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진화의 시작>-타자에 대한 인간의 부당한 태도에 대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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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 대한 인간의 부당한 태도에 대한 경고



인간 상호간에 교류가 적었던 시절에 그리고 삶의 조건들이 넉넉하지 못했을 때 이방인 혹은 타자에 대해 보이는 인간의 전형적인 태도는 배타적이었다.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키려는 의지와 안전에 대한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부영화라는 장르 영화가 잘 표현하고 있듯이, 이방인은 언제나 마을 밖에 머물러 있거나 아니면 마을 안에 머물게 된다 하더라도 처음에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일 뿐이다. 마을에 관계를 맺게 되는 이유가 현존할 때, 예컨대 침입자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거나 혹은 마을의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게 될 때 비로소 환영을 받는다.

그러나 통신과 운송 수단의 발달로 상호교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이뤄지면서 현대는 지구촌으로 비유되는 시대가 되었고, 이로 인해 배타적인 태도는 관용의 미덕으로 철저하게 수정받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지엽적인 형태로 남아 있는 배타성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배타성을 주장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여전히 이념, 종교, 문화, 인종, 지역, 민족 등과 관련해서 배타성을 보이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세계는 현재 다국적 사회와 다문화 사회, 그리고 다종교 사회를 지향한다. 그것의 정당성을 묻기 이전에 우선적으로 국가와 인류의 미래에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관용은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덕목이 되었다.

같은 민족 혹은 지역이나 국가 안에서도 이방인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여겨지는 존재를 가리켜 타자라고 한다. 칼 마르크스와 그의 정신을 계승한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서 생성되는 타자의 배경을 소외에서 찾았다. 이런 의미에서의 타자는 차별되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자개념은 이방인개념보다 더욱 비사회적이며 비윤리적이다.

차이는 다분히 존재론적인 기원을 갖고 다양성의 기원이 되지만, 차별은 심리적이고 의식적이며 때로 제도적으로 고착화되기도 한다. 이것은 갈등과 반목의 기원이다. 성 차별, 계급적 차별, 신분적 차별, 외국인 차별, 장애인 차별, 유산가와 무산가의 차별,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차별 등이 현대사회에서 발견되는 현상들이고 이것으로 인한 사회적인 갈등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다양성으로 이어지는 차이는 다양한 형태의 상호 교류와 상호이해를 통해 극복 혹은 제3의 형태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지만, 차별은 교류만으로는 부족하고 상호공감과 수용을 위한 의식적인 계몽과 혁신적인 사고, 그리고 의지적인 노력과 더불어서 때로는 법적인 제재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차별은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이 드러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제동장치가 없으면 운전수가 없이 비탈길을 달리는 차와 같다.

차별의 정도가 커서 상대적으로 느끼는 서로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 폭동이나 혁명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본가와 노동자, 유산가와 무산가의 갈등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이어질 것으로 주장한 바 있다. 그만큼 우리 안의 타자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읽어낼 수 있는 지표이다.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공동체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회와 사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우리 안에 타자가 존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지난 821일자 신문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행성과학과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소속 과학자들이 발표했던 외계인과의 접촉 가능성을 대비하는 시나리오를 보도했다. 세계 도처에서 UFO 출현에 대한 보고들이 잇따르고 있고 또 세계적인 과학자로서 우주탄생에 신의 존재는 불필요하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스티븐 호킹은 외계인의 존재를 주장한다. 외계인들은 영화적인 상상력을 통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사실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만일 외계인이 존재하고 그들과의 만남이 실현된다면, 지구촌 사람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만일 인간과 동일한 형태라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형태와 모양에 있어서 분명 다를 것이기 때문에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많은 영화들은 이미 이와 유사한 문제들을 과학적 혹은 기술적 상상력을 통해 비유적으로 성찰하였다. 예컨대 <매트릭스>는 보기에 따라 달라질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영화이지만, 미래사회에서 인간과 사이버 기계의 관계를 깊이 있게 고민하였고, <트랜스포머 3>는 더욱 구체적으로 인간과 로봇과의 공생의 문제를 다루었다. <디스트릭 9>이나 <E.T.>에서 등장하는 외계인은 놀라운 기술력을 갖고 있다 해도 그 기이한 형태로 인해 인간과 함께 살 수 없는 듯이 여겨진다. 인간은 외계인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인간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그들을 차별할 것이라는 전제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디스트릭 9>은 외계인을 대하는 인류의 태도를 예언하는 것 같아 매우 충격적이었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역시 인간의 타자의식과 그로 인한 결과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영화이해의 관건은 유인원의 비유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인데, 유인원은 인간의 타자로서 명령에 순응하고, 인간의 욕구에 따라 생산되며 또한 소비되는 존재를 의미한다.

이 영화는 인간이 유인원의 지배를 받는다는 가상의 미래 세계를 다룬 총 7회에 걸친 SF 영화 <혹성탈출>의 프리퀄(속편을 뜻하는 시퀄의 반대말로서 영화의 과거를 다룬다)인데, 어떻게 해서 지능이 있는 유인원의 세계가 형성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인간과 독립해서 자기만의 세계를 갖게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아버지의 치매를 치료하기 위한 간절한 마음에서 프랭크(윌 로드맨)는 치매치료를 위한 신약개발에 참여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그는 신경계의 복원과 더불어 부수적으로 지능이 향상되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기의 사건이 될 발견을 발표하지만 뜻하지 않은 실험실에서의 사고로 인해 실험은 중단되고 실험대상자인 모든 유인원들은 안락사 된다. 안락사 직전에 구해진 유인원 세라의 지능은 신약의 효과로 인해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어 있다. 프랭크에게 수화를 배워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시저는 프랭크 아버지를 돕는 과정에서 이웃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게 된다.

프랭크는 자신이 개발했던 약을 아버지에게 투여함으로써 치매 치료에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지능 향상에도 크게 기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들은 제약회사 사장은 신약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를 다시 허락해 준다. 그러나 유인원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그것이 인간에게는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확신한 프랭크는 실험을 중단할 것을 제안하지만 이익에 눈이 먼 제약회사 사장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유인원들이 수용되어 있는 곳에서 이뤄진다.

우발적인 사고로 인해 인간의 거주 지역을 떠나 유인원 수용소에 갇히게 된 시저는 그곳에서 유인원들로부터 왕따를 당할 뿐만 아니라 인간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이에 불만을 갖게 되지만 혼자로서는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시저는 제약회사 실험실로 가서 지능 향상을 위해 개발 중인 약을 모든 유인원들에게 투여한다. 그리고 자기들만의 세상을 향해 인간의 세계를 탈출한다.

<혹성탈출>의 프리퀄로서 어떻게 해서 미래사회에 지능이 있는 유인원들이 출현하게 되었고 또 어떻게 그들의 세계가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혹성의 탈출: 진화의 시작>은 오늘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타자를 형성하게 하는지를 성찰하게 하고 또 타자에 대한 우리들의 부당한 태도를 반성하게 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 가운데 타자를 형성하게 하는 인간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윤리적인 혹은 도덕적인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 태도, 둘째, 타자(유인원)를 실험대상으로 삼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폭력, 셋째, 타자를 공존이 아니라 착취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탐욕적인 자세, 그리고 넷째, 결국 자유를 억압하는 태도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타자 곧 유인원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인간의 세계를 탈출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다시 말해서 서사전개에 있어서 현재 우리 지구촌의 문제 상황(치매를 치료하기 위한 신약개발)을 설정해놓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혹성탈출:진화의 시작>의 메시지는 현대인을 향한 경고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영화는 오늘 우리 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타자에 대한 부당한 행태들을 고발한다. 그것은 우리 안의 타자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오만한 탐욕과 타자를 자기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려는 부당한 태도, 자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가치관들에 대한 경고이다.

비록 먼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외계인과의 조우를 준비하는 경우가 아니라 해도 우리 안의 타자가 형성되지 않고 또 그들이 우리로부터 벗어나 자기 나름의 세계를 건설하지 않도록 하며, 결국 우리 자신이 그들에 의해 지배당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공존과 공생을 향한 의지를 다시고 삶의 방식들을 학습해야만 할 것이다.

국가적으로 다문화 다종교 사회로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지만, 우리 안의 타자가 발생되지 않기 위해서 기대되는 곳은 교회 공동체다. 예수님의 사역을 이 땅에서 반복하기를 원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교회는 비록 도상에 있는 존재로서 연속되는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게 되지만,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천국의 모델이다. 그곳은 누구도 결코 타자가 되지 않고 우리안에서 평안과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사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사회학자들이 지적하는 사람들 혹은 청년들이 교회로부터 벗어나는 많은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공동체적인 성격의 부재이다. <무산일기>에서 볼 수 있었듯이, 실제로 교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많은 지체들이 있고 또 그들은 우리 안의 타자로서 묵묵히 살아간다. 혹 누가 알 것인가, 그들이 교회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반기독교적인 세계를 건설할지... 실제로 안티기독교 세력들 가운데는 이전에 기독교신자였던 사람들이 많다.

교회가 사회의 희망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최소한 교회 안에서만은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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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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