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 익숙한 것과 이질적인 것의 만남 - 영화 <허삼관>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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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과 이질적인 것의 만남

<허삼관>

(하정우, 드라마, 12, 2015)

 

최성수 목사(신학박사, 문화평론가)




허삼관 (2015)

7
감독
하정우
출연
하정우, 하지원, 남다름, 노강민, 전현석
정보
드라마 | 한국 | 124 분 | 201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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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은 배우인 하정우가 감독으로서 만든 두 번째 작품이다. 비록 짧은 배역이라도 출연한 중견급 배우들을 볼 때, 그의 넓은 인맥을 확인할 수 있고, 또한 이미 '만두 먹방'으로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하정우 특유의 장면들을 볼 수 있다. 전편에 비해 감독으로서 하정우의 특징이 더욱 도드라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원작에서 강조하는 문화혁명과 매혈이 갖는 상관관계를 한국 상황으로 옮기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감독은 원작을 각색함에 있어서 대단한 용기를 발휘했다. 다시 말해서 한국 전쟁 이후를 시대적인 배경으로 그리고 공주를 공간적인 배경으로 하면서 힘든 삶의 한 방식으로 매혈이라는 모티브를 사용했다. 사상의 곤고함 대신에 경제적인 곤고함으로 대체한 것이다. 결국 원작이 문화혁명을 겪는 당시대인의 운명에 집중하고 있는 것과 달리 감독은 가난 속에서 부성애를 발휘하는 허삼관이라는 캐릭터에 관심을 기울였다. 부성애를 자극하는 <국제시장>과 주제에서 어느 정도 흐름을 공유한다.

 

이야기는 첫눈에 반한 동네 처녀 허옥란(하지원 분)을 온갖 물량 공세로 아내로 삼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결혼 후 11년 동안 키운 첫째 아들이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전개되는 좌충우돌의 과정이다. 무거울 수밖에 없는 사건이고, 어떻게 보면 '출생의 비밀'을 두고 전개되는 한국의 막장 드라마의 한 소재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코믹하면서도 태연스럽게 다뤄 관객들의 심적인 부담을 덜어주었다. 특히 매혈은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모티브다. 매혈이 누구에게는 남성의 건강을 입증하기 위한 방법으로, 누구에게는 생활의 한 방편으로 그저 노동을 대체하는 일일 수 있지만, 허삼관에게는 가족을 위해 급전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이었는데, 결국 아내를 얻는 일이며 아버지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는 일이 자기 생명보다 더욱 소중한 것임을 나타내 보여주는 행위였다. <허삼관>은 매혈행위를 통해 가족을 위한 부성애를 말한다.

 

영화배우로서가 아니라 감독으로서 두 번째 작품인 <허삼관>은 하정우의 잠재적인 연출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아쉬운 점 두 가지를 말한다면, 초반부에 보여주었던 이야기를 코믹하게 끌어가는 힘이 감동으로 전환되면서 급격하게 약화된 것이다. 영화적으로 볼 때 자연스런 전개였지만, 이야기의 주제인 아버지의 희생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일에 너무 전념하다보니 영화에 대한 관객의 기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것 같다.

 

다른 하나는 한국인 정서에 맞지 않는 분위기다. 다른 나라의 소설을 한국 영화로 만들 때,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정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서'란 우리 이야기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외국 영화는 외국의 정서를 전제하고 보기 때문에 비록 낯설다 해도 감상에 방해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이야기가 아닌 것을 한국 영화로 옮겨왔을 때의 상황은 다르다. 관객은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전제하기보다 우리 것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특히 원작을 모르고 영화만을 감상하게 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니 원작에 가깝게 만들었다고 해도 정서가 맞지 않으면 이상한 영화가 되고 만다. 이런 점에서 한국 영화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좀 더 한국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캐릭터가 아쉬웠다. 게다가 죽어가는 사람의 혼을 깨우는 굿을 할 때 사용한 주문이 한국의 무당이나 박수가 쓰는 것이 아니라 증산도나 대순진리회의 주문과 너무 흡사해 한국 무속을 아는 사람들에겐 여간 신경이 거슬리는 부분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즈음에서 영화에서 다양한 형태로 회자하는 ''에 주목해보자. 무엇보다 허삼관은 허옥란의 데릴사위로 들어가면서 허씨 집안의 피를 잇는다고 생각한다. 첫째 아들 일락이 친자가 아님을 확인하면서 혈통에 얽힌 고민에 빠진다. 또한 매혈을 통해 아내를 얻고 빚 청산을 하며 아들의 치료비를 번다. 비록 언어유희에 불과하지만, 만두에도 만두''가 사용된다는 점도 결코 무시하지 못할 부분이다. 허삼관이 지나친 매혈 때문에 생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다른 사람의 피를 수혈 받음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장면도 주목할 부분이다.

 

결국 피에 얽힌 다의적인 맥락을 고려할 때, 영화에서 피가 주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매혈 행위의 의미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된다. 단순히 어려웠던 시절을 살아온 한 남자의 부성애에 국한해서 보기에는 석연치 않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원작의 배경이 되는 문화혁명과 매혈의 관계를 염두에 둔다면, 혹시 익숙한 것과 이질적인 것의 만남, 전통과 새로운 것의 만남에서 굳이 익숙한 것 혹은 전통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아닐까? 허삼관이 매혈 곧 희생을 통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었듯이, 전통을 잃는다고 해서 소중한 것이 잃는 것은 아님을 암시한다. 오히려 그럼으로써 더욱 소중한 것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친 매혈이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듯이, 한순간에 많은 전통을 내버리는 행위는(문화혁명에서처럼) 오히려 민족의 정체성에 심각한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

 

사족이 되겠지만, 매혈 행위와 관련해서 생각나는 일이 있다. 오래 전이지만 과거 수난주간에 라디오 방송에서 헌혈을 독려하는 방송을 하면서 헌혈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비교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예수께서 우리들을 위해 피를 흘려주셨으니, 그 피로 살게 된 그리스도인도 다른 사람을 위해 피를 나누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헌혈을 통해 피를 나누는 일은 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통해 구원을 받는 일과 결코 동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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