면 정치적인 측면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관객의 몫이라 생각한다그런데 지나치면 미치지 않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과거에 대한 지나친 향수는 현실에서 미래를 위한 가능성이 희소해졌다는 사인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복고풍이 유행처럼 소비되는 대중문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암울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짐을 느낀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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